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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140화 (140/186)

제140화

스슥!

광부들의 숙소에서부터 그림자 하나가 빠르고 은밀하게 빠져나왔다.

그림자는 어두운 광산 안으로 향했고, 이내 광산 깊은 곳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다.

“진짜 미쳤어?”

“쉿. 작게 말해. 광산 안이라 소리가 울려.”

“그러니까 여길 왜 오냐고!”

“내가 온 게 아니야.”

“그럼?”

“잡혔어.”

“잡히긴! 일부러 잡힌 거겠지!”

그림자의 주인. 카단이 진정하라는 듯 손짓했다.

잔뜩 얼굴을 붉히고 있던 루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카단을 매섭게 바라봤다.

“그러니까 길을 걷고 있었을 뿐인데, 누가 나타나서 너를 납치하고 여기로 데려왔다고?”

“응. 곧바로 여기로 데려오더니, 곡괭이 하나 쥐여 주면서 일을 시키더라고.”

카단의 대답에 루나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오늘 종일 일만 했다?”

“응. 운동도 되고 좋던데?”

“진짜 어쩔 생각이야? 무슨 생으로 여기까지 온 건데?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서 그래? 너 마족들 사이에 현상금도 걸렸다며?”

마족이었던 라도미르의 영주의 말에 의하면 카단에겐 이미 현상금이 걸린 상태.

즉, 카단은 현상금이 걸린 상태로 적진 한복판에 납치된 척 잠입한 것이었다.

“다행히 눈치채진 않은 거 같아. 납치될 때 반항 같은 걸 하지 않아서.”

“자랑이다. 혹시 도망칠 생각은 없어?”

루나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질문을 던졌고, 카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왕 잡혀 왔으니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볼 생각이야.”

하긴. 카단이라면 이렇게 경비가 허술한 곳을 탈출하는 건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도시에 있는 마족들이랑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건 모르겠어. 이제 잡혀 온 지 하루도 안 지나서 정보가 아무것도 없거든.”

종일 곡괭이만 휘둘렀으니, 정보를 얻을 시간이나 있었을까?

카단이 얻은 정보라고는 이 도시는 마족들에 의해 인간들이 노예가 되어 일만 한다는 것.

사람이 죽어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면, 근처 피난민들을 납치해 다시 노예로 부린다는 것.

이게 전부였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 무작정 소란 피울 생각은 없으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지금 카단의 힘이라면 적어도 광산에 있는 광부들은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의 노예들은 이들이 끝이 아닐 것이다.

도시 안에서 마족의 노예로 지내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설령 그들까지 모두 구했다고 하더라도 상황은 점차 힘들게만 흘러갈 것이다.

“아무래도 저항군이나 혁명단의 지원을 기대하기도 힘드니까.”

전투가 자신 있다고 해도 전투 이후 구출한 사람들을 계속 지킬 자신은 없었다.

노예로 부려지던 주민들을 모두 데리고 피난을 갈 수도 없는 노릇.

‘제이드 님에게 부탁하는 것도 무리고.’

용병왕 제이드는 지금 한참 피난민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향하고 있을 테니, 그에게 부탁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즉, 전쟁은 가능해도, 사람들을 구하는 것까지는 불가능하다는 뜻.

“그러니까 무턱대고 들어온 거네?”

“아냐. 정보를 얻으려고 들어온 거지. 나라고 계획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건 아니니까.”

카단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미 이 도시를 구해내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기에 루나로서도 그를 막아낼 방법은 없었다.

여간해선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루나는 한숨과 함께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나를 부른 이유는 뭐야? 단순히 수다나 떨자고 부른 건 아닐 텐데.”

“오늘부터 매일 밤마다 나랑 같이 산책 좀 하지 않을래?”

카단이 자상하게 웃으며 말하자, 루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도시에 들어가자는 말이잖아?”

“정답.”

루나를 소환한 이유는 함께 도시로 들어가 마족과 인간을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래도 인간은 신성력이 없는 이상 마족과 인간을 구분해낼 수 없었다.

그러나 뱀파이어는 마족과 인간을 쉽게 구분해낼 수 있었다.

