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43화 (143/186)

제143화

“마족에게 당했습니다.”

바닥에 쓰러진 혁명단 단원이 고통을 참아내며 말했다.

“마, 마족이라니?”

“자세히 말 좀 해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져댔다.

“정찰 중에 마족이 나타났습니다…. 가면을 쓴 마족이요”

벨리드를 포함해 5명으로 이루어진 정찰대는 여느 때처럼 도시 근처를 돌아다니며, 마족의 위협을 대비했었다고 한다.

한참 정찰을 이어가던 중 근처 숲속에서 거미 가면을 쓴 남자를 만났고, 예고도 없이 전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저희가 아니었다면 벨리드 님이 당하시는 일은 없었을 텐데….”

순식간에 사상자가 발생했고, 벨리드를 제외한 혁명단 단원들이 크게 다치고 말았다.

벨리드가 반격을 해보려 했지만, 단원 하나가 인질로 잡히는 바람에 벨리드는 순순히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저, 저는 벨리드 님이 텔레포트 마법으로 저를 이곳에 보내주셨기에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벨리드와 인질로 잡힌 2명의 혁명단 단원.

“혼자 이렇게 올 게 아니었는데…. 차라리 제가 죽고 벨리드 님이….”

그들을 두고 도망쳐야 했던 남자는 결국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거기가 어딥니까?”

그때 계단에 멈춰 서 있던 카단이 다가와 물었다.

“당신은 누, 누구 십니까?”

“벨리드 교관님의 제자입니다. 마족과 전투했던 곳이 어디입니까?”

피곤함에 눈그늘이 짙게 생겨있었지만, 눈빛은 진중했다.

“북쪽 성문으로 나가서 왼쪽으로 가다 보면 숲이 나옵니다….”

남자는 눈물을 겨우 참아내며 마족을 만난 장소를 알려 줬고.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전투가 가능하신 분들도 따로 보내주십시오.”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여관 출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 잠깐! 가면을 쓴 마족은 위험하다네!”

“아무리 영웅 아카데미 출신이라지만 위험해요! 당신까지 위험해질 겁니다!”

그러자 여관에 있던 사람들이 카단을 말리기 위해 쫓아왔다.

혁명단의 정보에 의하면 가면을 쓴 마족은 최소 최상급 마족.

벨리드 수준의 마법사도 상대하기 힘든 마족을 벨리드의 제자가 이길 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

“늦으면 위험합니다.”

그러나 카단은 그들의 경고를 무시하며 그대로 땅을 박차 북쪽 성문을 향해 달려갔다.

***

“불멸의 불꽃이라고 불린다기에 불을 잘 다루는 마법사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군.”

거미 가면을 쓴 마족이 히쭉거리며 말을 이었다.

“불리한 전투라도 텔레포트로 도망 다니며 끝까지 살아남는 마법사. 그래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었어.”

이내 혼잣말을 정리한 마족이 피식 웃으며 눈앞에 벨리드를 바라봤다.

벨리드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으며, 그 사이로 피가 흘렀다.

힘겹게 숨을 헐떡이는 그녀는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지만, 표정만큼은 패배를 그리지 않고 있었다.

“빌어먹을 마족 새끼.”

벨리드가 이를 악물며 말하자, 거미 가면을 쓴 마족이 어깨를 들썩이며 답했다.

“이거 어쩌나? 그 잘난 텔레포트 마법도 인질들 앞에서는 제대로 사용도 못 하고.”

“좋은 말로 할 때 인질들을 놓아줘.”

“왜? 인질들 풀어주면 조금 전처럼 텔레포트 마법으로 인질들을 어디론가 보내버리려고? 안 되지. 안 돼.”

마족은 마치 벨리드를 조롱하듯 말하며 어딘가를 바라봤다.

거미줄로 칭칭 감겨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두 사람.

그들은 벨리드와 함께 도시 근처를 정찰하던 혁명단 단원이었다.

“좋은 제안을 하나 하지.”

마족이 인질들을 향해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나와 함께 가서 네 몸에 마석을 심고 나의 부하가 되어라. 그럼 이 녀석들을 놓아주도록 하지.”

“나보고 마족이 되라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강함을 얻게 될 것이다. 너 정도의 인간이라면 가면을 쓸 자격을 얻을 수도 있어.”

“개소리.”

“위에서 널 죽이라고 했지만, 그냥 죽이는 건 아깝거든. 그러니 내 밑으로 들어와 영생을 살아라.”

벨리드는 헛웃음을 지었다.

‘녀석들의 목표가 나였구나.’

마족들과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명성을 올려왔다.

그렇기에 마족들은 벨리드를 골칫거리로 여길 것이 분명했다.

‘언젠가 찾아올 줄은 알았는데, 설마 최상급 마족이 나타날 줄이야.’

