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55화 (155/186)

제155화

도끼파 소유의 건물 안.

“오랜만이다. 이석훈이.”

얼굴의 흉터가 인상적인 중년 남성이 카단을 향해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조직원들을 이끌고 건물 입구로 들어선 카단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중년의 남성에게 답했다.

“덕분에 안녕했지. 그런데 석훈아. 아무리 네가 대단한 놈이라고 하지만 조직을 상대로 정면 돌파는 너무 멍청한 선택 아니냐?”

중년의 남성. 도끼파의 보스 ‘이중환’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고개를 저어댔다.

“제가 불가능하다 싶으면 시도조차 안 합니다.”

비꼬듯 던져진 말에도 카단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이 정도 일은 어렵지 않다는 듯, 이중환의 도발을 가볍게 넘겨버렸다.

“역시 마음에 드는 놈이야.”

이중환은 그런 카단을 인정한다는 듯 미소를 그리며 말을 이었다.

“석훈아. 정말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 없냐?”

“네. 아쉽게도.”

“쌍룡파. 그 조직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곳에 언제까지 있을 생각이냐?”

“글쎄요. 적어도 지금은 떠날 생각이 없는데?”

카단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이중환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더니 이내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협상은 결렬이구나.”

“전 협상하러 온 게 아닙니다. 경고. 혹은 협박을 하러 왔죠.”

“뭐, 어쨌든 남의 구역에 들어와 행패를 부렸으니 대가는 치러야겠지?”

이중환이 가볍게 손을 들자, 건물 곳곳에서부터 정장을 빼입은 건장한 남성들이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카단과 그의 일행은 도끼파 조직원들에 의해 포위되고 말았다.

“시체가 된다면 네가 그렇게 아끼는 황 회장에게 보내주도록 하지. 한번 잘 싸워보던가?”

이중환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스릉!

카단의 뒤에 있던 김민규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고.

슉!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카단을 향해 단검을 내질렀다.

“혀, 형님!”

순간적인 고요 속 누군가 놀란 듯 외쳤다.

그 외침과 동시에. 아니, 단검이 내질러지는 동시에 카단이 곧바로 몸을 돌리며 김민규를 향해 달려들었다.

척!

한 손은 칼을 든 손목을.

촤압!

그리고 한 손은 멱살을.

이어서 카단은 자연스레 김민규의 몸을 파고들었고 그대로 그를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쿠우웅!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김민규는 쥐고 있던 단검을 놓치며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놀란 눈으로 카단을 바라볼 뿐이었다.

소름 돋을 정도로 차가운 표정.

“혀, 형님.”

두려움을 느낀 김민규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고, 카단은 그 떨림에 분노하듯 멱살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해시켜.”

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볼 수 없는 차가운 목소리.

“왜 이딴 짓을 벌였는지 말해. 약점이라도 잡혔어? 아니면 단순한 욕심이냐?”

분노 가득한 눈빛에 슬픔이 덧씌워진다.

가족처럼 여겼던 부하. 믿고 뒤를 맡겼던 동생.

견고하게 쌓인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졌고, 배신감이 꿈틀거리며 분노를 자아냈다.

“죄, 죄송합니다. 형님.”

김민규는 변명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그저 똑같은 사과만 반복할 뿐이었다.

‘왜 그랬을까?’

늘 궁금했다.

김민규가 왜 배신했는 지, 무슨 이유로 망설임 없이 칼을 휘두른 건지.

그 어떤 변명이라도 듣고 싶었다. 그래야만 카단. 아니, 이석훈이 왜 죽어야 했는 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형님.”

그러나 김민규는 속 시원히 대답해주지 않았다. 눈물까지 질질 흘려가며 사과만 반복할 뿐.

빠각!

카단은 그대로 김민규의 팔을 부러트렸다.

“끄아아아악!”

정이라고는 조금도 남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듯 그의 움직임엔 망설임이 없었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도망치려고 하면 달려와서 발목도 부서트릴 테니까.”

카단이 차갑게 식은 눈으로 고통에 울부짖는 김민규를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중환이 형님. 제 목숨을 노린 대가는 치르셔야겠죠?”

카단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중환을 바라보며 말했고.

“죽여버려!”

이중환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잠시 후.

이중환을 비롯한 도끼파 조직원들이 모두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저 미친놈. 괴물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

이종환은 헛웃음을 지으며 숨을 고르고 있는 카단을 바라봤다.

도끼파 조직원들이 연장을 휘두르고 단체로 달려들어도 카단 하나를 잡을 수가 없었다.

카단은 불도저라도 되는 것처럼 달려드는 모든 이들을 때려 눕혀버리며 단숨에 싸움을 종료시켜버렸다.

카단은 쓰러진 도끼파 조직원들을 내려다보더니, 이내 팔을 부여잡은 채 바닥에 앉아있는 김민규를 향해 걸었다.

“이제 설명해라. 누가 시켰냐?”

카단이 김민규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물었다.

부하의 배신을 두 번이나 경험하다 보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카단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고, 그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한참이나 침묵하던 김민규가 무언가 결심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그게….”

그때.

또각, 또각.

고요한 건물 안에 발걸음 소리가 싸늘하게 울려 퍼졌다.

“뭘까? 이 괴팍한 세계는?”

이어서 들려온 매혹적인 목소리. 그 목소리에 카단은 자연스레 고개를 돌렸다.

건물 입구에서부터 이 세계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의 여성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이건 도대체 어떤 세계야? 야, 네크로맨서. 넌 무슨 망상을 하며 살기에 이딴 세계를 만들어? 덕분에 한참 찾았네.”