“나는 피 냄새로 마족과 인간을 구분하지 못하니까, 부탁 좀 할게.”

뱀파이어는 피 냄새만으로도 상대방의 강함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종족까지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인간과 동물에게선 먹음직스러운 향이, 그리고 마족에게선 끔찍하고 역겨운 냄새가.

그렇기에 카단이 늦은 밤 루나를 이곳에 소환한 것이었다.

“그럼 너도 뱀파이어가 돼보는 건 어때?”

루나는 뾰족한 송곳니를 보이며 말했고, 카단은 여유롭게 웃으며 고개를 저어댔다.

“사양할게.”

“뭐, 어차피 계약자를 뱀파이어로 만드는 건 불가능해.”

그저 카단의 피 맛이 그리워 내뱉어본 농담.

카단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피식 웃으며 그녀의 농담을 받아주었다.

“대화는 이쯤 하고, 출발해볼까?”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아공간 속에서 가면 하나를 꺼냈다.

***

부서진 신전 안.

화륵!

두 개의 부서진 양초를 제외한 나머지 양초 위로 녹색의 화염이 점화되었다.

녹색의 화염은 점차 크기를 키우며 어둠을 몰아냈고.

저벅, 저벅.

조각상 뒤에서부터 여우 가면을 쓴 해밀턴이 여유롭게 걸어 나왔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해밀턴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고.

“빌어먹을 멧돼지와 문어가 뒤지는 바람에 바빠 죽겠는데, 왜 불렀어?”

“여우가 불렀겠어? 그분께서 전달하실 말씀이 있는 거겠지.”

“나약한 멧돼지와 문어 녀석. 고작 인간들에게 죽다니. 마족의 수치다.”

“멧돼지는 어떻게 죽었는지 몰라도, 적어도 문어는 가디언한테 죽었다고. 명복을 빌어주자.”

어둠 속에서부터 각양각색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다들 진정하세요. 진정.”

해밀턴은 진정하라는 듯한 제스처와 함께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여우. 너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그러자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해밀턴을 향해 말을 걸었다.

“더는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다는 해방감. 아~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해밀턴은 쓰고 있던 여우 가면을 벗으며 활짝 웃어 보였다.

“아? 맞다. 여러분들은 아직 정체를 숨기고 계시는구나? 아쉽네요. 제 기분을 공감해주실 분이 없다니.”

“이거 여우가 우리 놀리는 거지?”

“난 익숙해져서 상관없다. 인간들 속이면서 지내는 것도 나름 재밌고.”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소집한 이유나 말해. 바쁘니까.”

경고 섞인 목소리에 해밀턴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한 걸음 걸어왔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목소리들이 일제히 멈췄고, 신전 안에는 고요해졌다.

“벌써 우리가 활동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다들 어떻습니까? 발전은 있었나요?”

해밀턴의 질문에 촛불들이 화난 듯 크게 일렁거렸다.

“그분의 뜻대로 세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답답해 죽겠네! 언제까지 이렇게 찔끔찔끔 인간들을 건드려야 하는 건데?”

“우리가 나서면 가디언이든 저항군이든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잖아?”

“설마 마족이 전쟁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겠지?”

수없이 쏟아지는 불만에 해밀턴은 그들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들었다.

“자, 다들 진정하시죠. 이게 제 뜻입니까? 그분의 뜻이지. 지금 그분의 뜻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시죠?”

해밀턴이 방긋 웃으며 말하자,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불만이 뚝 끊겼다.

“서두를 거 없습니다. 전쟁은 마족들을 강하게 합니다. 인간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은 저희를 쾌락의 길로 인도하겠죠. 길어질수록 저희에게 이득입니다.”

고요함이 찾아온 신전에서, 오로지 해밀턴만이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전쟁 속에 영웅이 탄생하는 법. 이건 인간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닙니다.”

해밀턴의 말이 끝나자, 양초 위로 미친 듯이 이글거리던 녹색의 화염이 점차 가라앉았다.

“간혹 실패작 중에서도 수없는 전투를 통해 완전한 마족이 되는 녀석들도 드물게 있긴 하지.”

