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62화 (162/186)

제162화

-자네라면 가능하겠지!

왕국 5대 기사단.

콜린퍼스 기사단의 기사단장.

-나를 일으켜주게! 부탁이네!

지크 그림발트.

-그대에게 종속되어 평생을 살아도 좋네! 이 방어선을 지킬 수만 있다면 기꺼이 내 영혼을 받치겠어!

시체 앞에 선 검은 그림자.

영혼이 된 그가 끝없이 카단을 부르며 애원했다.

‘이게 도대체….’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보통은 그랬다.

영혼이 되어 버린 이들은 네크로맨서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영혼이 되어 시체 옆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강력한 미련이나 원망이 가득한 경우가 아니라면 영혼들은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려 했다.

-제발! 내가 한 잘못을 내가 책임질 수 있게 해주게!

패배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패배로 인해 서쪽 방어선이 불리해졌기 때문일까?

어쨌든 지크 그림발트는 죽어서도 이 방어선을 지키려 했다.

명예로운 죽음, 기사로서의 명예. 허울뿐인 그 어떤 것에도 미련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만이 강한 미련으로 남게 되었다.

아마 영혼이 된 그가 카단을 부를 수 있는 것도 그 강력한 의지 때문일 것이다.

카단은 가만히 지크의 영혼을 바라볼 뿐, 그에게 어떤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를 향해 달려갈 뿐이었다.

“크리스 교관님.”

그의 걸음이 멈춘 곳은 콜린퍼스 기사단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카단. 무슨 일이지?”

한참 전투를 준비하던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지크의 죽음 때문인지, 그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었다.

“교관님과 콜린퍼스 기사단의 기사분들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카단의 말에 기사들은 무슨 작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줄 착각하며 카단에게 집중했다.

카단은 잠시 한숨을 내뱉으며 성벽 아래, 지크 그림발트의 영혼을 바라봤다.

“지크 단장님을 되살려도 되겠습니까?”

이어진 그의 말에 기사들은 헛웃음을 짓더니, 이내 분노 짙은 눈빛으로 바뀌어 카단을 노려봤다.

“지금 뭐라고 했어?”

“생각하는 게 딱 네크로맨서 수준인데?”

“크리스 님. 죄송한데 저 새끼 죽여도 될까요?”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기사들은 당장이라도 카단을 죽일 듯이 살기를 뿜어댔다.

크리스 역시 표정을 굳히며 카단을 매섭게 바라봤다.

3년 전 영웅 아카데미의 교관 크리스가 보여주지 않았던 살기 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카단은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더 당당하고 뻔뻔하게 말을 이어갈 뿐이다.

“이 말을 꺼낸 것만으로도 저는 죄인이 될 것이며, 분노와 원망을 살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아는 새끼가!”

“단장님을 모욕하지 마라!”

“영웅 아카데미 출신으로 이름 좀 날린다고 어디서 같지도 않은 말을!”

“너 죽고 싶어?”

기사들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카단이 말을 이어갈수록 장작을 넣은 모닥불처럼 점차 커질 뿐이었다.

그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지크 그림발트. 그는 콜린퍼스 기사단뿐만이 아니라 서쪽 방어선 모두가 의지하는 총사령관이자 정신적 지주.

기사들의 우상이라 불리는 그를 언데드로 되살리겠다고 하니, 그 분노와 원망의 화살이 카단을 향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카단은 정중하게 그들에게 말을 전했다.

고인. 그러니까 지크 그림발트의 영혼은 이미 허락했다.

아니, 그가 먼저 제안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벽 아래에서 자신을 되살려 방어선을 지키라고 애원하고 있다.

이제는 기사단의 허락을 받아야 할 차례.

“강한 언데드를 얻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네크로맨서들은 죄다 생각이 그딴 식이야?”

“크리스 님. 저 이딴 녀석과 같은 전장에서 못 싸울 것 같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단장님도 언데드로 만들려는 자인데, 우리라고 다르겠습니까?”

“내쫓아버리죠. 안 그러면 제가 죽여 버리겠습니다.”

물론 그 일은 쉽지 않았다.

지크를 되살린다는 말은 자칫 공공의 적이 될 법한 발언이었지만, 카단은 말해야만 했다.

지크의 영혼에게서 전해진 절실한 의지를 외면할 수도 없었고, 지금 이 상황에 언데드가 된 지크라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카단. 이번만큼은 나도 너를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그때 크리스가 손을 들어 원망 섞인 기사들의 분노를 멈추게 했다.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서쪽 방어선의 총사령관 대리로서 너를 이곳에서 내쫓겠다.”

이어서 살기 짙은 눈빛으로 카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네크로맨서이며, 죽은 자들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카단은 옆으로 손을 뻗어, 곧바로 마나를 활성화했다.

