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58화 (158/186)

제158화

도시 ‘라다메스’ 성문 앞.

성문 너머로 보이는 도시는 말 그대로 폐허가 되어 있었다.

재앙이 휩쓸고 지나가기라도 한 듯 성벽 곳곳이 무너졌고, 건물들 역시 대다수 무너진 상태.

“우선 레이스를 이용해 도시 안을 살펴볼게요. 생존자도 찾아보고.”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카단이 재빨리 레이스를 소환해 도시 안으로 보냈다.

처참한 광경을 보고 있으면 과연 이 재앙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포기할 순 없었다.

“이렇게 쉽게 무너질 곳이 아닌데….”

카단 옆에는 벨리드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시 라다메스는 저항군이 세운 서쪽 방어선 바로 앞에 있는 대도시.

인간들에게 있어서 이 도시는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저항군과 혁명단이 도시에 머물며 수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시는 하루아침 사이 폐허가 되어버렸고, 이 재앙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안에서 마족의 기운이 느껴져. 들어가는 건 추천하지 않아.”

그때 성문 앞에 서서 폐허가 된 도시를 바라보던 루나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시 안에 마족이 있다고? 얼마나?”

그러자 벨리드가 분노 짙은 목소리로 루나에게 물었다.

“하나.”

루나는 손가락 한 개를 펼치며 말했고, 벨리드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겨우 하나…?”

당연히 수많은 마족이 도시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마족 하나만이 이곳에 남아있다니.

“그럼 그 마족 혼자서 이 도시를 함락시켰단 말인가?”

벨리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하자, 루나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그건 몰라. 다만, 녀석이 혼자서 이 도시를 지키고 있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러니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루나는 그렇게 경고하며 고개를 저었다.

“카단. 혹시 생존자는?”

만약 도시를 빠져나오지 못한 생존자가 있다면 그들을 구해올 생각이었다.

그게 이곳에 온 목적이기도 했으니까.

“없다고 합니다. 시체만 가득하다고 하네요….”

카단이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이내 벨리드를 바라보며 답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벨리드가 이를 악물며 성문 너머를 바라봤다.

그때.

바스락!

뒤쪽에서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요 속에서 들려온 소리였기에 그 소리는 더욱더 뚜렷하게 카단과 벨리드, 그리고 루나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셋은 동시에 마나를 활성화하며 곧바로 전투 태세에 돌입하며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뼈로 만들어진 창과 불화살이 허공에 생겨나는 순간.

“히익!”

철퍼덕!

누군가가 깜짝 놀라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 잠깐만요! 전 사람입니다!”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진 사람은 재빨리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러나 카단과 벨리드는 마법을 중단하지 않았다.

마족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계를 늦출 수는 없었으니까.

“루나.”

카단이 루나를 부르자, 루나가 마나를 비활성화하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 맞아.”

루나의 대답이 내뱉어지고 나서야 카단과 벨리드도 마나를 비활성화 하며 마법을 중단했다.

“왜 여기에 계십니까?”

벨리드가 얕게 한숨을 내쉬며, 넘어진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그 도시에 들어가려는 것 같기에 말리려고 했던 겁니다. 다른 짓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라고요.”

인기척의 주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겁에 질린 소리로 답했다.

“전 혁명단 소속 벨리드라고 합니다. 해칠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혁명단의 벨리드? 서, 설마!”

겁에 질린 남자가 벨리드의 이명을 부르려 하자, 벨리드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맞습니다. 혹시 이 도시의 주민이십니까?”

“네! 네! 맞습니다! 저는 메르라고 합니다! 라다메스의 병사입니다!”

메르라 소개한 남자는 안심한 듯 해맑은 표정으로 답했다.

“도시가 마족에게 함락되었는데, 왜 여기 계신 겁니까?”

벨리드가 경계심을 유지하며 조심스레 질문했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저, 저는 생존자 캠프로 돌아가던 중이었습니다.”

“생존자 캠프요?”

“네. 혹시 생존자가 있을까 주변을 정찰하던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불멸의 불꽃님을 뵙게 될 줄이야!”

생존자 캠프라는 말에 벨리드의 표정에 조금의 미소가 걸렸다.

“저희를 캠프에 데려다주실 수 있을까요?”

“무, 물론이죠! 불멸의 불꽃 님이 오신 걸 알면 다들 기뻐할 겁니다!”

메르는 기쁘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답했고, 이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 * *

생존자 캠프는 도시 라다메스 근처의 숲속 깊은 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다들 여기 좀 보세요! 불멸의 불꽃 님이 오셨습니다!”

생존자 캠프로 도착하자마자 메르는 기쁨이 담긴 목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불멸의 불꽃?”

“사, 살았다! 혁명단에서 지원군이 왔나 봐!”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메르의 외침에 땅바닥에 누워 쉬고 있던 이들이 하나둘 일어나 카단과 벨리드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왔다.

“베, 벨리드 님!”

그때 누군가 몰려드는 사람들을 뚫고 오더니, 이내 벨리드 앞에 멈춰 섰다.

“당신은?”

“혁명단 서쪽 지부 소속 쟌입니다!”

쟌이라고 소개한 여성은 벨리드를 향해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혁명단 단원이셨군요. 혹시 다른 단원들이나 지부장님은?”

벨리드가 기쁘게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묻자, 쟌이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대답을 듣지 않아도 들은 것만 같은 기분.

벨리드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괜찮다는 듯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지부장님은 저희를 대피시키다 돌아가셨습니다. 다른 단원들도 뿔뿔이 흩어졌어요.”

생존자 캠프에 있는 혁명단 단원은 아무래도 그녀뿐인 듯했다.

