제122화
“교수님….”
문어 가면을 발견한 카단이 불안감을 느끼며 아이작에게 어떤 말을 하려 했다.
“네. 마족이군요.”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는지, 아이작이 자상하게 웃으며 답했다.
카단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작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짓하며 문어 가면을 바라봤다.
“이질적인 힘을 저렇게 대놓고 드러내는데, 마족이라는 걸 모르면 가디언 자리를 반납해야겠죠?”
아이작 역시 과거 2차 마족 전쟁 당시 수많은 마족과 전투를 벌였던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문어 가면이 풍기는 이질적인 힘의 정체를 파악한 듯싶었다.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군.’
여태껏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던 아이작도 이번엔 긴장이 되는지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이 녀석을 자유롭게 풀어주면 생도들은 물론 교관, 교수들도 위험해진다.’
아이작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문어 가면과 대등하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걸.
“샬로트의 빈자리를 채운 네크로맨서. 실력이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만나는구나.”
문어 가면을 쓴 자가 반갑다는 듯 웃어대더니, 비아냥거리며 말을 걸었다.
그러자 아이작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샬로트 님과 비교하면 내가 한참이나 부족한 건 사실이지.”
“뭐야? 곧바로 인정하면 재미없는데?”
“그래? 그래도 내 실력을 확인하는 시간이 즐겁지만은 않을 거야.”
아이작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렇다면 기대하지. 꼭 재미없어야 할 거야.”
문어 가면은 아이작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양팔을 옆으로 뻗으며 마족의 힘을 활성화했다.
그러자.
촤아아아악!
그의 발밑에 있던 그림자가 빠르게 크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슈슈슈슈슈슉.
이어서 크기를 키운 그림자에서부터 복면을 쓴 마족들이 마구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수는 대략 30명.
그들이 일반인이었다면, 잠깐 놀라고 말았겠지만, 그들의 정체는 모두 마족이었다.
이 연회장에 마족이 하나 늘어나는 것만으로도 큰 위협이 된다는 걸 알았기에 아이작은 미간을 좁히며 문어 가면을 바라봤다.
‘그림자에서? 쯧. 이래서 아무도 습격자들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거였어.’
문어 가면의 그림자 속에서는 그 어떤 기척 따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가디언인 아이작도 그림자 속에서 마족들이 튀어나올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기척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일.
‘원래 아공간 마법은 살아있는 것을 넣을 수 없는데. 역시 마족들의 고유 능력은 다 말이 안 되는 것뿐이군.’
이제야 궁금증 하나가 풀렸는지 아이작이 조금은 후련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교수님. 돕겠습니다.”
카단이 마나를 활성화하며 말하자, 아이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정말 필요하게 되면 그때 도움을 요청하죠.”
아이작은 그렇게 말하며 허공을 향해 가볍게 손을 저었다.
스으으으윽!
그의 몸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주변으로 수십의 데스나이트가 나타났다.
‘뭐야? 데스나이트가 더 있어?’
처음 마족들이 나타났을 때, 아이작 교수는 수십의 데스나이트를 소환해 생도들을 지키려 했다.
그 데스나이트들은 여전히 연회장 곳곳에 퍼져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데스나이트가 더 나타날 줄이야.
그뿐이 아니었다.
리치와 밴시. 그리고 듀라한.
7성 이상부터 소환할 수 있는 상위 언데드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건 1인 군단 그 이상이군.’
카단은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아이작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듬직하고 든든한 뒷모습이었다.
마치 샬로트의 뒷모습이 떠오르는 그런….
그때.
훅! 휘릭!
문어 가면의 그림자로 물든 바닥에서부터 문어 다리 같은 것이 불쑥 튀어나와 빠르게 휘둘러졌다.
그러나 아이작은 문어 다리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니, 반응할 필요가 없었다.
서걱!
그의 주변에 나타난 데스나이트 하나가 달려들어 여유롭게 문어 다리를 반으로 잘라냈으니.
“카단. 9성을 바라보고 있는 네크로맨서의 전투가 어떤 건지 잘 지켜보세요.”