마족이 찾아올 것을 늘 대비는 하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은 예상할 수 없었다.

‘혼자라면 어떻게든 도망칠 수 있겠지만….’

최상급 마족이 나타난다고 해도 살아남을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동료들이 인질이 잡힌 상황에 혼자서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

‘이런 식으로 절벽 끝에 몰릴 줄이야.’

벨리드는 쓴웃음을 지으며 거미 가면을 쓴 마족을 노려봤다.

“거부한다면?”

“무력으로 데려가면 그만.”

마족의 말이 끝나는 순간, 벨리드 주변에 마법진이 생겨났고.

촤락!

마법진에서부터 사람 팔뚝만 한 거미줄이 쏘아졌다.

쏴아아아악!

빠른 속도로 쏘아진 거미줄이 벨리드의 몸에 닿으려던 찰나.

스륵.

그녀의 몸이 안개처럼 흐려졌고.

쾅! 콰앙! 콰앙! 콰아앙!

그녀의 몸을 관통한 거미줄이 애꿎은 바닥에 꽂혀버렸다.

화륵!

먼발치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벨리드가 빠르게 마법을 준비했다.

휙!

벨리드가 손을 앞으로 뻗는 동시에 그녀의 주변에 만들어진 화염의 창이 빠르게 쏘아졌다.

“참으로 탐나는 재능이야.”

위협적인 공격이었지만, 마족은 여유롭게 다가오는 불의 창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정말 날 공격할 생각이야?”

불의 창을 바라보던 마족이 히쭉거리며 인질들을 바라봤고.

스릉!

인질들 앞으로 거미줄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검들이 나타나 그들의 목을 겨눴다.

“제기랄!”

불의 창이 날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벨리드는 재빨리 손을 뻗어 마법을 사용했고.

우웅!

날아가는 불의 창 앞으로 포탈이 생겨나 모든 것을 흡수했다.

콰앙! 콰아아앙!

그와 동시에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짝! 짝! 짝! 짝! 짝!

“그 짧은 시간에 포탈을 만들어 궤도를 아예 틀어버릴 줄이야. 응용력도 좋은데?”

마족은 폭발음이 들린 곳을 한 번 바라보더니, 다시 벨리드를 바라보며 박수를 보냈다.

“비겁한 새끼.”

벨리드는 그런 마족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러면 방법이 없는데….’

인질을 위협하는 상황에 벨리드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인질을 잡아야 할 정도로 나약한 놈이었냐?”

“인질이 없으면 또 도망갈 생각이잖아? 내가 그것도 모를까 봐?”

도발 역시 통하지 않는다.

방어와 회피만 하다가는 이 전투는 분명 패배로 끝나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 벨리드는 꽤 많이 지친 상태였다.

‘따라가는 방법밖에 없는 건가?’

이 상태로 방어와 회피를 한다고 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족 앞에 무릎 꿇고 말 것이 분명했다.

점차 벨리드의 얼굴이 절망에 물들었고, 마족은 그 모습을 보며 기쁘다는 듯 어깨를 들썩여댔다.

“그럼 얌전히….”

마족이 한쪽 손을 들어 벨리드를 가리키자, 그녀의 발밑으로 마법진이 나타났고.

촤라라락!

수십 가닥의 거미줄이 튀어나와 그녀를 휘감았다.

아니, 휘감으려 했다.

콰지직!

벨리드 주변으로 뼈로 만들어진 벽이 나타나더니, 그녀를 감싸려던 거미줄을 모조리 막아냈다.

‘이건?’

뼈의 벽 안에 갇힌 벨리드가 순간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뼈로 만들어진 벽?’

분명 혁명단엔 네크로맨서가 없을 텐데? 벨리드가 당황하는 사이, 뼈의 벽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세요?”

그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벨리드가 뼈의 벽을 발로 차며 밖으로 나왔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뒷모습이 보였다.

“카, 카단?”

조심스레 이름을 불러보니, 뒷모습을 보이던 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벨리드를 바라봤다.

“인사는 잠시 미루겠습니다.”

카단이었다.

3년 전과 똑같다고 할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분명 카단이었다.

“자, 잠깐 카단! 너 혼자 어쩔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반가움도 잠시, 눈앞에 있는 상대는 최상급 마족이라는 사실을 떠올린 벨리드가 급히 카단을 불렀다.

왕국 5대 기사단 출신이자, 영웅 아카데미 교관 출신인 그녀조차도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

후퇴를 먼저 생각하게 하는 마족이었다.

아무리 카단이 3년 동안 성장했다고 해도 최상급 마족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적어도 벨리드가 판단하기엔.

“게다가 인질도 잡혀 있….”

벨리드가 인질들이 잡힌 곳을 가리키며 외치려는 순간.

툭! 툭!

두 개의 거대한 고치가 벨리드의 뒤쪽에 조심스레 놓였다.

