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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149화 (149/186)

제149화

“너로구나. 버르장머리 없이 내 도시를 습격한 놈이.”

뿔 달린 사슴의 가면을 쓴 마족 페코스가 카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작게 읊조리듯 내뱉은 말이지만, 그 목소리는 명확하게 카단의 귀에 들려왔다.

스윽.

페코스는 가볍게 고개를 돌려 카단이 일으킨 언데드 군단을 살펴봤다.

“이 정도 실력을 지닌 네크로맨서라면 해밀턴이 말했던 그 녀석인가 보군.”

페코스가 피식 웃더니 다시 카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샬로트의 유산을 가져간 마지막 자식. 그리고 영웅 아카데미의 마지막 네크로맨서. 이름이 뭐였더라?”

“카단이다.”

카단은 목소리에 마나를 실어 대답했고, 카단의 대답에 페코스가 큰 소리로 웃어댔다.

“3년간 그렇게 찾아다녔는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올 줄이야. 반갑다!”

“난 별로 반갑지 않은데.”

“깔끔하게 죽여줄 테니, 순순히 샬로트의 유산을 내놓아라.”

“왜 그렇게 아버지의 유산을 노리는 거지? 돈이 부족해 보이진 않는데?”

카단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페코스가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설마 모르고 있는 거냐? 아니면 모르는 척을 하는 거냐?”

“뭐를?”

“아무래도 자기가 뭘 가졌는지 모르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더더욱 너에게 필요는 없을 텐데?”

저벅, 저벅.

페코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척!

그러자 선두에 있던 데스나이트들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자세를 취했고.

달그락, 달그락!

그 신호에 맞춰 해골 병사들도 전투를 준비했다.

“모르는 자에게 의미가 없는 물건이다. 그러니 좋게 말할 때 내놓아라.”

“나쁘게 말하는 것도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페코스가 목소리를 낮춰 경고하듯 말하자, 카단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어리석은 인간이로군.”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뭘 원하든 줄 생각은 없는데?”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재빨리 마나를 활성화했다.

이윽고 그의 뒤로 피로 만들어진 사신이 만들어졌고, 사신은 곧바로 카단에게 흡수되었다.

그와 동시에.

파앙!

공기가 찢기는 소리와 함께 검붉은 오러가 카단을 향해 쏘아졌다.

카단이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리지 않았다면, 레이저처럼 쏘아진 검붉은 오러가 몸을 관통했을 것이다.

“네크로맨서 주제에 제법 재빠른 녀석이군. 내 공격을 피한 네크로맨서는 샬로트뿐이었는데.”

카단의 몸놀림을 본 페코스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나쁜 말 해달라고 했더니, 칭찬을 해주는 거야? 하나도 고맙지 않은데?”

카단은 다시 자세를 잡으며 이어질 공격을 대비했다.

‘이 정도로 강한 놈이라면 망자의 길로 데려가도 승산이 없다.’

멀리서 강력한 일격을 날리는 마족이라면 망자들의 손으로 붙잡아도 소용없을 것이다.

괜히 마나만 빠르게 소모될 뿐.

‘저 무시무시한 걸 막아내는 건 자살 행위야. 무조건 피해야 한다.’

카단은 페코스의 움직임에 집중했고, 페코스는 이번에도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파앙!

또다시 검붉은 광선이 쏘아졌고, 카단은 다시 옆으로 몸을 날리며 공격을 피해내려 했다.

파앙!

페코스의 공격은 한 번이 끝이 아니었다.

파앙! 파앙! 파아앙!

그가 허공에 검을 휘두를 때마다 오러로 만들어진 광선이 쏘아졌다.

덕분에 카단은 미친 듯이 땅을 박차며 도망만 다녀야 했다.

빠르게 이어지는 페코스의 공격에 반격은 꿈꿀 수도 없었다.

촵.

그때 느닷없이 바닥에서 짐승의 손 같은 것이 튀어나왔고, 다 썩어가는 그 손은 페코스의 발목을 붙잡았다.

“뭐야 이건?”

페코스가 기분 나쁘다는 듯 발 아래를 바라봤고,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앙!

땅바닥에서부터 큰 폭발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공기를 찢으며 날아오던 광선이 멈춰졌고.

“휴.”

그제야 카단은 한숨을 놓으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물론 경계심까지 놓고 안심하고 있진 않았다.

