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57화 (157/186)

제157화

마족들의 도시 로베른.

“페, 페코스 님! 큰일 났습니다!”

마족 하나가 헐레벌떡 다가와 페코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리 소란이지?”

화려한 의자에 앉아있던 페코스가 무덤덤한 얼굴로 무릎 꿇은 마족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줄리아 님이 걸었던 현혹 마법이 전부 풀렸다고 합니다!”

“뭐?”

“로베른엔 더는 인간이 없어 문제가 없지만, 줄리아 님이 다녀간 다른 도시들에서 인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 말에 페코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줄리아가 당했다고?’

줄리아는 상급 중에서도 뛰어난 마족이었다.

게다가 직접적인 전투보다는 인간의 꿈속에 들어가 목숨을 갈취하는 마족이었기에 줄리아가 당했다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도, 도움을 요청해온 곳은 없습니다만, 이 사태를 책임지라는 서신들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무릎 꿇은 마족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페코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줄리아는 몽마다. 꿈속에서 녀석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런데 왜?’

설마 네크로맨서의 꿈속에 들어간 사이 기습이라도 당한 것일까?

‘아냐. 줄리아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녀석이다. 무방비 상태로 꿈속에 들어가진 않았을 거야.’

그렇다면 도대체 왜 왕국 곳곳에 뿌려진 줄리아의 현혹 마법이 풀려난 것일까?

“줄리아의 행방을 쫓아라. 최대한 빨리.”

“예!”

지금 페코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줄리아의 생사를 확인하는 것뿐.

무릎 꿇고 보고하던 마족은 대답과 동시에 재빨리 어디론가 달려갔고, 페코스는 홀로 남아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크로맨서의 짓일까, 아니면 다른 녀석의 짓일까.”

쩌적.

그가 즈려밟고 있는 바닥에 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끼던 부하의 죽음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에게 당했다는 수치심 때문인지 페코스는 점차 분노를 키워갔다.

“오랜만에 회의를 좀 열어야겠군.”

* * *

여관 ‘고독한 여행가들의 쉼터’.

“그래서 이제 괜찮은 겁니까?”

벨리드가 걱정스럽다는 듯 카단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보시다시피 멀쩡해요.”

카단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해맑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 내 덕분이지!”

그 옆에 앉아있던 루나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고, 카단은 그녀의 머리 위로 손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루나가 없었으면 꼼짝없이 몽마에게 당했을 겁니다.”

“몽마를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마족 중에서도 희귀한 놈들이라고 하던데.”

벨리드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하자, 루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아. 보니까 마족화 된 인간인 것 같은데, 몽마로 진화되었으니 마족들 사이에선 꽤 인기가 있었겠지.”

꿈을 먹고 사는 마족.

요구 조건만 충족된다면 가디언까지도 꿈속에 가둘 수 있는 전략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능력을 지닌 마족이었다.

“몽마를 처리했으니,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저쪽에서도 꽤 열이 올랐을 거야.”

루나의 말에 카단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당분간 이 도시에 머물 생각입니다. 괜찮을까요?”

“마족들이 쳐들어올까 봐 그러는 거죠?”

“네. 아무래도 걱정이 되긴 하네요. 무엇보다 이곳에 있으면 교관님에게 배울 것도 많을 것 같고.”

“또 기절할 것 같아서 대련 못 할 거 같은데?”

벨리드가 고개를 뒤로 빼며 말하자 카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리고 대련에 임하겠습니다.”

“뭐, 좋아요. 대신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거 알고 있죠?”

“네?”

벨리드의 말에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혁명단의 일 좀 도와줄 수 있어요?”

“아, 물론이죠. 그러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무작정 신세만 질 생각은 없었다. 도시를 위해서든, 혁명단을 위해서든 어떠한 도움이라도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일을 도우면 될까요?”

혁명단은 저항군과 똑같이 마족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며, 그들과 전쟁하는 단체.

카단을 전쟁에 내보내거나 이번처럼 사람을 구해오는 일을 시킬 생각인 걸까?

