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32화 (132/186)

제132화

콰광!

굉음과 함께 영주성의 성벽이 부서졌다.

“저, 적이다!”

“전투 준비!”

“침착하게 대응해! 몇 명인지, 누구인지 파악하고! 혼자 싸우지 마라!”

갑작스러운 폭격에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성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적군으로 보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왜 고블린 시체들이 성 안에 있는 거야?”

생뚱맞게도 성 곳곳에는 고블린을 비롯한 오크나 코볼트 등의 시체들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당장 시체부터 치워!”

누군가의 명령에 병사들이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콰아아아아아아앙!

시체들은 기다렸다는 듯 병사들이 다가오는 순간 굉음을 내며 폭발하기 시작했다.

“피, 피해!”

“함정이다! 다가가지 마! 시체들은 내버려 둬!”

콰왕! 콰아앙!

병사들이 어떻게든 대응해보려고 애를 썼지만, 성 곳곳에 숨겨진 몬스터들의 시체들이 폭발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영주성 안이 혼란스러워질 무렵.

“카단. 어디 가는 거야?”

카단과 루나는 빠르게 영주성 뒤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여기.”

급하게 달려가던 카단이 걸음을 멈추곤 동굴 입구를 가리켰다.

그러자 루나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기분 나쁜 기운이 풀풀 풍기는 곳이네.”

“저곳을 지키던 병사들도 죄다 영주성으로 들어간 것 같네.”

레이스의 보고에 따르면 동굴 입구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것도 꽤 강해 보이는 병사들이.

그러나 카단이 영주성 곳곳에 숨겨놓은 시체들을 폭발시키며 혼란을 일으키자, 동굴을 지키던 병사들이 죄다 영주성으로 향한 것 같았다.

동굴 앞은 고요했고, 카단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긴….”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루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동굴 안에는 철창들이 가득했고, 철창 너머로 30명 정도는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상태는 괜찮아 보이는데.’

레이스의 말대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매우 건강해 보였다.

뭘 그렇게 잘 먹었는지, 피부도 반질반질하고, 입고 있던 옷이 찢어질 정도로 살이 찐 사람도 몇몇 보였다.

그러나 확실히 그들의 눈빛은 죽어 있었다.

희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오직 절망과 끝만을 그리는 눈빛.

영혼이 빠져나간 듯 흐리멍덩한 사람들의 모습에 카단은 짧게 혀를 차며 루나에게 물었다.

“루나. 저들 중 마족화가 진행 중이거나 몸에 마석이 심어진 사람이 있어?”

카단의 물음에 루나는 천천히 다가와 철창 너머를 살펴봤다.

“아니. 다들 멀쩡해. 일반적인 인간들이야. 마족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마족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은….”

루나가 말을 이어가다, 고개를 획 돌리며 감옥 깊은 곳을 바라봤다.

“저쪽이야.”

그녀가 가리킨 곳 역시 철창이 존재했고, 그 철창 너머로는 기괴하게 생긴 생명체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마족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부작용으로 괴물이 된 자들이군.”

카단은 기괴하게 변한 인간들을 보는 것이 익숙했는지, 무덤덤한 표정으로 괴물들을 바라봤다.

저벅, 저벅.

괴물로 변한 이들이 갇힌 곳으로 다가가자.

철컹! 철컹!

괴물들이 카단을 발견하곤 철창으로 달려들었다.

까앙! 까아앙!

철창을 어떤 걸로 만들었는지, 괴물들이 달려들어 충격을 주어도 철창은 부서지긴커녕 휘어지지도 않았다.

카단은 철창의 단단함마저도 예상한 것처럼, 전혀 놀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한 얼굴로 철창 가까이 다가갈 뿐이었다.

“루나.”

철창 앞에 도착한 카단이 씁쓸한 얼굴로 루나에게 말했다.

“응.”

“한 번에 끝내줘. 고통 따윈 느끼지도 못하도록.”

“알겠어.”

루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나를 활성화했고, 카단은 다시 몸을 돌려 사람들이 갇힌 철창을 향해 걸어갔다.

‘일단 여기에 있는 게 더 안전하려나?’

