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44화 (144/186)

제144화

망자의 길.

일정 범위를 죽은 자들의 영역으로 바꾸는 네크로맨서의 고위 저주 마법.

네크로맨서들 사이에서 유명한 마법이었지만,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네크로맨서의 수는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웃기는 녀석이군. 자기 마법에 자기가 당하다니.”

망자의 길은 시전자인 네크로맨서 또한 영향을 받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 마법을 제대로 익힌 네크로맨서는 없었으며, 알고 있다고 해도 사용하질 않았다.

꽈아아악!

카단의 몸에도 망자들의 손이 달라붙어 있었으며, 카단 역시 더는 걸음을 이어갈 수 없었다.

“멍청한 놈. 선택을 잘못한 모양이군.”

마족은 망자들의 손에 붙잡힌 카단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우웅!

순간 마족의 몸에서부터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고.

촤라라라락!

카단의 주변으로 마법진이 생겨나더니, 창 모양을 한 거미줄이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그때.

카아아앙!

갑자기 나타난 검은 갑주의 기사가 나타나 방패를 이용해 마족의 마법을 막아냈다.

“데스나이트?”

데스나이트는 하나가 아니었다.

“군주를 위해!”

“그리운 죽음의 냄새가 가득한 곳이로다!”

“군주를 지켜라!”

짙은 녹색의 화염을 두른 데스나이트는 총 10기.

데스나이트들은 아무래도 ‘망자의 길’ 마법 효과에 면역이 되어 있는 듯싶었다.

그들 역시 따지고 보면 망자이니.

망자의 손이 튀어나오지도 않았으며, 그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카단을 보호했다.

채앵! 채애앵!

온몸에 녹색 화염을 두른 데스나이트들이 거미줄 공격을 막아내자, 마족이 짧게 신음을 내뱉었다.

“제법 실력이 좋은 놈이로군. 해밀턴에게 보고를 들었을 때랑은 전혀 다른 녀석인데?”

“넌 가면을 쓴 다른 마족들보다 약한 것 같군.”

카단은 망자들의 손에 붙잡혀 있는 상태로도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은 조금도 패배를 그리지 않고 있었다.

“내가 이깟 마법에 붙잡혀 있을 것 같았나?”

마족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어댔고, 이내 그의 몸에서 검붉은색의 불길한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본 모습을 드러낸다고 망자들의 손이 널 놓아준다고 생각해?”

“그래봤자 이미 죽은 놈들일 뿐.”

뜨드드드득!

순간, 마족의 몸이 기괴하게 꺾이기 시작했고,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득! 뜨드득! 촤악!

기괴한 소리와 함께 마족의 몸이 점차 커졌으며, 그의 등에서부터 8개의 다리가 튀어나왔다.

“가면과 딱 어울리는 모습이군.”

마족이 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카단은 여전히 여유를 지키고 있었다.

놀라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연극을 관람하는 사람처럼 마족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툭.

이내 마족의 가면이 떨어졌고 흉측한 거미의 얼굴이 정체를 드러냈다.

“자만하지 마라. 네크로맨서야. 인간이 만든 마법 따위에 마족이 쉽게 당할 거라고 생각했나?”

쿠웅!

거대한 거미로 변한 마족이 발을 굴렀고.

드드드드드득!

그와 동시에 땅에서부터 거미줄로 만들어진 거대한 기둥들이 나타났다.

촤악! 촤아아악!

기둥들이 세워지는 순간, 꼭대기에서부터 거미줄들이 쏘아졌다.

“네가 만든 영역 안에 나만의 영역을 만들면 그만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기둥들 사이로 거대한 거미집이 완성되었고.

촤르르르륵.

거대한 거미의 몸에서부터 새끼 거미들이 빠른 속도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거미라 그런지 집 하나는 잘 만드는군.”

카단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족이 만들어낸 거미집을 관찰했다.

거미집 중심에는 거대 거미로 변한 마족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키에에에엑!

그 주변으로는 새끼 거미들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당장이라도 달려든 듯한 자세를 취했다.

