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41화 (141/186)

제141화

까앙! 깡!

도시 로베른 근처 광산.

여느 때처럼 삐쩍 마른 광부들은 곡괭이를 들고 벽을 부숴댔고.

“아침이라고 설렁설렁하기만 해봐! 다 뒤지는 수가 있어!”

촤락!

감독관은 오늘도 여전히 애꿎은 바닥에 채찍을 휘둘러대며 광부들을 겁박했다.

까앙! 까아앙!

겁에 질린 광부들은 지친 몸을 억지로 움직이며 곡괭이를 휘둘러야만 했다.

그리고 광산 깊은 곳.

깡! 깡! 깡! 깡! 깡!

일정한 속도와 강도로 곡괭이를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근처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헛것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깡! 깡! 깡! 깡! 깡!

곡괭이질의 주인은 다름 아닌 카단이었다.

지치지도 않는지, 카단은 쉼 없이 몸을 움직였고.

“이보게. 아침부터 그렇게 힘을 빼면 밤에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옆에 있던 노인은 그런 카단이 걱정되었는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젊고 힘이 좋다는 건 알겠지만, 일은 요령이야. 요령.”

아침부터 1시간 정도는 쉬지 않고 곡괭이를 휘둘렀음에도 카단의 이마엔 땀 한 방울 맺혀 있지 않았다.

‘도대체 뭘 하다가 온 사람이지?’

노인은 뽀송뽀송한 카단의 모습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지치긴커녕,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사람보다 멀쩡해 보였다.

‘아니, 아무리 젊음이 좋다지만….’

평생을 광부로 살았던 노인은 이런 사람은 처음 본다며 신기한 눈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제야 카단이 곡괭이질을 멈추곤 노인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그, 그래. 쉬엄쉬엄하게. 하루는 기니까 말이야.”

노인은 그 말을 끝으로 감독관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곡괭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곡괭이질 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감독관이 찾아오지 않을 테니까.

‘흠. 확실히 좋은 운동이군. 한동안 운동을 등한시했었는데, 오늘부터 다시 운동 좀 해야겠어.’

까앙! 까앙! 까앙!

잠시 휴식을 취한 카단 역시 다시 곡괭이질을 시작했다.

‘이 도시는 인간과 마족을 구별하기 쉬워서 다행이야.’

곡괭이질을 이어가며 카단은 전날 밤 루나와 함께 도시에 잠입했던 것을 떠올렸다.

‘귀족은 마족. 노예는 인간….’

귀족이든 평민이든 출신에 상관없이 인간들은 모두 노예처럼 취급되었고, 마족들만이 귀족 같은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확실히 위험한 곳이야….’

마족들이 비교적 약하다고 판단했다면 당장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생각이었다.

그러나 도시 로베른에 거주하는 마족들은 생각보다 강한 마족들이 많았다.

‘지금 내 전력으로는 무리야.’

승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전쟁을 일으키는 바보 같은 짓은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노예로 취급되는 인간들이 딱하더라도.

까앙! 깡! 까앙!

머리가 복잡해졌는지, 곡괭이질 하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들을 구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쯧. 우선 탈출해야 하나?’

이곳에서 계속 노예인 척 지낸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카단에게 경비가 허술한 광산을 탈출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탈출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사람들이 눈에 거슬렸다.

마족들은 인간들에게 밥도 제대로 주지 않으며, 죽으면 새로운 인간을 잡아 와 노예로 만들기를 반복했다.

애꿎은 인간들은 처절한 노동 끝에 죽음을 맞이했고, 살아있다면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당해야만 했다.

하루 동안 그 모습을 지켜봤기에 카단의 발걸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카단이 복잡한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

촤락!

“잠시 주목!”

감독관이 채찍을 휘두르며 큰소리로 외쳤다.

광부들은 각자 작업을 멈춘 채 감독관이 서 있는 광산 입구를 바라봤다.

“새로운 인력이 추가되었다. 하던 대로 알아서 일 가르치고 바로 작업 투입시켜.”