사람들을 구출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더 위험할 것 같았다.

전투 시에는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자가 불리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제 어쩔 생각이야?”

카단의 부탁을 빠르게 처리하고 온 루나가 카단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고생했어.”

“뭐, 이 정도로.”

“일단 루나 너는 여기서 이 사람들을 지켜줘.”

“너는?”

카단의 말에 루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고, 카단은 고개를 돌려 동굴 출입구를 바라봤다.

“영주를 좀 만나보려고.”

“혼자서 괜찮겠어?”

루나의 질문에 카단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달그락!

카단이 걸음을 옮기는 순간, 그의 뒤로 해골 병사들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소환된 해골 병사들은 루나의 곁을 지켰고.

“나 혼자서도 괜찮은데.”

“혹시 모르니까.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바로 나한테 와.”

“누가 누굴 걱정해~”

루나는 걱정하지 말고 얼른 가보라며 손짓했고, 카단은 입가에 미소를 그린 후 곧바로 땅을 박차며 영주성을 향해 달려갔다.

***

“나름대로 효과가 좋네.”

영주성으로 돌아온 카단은 폭발로 인해 무너진 벽면들을 바라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 안에 온전한 인간은 없다고 했으니.’

영주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마석을 몸에 심은 채로 마족화가 진행 중이었다.

즉, 인간이 아닌 마족.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마음껏 몬스터들의 시체를 폭발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폭발에 휩쓸린 병사들은 죽거나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고, 카단은 유유히 영주성의 복도를 거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성 안의 병사들이 모두 죽은 것은 아니었다.

“적이다! 3층에 적이 있다고 알려!”

“네크로맨서다! 언데드는 무시하고 네크로맨서부터 죽여!”

연이은 폭발에도 살아남은 병사들도 존재했고, 그들은 카단을 발견하자마자 무기를 뽑아 들며 달려들었다.

“군주를 위해!”

“군주를 지켜라!”

그러나 병사들의 무기는 카단에게 닿을 수가 없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흉흉한 녹색의 불을 몸에 두른 기사들이 나타나 병사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데, 데스나이트가 뭐 이렇게 많아?”

“데스나이트 30기?”

해골 병사들이었다면 무시하고 네크로맨서를 향해 달려들었겠지만, 데스나이트라면 말이 달랐다.

아무리 마족의 힘을 지닌 이들일지라도 데스나이트는 무시하기 힘든 상대였다.

근데 그 수가 30이라면….

“끄아아아악!”

병사들은 제대로 반격도 해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기껏해야 하급 마족 수준인가.’

카단은 마족의 힘을 사용하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안쓰럽다는 듯 혀를 둘러댔다.

병사들이 전부 마족의 힘을 사용하더라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데스나이트만으로도 병사들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으며, 카단의 걸음을 멈출 수 있는 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영주성 안이라고 마족의 힘을 마음껏 쓰는군.’

영주성 밖, 도시 라도미르의 주민들은 영주성 안에 있는 자들이 전부 마족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곳의 영주는 긴 시간 동안 마족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이 도시를 마족을 양성하기 위한 작업장으로 바꿔놓았다.

‘3년 사이에 왕국이 아주 개판이 되어버렸군.’

카단은 쓴웃음을 지으며 지난 3년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영웅 아카데미가 폐교를 선언한 이후, 저항군과 마족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카단은 저항군에 합류하지 않았고 홀로 샬로트의 흔적을 쫓아다니기로 했다.

샬로트는 사람 만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성향 때문일까?

샬로트의 흔적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만 존재했다.

산이나 숲, 늪처럼 자연 속에 있을 때도 있지만, 화산이나 빙하, 던전이나 몬스터 서식지 등.

샬로트의 흔적들은 늘 위험한 곳에 존재했다.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아버지의 흔적은 전혀 찾지 못했겠지.’

평범한 방법으로는 샬로트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이작이 남기고 간 지도 덕분에 카단은 비교적 쉽게 샬로트의 흔적들을 쫓아다닐 수 있었다.

‘마족이 왕국을 장악하려고 한다는 건 알았지만, 3년 사이에 이렇게나 왕국이 무너지다니.’

그렇게 3년.