“나의 아이들이여. 저 거만한 인간을 죽여 내 앞으로 가져와라.”

중앙에 있던 거미 마족은 비릿한 웃음소리와 함께 새끼 거미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촤악!

새끼 거미들은 거미줄에서 뛰어내리며 빠른 속도로 카단에게 달려들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해주겠는데.”

카단은 날아오는 거미들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땅에서 떨어져 있다고해서 망자들의 손이 닿지 않는 건 아니야.”

카단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꽈아아악!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온 망자들의 손이 새끼 거미들을 붙잡았고.

쿵!

그대로 바닥으로 내리꽂았다.

“이곳은 죽은 자들의 세계. 산자들에겐 허락되지 않은 곳.”

망자들의 손에 이끌려 바닥으로 추락한 새끼 거미들을 바라보던 카단이 가볍게 입을 열었다.

“생명이 붙어 있다면 마족이든 거미든 똑같아. 살아 있다면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미 마족 곁으로 망자들의 손이 나타났다.

카아앙!

그러나 거미 마족의 몸에 검붉은 기운이 나타나 망자들의 손을 막아냈고.

“거만한 충고 고맙다. 미련한 인간이여.”

거미 마족이 거미줄을 이용해 카단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혔다.

그 순간에도 망자들의 손이 나타나 마족의 전진을 막아보려 했으나.

카아앙! 카아아앙!

마족의 기운을 두른 거미 마족의 몸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무리해서 힘을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네?”

카단은 빠르게 거리를 좁혀 오는 거미 마족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상황만 보더라도 붙잡혀 있는 카단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거미 마족보다 불리한 것 같았다.

그런데 어찌 여유로운. 아니, 비아냥거리는 듯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일까?

“뭐?”

마족이 당황하는 사이.

스륵!

카단의 손이 있는 곳에서부터 피가 흘러나왔고, 피는 곧바로 공중에 떠오르며 사신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쫘아아아아악!

사신의 형상으로 변한 피는 곧바로 카단에게 흡수되기 시작했고.

투욱.

툭.

카단의 몸 주변으로 붉은 기운이 흘러나오자, 망자들의 손이 카단을 놓아주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그 모습을 본 거미 마족이 순간 당황하며 걸음을 멈췄다.

어째서 망자들의 손이 살아있는 카단을 놓아주는 것일까?

“죽음을 수확하는 자는 이곳의 망자들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재거든.”

이내 자유로워진 카단이 땅을 박차며 멈칫하고 있는 거미 마족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걱!

공격을 막아내려던 마족의 다리 하나가 잘려 나갔고.

“크아아악!”

마족은 괴성을 지르며 빠르게 몸을 날려 카단과 거리를 벌렸다.

“데시메이션이 이렇게 강할 리가 없어!”

최상급 마족의 신체를 단번에 잘라내는 인간의 마법이 존재한다고?

‘이곳에서 저 녀석의 힘이 강해지는 건가? 빌어먹을. 내가 방심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오러를 두른 검으로도 쉽게 잘리지 않을 텐데, 어째서 네크로맨서의 마법 따위가 마족의 신체를 자른단 말인가?

“참고로 망자의 길은 죽음을 수확하는 자들의 영역. 그러니까.”

스릉.

“지금 여긴 내 구역이야.”

카단은 피의 낫을 고쳐 쥔 다음 다시 한번 땅을 박찼다.

까아아앙!

거미 마족은 마족의 힘을 끌어모은 다리를 들어 카단의 낫을 막아냈다.

마족의 기운을 오러처럼 둘렀기 때문인지, 이번엔 다리가 잘려 나가는 일은 없었다.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녀석이네?”

“이 정도의 마법을 유지하려면 꽤 많은 마나가 필요할 텐데 말이야? 너도 꽤 힘든 상태지?”

마족은 히쭉거리며 카단을 향해 다리 하나를 휘둘렀다.

타악!

그러자 카단은 피의 낫을 막고 있는 마족의 다리를 발판 삼아 뒤로 물러났고.

부우웅!

