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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126화 (126/186)

제126화

쿵! 쿠웅!

뼈로 이루어진 드래곤이 등장하자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아카데미의 그 어떤 건물보다 높고 거대한 언데드는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드래곤?”

“드, 드래곤이 진짜로 존재했어?”

본 드래곤을 마주한 사람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며 감탄했고 두려워했다.

끼에에에에에엑!

본 드래곤의 포효가 아카데미 곳곳에 울려 퍼지자, 몇몇 생도들은 주저앉기까지 했다.

심지어 교관, 교수 중에서도 휘청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비록 살아있는 드래곤은 아니었지만, 그 드높은 위엄만큼은 여전한 듯싶었다.

“아이작. 넌 계속 날 놀라게 해주는군. 아주 재미있어.”

언데드 소환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하다 하다 본 드래곤까지 꺼낼 줄이야.

해밀턴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어댔다.

‘낭패군. 설마 이런 걸 준비하고 있을 줄이야.’

다른 사람처럼 해밀턴은 본 드래곤을 보면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서 더는 여유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할 생각인가? 아이작?”

네크로맨서가 재앙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아이작은 제대로 보여주었다. 해밀턴은 헛웃음을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드래곤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 건 수천 년 전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디서 이런 걸 구해왔지?”

“네크로맨서는 늘 시체를 찾아다니는 존재 아닌가?”

그 말에 해밀턴은 진심으로 감탄한 듯 본 드래곤을 올려다봤다.

‘쯧. 지금 내 수준으로는 어쩔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본 드래곤을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전기가 오른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자꾸만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와 그의 머릿속을 탐식하려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귀족급의 마족이라고는 하나 드래곤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뼈만 남은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그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브레스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맞게 되면 아무리 나라도 멀쩡하진 못해.’

그때.

“쿨럭!”

아이작 교수가 피를 토하며 휘청거렸고, 그 모습을 본 해밀턴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역시 자네 수준으로 본 드래곤을 소환하는 건 무리였던 모양이지?”

“그래. 그러니 빨리 자네가 쓰러져 주길 바랄 뿐이지.”

“아이작. 지금 여기서 드래곤 브레스를 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나?”

뼈만 남은 드래곤이라도 브레스의 위력은 대단할 것이다.

분명 아카데미의 모든 건물은 무너질 것이고, 브레스에 닿은 모든 것은 녹아 사라질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살겠지만, 네가 아끼는 저 인간들은 모두 죽게 될 텐데?”

해밀턴의 말대로 아이작이 본 드래곤을 꺼냈으나, 마음껏 브레스를 쏘라고 지시할 수는 없었다.

“그건 아쉽긴 하군.”

아이작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드래곤의 위엄은 브레스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네.”

그와 동시에 본 드래곤이 뼈만 남은 날개를 펄럭이기 시작했고.

부우우웅!

이내 해밀턴을 향해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뼈만 남은 발을 휘둘렀을 뿐인데, 태풍이라도 몰아치는 듯한 충격이 사방에 퍼져나갔다.

콰아아아아앙!

본 드래곤은 해밀턴이 있던 자리를 그대로 내리찍었고, 그 충격의 여파로 건물의 잔해가 사방으로 튀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헛웃음을 삼켰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니, 이제는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 정도라면 아무리 강한 마족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본 드래곤의 위력을 감상한 사람들은 이제야 승리를 확신할 수 있다는 듯 희망을 그렸다.

그러나 한 사람.

카단만은 불안하단 표정으로 아이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본 드래곤은… 8성 네크로맨서가 일으킬 수 있는 언데드가 아니야.’

샬로트에게 배운 네크로맨시에 따르면 본 드래곤을 일으킬 수 있는 건 9성.

완숙의 경지에 오른 9성 네크로맨서만이 온전하게 본 드래곤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아이작은 본 드래곤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일까?

‘저 본 드래곤은 완벽하지 않아. 아이작 교수님도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카단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본 드래곤이 휘두른 앞발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내 본 드래곤이 앞발을 들어 올리자, 잔해 속에서 해밀턴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과연….”

먼지를 뒤집어쓴 해밀턴은 마치 기쁘다는 듯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이런 느낌. 아주 오랜만이야.”

해밀턴의 고유 특성인 방어력조차 가볍게 무시하는 드래곤의 힘.

‘이 도마뱀이 브레스를 쏘지 못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해밀턴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드래곤의 힘을 직접 받아냈다.

“아이작. 덕분에 짜릿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어. 고맙다!”

해밀턴은 아직도 머릿속에 패배를 떠올리지 않은 듯했다.

여전히 자신이 승리할 것이며, 본 드래곤이 나타났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

그 자신감에서 광기 어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핑!

해밀턴은 곧바로 검붉은 오러를 몸에서 내뿜더니, 이내 들고 있던 단검을 아이작 교수를 향해 던졌다.

쉐에에에에에엑!

검붉은 오러가 담긴 검은 빠른 속도로 아이작을 향해 쏘아졌다

“아이작 교수님을 지켜라!”

그때 크리스 교관이 검을 뽑아 들고는 아이작 교수를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까아아아앙!

크리스 교관이 오러를 담은 검을 이용해 해밀턴의 단검을 쳐내는 순간.

콰아아아앙!

단검에 담긴 검붉은 오러가 폭발하며 크리스 교관은 뒤로 날아가게 되었다.

“크리스 교관님!”

몇몇 교관들이 날아가는 크리스 교관을 바라보며 외쳤지만.

“아이작 교수님을 지켜야 한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마! 아이작 교수님만이 유일한 희망이야!”

벨리드 교관이 크게 소리치며 교관과 교수들에게 경고했다.

