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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146화 (146/186)

제146화

도시 로베른 근처 광산.

검은 그림자 하나가 재빨리 광부들의 숙소로 뛰어 들어갔다.

툭툭.

그림자는 거대한 덩치의 남자 어깨를 조심스레 건드렸고.

“쉿.”

남자가 눈을 뜨자, 그림자가 그의 입을 막으며 작게 속삭였다.

“선배. 접니다. 카단.”

카단이 정체를 밝히자, 클로제의 눈이 번쩍 뜨였고, 그제야 클로제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이 치워졌다.

“벨리드 교관님은? 모셔온 거야?”

“우선 나가서 얘기하시죠.”

클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내 두 사람은 은밀하게 광부들의 숙소를 빠져나갔다.

“이쪽으로.”

카단이 클로제를 이끌고 간 곳은 여느 때처럼 광산 깊은 곳이었다.

“교관님!”

광산 깊은 곳에 도착하자, 그곳엔 벨리드가 기다리고 있었고.

“오랜만이에요. 클로제. 잘 지냈어요?”

“보고 싶었습니다!”

“쉿. 광산 안이라 목소리가 울리는데요?”

“아, 넵!”

클로제가 급히 자기 입을 손으로 가리자, 벨리드가 피식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더 늠름해진 것 같아 보기 좋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소식은 많이 들었습니다. 저항군의 희망. 불멸의 불꽃….”

“더 얘기하면 혼낼 거예요.”

클로제가 벨리드의 이명을 얘기하자,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경고하듯 말했다.

“멋지지 않습니까?”

“멋진 걸 떠나서 부끄럽습니다.”

벨리드는 괜히 헛기침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클로제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전쟁만 시작하면 사람들이 재미난 이름을 지어주기도 하잖아요?”

“사람들이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서 영웅이라 칭하며 별명 같은 걸 지어줄 뿐인 거죠.”

영웅의 이명은 명성이라고도 하지만, 벨리드는 그 이명을 듣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클로제는 선의의 방패라고 불린다고 들었는데.”

“네. 멋지지 않습니까?”

“클로제 선배도 이명이 있었어요? 그런데 방패라뇨? 방패든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피난민을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생긴 별명이야. 한 명도 다치지 않았거든.”

벨리드와 다르게 클로제는 자신의 이명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클로제의 당당한 표정이 그 자긍심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교관님. 카단. 언제 온 겁니까?”

클로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벨리드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아무래도 여기로 텔레포트 하면 위험하니 근처 도시로 텔레포트 한 다음, 해골 말을 타고 달려왔어요.”

“해골 말이요?”

클로제가 눈을 끔뻑이며 묻자, 벨리드는 손가락으로 카단을 가리켰다.

“저녁쯤 도착해서 계속 근처에서 숨어 있었죠. 마나도 회복할 겸.”

“고생하셨습니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지만,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대화는 나중으로 미룰까요?”

벨리드는 반갑게 웃으며 말했고, 카단과 클로제는 입을 다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스릉.

카단이 단검을 이용해 손등에 상처를 냈고.

또옥-

손가락을 타고 내려온 핏방울이 땅을 적시는 순간, 붉은빛과 함께 루나가 소환되었다.

“안녕.”

루나는 주변을 가볍게 살피더니, 이내 안전하다는 걸 알고는 자연스레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루나가 마족과 인간을 구분할 줄 알아요. 루나가 두 분을 안내해줄 겁니다.”

카단이 루나를 가리키며 말하자, 클로제가 진중한 얼굴로 루나에게 고개 숙여 말했다.

“잘 부탁합니다.”

“그래!”

루나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서 벨리드도 루나에게 말했다.

“잘 부탁합니다.”

“응! 나도 잘 부탁해!”

두 사람과 뱀파이어가 인사를 끝내자, 카단이 다시 입을 열었다.

“벨리드 교관님. 텔레포트와 포탈 마법은 몇 번까지 가능합니까?”

“그렇게 많지는 않아. 한 번에 많은 인원을 텔레포트 시켜야 해.”

무엇보다 마지막에 카단을 챙겨 후퇴하는 것까지 생각해야 했다.

“우선 광부들의 숙소가 3개가 있습니다. 제가 전부 조용히 불러오겠습니다. 사람들이 나름 저를 잘 따라주더라고요.”