“저항군들도 없는 겁니까?”

“아! 마, 마족들이 서쪽 방어선을 향하고 있어요! 저항군들은 그들을 막겠다고 조금 전에 떠났습니다.”

쟌은 재빨리 눈물을 훔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족들이 서쪽 방어선으로 향했다고요?”

서쪽 방어선.

3년 전 마족이 왕국의 북쪽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세워진 인간들의 영역을 알리는 경계선이었다.

‘상황이 심각해 보이네.’

옆에 있던 카단은 미간을 좁히며 두 사람의 대화에 조금 더 집중했다.

“쟌. 일단 제대로 설명 좀 해주세요. 지원 요청받고 곧바로 오는 바람에 상황을 자세히 모릅니다.”

“수, 순식간이었어요.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폭격이 시작됐습니다.”

갑자기 시작된 마족들의 침략.

마족들은 인간들이 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미친 듯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급하게 저항군과 혁명단, 그리고 라다메스의 기사단과 병사들이 나서며 전쟁이 시작됐어요. 그리고 저는 피난민들을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되었죠.”

쟌은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전하려고 했다.

말을 꺼낼수록 두려운 감정들이 날뛰었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침착함을 유지하며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지부장님은 칼리아 님을 비롯한 서쪽 영웅들이 도시를 비웠다는 사실을 마족들이 눈치 챈 것 같다고 하셨어요.”

익숙한 이름이 들리자, 카단이 눈을 끔뻑이며 쟌을 바라봤다.

‘아카데미 시절 벨리드 교관님과 칼리아는 서로 혁명단이란 걸 알고 있었던 걸까?’

순간 궁금한 게 생겼지만, 당장 물어볼 수는 없었다.

“칼리아 말고도 다른 영웅들도 자리를 비웠다고요?”

“요즘 서쪽 지역이 심상치 않았어요. 곳곳에서 전투가 일어나는 바람에 라다메스에 머물던 영웅들이 곳곳으로 흩어졌거든요.”

“그렇군요. 일단 생존자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입니까?”

대충 상황 설명을 들은 벨리드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생존자는 꽤 많아 보였지만, 대도시의 주민들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수는 아니었다.

마족들의 급습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아마도 생존자는 캠프에 모인 이들이 전부.

벨리드가 미간을 좁히며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아마 여기 모여 있는 이유는 마족들이 서쪽 방어선을 향했기 때문이겠죠?”

“네. 도시는 장악당했고, 저희들은 목적지인 서쪽 방어선에 가기도 전에 이곳에 고립됐습니다.”

북쪽을 향해 도망치자니, 그곳은 이미 마족들이 점령한 도시뿐.

북쪽으로 가봤자, 마족들에게 붙잡혀 노예가 될 것이 뻔했다.

그렇기에 생존자들은 급히 숲속 깊은 곳에 캠프를 만들었고, 전투 가능한 인원들을 이용해 근처를 돌아다니며 떠도는 생존자를 데려왔을 것이다.

“일단 가시죠. 다들 챙기실 짐이 있다면 전부 챙겨주세요. 곧바로 더글라스로 이동하겠습니다.”

더글라스라는 말에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도시 더글라스는 저항군들의 기지이며 가디언 ‘길버트’가 있는 곳.

왕국에서 제일 안전한 곳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살았다!”

“빠, 빨리 짐 챙겨! 자는 사람 깨우고!”

벨리드의 말에 생존자들이 환호하며 캠프 곳곳으로 흩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벨리드 앞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포탈을 열어드리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동에 사고가 있을 수도 있으니, 한 분씩 천천히 이동해주세요.”

생존자들이 떠날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하자 벨리드는 곧바로 허공에 포탈 하나를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불멸의 불꽃이시여! 감사합니다!”

“천천히 이동하라잖아! 밀지 말라고!”

더글라스로 향하는 포탈이 열리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카단.”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벨리드는 고개를 돌려 카단과 루나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카단. 카단은 서쪽 방어선으로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은 즉 방어선에서 일어날 전쟁에 참여해달라는 뜻.

벨리드가 조심스레 물어보자, 카단은 문제없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가야죠.”

“고마워요. 그곳 지휘관을 만나 마족들이 쳐들어온다는 사실을 전해주세요.”

“그럼 교관님은요?”

“저는 더글라스에서 지원군을 데리고 이동하겠습니다. 서쪽 방어선에도 인력이 부족할 테니까.”

우웅.

벨리드는 그렇게 말하며 카단의 앞으로 포탈 하나를 만들어주었다.

“서쪽 방어선. 이라고 하지만, 성벽을 세워놓고 그 뒤로 베이스 캠프를 세워놓은 게 전부입니다.”

공성전처럼 성벽 위에서 전투를 치를 수 있지만, 성벽이 무너지고 마족이 넘어오는 순간 남서쪽 지역이 뚫리는 건 시간문제.

방어선이 뚫리면 마족들은 남서쪽 도시들마저 점령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꼭 막아야 해요. 방어선은 무조건 지켜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교관님. 최대한 버텨보겠습니다.”

“저 역시 최대한 빨리 지원군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쟌이 조심스레 카단에게 말했다.

“어쩌면 지금쯤 마족들이 방어선에 도착했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모, 몸조심하세요.”

“고맙습니다. 교관님 그럼 방어선에 뵙도록 하죠.”

카단은 그렇게 말하며 루나를 바라봤고, 루나는 재빨리 카단의 옆으로 이동해 카단이 내민 손을 꽉 붙잡았다.

“카단. 부디 잘 버텨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카단은 벨리드가 열어준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