카단은 매서운 눈으로 폭발로 인한 연기가 걷어지기를 기다렸다. 이내 연기가 모두 걷어지자 그곳엔 멀쩡한 모습의 페코스가 보였다.

“재미있는 짓을 할 줄 아는 놈이군.”

꽤 큰 폭발이었음에도 페코스의 몸은 멀쩡했다. 폭발에 옷이 타버리긴커녕 그을음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폭발 직전에 오러를 이용해 몸을 보호해낸 듯했다.

“살려면 뭔 짓이라도 해야지.”

“어린 네크로맨서야.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하지.”

“일단 들어나 볼까?”

페코스의 말에 카단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크하하하하하하!”

그러자 페코스가 큰 소리로 웃어대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샬로트의 유산을 나에게 바치고, 내 밑으로 들어와라. 너에게 끝없는 영광과 영원한 삶을 약속하마.”

이어진 페코스의 말에 카단이 콧방귀를 뀌었다.

“너희들은 왜 자꾸 나보고 밑으로 들어오라는 거야?”

“이딴 머저리들보다 훨씬 쓸모 있는 녀석이니까. 물론 이건 칭찬이다.”

“나보다 약한 놈들보다 쓸모가 있는 건 당연한 거고.”

카단은 히쭉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다시 페코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예전에 모시던 형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 어떻게 늑대가 개 밑으로 들어가냐고.”

“뭐?”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해주자면…. 아, 그래. 드래곤이 어떻게 리자드맨 밑으로 들어가냐?”

이어진 카단의 말에 페코스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니까 네놈이 드래곤이고, 내가 리자드맨이라는 뜻인가?”

“대충 비슷해.”

“자신감 하나는 인정해주마. 어쨌든 협상은 결렬이군.”

파앙!

페코스는 말을 끝내는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이번엔 조금 전처럼 가볍게 휘두른 것이 아니었다. 무거운 것을 끌어 올리듯, 힘겹게 검을 휘둘렀고.

콰아아아아아앙!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거대한 섬광이 카단을 향해 쏘아졌다.

타앗!

섬광이 쏘아짐과 동시에 카단은 땅을 박차 몸을 날렸다.

그러나 이번 공격은 단순히 옆으로 몸을 날려서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블링크.’

카단은 손가락에 끼워진 금색의 반지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파밧!

그러자 금색의 빛과 함께 카단의 모습이 사라졌고.

철퍼덕!

그가 사라졌던 곳에서부터 5m가량 떨어진 곳에 카단이 다시 나타나 바닥을 굴렀다.

“쯧. 이건 아무리 써도 적응이 안 되네.”

그는 금색의 반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어댔다.

그 반지의 정체는 3년 전. 용병 길드에서 얻었던 블링크가 담긴 반지였다.

다만 언젠가 쓸 일이 있다고 생각하며 3년간 꾸준히 반지에 담긴 블링크 마법을 연습했었고, 이제야 실전에 사용하게 되었다.

‘만약 이 반지조차 없었으면 한 번에 죽었겠는데?’

반지 덕분에 목숨을 살린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섬광이 지나간 자리를 바라봤다.

섬광이 지나간 풀 한 포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근처에 있던 해골 병사나 리빙 아머들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리빙 아머들은 좀 아까운데.’

카단은 쓴웃음을 짓더니, 이내 언데드 군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삭!

그와 동시에 데스나이트들은 검은 연기가 되어 카단에게 흡수되었고, 리빙 아머들은 아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해골 병사들마저 가루가 되어 카단의 반지 속으로 흡수되어버리자, 언데드로 가득했던 전장이 텅 비어버리고 말았다.

“어리석은 놈. 고작 언데드 따위가 아까워서 소환을 해제한 것이냐?”

그 누가 보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참 전투가 이어지는 중 언데드를 전부 역소환하는 건 목숨을 내던지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아마 샬로트나 아이작이 봤다면 카단의 등짝을 후려쳤을 것이다.

“혹시 패배를 인정한 것이냐?”

“아니.”

항복을 선언하기 위해 언데드를 역소환한 것이 아니라면 더욱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렇다면 혼자서 날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겠군.”

페코스는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어댔고, 다시 한번 마족의 힘을 끌어냈다.

사악한 기운이 그의 검 끝에 맺히기 시작했고, 페코스는 피식 웃으며 천천히 자세를 취했다.

“그것도 아닌데?”

카단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넌 오늘 여기서 죽을 것이다.”

