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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151화 (151/186)

제151화

‘꽤 힘든 전투였나 보네.’

카단은 씁쓸한 표정으로 루나의 얼굴을 살폈다.

깨끗한 피부에 자잘한 상처가 가득했고, 입술 부근엔 피가 흘렀던 흔적까지 남아있었다.

“마지막에 귀찮은 놈만 나타나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마법을 풀어버렸을 텐데.”

루나는 분하다는 듯 입술을 씰룩거렸다.

툭.

카단은 그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어준 뒤 미소를 지었다.

“고생했어. 그러니까 힘이 부족해서 저 사람들에게 걸린 마법을 풀 수 없다는 거지?”

루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카단은 곧바로 단검을 꺼내 손등을 그어냈다.

주륵.

손등에서부터 흘러내리는 피는 카단의 마나에 의해 구체의 형태로 모여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야구공 정도 크기의 피가 모였을 때 루나에게 물었다.

“응. 딱 좋아.”

루나는 피로 만들어진 구체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고, 이내 카단이 고개를 끄덕이자 루나는 재빨리 카단의 피를 흡수했다.

솨아아-

피를 흡수하자, 그녀의 주변으로 바람이 일렁였고, 동시에 그녀의 눈이 붉은빛을 내기 시작했다.

“금방 끝날 거야.”

루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발렌티나 옆으로 다가갔다.

“잘 잡고 있어. 마나는 충분하지?”

“네. 루나 님. 전 아직 멀쩡해요.”

발렌티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루나의 시선이 핏빛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을 향했다.

촤락-

순간 루나의 뒤에 피로 만들어진 날개가 만들어졌다.

박쥐의 날개를 닮은 작은 날개.

파닥.

몸을 띄우기엔 부족해 보이는 작은 날개가 움직여졌고, 동시에 루나의 몸이 천천히 허공에 떠올랐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루나를 지켜봤다.

“제발….”

클로제는 주먹을 꽉 쥔 채로 루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이렇게 가까이서 뱀파이어의 마법을 보게 될 줄이야….’

벨리드는 기대감을 지닌 채 루나를 바라봤다.

걱정과 기대가 반반씩 섞인 시선들이 루나에게 쏠렸지만, 루나는 그 시선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리 가! 꺼져! 더러운 뱀파이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에게 다가가자 그는 발악하듯 외쳐댔다.

“시끄러워. 때리기 전에 조용해.”

루나는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말하며 그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내 눈을 피하지 마.”

머리 위로 손을 올린 루나가 매서운 눈으로 남자를 쏘아봤다.

그러자 발악하던 남자의 표정이 점차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 루나의 손에서부터 핏빛 기운이 일렁거렸다.

“어?”

남자의 변화를 감지한 벨리드가 놀란 듯 몸을 움찔했다.

검게 물들었던 눈동자가 서서히 원상태로 되돌아왔으며, 그의 주변에서 일렁이던 검붉은 기운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핏빛 기운이 검붉은 기운을 집어삼키자, 마족의 현혹 마법은 빠르게 풀렸다.

“여, 여긴?”

정신을 차린 남자가 당황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고.

“마, 마족이다!”

이내 눈앞에 있는 루나를 보곤 경악하듯 소리를 질러댔다.

“마족 아니야.”

루나는 입술을 씰룩이더니, 남자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콩- 하는 귀여운 소리가 들려왔지만, 전해진 통증은 남자를 침묵하게 하기 충분했다.

“흥.”

그렇게 루나는 한 사람씩 마족의 현혹 마법을 풀어주었고.

“끝!”

얼마 지나지 않아 쇠사슬에 묶였던 사람 모두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사람들이 전부 정상으로 돌아오자, 루나의 등 뒤에 생겨났던 피의 날개가 사라졌고, 루나는 천천히 바닥에 착지한 뒤 발렌티나를 바라봤다.

“포박을 풀까요?”

그러자 발렌티나는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질문을 던졌다.

“응. 이제 괜찮아.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 눕고 싶어. 자고 싶어.”

루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발렌티나가 뻗고 있던 손을 내렸다.

철그렁!

