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기괴했다.
본모습을 드러낸 마족은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해질 정도로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눈 하나가 달린 거대한 얼굴과 그곳에 달린 수많은 촉수.
심해의 괴수가 떠오르는 생김새였다.
“베제르 님이시여!”
“저희에게 승리를!”
문어 가면이 본모습을 드러내자, 연회장에 있던 마족 모두가 그를 향해 숭배하듯 외쳐댔다.
“베제르…?”
그를 마주하고 있던 아이작이 미간을 좁히며 그의 이름을 되뇌었고.
“그래. 그것이 나의 고귀하고 위대한 이름이지.”
기괴한 모습의 마족이 거대한 입을 벌리며 대답했다.
화아아악!
베제르가 대답하는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불길한 기운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부서진 연회장의 벽 너머로 베제르의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갔고, 섬뜩함을 느낀 이들이 동시에 연회장 안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봐선 안 될 것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저 괴물은?”
마족의 본체를 마주한 이들의 머릿속엔 두려움이 그려졌고, 얼굴 위로 공포가 드러났다.
마족을 처음 본 생도들은 물론이고 마족 전쟁에 참여했었던 교관, 교수들 역시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잔인하면서도 섬뜩한 공포를 마주한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두려움을 느끼며 몸을 떨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텐데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지?”
베제르는 공포에 떨고 있는 인간들을 발견하자 커다란 입을 열고 비릿한 말을 흘려보냈다.
낄낄낄낄낄.
말을 끝내는 동시에 조롱하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털썩.
그 웃음을 들은 사람 중 몇몇은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다들 정신 차려!”
그때 벨리드 교관이 마나를 사용해 큰소리로 외쳤다.
화륵!
그와 동시에 불꽃으로 만든 거대한 창이 그녀의 손을 떠나 베제르를 향해 날아갔다.
“어리석은 행동이다.”
휙-
베제르는 몸에 달린 촉수 하나를 휘둘러 불의 창을 쳐냈다.
불의 창은 쉽게 막히고 말았지만, 그녀의 외침과 공격 덕분에 공황 상태에 빠졌던 이들이 곧바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때.
쑤욱!
바닥에서부터 촉수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곧바로 벨리드의 어깨를 관통했다.
“컥!”
베테랑 마법사인 벨리드 교관조차 반응할 수가 없는 공격이었다.
어깨를 관통당한 벨리드 교관이 무릎을 꿇었고, 근처에 있던 교관들이 재빨리 검을 휘둘러 촉수를 끊어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지? 그게 인간들의 도리잖아?”
베제르는 무릎 꿇은 벨리드 교관을 조롱하듯 말하며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었다.
“카단.”
그사이, 아이작이 부서진 벽면 앞에 서 있는 카단을 불렀다.
그 목소리에 카단은 곧바로 아이작을 바라봤고, 아이작은 카단과 눈을 마주치자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부탁 하나만 하겠습니다.”
“부탁…이요?”
“만약에라도 연회장 안으로 들어오려는 자가 있으면 막아주십시오. 인간이든. 마족이든.”
아이작이 진중한 얼굴로 말하자, 카단이 순간 표정을 굳혔다.
“그 말씀은 저 마족을 혼자 상대하시겠다는 뜻입니까?”
카단의 질문에 아이작이 자상한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기에 하는 부탁입니다. 저를 믿으신다면 부디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이런 상황에서도 아이작은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카단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고, 그의 시선은 천천히 괴수로 변한 마족이 있는 곳을 향했다.
‘플로리안 공작 부인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강하다.’
아직 베제르라는 마족을 제대로 상대해보지 않아서 누가 더 강한지 파악할 순 없었다.
그저 느껴지는 두려움만 놓고 판단했을 땐 플로리안 공작 부인보다 기괴하게 생긴 베제르가 한 수 위였다.
“교수님. 혼자서는 힘드실 겁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교수, 교관님들과 함께….”
“카단. 네크로맨서는 혼자 싸울 때 효율이 올라간다는 거 잘 알고 있죠?”
아이작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고, 카단은 고민 끝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모든 출입구를 막을 겁니다.”
“네?”
“저 녀석은 그림자와 관련된 괴상한 능력을 쓰고 있습니다. 외부와 차단해야 다른 사람들이 다치지 않을 수 있어요.”
아이작은 단호하게 말했고, 카단은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아이작의 뜻을 따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저를 믿으십시오. 카단.”
아이작은 그렇게 말하며 마나를 활성화했다.
아이작이 무언가 중얼거리자, 바닥에서부터 뼈로 만들어진 벽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촤라라라라라락!
뼈로 만들어진 벽은 빠르게 연회장 건물을 뒤덮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회장 건물은 뼈로 만들어진 요새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아, 아이작 교수님!”
