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칼리아가 혁명단….’
좋게 말해 혁명단이지, 실상은 반란을 꿈꾸는 국가 반역 조직이었다.
‘혁명단 소속이면서 영웅 아카데미에 다닌 거였네?’
반역 조직의 일원이면서 왕국의 영웅 양성소에 다니고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카단은 칼리아의 대담함에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좀 놀랐지?”
카단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칼리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뭐, 여러 가지 의미로 놀라는 중이야. 그러고 보니 우리 상황이 조금 비슷하네.”
“응. 너나 나나 왕국을 수호하는 영웅이 되기 위해서 아카데미에 입학한 게 아니지.”
두 사람 모두 왕국을 수호하기 위해서가 아닌 왕국을 무너트리기 위해 아카데미에 입학했었다.
카단은 복수를 위해.
칼리아는 반란을 위해.
두 사람은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동질감을 느끼며 동시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혁명단이라는 사실을 이제 숨길 필요가 없어서 말한 거야?”
그녀가 혁명단임을 속였다는 것에 배신감은 들지 않았다. 그녀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그저 궁금했다. 왜 혁명단 소속이라는 사실을 밝힌 걸까?
“응. 지금 같은 시기엔 저항군이나 혁명단이나 똑같은 취급을 받으니까.”
“마족에겐 반란군이겠고, 인간에겐 영웅들이겠지.”
카단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저항군이나 혁명단이나 마족으로부터 왕국을 되찾겠다는 목표가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던 카단이 순간 의문점이 생겼는지, 칼리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혁명단이랑 저항군은 힘을 합치지 않는 거야?”
추구하는 게 같다면, 힘을 합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혁명단과 저항군.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니까. 목숨이 걸린 이상, 신뢰가 없으면 손을 잡을 수가 없잖아?”
칼리아의 간단한 설명에 카단은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항군이랑 혁명단이랑 하는 일이 다른가?”
“크게 다를 건 없어. 혁명단이든 저항군이든 마족을 적으로 두고 전쟁을 치르고 있지.”
차이가 있다면 저항군은 마족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는 것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고, 혁명단은 마족을 사냥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
‘저항군이 본대라면 혁명단은 게릴라 부대 같은 건가?’
물어보고 싶은 것들은 많았으나, 우선 처리해야 할 것이 있었다.
두 사람의 걸음은 어느덧 감옥이 있는 동굴 입구 앞에 도착했고, 카단은 동굴 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사람들부터 구하고 마저 얘기할까?”
“그래.”
카단의 제안에 칼리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겨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달그락. 달그락.
동굴 안에 들어서자, 수많은 해골 병사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저 아이는….”
“어? 카단! 왔어? 옆엔 누구야?”
오크 해골 병사 머리 위에 앉아 다리를 구르고 있는 루나가 칼리아의 시선을 이끌었다.
“아. 본 적 있지?”
카단은 곧바로 루나를 향해 손짓했고, 루나는 카단의 손짓을 보곤 곧바로 두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루나라고 해. 인간은 아니고 뱀파이어야.”
칼리아는 순간 흠칫하며 카단을 바라봤다.
“배, 뱀파이어?”
인간계에서 뱀파이어는 몬스터로 분류되고 있었으니, 칼리아가 놀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나랑 계약되어 있어서 함부로 사람을 해치진 않아.”
그러자 칼리아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며 루나를 바라봤다.
“미안해. 바로 앞에서 이렇게 놀란 모습을 보이는 건 실례일 텐데.”
칼리아가 정중하게 사과하자, 루나는 괜찮다는 듯 손을 저으며 답했다.
“놀라는 게 당연하지. 괜찮아. 미안해할 거 없어.”
“나는 칼리아라고 해.”
칼리아가 자세를 낮춘 뒤 조심스레 악수를 청하자, 루나는 방긋 웃으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이렇게 작은 아이가….’