감독관의 말과 함께 새로운 사람들이 광산 안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대략 20명 정도 되는 사람이었고, 이번에도 역시 전부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 뿐이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촤락!

감독관이 바닥에 채찍을 휘두르며 외치자, 사람들이 헐레벌떡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단은 새로 투입된 사람들을. 아니, 그중 한 사람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노예로 잡혀 온 사람 중 유독 덩치가 큰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카단이 아는 사람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클로제 선배…?”

작게 내뱉은 그 목소리를 들었는지, 다른 사람들처럼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던 클로제가 카단을 바라봤고.

“카단…?”

클로제 역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

식사 시간이 되자 광부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광산 밖으로 빠져나왔다.

“한 사람당 하나씩이다. 하나 더 가져가다가 걸리면 뒤지는 거야. 알겠어?”

감독관은 광부들에게 딱딱한 빵과 맹물 같은 수프를 나눠주었고.

“가,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광부들은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고개를 조아린 뒤 땅바닥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니, 선배가 왜 여기에?”

“카단. 넌 아버지 유산 찾으러 다닌다면서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혹시 광산 안에 유산이 있는 거야?”

카단과 클로제는 감독관 몰래 광부들의 숙소로 들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뇨. 근처를 지나가다가 잡혔어요.”

“네가? 잡혀준 거겠지.”

“그러는 선배는 왜 여기에?”

“나도 일부러 잡혀 왔다.”

감독관들에게 걸린다면 괜히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었기에 두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다면 혹시 저항군들이 이곳을 습격할 예정입니까?”

클로제는 분명 저항군 소속.

그가 이곳에 노예로 위장해 잠입한 것이라면, 이제 곧 저항군들이 이곳에 온다는 뜻 아닐까?

카단은 작은 희망을 품은 채 클로제를 바라봤다.

“아니. 당장 저항군이 이곳까지 오는 것은 불가능해.”

클로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온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마족들이 인간을 인질로 잡는 순간부터는 전쟁은 불가능하니까.”

그 말에 카단은 잠시 아쉽다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선배는 왜 이곳에?”

저항군이 습격할 것도 아니라면, 저항군 소속인 클로제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이 도시에 저항군 몇몇이 잡혀 있다고 들었다. 구하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생사는 확인해야지.”

“저항군이요?”

“너도 아는 사람들도 있어. 루카스와 아라드.”

클로제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하며 한숨을 내뱉었고.

“루카스와 아라드 선배 말씀입니까?”

카단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언제나 클로제와 붙어 다녔던 두 아카데미 생도.

마법사 루카스와 궁수 아라드.

두 사람이 마족들에게 붙잡혀 이 도시에 감금되어 있다니.

“아니, 어쩌다가?”

“3개월 전쯤 저항군은 마족들과 전투에서 패배했고 그때 저항군 몇몇이 마족에게 붙잡혀갔어.”

클로제는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그 사람들이 부디 무사하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만약 마족들이 저항군들을 붙잡아 강제로 마석이라도 주입했다면 그들은 마족이 되고 말 것이다.

“붙잡힌 저항군들의 생사와 위치를 파악한다면 이곳을 탈출한 뒤, 인원을 꾸려 다시 와야지.”

클로제가 답답하다는 듯 인상을 꾸기며 말했고.

“일단 그건 제가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카단은 무언가 생각이 있는지 눈을 똘망하게 뜨며 클로제를 바라봤다.

“네가? 어떻게?”

“일단 어제도 잠시 도시에 잠입했었습니다. 뭐, 자세히 둘러볼 순 없었지만.”

카단은 하루 동안 자신이 얻었던 정보들을 클로제에게 전부 공유했다.

“마족에게 인류애를 찾기는 힘들 테니, 사람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건 당연한 거겠지.”

“네. 그런데 저항군들이 붙잡혀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감옥 같은 곳은 가볼 생각을 못 했죠.”

“오늘은 가볼 건가?”

“아뇨. 직접 가는 건 위험해요. 걸렸다간 괜히 경비가 더 삼엄해질 테니까요.”

그렇다면 뭘 도울 수 있다는 말인가?