고치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인질로 잡힌 두 명의 혁명단 단원이었고.

“이게 무슨?”

벨리드는 당황하며 고치를 내려놓은 자를 바라보았다.

짙은 오렌지빛 머리칼의 꼬마 숙녀가 뿌듯한 표정으로 손을 털고 있었다.

“카단. 이제 됐어.”

꼬마 숙녀는 카단을 향해 자유롭게 놀다 오라는 듯 말했고.

“고마워. 루나. 잘했다.”

카단은 잠시 고개를 돌려 미소를 보여준 뒤, 곧바로 바닥을 박찼다.

타앗!

벨리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최상급 마족이 붙잡은 인질을 이렇게 손쉽게 데려올 수 있는 건가?

인질 때문에 그렇게 고전했었는데?

‘이 아이의 정체는 뭐지?’

벨리드가 놀란 눈으로 루나를 바라보자, 루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해? 카단이 너한테 가져다주면 네가 알아서 할 거라고 했는데?”

“어? 아, 그래.”

그제야 정신을 차린 벨리드가 단단해진 거미줄 고치에 불을 붙였고.

화륵!

이내 혁명단 단원들을 포박하고 있던 고치가 완전히 사라졌다.

“다들 괜찮아? 기지로 보내줄 테니까, 지원군 데려와!”

두 단원의 상태가 괜찮은 걸 확인한 벨리드는 곧바로 두 사람의 어깨 위로 손을 올린 뒤 마나를 활성화했다.

파앗!

두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두 인질이 무사히 사라진 걸 확인하자, 벨리드가 곧바로 시선을 옮겨 카단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저건….’

마족을 향해 달려드는 카단의 몸에서 핏빛 기운이 일렁이고 있었고, 그의 손에는 피로 만들어진 거대한 낫이 들려 있었다.

‘사신화….’

7성 네크로맨서의 마법인 데시메이션. 피의 사신을 흡수하는 샬로트 잉그마르의 고유 기술.

3년 전 카단이 해밀턴을 상대했을 때도 보여줬던 기술이었다.

‘그땐 무작정 힘만 증폭시켰지, 불안정했다면, 지금은 아니다.’

피의 사신을 흡수해 그 힘을 흡수한 네크로맨서는 넘치는 힘을 제대로 다룰 수가 없었다.

샬로트를 따라 피의 사신을 흡수했다가 폭주했던 네크로맨서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러나 카단은 소름이 끼치도록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 여우가 말했던 녀석인가?”

거미 가면을 쓴 마족이 다가오는 카단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보통 녀석이 아니다.’

빠르게 달려오는 사이 피의 사신을 흡수하며 사신화를 완성할 정도라면 얕볼 수 없는 강자.

‘게다가 저 꼬마는 뱀파이어인가?’

심지어 거미 가면을 쓴 마족이 눈치채기도 전에 인질들을 구해낸 루나까지.

아무래도 전투가 길어질 것만 같다는 생각에 거미 가면이 고개를 저어댔다.

‘기껏 인질을 잡았더니.’

쏴아아아악!

생각을 이어가던 중,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온 카단이 거대한 피의 낫을 휘둘렀다.

카아아아앙!

거미 가면을 쓴 남자는 카단을 향해 손을 뻗었고, 동시의 그의 앞으로 거미줄로 만들어진 거대한 벽이 세워졌다,

“그렇게 무딘 낫으로 무슨 죽음을 벤다는 것이냐?”

마족의 말대로 거미줄로 만들어진 벽은 약간의 흠집만 났을 뿐, 견고하게 마족을 지켜내고 있었다.

그러나 카단의 얼굴에서 당황스러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웃어?’

오히려 여유롭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순간 오싹함을 느낀 마족이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카단을 향해 가시처럼 날카롭게 만든 거미줄을 쏘아댔다.

촥! 촥! 촥!

거미줄로 만든 가시들이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쏘아졌지만, 카단은 가볍게 옆으로 몸을 날리며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곤 천천히 몸을 바로 하더니 낫을 들고 있지 않은 손을 옆으로 뻗으며 말했다.

“망자의 길.”

카단의 말이 끝나는 순간.

솨아아아아아악!

카단을 중심으로 그의 주변이 어두운 초록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 이건?”

마치 죽음이 주변을 잠식시키는 듯한 기분에 거미 가면을 쓴 마족이 당황하며 이곳을 벗어나려 했다.

꽈악!

그때 초록빛으로 물든 땅에서부터 썩은 손들이 튀어나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크윽! 뭐야! 이건!”

마족이 당황하며 발버둥을 쳤지만,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망자들의 손길은 더욱 거세졌다.

그 사이, 카단이 미소를 지으며 마족을 향해 말했다.

“끝없는 고독 속에서 죽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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