칼리아는 3년 전 루나가 마족을 상대로 싸우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가디언이었던 마족 ‘해밀턴’을 주먹으로 후려치는 모습은 여전히 기억에 생생했다.
‘뱀파이어였구나.’
당시에는 어린아이가 웬만한 생도보다 강했기에 당황했었는데, 이제야 루나가 강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칼리아와 루나가 악수를 나누는 사이.
“인사는 나중에 더 나누도록 하고 이제 슬슬 움직이자.”
카단이 철창 너머를 가리키며 말을 건네왔다.
“나는 이만 돌아가도 되는 거지?”
그러자 루나가 손을 번쩍 들며 질문을 던졌고, 카단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줘서 고마워. 루나.”
“응! 칼리아도 다음에 봐!”
루나는 할 일을 끝냈다는 것이 뿌듯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내 빛과 함께 사라졌고.
“와….”
칼리아는 루나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무언가 넋이 나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칼리아.”
이어진 카단의 목소리에 칼리아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돌렸다.
“어?”
“문제가 있어.”
“문제? 어떤 문제? 어차피 도시에 사는 마족들은 죄다 죽인 거 아니었어?”
칼리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카단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도시를 어떻게 하냐가 문제야.”
도시 라도미르는 마족들 사이에서 마족 양성소라고 여기던 곳.
만약 이곳을 관리하던 마족들이 전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마족들이 이 도시를 공격해올 수도 있었다.
“너나 나나 이 도시에 계속 머물 것도 아니잖아?”
카단의 말에 칼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모두 우연히 이 도시를 찾아왔을 뿐,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었다.
“피난이라도 시켜야 하나?”
카단의 말에 칼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여긴 북쪽이야.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 어딜 가든 위험한 건 똑같아.”
“혁명단 거처는?”
“혁명단 거처는 곳곳에 숨겨져 있어. 저항군처럼 도시 전체를 기지로 삼지 않아.”
“혁명단에게 부탁하는 것도 힘들겠군.”
아무래도 혁명단에게 도시를 맡기기도 힘들 것 같았다.
게다가 혁명단이 북쪽 도시 중 한 곳에 거점을 세운다면, 마족들의 표적이 되기 딱 좋을 것이다.
“나도 북쪽에서 활동한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칼리아가 주로 활동하던 지역은 서쪽이었다.
“서쪽에서는 남쪽에 있는 저항군들 기지까지 호위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거든.”
그러나 북쪽에서 남쪽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게다가 피난민들을 데리고 남쪽까지 내려가기엔 너무도 위험했다.
‘언제 어디서 마족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카단과 칼리아는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선 사람들부터 꺼내주자.”
이내 카단이 감옥의 문을 가리키며 말했고, 칼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았다.
스릉.
***
도시 라도미르의 중앙 광장.
주민들이 모여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영주님. 아니, 영주 그 새끼가 마족이었다고?”
“꾸물거리지 말고 제대로 좀 말해봐!”
주민들이 질문을 던지는 곳에는 한 남성이 서 있었다.
그는 며칠 전 주점에서 사람들에게 영주가 마족이라고 외치던 취객 ‘마일드’였다.
“사실입니다. 저는 이 도시가 안전하다고 해서 동료들과 함께 이곳으로 피난을 왔었습니다.”
마일드는 자신의 과거를 주민들에게 들려주었다.
술에 취하지 않은 멀쩡한 상태여서인지 그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그의 말은 진정성 있게 전달되었다.
피난 온 도시에서 납치당했고, 그곳에서 동료들이 마족이 되는 걸 지켜봤던 경험까지.
마일드의 말이 끝날 때까지 주민들은 입을 다물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제 영주는 없습니다. 아니, 이 도시에 마족은 없습니다.”
마일드의 외침에 주민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아까 영주성이 폭격을 당하는 것 같았는데, 설마 저항군이나 혁명단이 온 겁니까?”
“사, 살았다!”