클로제가 고개를 갸웃하며 카단을 바라보자, 카단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레이스를 이용해 감옥을 확인해보라고 할게요. 네크로맨서가 없다면 무사히 둘러보고 올 수 있을 겁니다.”

카단의 대답에 마음이 놓였는지, 클로제가 힘이 빠진다는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행이다. 도시가 아니라 광산으로 잡혀 와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선배를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카단 역시 긴장이 풀린다는 듯 자리에 앉아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잘 지냈냐?”

클로제가 애써 웃으며 카단에게 물었다.

“네. 선배님은요?”

두 사람은 짧게 주어진 식사 시간을 이용해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다들 그만 쳐 쉬고 일해!”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들려오는 감독관의 목소리에 3년 만에 나누는 대화를 마무리해야만 했다.

“그럼 있다 봐요. 선배.”

***

어두운 밤. 두 그림자가 광부들의 숙소를 빠져나와 광산으로 향했다.

“우선 저녁 시간에 레이스들을 도시 안으로 보내놨어요. 아직 역소환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 무사히 잠입한 것 같습니다.”

“고생했다.”

광산 깊은 곳으로 들어간 카단은, 클로제를 향해 미소 지어 말했고, 클로제는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붙잡힌 저항군들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함에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선배. 저항군들은 어떻게 탈출시킬 생각이에요?”

“저항군 중 정예를 꾸려서 잠입한 다음 빼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지.”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위험하긴 하지. 그래도 방법이 그것뿐이다.”

클로제의 말대로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붙잡힌 저항군들이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겐 싸울 힘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인간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마족이 수감자들에게 얼마나 신경을 쓰겠는가?

“가디언 분들을 모셔오는 건 어떻습니까?”

가디언 한 명이라도 도우러 온다면 붙잡힌 저항군들은 물론 노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바쁘셔. 매일 같이 마족과 전투 중이신 분들이야. 그리고 만약에라도 가디언 님께서 마족에게 당하기라도 한다면….”

저항군의 전력엔 큰 손실이 생길 것이다.

만약 마족들이 가디언을 강제로 마족으로 만들게 된다면 마족은 큰 전력을 얻게 될 수도 있다.

그때.

-저 왔어요!

-저도 왔어!

-나도 왔습니다!

반투명한 모습의 레이스들이 광산의 벽을 뚫고 빠르게 카단에게 다가왔다.

“선배. 잠시만요.”

카단은 곧바로 레이스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확인했어?”

-네! 감옥은 영주성 지하에 있어요!

-그리고 감옥에 갇힌 사람 중에 저항군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마족으로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레이스들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카단에게 전달해주었다.

“선배. 찾았답니다.”

“지, 진짜냐?”

“네. 그런데 다들 무사한 것 같지는 않아요. 예상대로 저항군들을 마족으로 만들 생각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한시가 급한 상황.

시기를 놓친다면 붙잡힌 저항군들 모두가 마족이 될 수도 있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안 되겠다. 카단. 난 먼저 탈출해야 할 것 같아. 감옥 위치만 좀 알려줘.”

그 말을 들은 클로제가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고, 카단은 일단 진정하라며 손짓했다.

“선배. 저한테 생각이 있어요. 어차피 선배가 저항군 중 정예를 꾸려 이곳까지 다시 오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거다. 그러니 서둘러야지.”

카단의 질문에 클로제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빨리 해결할 방법이 떠올랐어요.”

“그게 뭔데?”

클로제가 간절한 눈빛으로 카단을 바라봤고, 카단은 곧바로 아공간을 열어 무언가를 꺼내 클로제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뭔데?”

카단이 건넨 건 곱게 접힌 쪽지였고, 클로제는 조심스레 쪽지를 펼쳐보았다.

“벨리드 교관님이 계신 곳이요.”

“벨리드 교관님?”

벨리드는 순간이동 마법과 포탈 마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왕국의 몇 없는 마법사 중 하나.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붙잡힌 저항군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전부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네. 그래서 말인데, 탈출은 제가 하겠습니다. 선배님은 이곳에 남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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