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도시 라도미르의 기사단 훈련장.
주인이 없는 기사단 건물은 하루 동안 머물게 된 용병들의 차지가 되었다.
“잠시만 기다려보게나.”
카단을 훈련장 중앙까지 데려온 용병왕 제이드는 근처에서 운동 중이던 용병을 불렀고.
“가서 롭스를 데려와라. 3년 전 설욕을 값을 기회가 생겼다고 하면 알아서 준비해 올 거다.”
“네!”
지명 당한 용병은 큰 소리로 대답하며 어디론가 뛰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철컥!
훈련장 문이 열리고 낯익은 외모의 남성이 등장했다.
“당신은?”
카단을 발견한 롭스는 놀란 듯 휘둥그레 눈을 떴고.
“반갑습니다. 카단. 맞으시죠?”
롭스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카단에게 인사를 건넸다.
‘뭐야? 3년 전이랑은 분위기가 전혀 다른데?’
카단은 그 모습에 조금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3년 전. 도시 트라팔가에서 만났던 롭스는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용병이었다.
쉽게 말해 싹수없게 보였던 롭스가 이제는 철이 들기라도 했는 지 예의를 갖추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전혀 다른 사람 같네.’
게다가 외모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3년 전은 그저 겉멋만 든 양아치 같았다면, 지금은 꽤 남성성이 짙어진 것 같았다.
“담화는 나중에 나누고, 대련부터 하는 게 어떤가?”
그때 제이드가 기대를 가득 담은 눈빛으로 말을 걸어왔고, 카단과 롭스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처럼 쉽게 당하진 않을 겁니다.”
롭스는 손에 들고 있던 검과 방패를 들며 전투를 준비했고.
우웅.
카단도 마나를 활성화하며 대련을 준비했다.
“두 사람 다 큰 부상이나 죽음은 걱정하지 말게. 위험하다 싶으면 내가 나서서 말려줄 테니.”
이처럼 든든한 심판이 있을까?
카단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상대를 죽일 각오로 대하더라도 상대가 죽을 일은 전혀 없을 것 같은 든든함.
“알겠습니다.”
카단의 대답에 제이드는 미소를 지으며 재빨리 시작하라는 듯 손짓했다.
“대충 시작해. 시작.”
제이드의 신호와 동시에 카단은 상대가 달려들 것을 예상하며 뼈 마법을 준비했다.
‘응?’
그러나 롭스는 카단에게 곧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오? 섣불리 움직이지 않겠다 이건가?’
그저 방패로 자신의 앞을 막고, 언제든 반격할 수 있도록 검을 쥐고 있을 뿐.
‘네크로맨서에게 거리를 내어주는 건 좋은 선택지가 아닐 텐데.’
카단은 피식 웃으며 곧바로 자신의 앞으로 데스 나이트를 소환했다.
“카록! 군주를 위해 적들의 죽음을 바치겠다!”
거대한 덩치를 지닌 오크 데스나이트가 나타나자, 대련을 지켜보던 용병들이 헛웃음을 지었다.
“아니, 오크를 데스나이트로도 일으킬 수 있어?”
“만약 저런 몬스터를 던전에서 만났으면 분명 지렸을 거야.”
“딱 봐도 강해 보이는데?”
카단의 데스나이트인 카록 역시도 3년 전보다 더 강해진 모습이었다.
무기와 머리에만 붙어 있던 녹색 화염이 몸 곳곳에 퍼져 있었다.
‘지난번엔 아이작 교수님의 제안 때문에 언데드를 소환하지 않고 대련했었지?’
그러나 지금은 카단을 제한할 그 어떤 규칙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선 데스나이트부터 시험해볼까?’
대련을 통해 상대를 이기는 것보다, 그동안 연습한 것을 실전에 써먹어 보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언데드 정도로 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카단의 데스나이트 ‘카록’을 마주하고도 롭스는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려움 따위는 전혀 느끼지 않는 모습.
“보통 데스나이트가 아닐 텐데.”
카단은 가볍게 웃으며 데스나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부터 데스나이트를 소환할 때 나오는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검은 연기는 데스나이트의 형태를 이루지 않았고, 그대로 카록의 몸을 휘감더니 그대로 흡수되었다.