‘아이작 교수님에게 더는 힘이 남지 않았어. 다른 언데드를 소환하는 건 불가능해.’

벨리드 교관이 빠르게 아이작 교수의 상태를 살폈다.

애써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코에서는 피가 흘렀고, 반복해서 피를 토해냈다.

본 드래곤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큰 부담이 되는 것 같았다.

“눈치 하난 빠르단 말이야.”

그 모습에 해밀턴이 비아냥거리듯 웃으며 말했다.

본 드래곤을 상대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해밀턴이 아이작을 노릴 것을 예상한 크리스 교관의 외침.

그 덕분에 아이작은 다시 한번 목숨을 이어갈 수 있었다.

“벨리드 교관.”

아이작이 힘 빠진 목소리로 벨리드를 불렀고, 벨리드 교관은 천천히 뒤로 걸어오며 아이작을 바라봤다.

“네. 교수님.”

“애들을 데리고 피하십시오. 제가 버틸 수 있습니다.”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방해될 뿐입니다.”

아이작의 말대로 이 전투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전투였다.

본 드래곤이 나타난 이상 그 누군가의 합류도 도움이 아닌 방해가 될 뿐.

“하, 하지만!”

“제 말대로 하세요. 교관님의 능력이면 사람들을 데리고 멀리 가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때 아이작 교수가 피를 토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고.

동시에.

콰르르르르르!

거대한 본 드래곤이 중심을 잃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라? 힘이 다한 모양이야?”

본 드래곤이 제대로 힘도 못 쓰고 쓰러지자, 해밀턴은 그 모습이 웃기떡이라는 듯 폭소했다.

“빌어먹을. 벌써….”

아이작은 피를 토하면서도 쓰러져가는 본 드래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브레스 한 방 정도는 날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서!”

아이작 교수가 소리쳤고, 벨리드 교관은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녀는 재빨리 뒤로 몸을 피한 뒤, 곧바로 마나를 활성화했다.

많은 이를 동시에 텔레포트 시키는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고.

“교관과 교수님은 제가 아닌 벨리드 교관님을 지켜 주십시오.”

아이작 교수가 겨우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그때 해밀턴이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아이작 교수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왔다.

그의 몸에선 불길한 기운이 넘실거렸고, 그가 다가올 때마다 공기가 타락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스릉.

해밀턴은 단검을 뽑아, 그곳에 검붉은 오러를 담았고.

“죽어라!”

해밀턴을 막기 위해 달려드는 교관과 교수들을 향해 휘둘렀다.

서걱! 서거걱!

검붉은 오러가 휘둘러지자, 그곳에 닿은 이들은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쓰러졌으며.

“크아아악!”

몇몇은 큰 부상을 당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야말로 재앙이 눈앞에 펼쳐진 것과 다름 없었다.

해밀턴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고, 그에게 달려든 교관과 교수들은 목숨을 잃거나 큰 부상과 함께 바닥에 쓰러져갔다.

이내 아이작 앞에 도착한 해밀턴이 미소를 지으며 단검을 들어 아이작의 목을 겨눴다.

“덕분에 좋은 구경 했어. 드래곤 브레스를 직접 맞아보지 못한 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말이야.”

그때.

“거기까지다. 해밀턴.”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누군가 하늘에 둥둥 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해밀턴이 미간을 좁히며 욕짓거리를 내뱉었다.

“길버트…. 네가 어떻게?”

길버트 루고.

왕국의 수호자 가디언 중 하나인 대마법사.

“네 녀석이 더러운 마족이었을 줄이야.”

길버트 루고는 씁쓸한 표정으로 해밀턴을 내려다봤다.

“마족과 내통한 건 샬로트가 아니라 네 녀석이었나?”

길버트의 물음에 해밀턴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글쎄?”

“곱게 죽일 수는 없겠군. 아이작. 고생했네.”

길버트는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마나를 활성화했고, 그의 손에는 하얀 구체가 생겨났다.

“하필 나타나도 네 녀석이 나타날 줄이야. 분명 지원을 요청하러 간 놈들은 다 죽였는데.”

가디언의 등장에도 사람들은 웃을 수 없었다.

마족을 막을 수 있는 희망이 등장했다고 안심할 수가 없었다.

아이작조차도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강했던 마족. 길버트 루고라고 해서 그를 막아낼 수 있을까?

“혼자서 뭘 할 수 있다고? 너도 곧 죽여주마.”

해밀턴이 다시 검붉은 오러를 활성화했다.

그러자 길버트 루고가 피식 웃으며 말을 전했다.

“누가 혼자 왔다고 했지?”

길버트 루고가 들고 있던 하얀 구체를 공터로 던지자.

쿠웅!

그곳에 거대한 마법진 하나가 생겨났다.

마법진은 생겨나는 동시에 하얀 빛을 내었으며, 번쩍하는 빛과 함께 그곳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빌어먹을 마족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그게 해밀턴 너였냐?”

하얀 빛과 함께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에어록손 성벽의 주인이자 가디언 중 하나인 디미타르였다.

“디미타르까지?”

해밀턴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가디언 하나쯤이야 상대해볼 법했겠지만, 디미타르까지 나타난다면 위험했다.

“쯧.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해밀턴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차더니, 곧바로 땅을 박차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디미타르.”

디미타르가 그를 쫓아가려 하자, 길버트 루고가 고개를 저으며 그를 붙잡았다.

“함정일 수도 있네. 지금은 이곳을 수습하는 것이 우선이야.”

길버트의 말에 디미타르의 시선이 엉망이 된 아카데미를 향했다.

“쯧. 아무래도 그래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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