아이작이 말을 끝내는 순간.
타앗!
주변에 있는 언데드들이 동시에 땅을 박찼다.
그러자 문어 가면이 소환한 마족들도 땅을 박차며 언데드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전투는 길어졌다.
마족들은 쉽게 쓰러지지 않았고, 아이작의 언데드는 무한히 되살아났다.
그렇게 자연스레 전투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은 승부가 그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았다.
아이작과 문어 가면. 둘 다 여유로움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여전히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하다.’
그러나 카단은 그런 전투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왜지? 교수님이 밀리는 상황도 아닌데?’
지금 상황에서는 카단이 나서봤자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었다.
기껏 해봐야 고작 마족들 한둘을 상대하는 것이 전부.
어쩌면 카단의 개입이 아이작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카단이 할 수 있는 건 아이작을 믿고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이상했다.
분명 아이작과 문어 가면의 전투는 비등비등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인데, 왜 불안감이 가시질 않는 걸까?
그때.
“대단하네. 혼자서 수많은 마족을 무리 없이 상대하는 걸 보니, 가디언의 자리에 앉을 자격이 충분해.”
문어 가면은 마치 아이작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대며 말했다.
“그런데.”
순간 문어 가면의 몸 주변에 일렁이던 검붉은 기운이 크기를 키웠다.
“이렇게 해도 여유로워할 수 있을까?”
쿠구구구구구궁!
이어서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느꼈는지 아이작은 미간을 좁히며 카단에게 외쳤다.
“카단. 뒤로 물러나세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쫘아아악!
어둠이 드리운 곳곳에서부터 문어 다리를 닮은 촉수들이 튀어나왔다.
‘설마?’
촉수들은 아이작이나 그의 언데드를 노리지 않았다.
“흩어져서 사람들을 지켜라!”
아이작은 무언가 불안감을 느꼈는지 재빨리 언데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의 명령과 동시에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촉수들이 연회장 곳곳에 흩어진 생도들을 향해 휘둘러졌다.
“크아아아아악!”
언데드들이 촉수를 막아내기도 전에 연회장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아이작과 그의 언데드를 노리는 것보다 연약한 이들을 노리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설마 마족인 나에게 정정당당함을 바란 건 아니겠지?”
문어 가면은 실망하지 말라는 듯 손짓하며 말했다.
조롱하는 듯한 그 목소리에 아이작은 미간을 좁히며 그를 노려봤다.
되도록 마족에게만 신경 쓰고 싶었던 아이작이 불안한 눈으로 연회장을 살폈다.
흩어진 언데드들이 생도들을 구해주려 애쓰고 있지만,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지키면서 싸우는 것은 참 어려워. 안 그래?”
아이작의 표정이 굳어지자,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즐겁다는 듯 문어 가면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특히 시체를 다루는 네크로맨서들은 더 어려울 거야. 원래 아군이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싸우는 쪽이잖아?”
언데드는 네크로맨서에 의해 무한히 되살아나는 존재.
네크로맨서는 언데드의 죽음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자였다.
“어디 열심히 지켜봐.”
문어 가면은 그렇게 말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가 지나간 바닥에서 촉수들이 튀어나와 살랑살랑 움직여댔다.
“카단. 부탁 좀 해도 되겠습니까?”
아이작은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뒤에 있는 카단을 향해 말했다.
“네.”
“흩어진 생도들을 챙겨 밖으로 대피해주세요. 지금쯤이면 연회장 밖도 어느 정도 처리됐을 겁니다.”
생도들이 연회장에 남아있다면 아이작은 마음 편히 전투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카단은 그의 말뜻을 이해했다는 듯 데스나이트 두 기를 소환하고는 곧바로 땅을 박찼다.
흩어진 생도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어 가면이 소환한 촉수들이 공격하는 곳엔 어김없이 생도들이 있었으니까.
서걱!
카단은 데스나이트에게 명령해서 촉수를 잘라낸 뒤, 곧바로 생존한 생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벨리드 교관님이 나간 곳으로 가세요! 엄호하겠습니다.”