클로제가 자신 있게 말하자, 벨리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한곳으로 모아. 포탈을 여는 게 더 편하니까.”

“여기선 저도 도울게요.”

아직 전쟁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기에 카단도 돕겠다며 나섰다.

“좋아. 오랜만에 만났지만, 우선 완벽하게 일을 끝내보자고.”

벨리드는 미소를 지으며 카단와 클로제의 어깨를 두드렸다.

잠시 후.

“가, 감사합니다!”

마지막 한 명의 광부까지 숙소 안에 열린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으로 광부들은 전부 보냈어요.”

“이제 도시로 들어가면 되는 건가?”

클로제와 벨리드가 말을 주고받고 있을 때, 카단이 가볍게 몸을 풀며 말했다.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길도 루나가 안내해줄 겁니다.”

“카단. 너무 무리하지 마. 그리고 신호를 기다려. 최대한 전투 없이 일을 끝내는 게 목표니까. 알지?”

그러자 벨리드가 진중한 표정으로 경고하듯 말했다.

“네. 걱정 끼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카단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고, 이내 벨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서두르자. 해가 뜨기 전에 일을 끝내야지.”

벨리드는 포탈을 없애며 말했고, 이어서 루나가 손을 까딱하며 숙소 밖으로 향했다.

“그럼 두 사람은 날 따라와.”

루나가 빠르게 밖으로 나가자, 벨리드 역시 빠르게 걸음을 옮겼고.

“카단.”

클로제는 카단 앞에서 멈춰 서더니, 고개를 꾸벅이며 말했다.

“고맙다. 카단. 덕분에 친구들을 구할 수 있게 됐어.”

“감사 인사는 일을 완벽히 끝내고 합시다. 저도 선배님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나서지 못했을 겁니다.”

카단은 얼른 가보라며 클로제의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혼자가 된 카단이 허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적당한 위치는 좀 알아봤어?”

숙소 안에 홀로 남은 카단이 허공을 향해 말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봤다면 미친 게 아닐까 싶은 상황.

-네! 주인님! 30년 넘게 전장에서 살았던 제가 보기에 딱 적당한 장소가 있었습니다!

그때 허공에 반투명한 유령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는 군인처럼 반듯하게 자세를 잡으며 대답했다.

“잘했어. 그럼 안내 부탁할게.”

***

도시 안으로 잠입한 루나와 벨리드, 그리고 클로제는 은밀하고 재빠르게 도시 곳곳을 누볐다.

로베른은 마족들이 지배하는 도시였으며, 저항군이나 혁명단에게서 가장 안전한 곳.

그러다 보니 경비는 허술했다.

아니, 아예 거리에서 마족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경계심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네요.”

그 광경이 익숙하지 않았던 클로제가 속삭이듯 말했다.

“인간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도시일 테니까. 그래도 방심하진 마. 마족들의 귀는 인간보다 밝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교관님.”

벨리드가 주의하라고 하자 클로제는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저기. 저 여관에 80명 정도가 모여서 지내.”

그때 루나가 걸음을 멈추며 낡은 여관 하나를 가리켰다.

“80명?”

마족들은 인간들을 편하게 관리하기 위해 따로 집을 주지 않았고, 여관에서 단체 생활을 하도록 지시한 듯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가? 그렇다면 따로 사람들을 모을 필요는 없겠네.”

벨리드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클로제와 눈을 마주쳤다.

“가자. 1층에 포탈을 열 테니, 사람들을 데려와.”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루나 님?”

걸음을 옮기려던 클로제가 조심스레 루나를 불렀고, 루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클로제를 바라봤다.

“왜?”

“여관에 마족은 없는 거죠?”

“응. 하나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루나가 얼른 가보라며 손짓했고, 그 신호에 맞춰 벨리드와 클로제가 빠르게 땅을 박찼다.

한 편.

“좋다. 괜찮은 자리네.”

멀리서 도시 로베른의 남쪽 성문을 바라보던 카단이 미소를 지었다.

“고생했어.”

-별말씀을! 죽어서도 제 지식이 도움이 된다는 게 감사할 뿐입니다!

카단의 칭찬에 허공에 둥둥 떠 있던 병사 모습의 유령이 해맑게 웃으며 당당히 어깨를 폈다.

“그럼 이만 가봐도 좋아.”