“아직 위쪽에서 연락이 없어서 당분간은 대기하면서 도시 근처를 정찰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은 없어요.”

“위쪽이요?”

“여긴 동쪽 지부. 본부는 남쪽에 있고, 그곳에 혁명단 총사령관님이 계시죠.”

총지휘권은 본부가 쥐고 있으며, 그곳에서 내린 명령에 따라 혁명단 전체가 움직인다고 했다.

“총사령관님이라는 분은 누구십니까?”

카단이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벨리드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건 비밀. 각 지부의 지부장들과 저와 같은 대장급 간부들만이 알고 있어요.”

그 말에 카단은 더는 묻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오렌지 주스를 홀짝였다.

‘꽤 영향력 있는 인물인가 보네. 이 시기에도 정체를 숨기는 것을 보면.’

존재가 알려지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향력을 떨칠 수 있는 인물.

그렇기에 저항군이 총사령관의 정체를 숨기고 있을 것이다.

카단은 그렇게 판단하며 다시 질문을 바꿨다.

“지금 전체적인 왕국의 흐름은 어떻습니까? 3년 전 이후로는 큰 전쟁은 딱히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맞아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왕국 북쪽 지역을 점령한 마족들이 잠잠해요.”

그저 인간들을 납치하거나, 작은 마을이나 작은 도시를 침략하며 인간을 납치하는 것 외엔 마족의 움직임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회 아닙니까? 녀석들이 힘을 모을 시간을 주는 건 위험할 것 같은데.”

“섣불리 공격할 수는 없어요. 언제까지나 우리는 지키는 쪽. 저항군도 혁명단도 안정적으로 움직이자고 결론 났죠.”

수많은 영웅이 탄생했다지만, 인간들에게 좋은 흐름으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여전히 이 전쟁의 약세를 보이는 건 인간이었고, 섣부른 선택은 전멸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것.

그렇기에 혁명단도 저항군도 당장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 어떤 계획이라도 있는 걸까요?”

“뭐 정확한 건 카단이 혁명단에 들어오면 들려줄게요.”

벨리드가 방긋 웃으며 제안했다.

“음…. 죄송합니다.”

카단은 잠시 고민하는 것 같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정중히 그 제안을 거절했다.

“아직 해야 할 게 있습니다.”

어떤 단체나 조직에 속할 생각은 없었다.

퍼즐처럼 퍼진 샬로트의 유산도 찾아야 했고, 여전히 카단은 자유로움이 좋았다.

“물론 혁명단과 척을 지겠다는 건 아닙니다.”

“뭐, 괜찮아요. 카단의 선택이지 강요가 아니니까.”

다행히 벨리드도 그에게 혁명단에 들어오라는 말을 반복하진 않았다.

단순한 찔러보기였던 걸까?

“아무튼 고생했어요. 잠든 사이에 꿈속에서 몽마랑 싸우고 있는지는 몰랐네.”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단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자, 벨리드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뭘, 이 정도로.”

“나 이거 더 줘.”

그때 루나가 카단의 팔을 콕콕 찌르며 빈 유리잔을 가리켰다.

조금 전까지 오렌지 주스가 가득하던 유리잔이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내가 더 가져다줄게요. 식사 마저 해요.”

벨리드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이어났고, 카단은 감사를 전한 뒤 포크를 들어 눈앞에 놓인 바비큐를 바라봤다.

‘꿈이란 거 알았을 때 라면이라도 좀 끓여 먹을 걸 그랬나?’

* * *

샤워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온 카단이 구석에 있는 테이블 앞에 앉았다.

달그락.

그와 동시에 창문과 출입문 앞에 뼈로 만들어진 벽이 생겨났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저항군이 아군이라지만, 이 안에서 일어난 일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은 것 같았다.

우웅.

카단은 앉은 상태로 아공간을 열었고, 그 안에서부터 무언가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촤라락.

그가 꺼낸 건 매끈한 돌로 만들어진 퍼즐 조각들이었다.

