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29화 (129/186)

제129화

“샬로트 잉그마르…?”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은 채 굳어버렸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이름이 카단의 입에서 당당히 내뱉어졌다.

그 누구도 함부로 내뱉을 수 없었던 이름. ‘그’, ‘그자’ 등으로만 들러야 했던 이름.

가디언이자 왕국의 수호자이면서 반역자로서 최후를 맞이한 샬로트 잉그마르.

카단이 그의 자식이었다니.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고 돌아가시는 바람에 여러분을 속여야만 했습니다. 죄송해요.”

이어진 카단의 말에 사람들이 참고 있던 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그 말은 샬로트… 님이 반역자가 아니라는 뜻이야?”

“마족과 내통하여 반역을 계획했다고 알고 있는데?”

“가디언들과 결전에서는 마족의 힘까지 사용했다고 들었어.”

질문을 던지는 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 두려움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샬로트의 무죄를 입증할 만한 것이 있느냐. 사람들은 그런 표정으로 카단에게 대답을 요구했다.

“샬로트는 무죄다. 반역자가 아니야.”

그때 카단의 뒤쪽에서 가디언 ‘디미타르’가 천천히 걸어오며 말했다.

“위대한 왕국의 수호자. 가디언 디미타르 님을 뵙습니다!”

디미타르가 다가오자 생도들은 재빨리 예를 갖추며 인사를 건넸고, 디미타르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어댔다.

“카단이라고 했나? 초면은 아니군.”

“의뢰 때문에 찾아간 에어록손 성벽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그래. 그 네크로맨서군.”

디미타르는 어쩐지 미안함의 감정을 담은 눈으로 카단을 살펴봤다.

“길버트에겐 얘기 들었다. 네가 샬로트의 자식이라고?”

한참 장례식이 진행 중일 때, 카단은 길버트를 찾아가 자신이 샬로트의 자식임을 밝혔다.

길버트는 놀랐지만, 이내 샬로트가 무죄라는 사실을 인정했고, 카단에게 깊은 사과를 전했었다.

아마도 디미타르 역시 길버트에게 카단과 샬로트의 관계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듯 싶었다.

“예. 카단 잉그마르라고 합니다.”

카단이 예를 갖춰 인사를 건네자, 디미타르가 씁쓸한 표정으로 카단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너에겐 미안하구나.”

디미타르가 그렇게 말한 뒤 고개를 돌려 당황하고 있는 생도들을 바라봤다.

“샬로트 잉그마르는 반역자가 아니다. 같은 가디언이었던 해밀턴의 계략에 다른 가디언들이 놀아났었을 뿐.”

그 말에 생도들은 놀란 눈으로 디미타르를 바라봤다.

“해밀턴은 샬로트가 마족과 내통하며 마족의 힘을 쓴다는 증거들을 가져와 가디언들에게 알렸다.”

증거는 명확했다.

샬로트가 입었던 옷과 도구 등에서 마족의 기운이 검출되었고, 샬로트의 몇몇 실험실에서 마족의 글씨로 적힌 편지와 마족의 기운이 발견되었다.

“확실한 증거들에 샬로트가 반역을 계획한다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었지.”

디미타르는 씁쓸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웃긴 건 샬로트 녀석은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어. 우리가 찾아갔을 땐 해맑게 웃으며 반겨주더군. 마지막으로. 그리고 오랜만에 놀아보자면서.”

샬로트가 붙잡혔던 날.

디미타르는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가디언들이 이끄는 왕국군은 사상자가 하나 없었지. 3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투를 치렀는데 말이야.”

가디언들이 이끄는 리베라 왕국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덤벼들었지만, 샬로트는 마치 왕국군을 상대로 대련이라도 하듯 전투를 이어갔다고 한다.

“샬로트가 왜 마족과 내통했다는 사실에 부정 한 번 하지 않았는 지 생각을 해봤는데….”

“아버지는 믿을 사람이 없었던 거겠죠. 어차피 그 상황에서 가디언 중 마족이 있다고 외쳐봤자 믿을 사람은 없었을 테니.”

카단이 디미타르의 말을 대신했고, 디미타르는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상황이 오고 나서야 알겠더군. 죽음 앞에서도 믿을 사람이 없었던 샬로트의 심정을.”

