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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142화 (142/186)

제142화

다그닥! 다그닥!

뼈만 남은 해골마 한 마리가 지면을 박차며 어둠 속을 달렸다.

‘클로제 선배를 보내는 것보다 내가 가는 게 더 빨라.’

카단은 잠시 뒤를 바라보며 조금 전 클로제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벨리드 교관이 있는 곳은 왕국 동쪽에 있는 작은 도시였고, 도시 로베른과는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말을 타고 간다고 해도 20일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텔레포트 스크롤을 구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마족들이 활동을 시작한 이후부터 마탑은 마법사 길드의 문을 닫았다.

게다가 왕국 곳곳에 텔레포트 마법을 방해하는 마법이 활성화된 상황이었기에 텔레포트 스크롤을 구한다고 하더라도 사용은 불가능.

‘그래도 벨리드 교관님이라면 텔레포트 마법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거야.’

벨리드가 단순한 7성 마법사였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텔레포트 마법에 특화된 마법사.

텔레포트 마법으로는 가디언을 제외하면 그녀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즉, 벨리드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존재이기도 했다.

다그닥! 다그닥!

‘해골마라면 지칠 리 없을 테니, 쉬지 않고 달린다면 더 빨리 갈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카단에겐 해골마를 소환할 능력이 있었고, 해골마는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았다.

잠을 줄이고 달려간다면 적어도 14일 안에는 도착하지 않을까?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삐를 세게 쥐었다.

‘하필 루카스 선배와 아라드 선배가 붙잡혀 있다니.’

아는 사람이 붙잡혀 있다는 생각은 카단을 조급하게 했다.

루카스와 아라드가 마족이 되어버린다는 상상은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촤락!

카단은 고삐를 세게 쥐었고.

다그닥! 다그닥!

해골마는 전보다 세게 지면을 박차며 앞으로 나아갔다.

***

광산을 탈출한 지 정확히 13일이 지난 후.

“여긴가…?”

카단이 해골마에서 내려 눈앞에 보이는 성벽을 바라봤다.

여태껏 봐왔던 성벽과 비교하자면 초라하기까지 한 작은 성벽.

카단은 성문을 향해 걸어가는 한 여인에게 다가가 조심히 물었다.

“저기 뭐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이 도시가 루반이 맞습니까?”

“네? 저, 저기 그게….”

낯선 사람이 다가와서인지 여자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그러자 카단은 조심스레 뒤로한 걸음 물러서며 주머니에서 영웅 아카데미의 증표를 꺼내 여성에게 보여주었다.

“전 마족이 아니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여, 영웅 아카데미의 증표?”

겁먹었던 여자는 이내 카단이 내민 증표를 확인하더니 안심한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처음 뵙는 분이라 순간 겁을 먹었어요. 죄송합니다.”

여성은 급히 카단에게 사과를 건넸고, 이어서 도시의 성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시 루반이 맞습니다. 마족의 침입이 거의 없었죠. 조용하고 아직은 안전한 도시에요.”

“아, 감사합니다.”

“저 정말 마족 아니시죠?”

“네. 마족이라면 성기사가 지키는 성문에 이렇게 당당히 서 있을 수는 없잖아요?”

카단은 성문을 지키고 있는 남자들을 가리키며 말했고, 여성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행이다.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었다.’

잠도 줄여가며 해골마를 타고 미친 듯이 달린 결과 20일이나 걸릴 거리를 13일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쯧. 엉덩이가 찢어질 것 같군.’

장시간 말을 타고 달리는 바람에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쉴 시간은 없었다.

“고생했어.”

카단은 해골마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은 뒤 소환을 해제했고.

사락.

이어서 안주머니에서 곱게 접힌 쪽지를 꺼내 펼쳤다.

[왕국 동쪽. 도시 루반의 여관 ‘고독한 여행가들의 쉼터’]

쪽지 안에 적힌 내용을 확인한 카단은 곧바로 성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멈추십시오.”

카단이 성문 앞으로 다가오자 문지기 일을 수행 중이던 두 명의 성기사가 검을 뽑으며 카단의 앞을 가로막았다.

“성문을 지나시려면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저희 말에 순조롭게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릉.

“죽이겠습니다.”