연회장이 뼈의 벽으로 가려지자, 교관과 교수들이 당황하며 아이작 교수를 불러댔다.
“당장 보이는 마족부터 정리합시다!”
그러자 아이작 교수의 의도를 알아챈 벨리드 교관이 사람들을 향해 외쳤고.
“네!”
이내 교관과 교수. 그리고 생도들은 번뜩 정신을 차리며 눈앞에 있는 적, 마족들을 바라봤다.
‘저 뼈의 벽이 무너져내리기 전에 당장 보이는 마족들부터 죽인다.’
카단 역시 벨리드 교관의 명령에 따라 마족들과 싸울 준비를 했다.
카단의 옆으로 데스나이트 두 기가 다가왔고, 그 주변으로는 카단의 해골 병사들이 점차 모여들었다.
‘루나는….’
목숨이 걸린 전투였기에 정체를 감출 생각은 없었지만, 루나는 아직 아껴두기로 했다.
‘만약에. 혹시라도 아이작 교수님이 패배한다면 그때 소환해도 늦지 않아.’
루나는 최후의 보루.
그녀를 소환하는 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뤄야 했다.
만약 아이작이 패배했을 때, 그때 서야 루나를 소환한 뒤 교관, 교수와 힘을 합쳐 베제르라는 마족을 상대할 생각이었다.
‘지금 루나를 소환해봤자, 피아 식별도 힘들어할 거야.’
지금은 교관과 교수. 그리고 아카데미 생도들에게 등을 맡기고 싸워야 할 때였다.
***
마족의 기습 이후로 얼마나 지났을까?
“이, 이겼다!”
“우리가 마족들을 막아냈어!”
기나긴 접전 끝에 영웅 아카데미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물론 아직 모든 전투가 끝난 건 아니었다.
아이작과 마족 베제르가 있는 연회장은 여전히 거대한 뼈의 벽으로 가려져 있었다.
“마족들의 시체를 한쪽으로 쌓아라!”
“부상자들은 우선 숙소로 돌려보내! 아군의 시체부터 회수한다!”
교관과 교수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생도들을 지휘했다.
갑작스러운 전투에 지칠 법도 했지만, 생도들은 승리를 만끽하기보다 긴장을 유지하며 교관과 교수들의 말을 따랐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끝까지 방심하지 않았다.
마족의 시체를 일일이 살피며 숨이 끊어졌는지를 확실하게 확인했고, 아직 살아있다면 확실히 끝내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이쪽은 다 정리했습니다!”
“정찰 결과 아카데미에 흩어진 마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남은 마족은 하나입니다.”
이제 남은 건 뼈의 벽 너머 연회장에 있는 이질적인 존재. 베제르 하나뿐이었다.
“아이작 교수님….”
교관과 교수들이 동시에 뼈로 만들어진 거대한 벽을 바라봤다.
교관과 교수, 그리고 생도들은 마족과 전투를 치르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과연 저 안에서 아이작 교수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아직 괜찮으신 거겠지.’
카단은 씁쓸한 표정으로 뼈로 만들어진 벽을 바라봤다.
뼈의 벽이 무너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선 아이작은 아직 멀쩡하다.
아이작이 쓰러졌다면 마족 베제르가 뼈의 벽을 부수고 나왔을 것이다.
그러니 연회장 안의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아이작의 승리를 기원하며 연회장을 뒤덮은 거대한 뼈의 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쩌적! 쩌저적!
뼈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벽에 생겨난 금이 벽 곳곳으로 빠르게 퍼져나가더니, 이내.
촤르르르르르륵!
거대한 뼈의 벽이 무너져내렸다.
뼈의 벽에 감춰졌던 연회장 건물의 모습이 드러났고, 무너진 연회장의 벽 너머로 보이는 광경은 처참하다 할 수 있었다.
연회장 안은 처음 마족들의 습격이 있었을 때보다 더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여기저기 핏자국이 가득했으며, 화려하기만 했던 연회장은 더는 처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순간에 전쟁터로 변해있었다.
“전투가 가능한 자들은 내 옆으로 모여!”
“대기! 무작정 돌입하지 마!”
혹여나 누군가 연회장 안으로 뛰쳐 들어갈 수도 있었기에 교관과 교수들은 경고하듯 빠르게 외쳐댔다.
게다가 연회장 너머로 누가 걸어나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전투를 준비하기도 해야 했다.
“…….”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연회장 밖으로 나오는 이는 없었다.
아이작도 마족도 연회장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에, 교관과 교수들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고.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벨리드 교관과 크리스 교관이 앞장서서 연회장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저, 저기!”
그때 누군가가 연회장의 무너진 벽면을 가리키며 외쳤고.