디미타르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고, 카단이 한숨과 함께 선배들을 바라봤다.

“즉. 아버지는 죄가 없습니다.”

“그래. 샬로트는 누명을 썼을 뿐, 잘못은 오히려 가디언에게 있다.”

두 사람의 말이 끝나자 생도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루카스와 아라드는 들어선 안 될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부담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카단. 그 어떤 말로도 사죄받을 수 없지만, 평생 샬로트와 너에게 사죄하며 살겠다.”

디미타르가 카단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가디언이 생도에게 고개를 숙이자, 연병장에 있던 생도들 모두에게 이목이 쏠리고 말았다.

“지금은 마족들을 찾아 없애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 얘긴 모든 게 끝난 후 다시 하도록 하죠.”

“길버트와 함께 아이작의 무죄를 세상에 알릴 생각이다. 그건 괜찮겠지.”

“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언제든 내가 필요하면 에어록손으로 찾아오도록 해라. 너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줄 테니.”

그럼 마저 인사를 나누도록. 디미타르는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연병장에는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카단은 그 침묵을 깨며 자신을 찾아온 선배들을 향해 말했다.

“아무튼 저는 아버지가 왕국 곳곳에 숨겨둔 유산을, 흔적을 찾아다닐 생각입니다.”

그러자 마티아스가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왜 그렇게 강한지, 왜 그렇게 발전이 빠른지 이제야 알겠다.”

“샬로트 님의 자식이었을 줄이야. 어쩐지 평민이라고 하기엔 너무 귀티가 났어.”

이어서 클로제 더글라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고.

“카단. 혹시…. 너 원래부터 7성이었던 거야?”

에스더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카단은 그들의 말에 피식 웃음을 지을 뿐 딱히 답을 내놓진 않았다.

“아무튼. 마족이 대놓고 활동하기 시작했으니 다들 조심하세요.”

작별. 이제는 떠날 시간이라며 카단이 말끝을 흐렸고.

“위험할 텐데 우리가 같이 가줄까?”

“하긴 어디 소속되는 게 조금 갑갑하긴 한데.”

“클로제. 루카스. 우리가 카단에게 짐이 될 거란 생각은 해본 적 없는 거야?”

클로제와 루카스. 그리고 아라드가 작별 인사를 받아주었고.

“카단. 죽지 마.”

이어서 에스더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부상은 회복된 것 같았으나 에스더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스승으로 모셨던 아이작의 죽음과 친구들의 죽음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네.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 죽을 생각은 없어요.”

카단은 마치 아이작처럼 자상하게 웃으며 에스더에게 답했다.

와락!

그러자 에스더가 눈물을 훔치며 카단에게 달려들었고, 카단은 가만히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미, 미안….”

이내 감정을 추스른 에스더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건넸고, 카단은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카단.”

마지막으로 마티아스가 카단에게 다가오며 악수를 청했다.

“다음에 만나면, 그때 대련 한 번 하자. 아카데미 다니면서 제대로 대련한 적이 한 번도 없잖아?”

“선배가 질 텐데요?”

카단은 피식 웃으며 그의 악수를 받았다.

***

작별 인사를 끝낸 뒤, 카단이 향한 곳은 벨리드 교관 앞이었다.

“교관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벨리드 교관은 한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는지 목발을 짚고 있었다.

“이 정도쯤이야 문제없어요. 시간만 지나면 괜찮아질 테니까요.”

마족들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벨리드 교관이 웃어 보였다.

“그래요. 카단은 어디로 보내드릴까요? 졸업 선물로 자유를 선택한 생도들에겐 원하는 장소로 향하는 텔레포트 스크롤을 주거든요.”

“아직 정확히 어디부터 가야 할지 몰라서, 수도에 잠시 남아있으려고요.”

카단의 대답에 벨리드 교관의 미간이 좁혀졌다.

“수도는 위험해요. 왕성에도 마족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족이 영웅 아카데미를 무너트렸다는 소식에 수많은 사람이 수도를 떠나고 있었다.

다행히 두 가디언의 보호 덕분에 영웅 아카데미에서는 안전하게 장례가 치러지고 있었다.