“뭐, 나도 노예가 많이 생겨서 좋긴 해.”

“답답하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인간들도 영웅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그것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할 텐데?”

마지막에 들려온 말에 해밀턴이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좋은 지적입니다. 그 대책을 위해 여러분들을 이곳으로 모셨죠.”

그 소리에 어둠 속 목소리들은 다시 잠잠해졌고, 해밀턴은 여우 가면을 다시 얼굴 위로 덮으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은 귀중한 전력입니다. 인간계에 여러분보다 강한 마족은 그분뿐이죠.”

이곳에 모인 이들 전부 마족화가 된 인간들.

그렇기에 이들 하나하나가 마족들 사이에선 귀중한 전력이었고, 가디언과 저항군으로부터 간부들을 지키기 위해 부하들만을 이용해 전쟁을 이어왔다.

“여기가 마계였다면 모를까, 여러분들이 죽는 걸 더는 지켜볼 수 없다고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소중한 전력 중 둘이나 잃게 되었다.

“그러나 그분께서 이제 슬슬 저희도 반격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해밀턴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하자, 어둠 속에서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반격이라면 어떤?”

“말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 전부가 나서는 건 아닌 듯싶은데.”

“누구 하나가 나서기라도 하라는 건가?”

“실력으로 따지면 내가 나서는 게 맞지.”

또다시 부서진 신전 안이 시끌벅적한 분위기로 변했고, 해밀턴이 다시 조용하란 제스쳐를 취했다.

“다들 나서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으나, 이번 작전 역시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해요. 아직 큰 전쟁을 벌이기엔 이르거든요.”

“알았으니까, 빨리 지목하기나 해. 누가 나서면 되는데.”

“무슨 일을 하면 되는 거지?”

두 질문이 조심스레 던져졌고, 해밀턴은 씩 웃으며 답했다.

“임무는 간단합니다. 사냥.”

사락.

해밀턴이 품 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저희 계획을 방해하는 자들에게 현상금을 걸어뒀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부하들만 믿고 있을 수는 없으니.”

“저항군이든 혁명단이든 간부급을 죽여라. 이거로군.”

“네. 맞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거미. 당신이 맡아줬으면 한다고 하시네요.”

저벅, 저벅.

해밀턴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귀찮지만 할 수 없지.”

거미 가면을 쓴 남자는 하기 싫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한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내 첫 사냥감은 누구지? 그냥 자율적으로 고르게 할 리는 없을 텐데.”

“첫 번째 사냥감은.”

사락, 사락.

거미 가면의 질문에 해밀턴이 바르게 현상 수배서를 뒤적이기 시작했고, 이내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았는지 수배서 중 한 장을 빼내 거미 가면에게 건넸다.

“이 녀석으로 부탁드리죠.”

해밀턴의 말에 어둠 속에서 부럽다는 듯한 한탄이 쏟아져나왔다.

“거미! 귀찮으면 나한테 넘기는 게 어때?”

“내가 거미보다 사냥 잘한다고!”

“아무나 해라. 난 관심 없다.”

다시 분위기가 산만해지려 하자, 해밀턴이 땅을 구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그러자 어둠 속의 존재들이 소리를 멈췄고, 해밀턴은 다시 거미 가면을 쓴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동쪽에서 활동 중인 불멸의 불꽃이라는 녀석인데, 이 녀석 때문에 마족들의 피해가 아주 큽니다.”

“필멸자들이 떠벌리기엔 너무 과한 별명인데?”

“혁명단이라고 알려졌습니다. 게다가 영웅 아카데미 교관 출신. 얕볼 수 없는 인간이죠.”

“뭐, 그 충고를 잘 받아들이도록 하지. 그런데 이 녀석의 이름을 알고 있나?”

거미 가면이 현상 수배서를 흔들며 묻자, 해밀턴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깐이나마 붙어본 적도 있습니다. 녀석의 마법이 꽤 따끔하더군요.”

해밀턴은 미소를 유지한 채 현상 수배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법사 벨리드. 그게 불멸의 불꽃이라 불리는 자의 진짜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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