“군주를 위해.”
데스나이트 카록의 눈에 청록색 안광이 빛났고, 그제야 롭스도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네크로맨서를 상대할 땐 당연히 네크로맨서부터… 상대해야 하는데…….’
데스나이트와 맞붙는 걸 피하고 싶었던 롭스가 시선을 옮겨 카단을 바라봤다.
‘하지만 저 사람은 평범한 네크로맨서가 아니야.’
어떤 수법을 사용할지 알 수 없었다. 방심하다간 자칫 3년 전처럼 피의 속박에 걸려 허망한 패배를 당할 테니까.
그러나 네크로맨서의 파훼법을 떠올리면 근접전이 약한 네크로맨서를 공격해야 한다는 것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 3년 전이랑은 다르다. 포박되면 힘으로 풀어버리면 그만이야.’
이내 생각을 끝낸 롭스가 방패를 앞세운 채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데스나이트를 바라봤다.
‘괜히 힘 뺄 이유는 없지.’
어차피 카단을 제압한다면 데스나이트 역시 무력화될 것이다.
스릉.
검을 고쳐 쥔 롭스가 짧게 호흡을 하더니.
타앗!
땅을 박차며 순식간에 데스나이트와 거리를 좁혔다.
그 모습을 보며 카단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래서 용병왕께서 이기면 소원권을 준다고 했던 거구나.’
왜 용병왕 제이드가 자신만만하게 이 대련에 소원권을 걸었는 지 알 것 같았다.
롭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깔끔했으며, 굉장히 빨라졌다.
3년 전이랑은 비교할 수 없는 모습.
‘적어도 6성 이상이다.’
롭스가 데스나이트 카록 앞에 도착하자, 카록은 기다렸다는 듯 들고 있던 흉측한 도끼를 휘둘렀다.
롭스는 사선으로 휘둘러지는 도끼를 바라보더니 피식 미소를 지었고.
타앗!
다시 한번 땅을 박차며, 이번엔 카단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끼를 휘두르던 카록이 놀란 듯 움찔하며 카단을 향해 뛰어가는 롭스를 바라봤다.
부우우우웅!
카록은 도끼를 휘두르는 힘을 그대로 이용해 롭스를 향해 집어던졌다.
이대로 던지면 카단 역시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카록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훅! 훅! 훅!
도끼는 바람을 가르는. 아니, 찢는 듯한 소리를 내며 매섭게 날아왔고.
‘미친.’
날아오는 도끼를 확인한 롭스는 어이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언데드는 네크로맨서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었나?
어째서 카단과 가까이 있는데도 망설임 없이 도끼를 집어던질 수 있는 거지?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생각이 길어지면 몸이 느려진다.
롭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재빨리 발걸음을 멈춘 뒤, 옆으로 몸을 날렸다.
방패로 막아내면 그만이라지만.
훅! 훅! 훅!
바람을 찢으며 날아오는 도끼를 굳이 막을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도끼날에는 검은색 오러까지 둘려 있었다.
롭스는 옆으로 몸을 날려 날아오는 도끼를 피해냈다.
그런데 이상했다.
카단이라고 해도 날아오는 도끼에 맞으면 분명 크게 다칠 것이 뻔했다.
오러까지 둘린 도끼라면, 단순한 실드 마법 정도로는 막아낼 수 없을 텐데.
‘자기가 소환한 언데드한테 죽고 싶다는 거야? 뭐야?’
카단은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날아오는 도끼를 향해 달려들었다.
‘역시 평범한 네크로맨서가 아니야.’
데스나이트가 도끼를 던진 이유는 롭스를 공격하기 위험이 아니었다.
카단은 아무렇지 않게 날아오는 도끼를 붙잡았고.
부우우웅!
그대로 오러가 둘린 흉측한 도끼를 롭스에게 휘둘렀다.
설마 네크로맨서가 데스나이트가 오러를 담아 던진 무기를 붙잡아 그대로 휘두를 줄이야.
까아아앙!
롭스는 당황하며 재빨리 방패를 들어올렸다.
카단의 움직임은 롭스의 생각처럼 일반적인 네크로맨서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기사처럼 강인했고, 암살자처럼 재빨랐다.