마족의 공격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확실히 마나 소모가 심한 마법이야. 지금 내 상태로도 2분 이상 유지하는 건 힘들어.”

거리를 벌린 카단이 마족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마법까지 사용하려니 아주 죽을 맛이야. 그래서 말인데….”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던 카단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피의 낫을 들었다.

“누가 먼저 쓰러지는지 내기할래?”

“뭐?”

촤악!

마족이 대답하는 순간, 카단은 여유롭게 피의 낫을 휘둘렀고.

푸슉!

피의 낫은 망자의 손에 붙잡힌 새끼 거미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푸슉! 푸슉! 서걱!

카단은 가볍게 웃으며 새끼 거미 위로 나타난 검붉은 구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허공에 손을?’

영혼의 결정을 볼 수 없는 마족에게는 카단이 허공에 손을 내미는 행동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어? 아, 아니, 뭐야?’

허공에 손을 뻗었던 카단에게 변화가 생겼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크기를 줄여가던 피의 낫이 다시 날카롭게 변했고.

‘도대체 무슨 짓을?’

카단의 표정은 전보다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개운하게 자고 일어난 사람을 보는 듯한 불길한 기분이 마족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참고로 난 질 자신이 없다.”

새끼 마족이 죽고 남긴 영혼의 구체로 마나를 회복한 카단이 가볍게 웃으며 거미 마족을 바라봤고.

“빌어먹을.”

거미 마족은 헛웃음을 지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바닥에 앉아 있던 벨리드가 어딘가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뱉었다.

분명 카단은 피의 사신을 흡수하며 거미 가면을 쓴 마족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봤다.

3년 전보다 강해졌다고 해도 카단이 최상급 마족을 이기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여차하면 텔레포트로 멀리 보내버리기 위해 마법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의 생각대로 마족은 거미줄을 이용해 카단의 공격을 쉽게 막아내며 반격을 시작했다.

벨리드는 카단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며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손을 뻗었고, 그 순간.

‘사라졌어.’

카단의 주변이 어두운 녹색으로 물들더니, 이내 마족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리 재능이 좋은 녀석이라고 해도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했을 리는 없고.’

텔레포트 마법의 베테랑인 벨리드가 봤을 때 텔레포트 마법은 아니었다.

‘설마 영역 마법인가?’

텔레포트로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면, 카단과 마족이 사라질 수 있는 마법의 종류는 단 하나.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그곳으로 상대를 흡수하는 것이었다.

‘카단이 그게 가능하다고?’

네크로맨서들의 마법을 잘 알지 못했던 벨리드는 도저히 답이 떠올려지지 않자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머리를 퉁퉁 때려댔다.

“아니, 도대체 뭐냐고….”

“인간아. 너무 걱정하지 마. 카단은 망자의 길로 들어섰을 뿐이다.”

그때 바위 위에 앉아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던 루나가 벨리들을 향해 말했다.

“망자의 길?”

“네크로맨서들의 마법. 나도 자세한 건 몰라. 뭐, 카단이라면 무사히 살아 돌아올 거야.”

그러니 얌전히 기다리면 돼. 루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바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가볍게 착지한 루나는 곧바로 벨리드를 향해 다가왔고, 그녀 옆에 앉아 어딘가를 가리켰다.

“음. 벌써 끝났나 보네.”

루나가 가리킨 곳은 카단이 사라졌던 곳이었다.

우우웅!

카단이 사라졌던 자리가 녹색 빛으로 빛나더니, 허공이 물이 라도 된 듯 출렁이기 시작했고.

쫘아아아악!

공간이 찢기며 그 너머에서부터 다리 하나가 튀어나와 땅을 디뎠다.

벨리드는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마나를 활성화했고.

“진정해. 카단이라니까.”

루나는 앉아서 쉬라고 손짓하며 벨리드를 진정시켰다.

루나의 말처럼 찢긴 공간 너머에서 빠져나온 건 카단이었다.

카단이 찢겨진 공간 너머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자, 찢겼던 공간은 다시 원상복구 됐고.

“휴.”

탁, 탁.

카단은 가볍게 손을 털며 벨리드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교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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