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15일 후.
혁명단 북쪽 지부의 아지트인 여관 ‘고독한 여행가들의 쉼터’는 아침부터 시끌벅적했다.
“지부장님! 저희 이제 건강합니다. 일할 수 있습니다!”
“계속 신세만 지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근처에 광산이 있던데, 광부들은 광산으로 보내주세요!”
여관을 찾은 이들은 전부 로베른에서 구출되어 도시 루반에 정착하게 된 이들이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왜 또 오셨습니까? 지금은 회복에 전념하시라니까요?”
여관의 주인이자 혁명단 동쪽 지부의 지부장인 ‘윌슨’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지부장님 제발! 청소라도 시켜주세요!”
“광산에는 늘 인력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저희 일할 수 있습니다!”
윌슨은 새로 정착한 이들의 임시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사람들은 5일 전부터 꾸준하게 윌슨을 찾아와 일자리를 요구했다.
“완전히 회복된 분부터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했잖습니까~ 루반의 영주님께서 여러분의 일자리를 약속했다니까요?”
구출된 이들은 혁명단의 도움으로 체력과 건강을 빠르게 회복하는 중이었다.
물론, 나아졌을 뿐 좋아졌다고 할 수는 없었다.
3년간 마족의 노예로 지내며 몸 상태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
당장 일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대로 무리를 하다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심각한 상태였다.
“자, 그만 돌아가세요. 절 찾아올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회복하시고요.”
윌슨은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애써 사람들을 진정시켰고, 간신히 그들을 돌려보냈다.
쿵.
윌슨의 설득으로 사람들이 여관을 빠져나가자 시끌벅적하던 곳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다들 왜 저렇게 일하려고 하는 거지? 3년간 그렇게 일했으면서.”
그때 바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벨리드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관 출입문을 바라봤다.
그러자 윌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 테이블로 돌아와 답했다.
“불안한 거겠죠. 이 안전한 곳에서 쫓겨날까 봐.”
“쫓겨나다뇨?”
“일도 하지 않고 쉬기만 하면 이 평화로운 도시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겁니다.”
윌슨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고, 그제야 벨리드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쯧. 안쓰럽네. 3년간 어떻게 지냈기에 휴식조차 편하게 즐기지 못하는 걸까?”
“괜찮아질 겁니다. 혁명단도 열심히 돕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길 바라야죠.”
벨리드는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고, 윌슨은 그녀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저야 뭐 멀쩡해요. 텔레포트 마법 때문에 마나만 썼을 뿐 전투에 참여한 건 아니라서.”
“다른 분들은요?”
“클로제. 그러니까 그 선의의 방패라 불리던 놈은 감옥에 갇혔던 저항군들을 보살피고 있어요.”
“그렇다면 네크로맨서 분은?”
윌슨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벨리드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침부터 운동하러 갔던데.”
“또요?”
“뭐, 녀석도 마나만 미친 듯이 썼지 상처 하나 없이 돌아왔잖아요. 이번 전투를 통해 뭔가 느낀 게 많은 것 같아요.”
벨리드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여관 주인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로베른에 있는 마족 간부 중 하나와 전투를 했다고 했죠? 상당히 강했던 모양입니다.”
“네. 아마 자기의 부족함을 느끼고 한탄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기도 해요.”
“그래도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
벨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네. 직접 가르친 적은 없지만, 정말 대단한 네크로맨서죠.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되는.”
“그럼 이번에 직접 가르쳐주시면 되시지 않겠습니까? 고민이 많아 보이던데.”
“제가 가르칠 게 뭐 있겠어요? 이제 같은 7성인데.”
“그래도 벨리드 님은 교관이셨잖습니까? 작은 위로 속에서 큰 배움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윌슨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벨리드의 눈이 번쩍 떠졌다.
***
도시 루반의 중앙광장.
카단은 벤치에 앉아 평화로운 도시의 분위기 속에서 차분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8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화로운 분위기와 달리 카단의 표정은 평온해 보이지 않았다.
‘마나 하트는 충분히 성장했고, 마나의 질 역시 상당히 좋아졌어. 그런데 왜?’
8성의 벽.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답답함에 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8성에 도달하지 못하면 페코스인지 하는 마족의 간부 놈들을 상대할 수가 없다.’
물론 8성이 된다고 해서 페코스를 손쉽게 쓰러트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페코스에게 작은 상처 하나 낼 수 없었다.
적어도 8성은 되어야 비등한 전투가 가능할 터.
‘정말 급격한 성장에 의한 부작용인 걸까?’
아무리 고민해도 8성에 도달하는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당분간 다시 수련에 매진해야 하나? 아니면 계속 아버지의 유산을 찾아다녀야 할까?’
카단은 짙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땅 꺼지겠어요?”
그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옆자리로 누군가 앉는 듯한 기척이 느껴졌다.
“교관님?”
고개를 돌려보니, 벨리드 교관이 보였다.
벨리드는 카단의 옆에 앉아 가볍게 미소를 지었고, 이내 카단의 어깨를 토닥이며 물었다.
“뭐가 그렇게 고민이에요? 무명의 영웅님?”
“무명의 영웅이요?”
카단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벨리드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영웅은 영웅인데, 아직 이명이 없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던데요?”