마일드가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주민들은 멋대로 희망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일드는 바닥에 내려뒀던 냄비를 들어 올린 뒤 나뭇가지를 이용해 마구 치기 시작했다.
챙! 챙! 챙! 챙! 챙!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다시 목소리를 죽였고, 주변이 조용해지자 마일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혁명단인지, 저항군인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 영웅님께서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모두 구해주셨습니다.”
마일드는 뒤쪽에 보이는 커다란 여관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은 전부 저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사실인지 못 믿겠다면 가셔서 물어보세요.”
사람들이 이번엔 작게 웅성거렸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이 도시는 이제 누가 관리해?”
“군대는? 군대도 설마 다 마족이었어?”
마일드는 웅성거리는 주민들을 보며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큰 소리로 외쳤다.
“저희는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이 도시에 남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그 말에 주민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어떤 말도 쉽게 내뱉을 수가 없었다.
도시를 떠나는 것도 위험했고, 도시에 남아있는 것도 위험했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
그 어떤 선택에도 ‘안전’이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떠나고 싶죠. 떠나고야 싶지만, 떠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침묵 속에서 중년의 여성이 말했다. 그녀의 말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의견을 내뱉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도 인근 도시 하나가 폐허가 됐다던데, 이 도시도 안전하지 않다면 더는 못 살지.”
“하지만 남쪽까지 너무 멀어요. 마족들 눈을 피해 이동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는 부모님도 모시고 가야 해요. 길이 너무 험합니다.”
“여기 남아있다간 개죽음을 당할 거야.”
주민 대부분이 도시를 떠나고 싶다고 외쳐댔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그냥 익숙한 곳에서 죽는 게 좋지 않을까?”
“도시를 지킬 군대도 없는 게 현실이긴 하지만.”
겁을 먹은 소수의 인원만이 어쩔 수 없이 도시에 남아야 하지 않겠냐는 듯 말을 내뱉었다.
“이봐.”
그때 백발의 노인이 마일드를 향해 질문했다.
“자네는 어떤 해결책이라도 있는 건가? 혹시 이 도시의 마족을 소탕한 그 은인이 어떤 해결책이라도 주신 겐가?”
왜 주민들에게 도시를 떠날지 남을지 선택하라고 말을 한 것이냐. 노인은 희망을 담은 눈빛으로 마일드를 바라봤다.
“아뇨. 그저 지금 저희가, 이 도시가 처한 상황을 알려드렸을 뿐입니다. 어떻게든 선택은 해야 하니까요.”
마일드의 대답에 주민들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마일드를 탓할 상황이 아니라,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누구도 불평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얼굴에 절망이 가득해질 때쯤, 마일드가 불안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 끝에는 흰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카단.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카단 옆에 서 있던 칼리아가 마일드와 불안해하는 주민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람들의 의견은 물어봐서 뭐 하려고? 너무 섣부른 거 아니야? 아직 우리도 해결책을 찾은 게 아니잖아?”
“주민들이 직접 선택해야지. 도시를 떠날지, 아니면 남을지.”
“선택하면? 도와줄 방법은 있고? 말했지만, 혁명단은 이곳을 거점으로 삼을 수 없어. 피난을 도와주는 것도 힘들고.”
당장 혁명단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왕국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활동했기에 모으는 데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북쪽에 있는 혁명단만으로는 인력이 부족할 것이다.
“뭐,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이제 어떻게 하려고?”
칼리아가 답답하다는 듯 묻자, 카단은 침착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답했다.
“방법은 있어.”
“카단. 설마 언데드 군단으로 이들을 호위해줄 생각이야?”
칼리아가 놀란 눈으로 카단을 바라보자, 카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 혼자서는 힘들지.”
“그러면? 도와줄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응.”
칼리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카단은 멀리 보이는 용병 길드 건물을 바라보며 답했다.
“생각해보니 소원권 하나가 있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