카단은 마치 속세를 떠난 사람처럼 자연 속에서 3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흔적을 쫓는 건지 훈련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샬로트의 흔적들은 워낙 위험한 곳에만 존재했기에 카단은 의도치 않게 훈련 아닌 훈련을 하고 말았다.

어쩌면 이 역시도 샬로트의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네크로맨서다! 네크로맨서를 죽여!”

데스나이트들이 카단을 향해 달려들던 병사들을 거의 처리했을 무렵, 계단에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보통 병사들이랑은 다르군.’

아무래도 영주의 정예 기사단인 듯한 모습에 카단도 생각하던 걸 멈추며 데스나이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30기 정도 되어 보이던 데스나이트 중 절반이 검은 연기로 변했고.

스스스슥!

검은 연기는 곧장 근처에 있는 데스나이트들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를 흡수한 데스나이트의 몸에선 전보다 강한 녹색의 불이 이글거리기 시작했고.

“처리해.”

카단은 가볍게 명령을 내리며 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러고 있으니 옛 생각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전생이었던 조폭 시절, 지역 전쟁하며 부하들을 지휘하던 때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타 조직 놈들을 쓸어버렸었는데.’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양복을 입은 부하들이 아닌, 죽음을 거스른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릴 뿐.

강한 부하들을 이용해 무자비하게 적들을 쓰러트리는 건 전생이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나약한 자들이여! 군주를 위해 죽음을 바쳐라!”

“더러운 마족은 내 앞에 무릎을 꿇어라!”

아이작이 가르쳐 준 데스나이트의 강화 마법을 사용하자, 카단의 데스나이트들은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영주의 기사단이라면 적어도 6성 이상. 게다가 마족의 힘까지 사용하는 이들이었지만.

“크아아악!”

강화된 데스나이트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걱! 서걱!

녹색의 불꽃을 두른 기사들은 무자비하게 마족의 힘을 사용하는 기사들 쓰러트리며 전진했다.

이내 카단을 죽이기 위해 찾아온 영주의 정예 기사단은 전멸했고.

스륵.

마족이란 증거인 마석만을 남긴 채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콰직! 콰직!

데스나이트들은 익숙하다는 듯 마족들이 남긴 마석들을 짓밟아 부수기 시작했다.

시키지도 않았지만, 당연하다는 듯한 행동하는 데스나이트들의 모습에 카단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영혼의 결정을 잔뜩 흡수하겠군.’

카단은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영혼의 결정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고.

슥.

이내 손을 뻗어 영혼의 결정을 하나하나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때.

쉐에에에에에엑!

뒤쪽에서 무언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나가 둘린 검이 빠른 속도로 카단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마족은 아닌 것 같은데.’

마나를 두른 채 날아오는 검에서는 마족의 힘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거세게 날아오는 검에는 인간 본연의 마나만이 진하게 담겨 있었다.

카단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공격쯤이야.

채앵!

데스나이트들이 알아서 막아줄 테니.

“군주님을 위협하는 적이다!”

날아오던 검을 쳐낸 데스나이트가 외치자, 근처에 퍼져 있던 14기의 데스나이트들이 카단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 비열한 마족 새끼야!”

검이 날아온 복도 끝에서부터 누군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탁! 탁! 탁! 탁!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 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재빨리 들고 있던 검에 오러를 두른 뒤, 데스나이트들을 향해 휘둘렀고.

“다들 물러서.”

카단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곤 방어하려던 데스나이트들을 역소환했다.

사락-!

데스나이트들은 연기가 되어 카단의 손목으로 빨려 들어갔으며.

부우웅-!

목소리의 주인이 휘두른 검은 날카롭게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을 내었다.

데스나이트들이 갑자기 사라지자, 목소리의 주인은 잠시 당황한 듯싶더니, 이내 다시 자세를 잡으며 카단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부하들도 없이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거냐? 이 빌어먹을…… 카단?”

카단에게 달려들려던 목소리의 주인은 급히 움직임을 멈추더니 헛숨을 삼키며 카단을 불렀다.

“칼리아. 네가 왜 여기 있어?”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카단의 친구이자 아카데미 동기인 칼리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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