성기사가 매섭게 카단을 노려보며 말했고, 카단은 공격 의사가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기사들 덕분에 이 도시가 안전한 건가?’

마족들이 점령한 북쪽과 가까운 곳이었기에 위험할 법도 했지만, 도시는 꽤 안전해 보였다.

성벽 어디에도 전쟁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성문 너머로 느껴지는 도시의 기운 역시도 평화롭게 느껴졌다.

“물론이죠. 편하게 검사하세요.”

마족들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전시 상황.

그렇기에 도시 성문은 일반 병사가 아닌 성기사가 지키고 있었으며, 검문 역시 강화되어 있었다.

‘경계심이 장난 아니군.’

아무래도 전시 상황이다 보니, 성기사들은 예민해진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했다간 공격을 해올 것만 같았다.

카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성기사 하나가 다가와 카단을 향해 손을 뻗었고.

우웅.

성스러운 기운이 그의 손에서부터 뿜어져 나와 카단의 몸에 스며들었다.

‘쯧. 기분 나쁜 기운이네.’

아무래도 네크로맨서와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성스러운 기운이 몸속에 들어오니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마족이 아니시군요.”

“이곳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성스러운 기운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성기사들이 다시 검을 집어넣으며 카단에게 물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러 왔습니다.”

카단의 대답에 성기사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지나가도 좋다는 듯 길을 열어주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성문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고.

‘여긴 정말 평화로운 곳이네.’

성문을 넘어서자 평화로운 분위기의 도시가 시야에 들어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도 불안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마치 3년 전과 다름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듯했다.

‘이런 분위기가 그리워질 줄이야.’

잠시나마 눈을 감고 평화를 즐기던 카잔이 다시 눈을 뜨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고독한 여행가들의 쉼터라….’

다행히 여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도시가 크지도 않았으며, 영주성을 제외한 여관 건물들만이 유일하게 3층 이상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군.”

이내 ‘고독한 여행가들의 쉼터’를 찾아낸 카단은 곧바로 여관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한 분이십니까?”

“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여관 주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해맑게 웃으며 카단에게 다가왔다.

“처음 뵙는 분이신데, 어디서 오셨습니까?”

“북쪽에서 왔습니다.”

카단의 말이 끝나자, 순간 여관 안이 조용해졌고, 여관 주인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아. 저는 마족이 아닙니다. 성문에서 검사도 받았어요.”

분위기가 싸늘해지자, 카단은 곧바로 영웅 아카데미의 증표를 꺼내며 말했다.

“크하하! 장난입니다. 마족이었으면 도시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했겠죠.”

그러자 여관 주인이 크게 웃으며 말했고, 1층 식당에 있던 사람들 역시 큰소리로 웃어댔다.

“혹시 이런 시기에 여행 중이신 건 아닐 테고, 이 도시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웃음을 멈춘 여관 주인이 다시 질문을 던졌고,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품속에서 쪽지를 꺼내 여관 주인에게 건넸다.

“벨리드 교관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여기로 와서 벨리드 교관님의 이름을 말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그러자 쪽지를 받아든 여관 주인이 깜짝 놀라며 카단을 바라봤다.

놀란 표정을 짓고 잇던 건 여관 주인뿐이 아니었다.

1층 식당에서 식사하거나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카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북쪽에서 활동하는 혁명단 단원이십니까?”

“혁명단이요?”

벨리드 교관을 보러 왔는데, 왜 다짜고짜 혁명단이라는 말이 나오는 걸까?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여관 주인을 바라봤다.

“아, 아니십니까?”

카단이 눈을 끔뻑이며 바라보기만 하자, 여관 주인은 이내 뻘쭘한 듯 웃으며 질문을 바꿨다.

“그렇다면 혹시 벨리드 님과 어떻게 아는 사이이십니까?”

“영웅 아카데미에서 만났습니다. 제대로 된 수업은 받아본 적이 없지만, 어쨌든 제 스승님이죠.”

그러자 여관 주인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치며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벨리드 님이 말했던 그분이시군요! 네크로맨서!”

“아! 언젠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 했던 그 아카데미 제자분!”

“그분이 이분이야?”

여관 주인의 말에 식당에 있던 사람들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단을 유심히 바라봤다.

“아, 네….”

