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30화 (130/186)

제130화

[마나 드레인. 생존의 열망 속에서만 꽃을 피운다는 저주받은 구원의 능력.]

사락.

카단은 창고 구석에 앉아 아이작이 직접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한 ‘마나 드레인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마나는 모든 생명에게 깃드는 에너지. 마나 드레인은 곧 만물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능력이다.]

초반부에는 마나 드레인에 대한 간략한 설명들이 적혀 있었다.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오로지 타고난 이만 사용할 수 있는 신이 내린 능력.

[그러나 이 능력을 지닌 이들도 마음껏 이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고 알려졌다.]

[마나 드레인은 쉽게 말해 생존을 위한 기술. 즉, 죽음의 문턱 앞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어진 문장에 카단은 쓴웃음을 지었다.

상대방의 마나를 원할 때마다 흡수할 수만 있었다면 강력한 무기가 되었을 텐데.

“죽기 직전에만 사용되는 기술이라니.”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무기를 과연 무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공작 부인을 쓰러트렸던 것도 이 능력 덕분이었나?”

멧돼지 가면을 쓰고 나타난 마족 ‘바네사 플로리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누군가 나타나 공작 부인을 쓰러트린 것이 아니라면, 무의식중에 발동된 마나 드레인이 그녀를 쓰러트렸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사락.

[대부분은 무의식중에 능력이 발현되며, 마나를 흡수한 후 전보다 강한 힘을 낼 수 있다고 알려졌다. 약 10분 정도.]

과거 마나 드레인의 능력을 지닌 이들 역시 무의식중에만 이 능력을 사용했다고 한다.

생존 기술.

즉, 이 능력을 지닌 자들은 목숨이 하나 더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 능력의 단점이 하나 있었다. 이 능력을 지닌 모든 이들을 결국 악인으로 만든 단점.

[능력이 사용되는 무의식중에는 피아 식별을 하지 못한다. 마나를 가지고 있는 모든 자가 적이 되고 만다.]

[마나를 흡수한 이후에는 폭주 상태가 되며, 모두가 파괴적인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마나를 흡수하는 대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죽이려고 드는 살인마가 되어버린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능력은 저주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만약에라도 의식을 잃지 않고 이 능력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마나 드레인의 대상은 인간뿐만이 아닌 만물이 될 것이다.]

툭.

카단이 책을 덮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혼자 다녀야 할 확실한 이유가 생겼군. 뭐, 네크로맨서에겐 잘 어울리는 능력이네.”

홀로 전투를 이끌어가는 네크로맨서에게 더할 나위 없는 능력이다.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담담하게 책을 아공간 속에 집어넣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카단은 다시 창고 안을 둘러보았다.

‘웬만한 건 다 챙겼고. 이제 남은 건….’

이미 창고 안에 있던 아이작의 유품들은 모두 카단의 아공간 속에 들어있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하나.

가장 안쪽에 보관된 은색 상자뿐이었다.

철컥. 끼이익.

따로 잠금장치 따위는 없었다. 상자는 카단의 손길에 부드럽게 열렸다.

“이건 아버지의 편지고, 이게 아버지의 흔적을 표시해둔 지도로군.”

상자 안에는 수많은 양피지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카단은 하나씩 펼쳐보며 아이작이 말했던 샬로트의 관한 정보들을 챙기기 시작했고.

[카단에게.]

[에스더에게.]

영웅 아카데미의 단둘밖에 없는 네크로맨서. 두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견했다.

“저항군에 합류하는 사람들은 좀 더 아카데미에 머문다고 했으니까, 여길 떠나기 전에 전해주면 될 것 같고.”

아이작이 에스더에게 쓴 편지는 조심스레 안주머니에 챙겼고.

촤락.

카단에게 쓴 편지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펼쳐보았다.

[뒷장에 지도가 있습니다. 졸업 선물을 숨겨 놓았으니, 잘 찾아 잘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오랜 시간 저와 함께해주어 감사합니다. 카단. 졸업을 축하합니다.]

아이작이 2년 뒤 졸업할 카단을 위해 미리 써둔 졸업 축하 편지였다.

“참….”

씁쓸한 감탄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2년 뒤에나 졸업할 카단을 위한 졸업 선물과 편지를 미리 준비해놓을 줄이야.

준비성이 좋은 건지, 아니면 이런 불행한 미래를 예측했던 건지.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아이작은 제자들을 그 무엇보다 아꼈다는 것이다.

“감사했습니다. 교수님.”

카단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편지를 고이 접어 아공간 속에 집어넣었다.