“고, 고맙다.”
간혹 마족들을 마주하긴 했지만, 그때마다 아이작의 언데드들이 나타나 그들을 막아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카단은 성실히 움직인 덕분에 연회장에 남은 생도들을 모두 밖으로 대피시킬 수 있었다.
아이작 교수의 말대로 연회장 밖의 상황은 어느 정도 전투가 끝나가고 있었다.
물론 좋은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사상자와 부상자가 가득했고 딱 봐도 모두가 지쳐 보였다.
그렇기에 방심해선 안 됐다. 승리에 가까워졌을 뿐, 전투가 확실하게 끝난 건 아니었으니.
‘교관님들과 교수님들을 비롯해 졸업반 선배들과 마티아스도 있으니 여긴 그래도 안전할 거야.’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땅을 박차며 연회장 안쪽으로 향했다.
“교수님! 모두 대피시켰습니다!”
카단의 외침이 들리자, 아이작은 잠시 고개를 돌린 뒤 자상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아이작도 온전히 마족과의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상황이 좋은 게 아니야.’
아이작은 아마 본인의 힘을 100%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연회장 안에는 아카데미 사람들의 시체가 아직도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그들의 시체를 활용할 순 없었기에, 본래 지닌 언데드만으로 전투를 이어가야 했다.
무엇보다 시체 폭발 같은 강력한 마법도 사용할 수 없었다.
자유롭게 전투하는 마족에 비해서는 제약된 것이 너무나 많았다.
가디언이었기에 당연히 강하기는 하겠지만, 아이작이 불리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시체를 다 챙겨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
카단은 순간 좋은 생각이 났는지, 곧바로 해골들을 소환해 연회장 안쪽으로 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카단을 의아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러나 이내 해골들이 사망자들의 시체를 들고 나오자, 하나같이 카단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중간 촉수들과 마족들의 방해가 있었지만.
“망자가 가는 길을 막으려 하다니!”
“군주의 명이시다! 방해하는 놈은 모두 죽이겠다!”
카단의 데스나이트들이 잠시나마 마족을 상대하며 시간을 벌어주었다.
‘쯧. 직접 들어가는 게 훨씬 더 빠르긴 할 텐데.’
언데드가 아닌 직접 시체를 운반하는 것이 더 빠르기야 하겠지만, 자칫 촉수에 붙잡히기라도 한다면 카단은 곧바로 아이작의 약점이 되고 말 것이다.
“교수님! 시체는 모두 챙겼습니다!”
이제 마음껏 싸워도 좋다.
카단의 그 외침이 반가웠던 것일까? 아이작은 곧바로 마나를 활성화했고.
쾅! 쾅! 쾅! 쾅! 쾅!
곧바로 강력한 마법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연회장 안쪽에서 폭발음이 연이어 들려왔다.
아이작은 자유롭게 큰 마법을 사용했고 새로운 언데드들을 꺼내며 문어 가면을 몰아붙였다.
‘이제 됐다.’
부서진 연회장 벽면 너머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단이 희망을 그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어떤 제약 없이 전투에 임할 수 있게 된 아이작은 큰 마법들을 사용하며 문어 가면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방해되는 요소나 지켜야 할 것이 없으니 아이작은 훨씬 자유로워졌고.
콰앙! 콰아아아아!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게 되자, 문어 가면을 조금씩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하아. 이거 귀찮게 됐네.”
계속 방어만 하던 문어 가면은 짧게 한숨을 내뱉더니,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졌다.
순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작과 카단이 움찔했다.
유명인이면 어쩌지? 아는 사람이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그들의 몸을 움찔하게 했다.
다행히 가면 속 그의 얼굴은 카단이나 아이작 두 사람이 모르는 자의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런 두 사람에게 안심하기 이르다고 말하듯 문어 가면을 썼던 남자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촤라라라라락!
순간 그의 등에서부터 문어 다리 같은 촉수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으드드드드득!
뼈가 재조립되는 듯한 기괴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그가 마족으로서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