그러자 사람들을 붙잡고 있던 쇠사슬들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고.

스르르륵.

바닥에 떨어진 핏빛 쇠사슬은 붉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카단. 다 끝났어. 다들 현혹 마법에 걸려 의지 없이 움직이느라 체력이 다 떨어졌을 거야.”

루나는 곧바로 카단에게 다가가 후련하다는 듯 말했고, 카단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루나를 살폈다.

보기엔 쉬워 보이는 마법이었으나, 분명 많은 체력과 마나를 소모해야 했을 것이다.

“너는 괜찮아?”

“쉬면 돼. 그러니 당분간 마족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루나가 피식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카단의 손등을 톡톡 건드렸다.

“당분간 나도 쉴 생각이야.”

“잘 생각했어. 아 그리고 현혹 마법을 쓰는 마족을 조심해.”

“저 사람들한테 현혹 마법을 걸었다는 그 마족?”

“응. 현혹 마법이 생각보다 강해. 현혹 마법을 주로 쓰는 마족들은 얄팍하고 상대하기 까다로워. 그 녀석이 작정하고 현혹 마법을 걸었다면….”

루나가 시선을 돌려 조금 전까지 마족에게 지배당했던 사람들을 바라봤다.

“저 사람들을 우리 손으로 죽여야 했을 거야.”

그녀의 말에 카단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고 말았다.

“그 정도로 강해?”

“강하다기보단 까다로워. 어떤 식으로 공격해올지 모르니 대처하기도 애매하고.”

루나는 진중한 표정으로 말하며 카단을 바라봤고, 이내 경고하듯 말했다.

“현혹 마법을 쓰는 놈과의 전투는 정신력 싸움이야. 그러니까 늘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녀. 오지랖 좀 적당히 부리고.”

루나가 매섭게 노려보며 말하자, 카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고생 많았어. 얼른 돌아가서 쉬어.”

카단이 루나의 어깨를 토닥여주자, 루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렌티나를 바라봤다.

“그만 돌아가자.”

그 말에 발렌티나가 해맑게 웃으며 루나에게 다가갔다.

“저기, 발렌티나 교관?”

그때 벨리드가 급히 발렌티나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대로 대화도 못 나눴네요. 반가웠어요. 벨리드 교관님. 3년 만에 뵙네요?”

“네. 혹시 원래부터 뱀파이어였습니까? 아카데미에 들어오셨을 때부터?”

아무래도 긴 대화를 나눌 수 없을 것 같아, 벨리드는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아뇨. 그때는 저도 마족화가 진행 중인 인간이었어요.”

“네?”

“그리고 루나 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얻었죠. 너무나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그러고 보니 발렌티나의 얼굴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 같았다.

피부는 고와졌고, 머리칼은 건강하게 찰랑였다. 이목구비도 좀 더 뚜렷해져 미녀라 불러도 손색없는 모습이 되었다.

“벨리드 교관님은 잘 지내셨죠? 여전히 강해 보이시네요. 아니, 3년 전보다 더 강해지신 것 같아요.”

“저는 이번 작전에서 전투에 참여한 적이 없는데?”

“뱀파이어가 되니까 어렴풋이 상대의 강함을 느낄 수 있더라고요.”

발렌티나가 히쭉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벨리드 교관님도 뱀파이어가 되실 생각 없으세요?”

발렌티나의 제안에 벨리드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인간으로 남겠습니다. 저는 이쪽이 더 좋아서.”

“농담이에요. 뱀파이어가 되면 불편한 것도 좀 있거든요. 아무래도 추천하진 못하겠네요.”

그러자 발렌티나가 매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손을 저어댔다.

“아무튼 반가웠어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뵙도록 하죠. 저는 루나 님께서 부르셔서 가봐야 해요.”

“아, 네. 반가웠습니다.”

벨리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발렌티나를 바라봤다.

발렌티나는 곧바로 루나에게 다가갔고, 루나는 작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럼 안녕.”

루나가 남은 한 손을 흔들며 카단에게 인사를 전했고.

파앗!

붉은빛이 번쩍하며 루나와 발렌티나를 삼켜버렸다.