“교수님의 가르침이 이어질 수 있도록 교육 자료들을 잘 보관하도록 하겠습니다.”

***

에스에에게 아이작의 편지를 전달하고, 크리스 교관과 작별 인사를 끝낸 뒤 카단은 영웅 아카데미를 벗어났다.

‘정을 줄 생각은 없었는데.’

무너진 영웅 아카데미 건물을 바라보니, 괜히 추억들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티격태격하며 지냈던 이들의 얼굴들도 하나씩 떠오르며 괜히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남겠지.’

카단, 칼리아, 라이덴을 제외한 1학년 생도들은 모두 저항군에 합류했다.

알비스와 블랑쉬는 가디언이자 대마법사인 길버트를 따라 도시 더글라스로 향했으며, 수다쟁이 삼인방은 에어록손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루카스 선배만 길버트 님 소속이 되었고, 에스더 선배는 트라팔가. 다른 분들은 전부 에어록손이라고 했지?’

친분이 있던 자들이 어디에 소속되었는지 알았으니, 볼 일이 있다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었다.

‘라이덴 녀석은 뭐 가문으로 돌아간다 했고.’

그러나 칼리아의 행방만이 묘연했다.

생도, 교관들과 인사를 끝낸 칼리아는 곧바로 벨리드 교관을 찾아갔고, 이내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으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강한 녀석이니, 어디에 있든 잘 해내겠지.’

카단은 애써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저기.”

그때 누군가가 급히 달려와 카단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루나의 수하가 된 발렌티나 교관이 서 있었다.

“나는. 아니, 저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마족의 수하였으나 이제는 뱀파이어가 된 소환사 발렌티나.

그녀는 아직 자신의 거처를 선택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

카단은 잠깐 생각을 하더니, 이내 단검으로 손바닥을 그었다.

똑.

손바닥에서 흐른 핏방울 하나가 땅을 적시는 순간.

“루나.”

카단은 루나의 이름을 불렀고, 이내 번쩍하는 빛과 함께 루나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벌써? 또? 또 마족이야?”

루나는 소환되자마자 마나를 활성화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아니.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어.”

카단이 괜찮다며 그녀의 머리를 토닥이자, 이내 마나를 비활성화하며 눈을 끔뻑였다.

“물어볼 거?”

“알고 있듯이, 이제 마족이 정체를 밝히고 돌아다닐 것 같아.”

인간들은 저항군을 만들어 마족과 전쟁을 치를 것이며, 카단은 샬로트의 유산을 찾으러 돌아다니며 개인 활동을 할 생각이다.

카단은 그러한 사실을 전부 루나에게 전했고, 마지막으로 발렌티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이제 발렌티나는 어떻게 하지?”

카단의 질문에 루나는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발렌티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데려갈게. 마족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곳에 내버려 뒀다간 금방 죽을 수도 있으니까.”

“네?”

그 말에 발렌티나가 깜짝 놀라며 루나에게 되물었다.

“뱀파이어들이 사는 곳에 제가 갈 수 있나요?”

“응. 갈 수는 있어. 비록 차원을 넘어야 하는 제약 때문에 좀 답답하긴 하겠지만.”

루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카단은 발렌티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선택은 당신이 하세요. 싫으면 안 가도 됩니다. 강요하는 건 아니니.”

“전 이제 루나 님의 영원한 수족입니다. 루나 님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저에겐 영광이죠.”

걱정과 달리 발렌티나는 눈을 반짝이며 뱀파이어들이 사는 곳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내가 훈련 좀 시키면 지금보다 쓸모가 있을 거야. 카단 너도 나한테 배우고 나서 더 강해졌잖아?”

루나의 말에 카단이 피식 웃으며 루나를 향해 고개 숙여 말했다.

“아직 부족합니다. 스승님.”

“흥.”

놀리는 듯한 카단의 말투에 루나는 입술을 씰룩이며 콧방귀를 뀌었다.

“딱히 볼 일은 없는 거지?”

“응. 발렌티나를 잘 부탁해. 인간이었으니 적응하기 힘들 거야.”

“알겠어.”

루나는 대답과 동시에 발렌티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발렌티나는 조심스레 다가와 루나의 손을 붙잡았고.

“그럼 필요할 때 불러.”

루나는 그 말과 함께 빛이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루나와 손을 잡고 있던 발렌티나 역시 빛과 함께 사라졌고, 카단은 이제 볼일은 끝났다는 듯 다시 걸음을 옮겼다.

***

“카단 님! 무사하셨군요.”