-헉! 제가 더 도와드릴 건 없습니까? 제 수많은 전쟁 경험을 통해 주인님께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해도 돼.”

카단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젓자, 병사 모습을 한 레이스가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신호가 올 때까지는 여기서 잠시 쉬면 되겠어.’

어차피 지금 당장 카단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루나가 신호를 보내줄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전쟁을 준비하기만 하면 될 일.

“후우.”

전쟁을 떠올리니,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처럼 대규모의 전투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전부 마족.

수를 알 수 없는 마족들을 혼자서 막아내야 한다니 부담감도 느껴졌다.

‘어차피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야. 지난 3년간 이런 상황도 어느 정도 생각하며 준비했으니까 문제는 없어.’

카단이 긴 한숨을 내뱉자, 그의 얼굴이 한결 편해졌다.

‘교관님 말씀대로 전쟁 없이 사람들을 구출해낸다면 그게 최상의 결과이긴 하지.’

이내 카단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준 뒤, 그대로 바닥에 앉아 거대한 로베른의 남쪽 성벽을 바라봤다.

‘멀리서 봐도 경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네.’

어떻게 성문을 지키는 성지기 하나 없는 것일까?

광부로 잠입했을 때 밤마다 도시 안을 돌아다녔지만, 경비를 서거나 정찰하는 마족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가끔 경비를 서고 있는 마족을 본 적도 있지만, 그것도 영주성 근처. 그마저도 모두 경비를 서며 졸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구해내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문제는 감옥이지.’

아무래도 감옥에는 깨어 있는 마족들이 몇몇 돌아다니긴 했었다.

감옥에 갇힌 저항군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기에 감옥에서만큼은 마족들이 철저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게다가 감옥은 영주성 지하에 존재했기에, 들키는 순간 곧바로 수없이 많은 마족이 벨리드 일행 쪽으로 몰려들 것이다.

‘그런 일이 없길 바라야….’

-카단! 시작해!

생각을 이어가던 중, 머릿속으로 루나의 목소리가 울렸고.

‘무슨 일 있어?’

카단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루나에게 말했다.

-감옥에서 걸렸어! 하필 마족 녀석들이 인간들 감옥에서 꺼내는 도중에 도착해버려서!

운이 좋지 않았던 것 같았다.

마족이 감옥에 가둔 인간을 꺼내는 도중에 마주쳤다니.

“쯧.”

카단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곧바로 마나를 활성화했다.

우웅!

순간 그의 몸 주변으로 파동이 일어나기라도 한 듯 바람이 불었다.

촥!

마나를 활성화한 카단이 손을 양옆으로 펼치며 말했다.

“죽음을 기억하라.”

그러자 그의 앞으로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해골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해골 군단을 이끌 수십의 데스나이트들이 나타나 가장 선두에 섰고.

철그럭! 철그럭!

카단의 주변으로는 갑옷만으로 이루어진 언데드 ‘리빙 아머’ 부대가 나타나 방어 자세를 취했다.

대략 1만은 되어 보이는 언데드 군단을 바라보며 카단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시작은 화려하게 해주는 게 좋겠지.”

그러나 전쟁의 시작은 언데드 군단을 돌격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카단은 다시 한번 손을 양옆으로 뻗었다.

그러자 언데드 군단의 최후방 쪽 공터에서 뼈들이 튀어나와 뭉쳐지기 시작했고.

쿠웅.

이내 20기 정도의 투석기가 만들어졌다.

“올라타라.”

투석기가 완성된 걸 확인한 카단은 곧바로 고블린과 코볼트로 이루어진 좀비들을 소환해 투석기 위로 올렸고.

“공격해.”

투석기 주변으로 다가온 해골 병사들이 핏줄로 만들어진 밧줄을 끊어냈다.

서걱! 서걱! 서걱!

언데드 군단의 최후방에서 밧줄이 잘리는 소리와 함께, 투석기가 작동했다.

슈우우우우웅!

투석기에 올라탔던 좀비들은 괴성도 지르지 않고 성벽을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좀비들이 성벽에 거의 다다랐을 즘.

스윽.

카단이 날아가는 좀비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쾅.”

카단이 작게 웃으며 마나를 활성화했고. 그와 동시에.

콰왕! 콰앙! 콰아아아아앙!

폭발음이 연달아 들려오며 날아간 좀비들이 전부 폭발했다.

“이건 뭐 예술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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