잠깐 멍하니 루나와 발렌티나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 있던 도중, 클로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카스! 아라드!”

클로제는 다급하게 루카스와 아라드를 향해 다가갔고, 두 사람은 멍한 얼굴로 클로제를 보고 있었다.

“클로제? 네가 왜 여기 있어?”

“아니, 그보다 여기는 어디야?”

두 사람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아직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 듯 보였다.

“여긴 혁명단의 베이스캠프다. 둘 다 괜찮아? 아픈 곳은 없어?”

“혀, 혁명단 베이스캠프?”

“우리가 왜 여기 있어? 우린 분명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두 사람이 당황한 듯 질문을 던지자, 벨리드가 천천히 다가오며 두 사람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악!”

“크엑!”

“그만 정신들 차리지?”

익숙하고 그리운 목소리가 들리자, 머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금방 사라졌다.

“베, 벨리드 교관님?”

“교관님!”

“오랜만이지?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다.”

벨리드가 피식 웃으며 두 사람의 어깨를 토닥였고, 루카스와 아라드의 눈이 빠르게 충혈되었다.

“교관님이 저희를 구해주신 거군요!”

“정말 무서웠습니다! 이상한 마족이 나타나 실험체라며 자꾸 이상한 마법을 거는데, 포박된 상태라 반항도 제대로 못 했고!”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유치원에서 있던 일을 말하듯, 두 사람의 입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알겠어. 알겠어.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너희 좀 쉬어야 해.”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모두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마족의 힘이 풍겨질 땐 몰랐으나, 그 힘이 사라지고 나니 볼이 홀쭉해졌고, 눈그늘이 짙어졌다.

마치 병에 걸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야윈 두 사람을 바라보던 벨리드는 급하게나마 마나를 쥐어짜 회복 마법을 사용했다.

“어? 자, 잠깐만요. 저 사람 카단 아니에요?”

“뭐? 카단? 카단이 어디…. 카단!”

회복 마법을 받던 루카스와 아라드가 카단을 발견하더니 놀란 얼굴로 그를 불렀다.

그 목소리에 카단이 조심스레 다가오며 두 사람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카단! 이게 얼마 만이야!”

“카단! 잘 지냈어? 더 잘생겨졌네?”

루카스와 아라드는 힘이 빠지는 것도 잊은 채로 해맑게 웃으며 카단을 반겼다.

“너희를 구할 수 있었던 건 카단과 벨리드 교관님 덕분이야. 솔직히 난 한 게 없어.”

그러자 옆에 있던 클로제가 카단의 어깨를 두드리며 루카스와 아라드에게 말했다.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카단과 벨리드를 향해 큰 소리로 감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불멸의 불꽃이 우리를 구해주셨다!”

“무명의 영웅이 우리를 구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자, 캠프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로베른의 주민들도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쭈뼛쭈뼛 다가와 상황을 살피는가 싶더니, 이내 카단과 벨리드가 자신들을 구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눈물까지 흘리며 감사를 전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자유를 얻었습니다!”

“3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광부 복장을 한 이들은 놀란 듯 카단과 클로제를 가리키며 외치기도 했다.

“저, 저 사람 광산에서 미친 듯이 일하다가 사라진 그 신입 아니야?”

“저 덩치 큰 신입이 저항군의 영웅인 선의의 방패였어?”

“우릴 구하기 위해서 광산에 잠입했었구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기하게도 그들이 연이어 감사를 전하는 순간, 구름 뒤에 숨어있던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로베른 주민들이 마족으로부터 해방했다는 사실을 축복하듯, 따스한 햇볕이 그들을 비춰주었다.

“제발 그 이명만은….”

사람들이 불멸의 불꽃을 외쳐대자, 벨리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고.

“저는 별로 한 게 없습니다. 감사는 이 두 분에게 전해주세요.”

클로제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카단과 벨리드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이런 기분도 나쁘진 않군.’

카단 역시 부끄럽다는 듯 귀가 빨개지긴 했지만, 알 수 없는 만족감에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이석훈의 삶과 카단의 삶은 닮아있지만, 이쪽 삶이 좀 더 밝은 것 같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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