그 여성은 정확히 카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순간, 시간이 멈춰지기라도 한 듯 카단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움직임이 멈춰지며 세계가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네크로맨서라고 해서 무덤에서 언데드들이랑 놀고 있을 줄 알았더니. 너 제법 괴팍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구나?”

여성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묻자, 카단은 한숨과 함께 그녀를 바라봤다.

“너구나.”

카단은 기다렸다는 듯 여성을 바라봤고, 여성은 그 말에 놀란 듯 눈썹을 들썩였다.

“뭐?”

“날 이 빌어먹을 꿈속에 가둬놓은 마족. 너 맞지?”

“꿈이라는 걸 알았어? 하긴. 꿈속에나 존재할 이런 괴팍한 세계에서 현실감을 느끼다 보면 괴리감에 꿈이라고 자각할 수도 있겠지.”

여성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카단이 만들어낸 꿈속 세계가 카단의 전생이 아닌 과도한 상상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라고 확신한 모양이다.

“어쨌든 이런 신비로운 곳을 구경시켜준 대가로 너한테 선택권을 주려고 해. 그래서 이렇게 친절히 찾아왔어. 어때? 기쁘지?”

“선택권?”

카단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묻자, 여정은 실망스럽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흥미 없이 대답하니,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은데?”

“계속 얘기해봐. 꽤 흥미롭게 듣고 있으니.”

“음. 이 꿈속에서 영원히 살래? 아니면 내 손에 죽을래?”

섬뜩한 제안이었다.

그녀의 제안에는 카단이 원하는 선택지는 없었다.

“3번을 선택하지.”

“3번?”

“널 죽이고 잠에서 깨어난다.”

“푸핫!”

카단이 당당히 내뱉은 말에 여성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난 꿈을 다스리는 마족이야. 몽마라고 들어봤어?”

“몽마?”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넌 영원히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없어.”

여성의 말에 카단이 그녀를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아, 그래?”

어째서 카단이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어떻게 이리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

여성. 아니 몽마는 어이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카단을 바라봤다.

“널 쓰러트리면 이 빌어먹을 꿈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참나. 벗어날 수 없다니까? 네가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꿈의 세계를 만든 건 너지만, 네 꿈의 주인은 나야.”

마족의 영역.

이 안에서 몽마를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그래. 그렇게 말하더라고. 나는 널 죽일 수 없다고.”

카단은 인정한다는 듯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싸울 생각이 없다는 듯 여유로운 태도.

“말했다고? 누가?”

그 모습에 몽마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퍼억!

순간 몽마의 뒤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동시에 무언가가 몽마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뭐, 뭐야!”

당황한 몽마가 재빨리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오렌지빛 머리칼을 지닌 작은 아이가 서 있었다.

그녀 역시 카단이 만들어낸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너는?”

몽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벅거렸다.

“참고로 여기선 마나를 못 써. 카단이 만든 세계에는 마나가 존재하지 않거든.”

작은 아이. 아니, 루나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다시 몸을 날렸고.

퍼억!

그대로 몽마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버렸다.

“컥!”

“그리고 내 취미는 주먹질이야.”

퍽! 퍼억!

루나가 사정없이 몽마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 빌어먹을 꼬마 녀석이!”

몽마는 간신히 루나를 밀쳐낸 뒤, 재빨리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렸다.

“너, 넌 어째서 움직일 수 있는 거지? 꿈이 만들어낸 허상의 인물이 아니야?”

“응. 안타깝게도.”

꿈이 만들어낸 인물도 아닌데, 어떻게 몽마의 허락 없이 이곳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몽마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루나를 바라봤고, 루나는 기꺼이 말해주겠다는 듯 팔짱을 꼈다.

“감옥에 갇혔던 놈들에게 현혹 마법을 걸었던 게 너지?”

“그걸 어떻게?”

“현혹 마법 방식을 보니까, 무의식부터 건드려놓은 것 같더라고. 생각해보니까 그런 현혹 마법을 쓰는 놈들은 몽마뿐이거든.”

“뭐?”

루나가 해맑게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그래서 미리 대비 좀 해놨지.”

그녀의 새끼손가락엔 붉은색 가는 실이 반지처럼 묶여 있었다.

“그, 그건?”

“대충 말하자면 무의식의 세계를 연결하는 마법이랄까?”

루나가 턱짓으로 카단을 가리켰고, 몽마는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카단을 가리켰다.

붉은 실로 만든 반지가 카단의 손가락에도 끼워져 있었다.

“내 저주를 대, 대비했다고? 어떻게?”

“뱀파이어는 생각보다 뛰어나고 방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거든. 몽마의 저주에 대비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지.”

몽마의 저주에 걸려 꿈속에 갇히게 된다면 꿈의 주인이 그 어떤 짓을 하더라도 그 꿈에서 깨어날 수가 없었다.

꿈의 주인은 몽마를 이길 수 없도록 애초부터 몽마가 꿈을 설계해 놓았을 테니.

“난 초대받지 않는 손님이고, 네가 만든 꿈의 규칙을 손쉽게 어길 수 있어.”

그러나 몽마의 설계에서 벗어난 자라면 얘기는 달랐다.

초대받지 않는 자에겐 몽마를 이길 수 없다는 법칙은 아무런 작용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난 너보다 강해. 아무래도 카단은 이 꿈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루나가 이 꿈의 세계에 존재했으며, 어디에 숨어있다가 이렇게 나타난 것일까?

“마나가 없어서 너무 답답하다. 일단 죽어.”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땅을 박찼고.

“오, 오지 마!”

몽마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외쳤다.

퍼억!

그러나 루나의 주먹은 깔끔하게 몽마의 얼굴을 후려쳤고, 루나는 바닥에 쓰러진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카단이 꿈에서 깨어나면 곧바로 널 죽이러 찾아갈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