카단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주점 ‘고양이들의 저녁’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잭 카터는 사색이 된 얼굴로 카단을 반겨주었고.

“네. 전 괜찮습니다.”

카단은 그런 잭 카터를 향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짓했다.

“그리고 잭 카터 씨 덕분에 살 수 있었어요.”

카단이 몰래 연회장에서 영혼의 결정을 흡수했을 때, 카단은 데스나이트 앤서니를 소환해 잭 카터에게 보냈었다.

다행히 앤서니는 무사히. 그리고 빠르게 잭 카터를 찾아갔고, 잭 카터는 곧바로 도둑 길드의 정보망을 이용해 가디언들에게 지원 요청서를 보냈다.

“주점에 데스나이트가 찾아왔을 땐 기겁을 했었죠. 그래도 정말 다행입니다.”

잭 카터는 안도하듯 한숨을 쉬더니,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카단 님마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정말 기겁했었습니다.”

“제가 죽으면 아버지와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니 잭 카터 씨한테 좋은 거 아닙니까?”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전 남은 인생을 카단 님에게 걸었습니다.”

“무슨 그런 부담되는 말씀을.”

카단은 잭 카터에게 일어나라는 듯 손을 건넸고, 잭 카터는 그의 손을 잡고 곧바로 일어섰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우선 음료라도 드세요!”

잭 카터는 곧바로 주방 쪽으로 뛰어 들어갔고, 이내 오렌지 주스가 담긴 유리잔을 가져와 바 테이블 위로 올려놨다.

“마침 마시고 싶었는데, 감사합니다.”

카단은 자연스레 오렌지 주스를 들이켰고.

탁.

빈 유리잔을 내려놓으며 잭 카터에게 말했다.

“잭 카터 씨. 수도를 떠나세요. 마족들이 정체를 숨기지 않고 활동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잭 카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점 한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나무 상자들과 짐보따리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이미 준비는 끝났습니다. 도둑 길드도 긴급 상황이거든요.”

“안전한 곳은 에어록손, 더글라스, 트라팔가. 이 세 곳일 겁니다.”

카단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부터 시작해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일들을 전부 들려주었다.

“저항군들의 기지가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할 겁니다. 만약 가실 곳을 정하지 않았다면 말씀드린 세 곳 중 한 곳으로 가세요.”

카단의 말이 끝나자, 잭 카터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 역시 그의 눈속에 잔뜩 그려져 있었다.

“길드를 통해 들었던 정보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군요.”

잭 카터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길드의 명령에 따라 도둑 길드는 공식적으론 활동을 잠시 중단할 겁니다. 저 또한 임시지만 자유의 몸이 되었죠.”

“비공식적으론 활동한다는 말씀입니까?”

“정보 조직에게는 쉬는 날이 없어요. 죽으면 죽었지.”

잭 카터가 피식 웃으며 카단의 유리잔 위로 오렌지 주스를 따라주었다.

“전부터 더글라스 가문이 다스리는 도시에서 지내보고 싶었는데, 전 그곳에 잠시 자리를 잡을 생각입니다.”

이어진 잭 카터의 말에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안전한 곳입니다. 길버트 님이 그곳에 마탑을 세운다고 하셨거든요.”

수도에 있는 마탑을 부수고 도시 더글라스로 마탑을 이전시킨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 그곳이 길버트가 이끄는 저항군의 기지가 될 것이다.

“그럼 카단 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저항군에 합류하셨죠?”

“아뇨. 졸업 선물도 챙겨야 하고, 한동안 아버지의 유산을 쫓아다녀 볼 생각입니다.”

카단의 말에 잭 카터가 이해했다는 듯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군요. 아무래도 자주 보긴 힘들겠네요.”

“네. 그렇겠죠. 제가 더글라스에 가지 않는 이상은.”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찾아오십시오. 더글라스에도 고양이들의 저녁으로 주점을 열 생각입니다. 아! 그리고.”

말을 이어가던 잭 카터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급히 어디론가 뛰어갔다.

“원래 졸업할 때쯤 드리려고 했는데, 미리 드리는 게 좋겠군요.”

그가 가져온 건 하얀색 코트였다.

“갑자기 웬 코트입니까?”

“카단 님이 성인이 되기 전에 돌아가신다면 대신 전해달라며 샬로트 님이 저에게 맡겼었던 물건이죠.”

성인이 될 때, 옆에 없을 수도 있겠다며 그가 조심스레 옷을 건넸다.

“따로 편지 같은 건 없었습니다. 옷에는 따로 마법도 걸려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천천히 직접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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