그러나 두 가디언이 떠난다면 이곳도 더는 안전한 곳이 아닐 것이다.

“장례가 이어지는 동안만 있으려고요. 우선 아이작 교수님의 연구실도 가봐야 하고….”

카단이 말끝을 흐리자, 벨리드 교관이 조심스레 카단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이작 교수님은 좋은 분이셨어요. 그리고 카단 당신은 그분의 업적을 이어갈 만한 네크로맨서입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교관님.”

카단이 고개를 꾸벅이다 이내 무언가 떠올랐는지 벨리드를 불렀다.

“네. 말씀하세요.”

“그때 망자의 기억 속에서 봤던 문어 문신을 한 남자. 그 사람 마족입니다.”

“역시 그랬군요.”

벨리드는 예상외로 놀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하였다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저희와 싸웠던 마족들 전부 문신이 하나씩 있더라고요. 물론 문어 문신도 봤고요.”

아마도 그 문신이 마족. 혹은 마족화 된 인간이라는 증거겠죠? 벨리드가 담담히 물었다.

카단은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누굴 믿어야 할지 몰랐거든요.”

“이해해요. 저라도 카단과 같은 선택을 하고 상황을 지켜봤을 테니까.”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교관님도 저항군에 합류하십니까?”

“아뇨. 저는 따로 찾아봐야 할 동료들이 있어서요. 그들을 찾으러 다닐 생각이에요.”

그 말에 카단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다.

‘아카데미에 오시기 전 몸을 담았다던 기사단의 동료들을 찾으실 생각인가?’

물론 그녀가 어디를 향하던 카단과 관계는 없었다.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카단도 건강해요. 당신을 가르치지 못한 건 평생 한이 될 것 같네요.”

“옆에서, 뒤에서 교관님을 보며 많이 배웠습니다.”

“역시 사람 기분 좋게 하는 말재주가 있다니까? 어디서 배웠어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른스러워.”

차마 인생 2회차입니다. 라는 말은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아, 그리고 카단.”

이제 슬슬 대화가 마무리되는 듯싶었으나, 벨리드는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카단을 불렀다.

“네. 교관님.”

“과거에 아버님과 함께 전쟁에 참여한 적이 있었어요.”

이어진 벨리드의 말에 카단은 깜짝 놀랐고, 이내 소문이 빨리도 돌았다 생각하며 이어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길버트나 디미타르를 통해 미리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아버님은 정말 대단하시고 또 멋진 분이셨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마법사이자 네크로맨서셨고요.”

“……감사합니다.”

“카단. 만약 갈 곳이 없으면 이곳으로 찾아와요.”

따악!

벨리드 교관이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곱게 접힌 쪽지 하나가 생겨났다.

“제 동료들이 있는 곳이 위치가 적혀 있어요. 그곳으로와서 제 이름을 말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카단은 감사하다며 꾸벅 인사를 건넨 뒤, 허공에 떠 있는 쪽지를 챙겼다.

“그럼 건강하세요. 카단.”

“교관님도 건강히 지내십시오.”

벨리드 교관과 인사를 끝낸 카단은 부서진 아카데미 건물들을 바라보며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이내 그가 도착한 곳은 아이작 교수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네크로맨서 강의실이 있는 건물이었다.

“이쪽은 실험실이고…. 이쪽이 연구실.”

익숙한 곳이었기에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연구실에는 몇 번 와본 적도 있고.

이내 연구실 안으로 들어선 카단은 곧바로 주머니에서 아이작에게 받은 목걸이를 꺼냈다.

목걸이는 열쇠 형태로 되어있었고, 아이작의 말대로 연구실 구석엔 열쇠를 넣을 구멍 하나가 보였다.

철컥!

열쇠를 넣어 돌리자, 곧바로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쿠구구구구구궁.

동시에 땅이 살짝 울리며 벽면이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아이작의 비밀 창고가 열렸고, 카단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그 안으로 들어섰다.

창고 안은 아이작의 평소 성격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언데드의 대하여… 네크로맨서의 마법 종류….”

괜히 이곳에 내버려 뒀다간 마족들의 손에 들어갈 듯싶었으니, 아이작의 교육 자료들을 모두 챙기기로 했다.

그러던 도중 책 한 권이 카단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나 드레인에 대하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