페코스는 카단이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허세라도 부린다고 생각하며 검을 휘둘렀다.

파아앙!

마치 해일이라도 일어난 듯, 거대한 파도 형태의 섬광이 카단을 향했다.

더는 피할 곳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공격이었다.

“망자의 길.”

그때 카단이 마나를 활성화하며 마법을 사용했다.

빠르게 카단의 주변이 어두운 녹색으로 물들었고, 녹색의 빛이 카단의 몸을 집어삼켰다.

“뭐?”

녹색 빛과 함께 카단의 모습이 사라지자, 페코스는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쨍그랑!

섬광이 지나간 이후, 카단이 사라졌던 곳에서부터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쩌저적!

허공에 균열이 일어나더니, 그곳에서부터 작은 포탈 같은 것이 생겨났다.

“쯧. 회피용으로 쓰기엔 마나 소모가 너무 커.”

이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포탈에서부터 카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처구니없는 녀석이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페코스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 영역 마법을 이용해 공격을 피해낼 줄이야.

“자주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닐 텐데. 이제 밑바닥이 다 드러난 건가?”

“아마도?”

그런데 어째서 카단의 얼굴은 여전히 여유가 남아있는 것일까?

다른 수를 숨기고 있기라도 한 걸까?

페코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오러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만약 목숨이 붙어 있다면 강제로라도 내 부하로 만들어주마.”

그 순간.

파밧!

카단의 앞으로 밝은 빛이 반짝이더니, 로브를 입은 한 여성이 나타났다.

“텔레포트?”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자, 페코스는 잠깐 당황했고.

“그럼 나중에 보자.”

카단은 그런 페코스를 향해 살짝 손을 흔들어주며 미소를 지었다.

빛과 함께 나타난 여성은 재빨리 카단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이 빌어먹을 놈이!”

그제야 카단의 계획을 눈치챈 페코스가 재빨리 검을 휘둘렀지만.

파밧!

카단과 로브를 입은 여성은 빛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고.

콰아아앙!

페코스가 만든 섬광은 다시 한번 허공만을 가르며 지나갔다.

“인간 놈 중에 능력도 없으면서 날 농락할 수 있는 녀석이 존재했다니. 재밌군. 재밌어.”

텅 빈 전장을 바라보던 페코스는 짙은 한숨을 내뱉더니, 어이가 없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샬로트의 자식이라더니, 지랄맞은 성격도 똑 닮았군.”

카단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며 웃음을 짓던 페코스가 다시 걸음을 돌렸다.

“다들 그만 돌아가서 쉬어라. 전쟁은 끝났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성벽부터 복구해.”

카단이 사라진 이상, 더는 이렇게 모여 있을 이유는 없었다.

그때.

“페, 페코스 님!”

광산 쪽에서부터 마족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페코스를 불렀다.

“무슨 일이냐.”

“과, 광부들이 죄다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도망간 것 같은데….”

“그럼 멍청하게 나한테 보고하고 있을 게 아니라, 쫓아가서 잡아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네, 넵!”

“썩 꺼져라.”

페코스는 짜증 난다는 듯한 말투로 말하며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다.

“페코스 님!”

“페코스 님 큰일 났습니다!”

이번엔 성문 쪽에서부터 두 마족이 달려오며 페코스를 불러댔다.

“너흰 또 무슨 일인데?”

페코스가 한숨을 내뱉으며 질문을 던지자, 두 마족은 불안한 눈동자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 그게 도시에 인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뭐?”

“전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보고하던 마족 하나가 말을 끝내며 머리를 조아렸고, 이번엔 옆에 있던 마족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가, 감옥에 붙잡아 놨던 인간들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감옥까지?”

“네, 넵. 방금 소란이 있어서 확인해봤는데 한 놈도 보이지 않습니다.”

페코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그 마족에게 물었다.

“감옥을 지키고 있던 녀석들은?”

“모, 모두 죽은 것 같습니다. 지하 끝까지 확인을 해봤는데, 전투의 흔적이 보였고 마석들이 전부 부서져 있었습니다.”

“설마…. 교도관 바트로프도 죽었단 말이냐?”

“그, 그런 것 같습니다.”

쿠웅!

마족의 대답에 페코스가 발을 굴렀다.

그의 발길질에 땅이 흔들렸고, 근처에 있던 마족 모두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이 빌어먹을 네크로맨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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