갑작스러운 관심에 당황한 카단이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교관님께서 내가 온다고 미리 말씀해놓으셨구나.’

카단이 당황하고 있자, 여관 주인은 급히 바 테이블로 달려갔고, 어서 오라며 손짓했다.

“일단 앉으세요! 배고프실 텐데 식사부터 하시죠!”

“벨리드 님이 그렇게 칭찬하셨던 분이 이분이시지?”

“영웅 아카데미의 마지막 신입생 맞으시죠? 이거 영광입니다!”

“그냥 신입생이 아니시지! 그 신입생 중에서도 1등이셨대!”

무한한 관심 속에서 카단은 어색하게 웃으며 여관 주인이 있는 바 테이블을 향해 걸어갔다.

“저기 그런데 혁명단이라뇨?”

카단이 여관 주인에게 다가가 묻자, 무한한 관심을 주던 사람들이 잠시 말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봤다.

잠시 조용해진 분위기 속 여관 주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모르셨습니까?”

“뭐를요?”

“벨리드 님이 혁명단이라는 사실… 을 모르십니까?”

“네?”

카단은 순간 입을 쩍 벌리며 여관 주인을 바라봤다.

‘아니, 교관님 중에도 혁명단이 있었다고?’

영웅 아카데미에 정체를 감추고 들어온 혁명단은 칼리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생도에 이어 교관까지 혁명단이었다니.

카단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던지 헛웃음조차 짓지 못하고 여관 주인을 바라봤다.

“벨리드 님은 사람들한테 불멸의 불꽃이라 불리며 꽤 명성을 날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여관 주인과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너는 왜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느냐는 듯한 눈빛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영웅 아카데미의 교관이 혁명단이라는 사실보다, 벨리드가 혁명단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더 문제가 되는

그들의 시선에 카단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삼키며 물었다.

“그러니까 그 불멸의 불꽃이 벨리드 교관님이고, 벨리드 교관님이 혁명단이란 말씀입니까?”

“네.”

“그렇다면 여기는….”

“이곳은 혁명단의 비밀 장소입니다. 여관으로 운영하면서 혁명단원들이 모이는 곳이죠.”

여관 주인은 해맑게 웃더니, 여관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한 지금 이 여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혁명단입니다.”

“아….”

카단은 순간 말문이 막혔는지, 바보처럼 입을 벌린 채 사람들을 바라봤다.

“벨리드 님은 지금 단원들을 데리고 도시 주변을 정찰하러 가셨습니다.”

“벨리드 교관님이 여기 계신가요?”

“네. 이 도시에서 주로 지내시면서 혁명단의 작전을 수행하시죠.”

마족이 판을 치는 세상이니, 혁명단은 더는 숨어 살지 않았다.

마족도 당당하게 돌아다니는 판국에 혁명단이라고 숨어지낼까?

사람들은 혁명단이라는 걸 자랑스레 밝혔고, 카단은 그들을 보며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걸리실까요?”

“아뇨. 나가신 지 꽤 됐으니까, 쉬시면서 기다리시면 곧 오실 겁니다.”

식사는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여관 주인이 자상하게 웃으며 물었다.

“아, 저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조금 자고 싶긴 한데….”

잠을 줄여가며 쉬지 않고 달려왔기에 피곤함이 극에 달한 상태.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눈꺼풀이 무겁게 느껴졌고, 쉬고 싶은 마음이 점차 커졌다.

“아, 그럼 침실로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여관 주인은 자상한 목소리로 말하며 카단을 안내했고, 카단은 그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쾅!

문이 활짝 열리며 누군가가 뛰어 들어오더니,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 이보게! 괜찮나?”

“정신 좀 차려봐!”

사람들은 쓰러진 자에게 빠르게 다가갔고, 카단도 놀란 눈으로 쓰러진 사람을 살폈다.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고, 얼굴도 엉망이었다.

살아 돌아온 게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상처도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어쩌다 이렇게 됐어!”

쓰러진 자도 혁명단이었던 걸까?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를 부축하며 물었다.

그러자 잠시 정신을 잃었던 남자가 힘겹게 눈을 뜨더니, 혁명단 단원들을 바라보며 애처롭게 입을 열었다.

“베, 벨리드 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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