퍼즐 조각 하나하나마다 녹색의 빛을 머금고 있었으며, 그 조각 위로는 어떠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3년 동안 찾은 게 이 정도인데, 도대체 얼마나 더 돌아다녀야 하는 걸까?”

테이블 위로 상당히 많은 퍼즐 조각이 올려져 있었지만, 퍼즐을 완성시키기엔 부족했다.

지난 3년간 퍼즐 조각을 모을 때마다 맞춰봤지만, 아직 이 퍼즐 조각이 무엇을 가리킬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샬로트의 유산이 숨겨진 곳에는 전부 퍼즐 조각과 유산이 숨겨진 다른 곳의 정보가 존재했다.

물론 퍼즐 조각과 유산의 정보만 있던 건 아니었다.

유산이 숨겨진 곳마다 달랐지만, 샬로트가 직접 작성한 네크로맨서 관련 서적도 있었으며, 최상급 언데드 재료들이 잔뜩 존재하기도 했다.

덕분에 샬로트의 유산을 찾아낼 때마다 카단은 언데드 군단을 강화할 수 있었고, 샬로트의 서적을 통해 배움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벌써 3년.

큰 힘을 얻었고, 강력한 언데드 군단을 얻게 되었지만, 퍼즐 조각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스륵. 스륵.

카단은 천천히 퍼즐 조각을 맞춰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지도… 같은데.’

퍼즐을 맞춰보니, 대략 70% 정도는 완성된 것 같았다.

남은 30%는 샬로트의 유산이 숨겨진 곳에서 찾을 수 있을 터.

“그렇다면 이 지도는 어디를 가리키는 걸까?”

지도가 완성되어 봐야 알겠지만, 샬로트가 괜히 이 지도를 퍼즐 조각으로 나눠 왕국 곳곳에 숨겨뒀을 리는 없을 것이다.

분명 이 지도가 가리키는 곳에는 카단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맞춰 본 퍼즐을 잠시 바라보던 카단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다시 퍼즐 조각들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당장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붙잡고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진 않다는 듯 그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스르륵.

퍼즐 조각을 모두 넣는 순간, 출입문과 창문을 가리고 있던 뼈의 벽도 사라졌다.

사락.

카단은 여유롭게 책상에 앉아 책 하나를 펼쳤다.

그것은 샬로트가 작성한 네크로맨서 관련 서적이었다.

‘아버지는 일이 이렇게 될 걸 예상했던 것일까?’

서적에는 네크로맨시 운영법과 훈련법들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나마 후계자가 될 사람에게 자신의 네크로맨시를 전수해줄 생각이었던 걸까?

물론 카단이 전부 배운 내용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글로 상세히 설명해놓은 것을 보니, 또 다른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가끔 일기식으로 마족, 혹은 강력한 적과 싸웠던 일들도 기록되어 있었는데, 카단은 그 부분들은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처음엔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집중하며 글을 읽어보려 했지만.

[마족이 나타났다. 이겼다. 쉬웠다. 역시 나는 대단하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적혀 있었기에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사락-

고요한 카단의 방에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들려왔고, 카단은 그 고요 속에서 차분히 책을 읽어 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카단이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내 침대를 향해 걸었다.

‘평화롭다. 이 도시는 정말 평화롭군.’

마족이 왕국을 점령하고 있는데,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도시가 존재할 줄이야.

‘남쪽은 어떨지 궁금하네.’

과연 가디언들과 혁명단 본부가 존재하는 남부는 어떨까?

이보다 더 평화롭진 않을까?

카단이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 눕는 순간.

똑똑똑.

문 너머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카단. 저예요. 벨리드.”

이어서 들려온 벨리드의 목소리에 카단은 번쩍 일어나 재빨리 문을 열었다.

철컥.

“교관님?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카단. 일이 좀 생겼어요.”

“일이요?”

“심각한 일이긴 해요.”

벨리드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까? 카단은 고개를 갸웃하며 이어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혁명단 서쪽 지부가 머무는 도시가 마족들에 의해 무너졌다고 합니다.”

“네?”

“지원이라기보단 생존자를 찾으러 가야 해요. 혹시 같이 가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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