그러자 카단의 귀가 빨개졌고,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어댔다.
“이런 기분이었군요.”
“기분이 좋은데 별로죠?”
“네….”
“아무튼 좋은 일 해놓고 뭘 그렇게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어요?”
벨리드가 가볍게 웃으며 묻자 카단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번 전투에서 부족함을 느꼈거든요. 적어도 8성은 되어야 비등하게 싸우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벨리드는 카단이 어떤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줄 알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급하구나.”
“네. 그래도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네요.”
카단히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벨리드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7성이 8성이 되면 강해지는 건 당연한 사실. 그런데 강해지는 방법이 그것뿐만은 아니잖아요?”
“네?”
“여태껏 잘해왔잖아요? 너무 8성이 되는 것에만 목표를 두지 마세요.”
벨리드의 말에 카단이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여태껏 미친 듯한 속도로 성장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원래 경지를 하나씩 올리는 거 정말 힘든 일이에요.”
벨리드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샬로트 님도 아이작 교수님도 7성에서 8성에 도달할 때까지 5년은 넘게 걸리셨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데 고작 3년간 7성에 머문 것 가지고 괴로워하고 있냐는 듯 질책하는 말.
그 말에 카단이 헛웃음을 지었다.
“제가 너무 욕심이 많았네요.”
“네. 물론 욕심을 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건 알아요. 세상이 평화롭지가 않으니까.”
벨리드는 토닥이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그래도 성급해지진 마요. 조급함은 성장을 방해할 뿐이니까. 게다가 나는 7년째 7성인데?”
벨리드의 말에 카단이 반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천재들이란….”
벨리드가 질린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카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우울하게 있을 시간에 수련이나 더 하는 건 어때요? 필요하면 도와줄 수도 있는데?”
“도와주신다고요?”
“명색의 영웅 아카데미 교관 출신인데, 가르치는 건 자신 있어요.”
그 말에 카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벨리드를 바라봤다.
“왜요? 같은 7성이라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긴.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해요.”
벨리드가 느닷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카단의 앞으로 이동하며 말을 이었다.
“일주일 뒤에 대련 한 번 하죠. 우리.”
“대련이요?”
“네. 아무래도. 같은 7성이라도 급이 다르다는 걸 알려줘야겠어요.”
벨리드 교관과 대련이라니. 카단은 믿을 수 없다는 눈을 끔벅거렸다.
그러자 벨리드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교관 시절엔 천재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는 게 취미였어요.”
***
도시 로베른의 영주성.
“페코스 님. 시키신 일을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또한 보고드릴 게 있어 찾아왔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페코스가 차지한 영주의 방 너머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페코스는 테이블 위에 두었던 뿔 달린 사슴 가면으로 얼굴을 덮으며 답했고.
끼이익.
곧바로 문이 열렸다.
방문 너머에 서 있는 건 매혹적인 외모를 지닌 여성이었다. 그녀는 방문을 넘어서며 페코스를 향해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페코스 님의 영원한 종. 줄리아. 인사 올립니다.”
“보고할 게 무엇이냐.”
페코스는 차갑게 물었고, 줄리아라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고개를 조아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항군들에게 걸었던 현혹 마법이 전부 풀렸습니다.”
“감옥에 가뒀던 놈들을 말하는 것이냐?”
“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게 뭐 있냐. 내가 방심했을 뿐이다.”
줄리아가 사과를 건네자, 페코스는 손을 저으며 혀를 찼다.
15일 전 노예와 수감자들이 전부 놓쳤던 일이 떠올랐는지, 그의 목소리는 무겁게 잠겨 있었다.
“현혹 마법이 풀린 것도 15일 전이겠지?”
“네. 맞습니다. 도착하자마자 15일 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도대체 누구입니까? 페코스 님을 분노케 한 자가.”
줄리아가 미간을 좁히며 묻자, 페코스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지었다.
“샬로트의 유산을 지닌 자. 네크로맨서였다.”
“그 네크로맨서가 이 도시에 찾아왔다는 겁니까? 아니, 이 도시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고요?”
“그래. 샬로트 녀석처럼 짜증이 나는 놈이더군.”
페코스는 불쾌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그 상태로 내버려 뒀다간, 정말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제가 처리할까요?”
페코스가 한숨을 내쉬자, 줄리아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할 수 있겠느냐? 녀석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꿈속에서는 저를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영원한 꿈을 선사하겠다는 것이군.”
“예. 현혹 마법은 통하지 않을 테니, 꿈속에 가둬 죽기 전까지 꿈속에서만 살게 하겠습니다.”
“몽마. 그래. 아무리 강하더라도 인간이 꿈속에서 몽마를 이겨낼 수는 없을 테지.”
페코스는 흡족하다는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좋다. 그런데 방법이 있느냐? 녀석이 지금 어디 있는 줄도 모르는 상태인데?”
“그 네크로맨서의 흔적만 있다면 꿈속에 찾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줄리아의 말에 페코스가 크게 웃더니, 이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줄리아를 향해 던졌다.
높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고블린의 해골이었다.
“녀석이 챙기지 못한 언데드다. 이걸로 충분하겠지?”
“네. 충분합니다. 몽마의 명예를 걸고 녀석을 꿈속에 가둬버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