“아이작 교수님!”
“교수님!”
그곳에선 아이작 교수가 터벅터벅 걸어 나오고 있었다.
승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아이작을 발견한 순간 아카데미 사람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힘이 풀린 듯 바닥에 주저앉았고,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현실이라는 것을 인지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교, 교수님….”
그때 벨리드 교관이 놀란 표정으로 아이작 교수를 불렀다.
그제야 사람들은 아이작 교수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팔이… 어, 어서 치료를!”
“치료 마법 쓸 수 있는 사람은 이쪽으로!”
“교수님 괜찮으십니까?”
아이작의 왼팔 하나가 보이질 않았다. 마법을 이용해 지혈한 것 같지만, 피에 젖은 아이작의 옷은 여전히 축축해 보였다.
“팔 하나로 마족으로부터 아카데미를 지켜냈다면, 값싸다고 생각해야지요.”
아이작 교수는 지친 얼굴로 자상한 웃음을 지으며 진정하라는 듯 손짓했다.
아카데미를 지켜냈다는 말은 곧 마족을 쓰러트렸다는 뜻.
그러나 그 말에 기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왕국의 수호자가, 영웅 아카데미의 교수가 팔 하나를 잃었다.
그 모습을 보며 환호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빌어먹을 마족 새끼들!”
“왕국에 빠르게 보고해야 합니다.”
“지원 요청한 지가 언젠데 기사단이나 길드들에서는 왜 아무도 지원군이 오질 않는 건데!”
처절한 승리를 거뒀지만, 그들은 기쁨이 아닌 분노를 토해냈다.
왕국 수도에 있는 아카데미가 습격받았는데, 어째서 왕국 기사단을 포함한 그 어느 곳에서도 지원군이 오질 않았다.
“전 괜찮습니다. 아, 그리고 되도록 연회장 안쪽으로 생도들을 들이진 마세요. 교육에 그리 좋진 않습니다.”
아이작 교수는 지친다는 듯 한숨을 내뱉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꽤 개운해 보였다. 해냈다는 기쁨 역시도 느껴지는 듯했다.
그때.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카데미 정문으로부터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사람들이 모인 곳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상황은 종료된 것 같군요.”
이어진 목소리에 아카데미 사람들이 동시에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고.
“위대한 왕국의 수호자. 가디언 해밀턴 님을 뵙습니다!”
영웅 아카데미의 교관과 교수, 생도들이 곧바로 몸을 낮춰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지원군으로 온 자의 정체는 왕국의 가디언 중 하나인 ‘해밀턴’이었다.
왕국의 가디언이 지원군으로 왔다지만, 아카데미 사람들의 표정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조금만 더 빨리 왔다면, 사상자도 없을 것이며, 아이작이 팔을 잃는 일도 없었을 텐데.
희망도 고마움도 아닌 원망의 감정만이 아카데미 사람들의 마음속에 피어나고 있었다.
“이런. 아이작. 당신 팔이….”
해밀턴은 그런 시선들을 느끼며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고, 이내 아이작을 발견하자 미간을 좁히며 말을 걸어왔다.
“늦게 오셨습니다. 해밀턴. 다행히 마족들은 전부 처리했습니다.”
아이작은 일어나기도 힘들었는 지,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아카데미의 상황을 들려주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해밀터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이작에게 다가갔다.
“이제 이 아카데미도 끝이군요.”
해밀턴이 씁쓸한 표정으로 난장판이 된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고. 그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는 지 아이작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게 무슨….”
사상자와 부상자가 생겨났고, 건물 몇 개가 무너졌지만 아카데미가 끝났다고 표현하다니.
시간만 들이면 금방 복구할 수 있으며, 왕국에서도 공을 들여 놓은 기관을 그렇게 쉽게 끝이라 표현할 수 있는 걸까?
“뭐, 이제는 필요 없는 곳이 되었죠.”
해밀턴은 그렇게 말하며 아이작 앞에서 멈춰 섰고, 자세를 낮춰 앉아 있는 아이작과 눈높이를 맞췄다.
“임시였지만, 가디언의 자리에서 수고가 참 많았습니다. 아이작. 이제 편히 쉬세요.”
푹!
순간 해밀턴이 단검을 꺼내 아이작의 배를 찔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를 지켜보던 이들은 그저 얼어붙어버렸다.
공격당한 아이작 역시 상황 파악이 안 된다는 듯 당혹스러움을 담은 표정으로 해밀턴을 바라봤다.
그러자 해밀턴이 안주머니에서 가면 하나를 꺼내 자기 얼굴을 덮었다.
섬뜩함이 느껴지는 여우 가면.
여우 가면을 쓴 해밀턴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충격에 굳어버린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고생했어. 이제 편히 쉬도록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