“크윽!”
설마 오러 두른 도끼를 휘두르는 네크로맨서를 보게 될 줄이야.
물론 데스나이트의 오러가 잠시 도끼에 둘려 있던 것이었기에.
역시나 이글거리던 검은색 오러가 서서히 힘을 잃어가듯 사라져갔고.
“쳇.”
카단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다시 뒤로 물러나 카록을 향해 도끼를 던졌다.
“주군. 제법이지만, 도끼는 주군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데스나이트는 날아오는 도끼를 가볍게 받아내며 말했고, 카단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쉽지 않겠어.’
네크로맨서의 언데드가 이렇게 위협적이었던 걸까?
도무지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힘으로 찍어 눌러야 하나?’
카단이나 본인이나 아직 가진 힘 전부를 보여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조금 전 카단의 움직임을 떠올려봤을 땐 도무지 어떤 방식으로 대련을 이어가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웅!
롭스의 방패와 검에서부터 오러가 활성화되었고.
화륵!
오러는 마치 롭스를 불태우듯 그의 몸 곳곳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모를 때는 정석으로.’
고개를 저으며 잡다한 생각을 떨쳐낸 롭스가 곧바로 땅을 박찼다.
‘역시 용병왕님의 제자인가. 마티아스랑 움직임이 비슷해.’
마티아스는 창, 롭스는 검과 방패를 사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 사람의 움직임은 비슷했다. 수십 번 마티아스를 상대했던 카단에게는 낯익은 움직임이었다.
휙!
금방 거리를 좁힌 롭스는 곧바로 검을 휘둘렀다.
카단이 재빨리 뒤로 피해봤지만, 롭스는 마치 쥐 잡는 고양이라도 된 것처럼 미친 듯이 추격해댔다.
‘끈찔기네.’
오러를 두른 검이 눈앞에서 휘둘러지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카단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데스나이트랑은 놀아줄 생각이 없는 건가?”
카단이 휘둘러지는 검을 여유롭게 피해내며 물었고.
“어차피 당신만 쓰러트리면!”
롭스는 이를 악물며 방패를 몸에 밀착한 뒤, 돌진했다.
쿵!
느닷없이 달려든 공격에 카단은 방패에 부딪혀 뒤로 밀려났고.
‘와, 교통사고 당하는 기분인데.’
방패에 부딪힌 충격이 예상보다 크다며 놀라고 말았다.
“그런데 어쩌지?”
뒤로 밀려난 카단이 피식 웃으면서 롭스를 바라봤다.
그러자 롭스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눈빛으로 카단을 노려봤고.
“이번엔 저 녀석의 활약이 조금 보고 싶거든.”
이어진 말 역시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 녀석을 쓰러트리면 나랑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지.”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마나를 활성화했고.
달그락! 달그락!
바닥에서부터 뼈다귀들이 나타나 무언가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달그락!
바닥에서 소환된 뼈들은 이내 커다란 원형 철창 같은 형태가 되었고.
“이, 이게 무슨?”
철창 안에는 데스나이트 카록과 롭스만이 남게 되었다.
“케이지라는 곳이야. 응원할 테니까 잘 싸워보도록.”
“뭐?”
“참고로 뼈로 만들어진 경기장이라 쉽게 부서질 것 같지만, 내가 옆에 있는 한 그럴 일은 없어.”
그러니 앞에 있는 데스나이트를 쓰러트려.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여유롭게 팔짱을 꼈고, 롭스는 헛웃음을 지으며 눈앞에 선 데스나이트를 바라봤다.
오크 데스나이트.
롭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어댔다.
“그래. 이 녀석만 쓰러트리면 된다는 거지?”
롭스가 그렇게 물으며 천천히 몸을 풀었고.
“아니.”
카단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러자 뼈로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 주변으로 데스나이트들이 나타났고.
“다음은 나다!”
“영광스러운 결투를!”
“주군! 나에게도 기회를 달라!”
그들은 자신들이 싸우고 싶다며 카단을 향해 외쳐댔다.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건가?”
카단은 어이없어하는 롭스를 향해 말했다.
“5명만 이겨봐. 그럼 싸워준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