그러자, 그의 손목 부근에서 짙은 녹색의 불꽃이 일렁이더니,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검은 연기는 이내 데스나이트의 모습으로 변했고, 카단이 부른 다름 아닌.

“너, 너는?”

“설마….”

콜린퍼스 기사단 소속의 기사였던 앤서니였다.

“당신들은… 선배님들이시군요.”

옛 동료들을 발견한 앤서니가 차분한 목소리로 기사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이 개자식이!”

“감히! 감히 앤서니를 언데드로 일으켜?”

“도대체 언제부터!”

“넌 기사의 명예를 더럽혔다!”

스릉!

마족을 향하던 분노의 화살은 앤서니를 보자 걷잡을 수 없이 크기를 키워 카단을 향하려 했다.

데스나이트가 된 앤서니를 본 몇몇 기사들이 검을 뽑아들고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자세를 취했다.

척.

그러자 앤서니가 그들의 앞을 조심스레 막아섰다.

“주군은 잘못이 없으십니다.”

“주군? 앤서니! 이 멍청한 놈아! 정신 차려! 넌 그저 저 더러운 네크로맨서에게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다!”

“너의 명예를 더럽힌 녀석을 내가 죽여주마!”

기사들이 원망 섞인 목소리로 외쳐대자, 앤서니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제가 원해서 언데드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앤서니는 자신이 데스나이트가 되어야 했던 이유를 기사들에게 들려주었다.

성벽 트라팔가에서 용병의 탈을 쓴 마족에게 죽임을 당했던 앤서니.

그는 자기가 이끌던 별동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데스나이트가 되는 선택을 했다.

“지크 단장님이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기사의 명예는 살아남은 자들의 전리품이 아니다. 지키고자 하는 걸 지키는 것이 진정한 기사의 명예다.”

엔서니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책임을 다하려 했다.

그것이 그가 배운 기사도.

“지금 지크 단장님도 그러십니다. 허울뿐인 명예보다 이곳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먼저이실 겁니다.”

“앤서니 넌 지금 조종당할 뿐이야!”

“정신차려! 우리가 널 구해주마.”

몇몇 기사들은 앤서니의 말에 설득된 듯 몸을 움찔했지만, 아직 분노가 남은 기사들은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킬 것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켜라. 패배가 확실하더라도 검을 들어라. 그것이 지크 단장님이 남긴 기사도가 아닙니까?”

앤서니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크리스가 이를 악물며 성벽 아래 쓸쓸히 누워있는 지크의 시체를 바라봤다.

크리스는 잠시 생각했다.

자신이 지크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무엇을 원할까?

책임을 다하기 위해, 영혼을 팔아서라도 되살아나려 할까?

절대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명예로 살아온 기사가 죽음의 끝에 언데드가 되어 되살아난다는 것은.

그러나 크리스 역시 지크와 같은 결론을 내릴 것 같았다.

죽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카단. 그러니까 네가 그 말을 한 이유는 너의 생각이나 계획이 아닌, 단장님의 바람이라는 뜻인가?”

크리스가 담담히 말을 내뱉자, 기사들이 반발하듯 외쳤다.

“크리스 님!”

“네크로맨서의 꼬임에 넘어가선 안 됩니다!”

“다, 단장님의 죽음을 더럽히실 생각이십니까!”

크리스는 그들의 원망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나였어도. 내가 저곳에 누워있었어도 단장님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그 말에 기사들이 움찔했다.

그들 역시 지크 그림발트의 밑에서 살아온 기사.

지크가 지닌 기사도에 물든 이들이었다.

감정이 아닌 이성적으로 사고가 돌아가는 순간, 지크의 선택을. 그리고 앤서니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크 단장님뿐만이 아닙니다.”

앤서니는 그렇게 말하며 성벽 아래를 가리켰다.

살아 있는 자들은 볼 수 없는, 오로지 죽은 자들과 네크로맨서만이 볼 수 있는 검은 그림자들이 성벽 위를 바라보며 외치고 있었다.

-나도! 나도 되살려줘!

-이대로 죽으면 동료들의 얼굴을 볼 낯짝이 없다!

-제기랄!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었는데! 물론 지금 선택은 이성적으로 하는 거야!

지크의 영향 때문일까? 지크가 죽는 순간 설리반에게 달려들어 죽음을 맞이한 기사들 역시도 카단을 향해 애원하고 있었다.

“저기 계신 선배님들 모두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 말에 성벽 위는 잠시 고요해졌고.

쿠구구구구구구구.

침묵 덕분인지, 멀리서 달려오는 마족 군단의 발걸음 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왔다.

점차 거리를 좁혀오는 소리와 땅의 울림은 성벽 위의 긴장감을 높여만 갔다.

“카단. 제안할 게 있다.”

크리스는 무언가 결심한 듯, 카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크로맨서는 죽은 자들을 볼 수 있다는 것. 알고 있다.”

그러나 죽은 자들을 볼 수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는 이들이 순순히 네크로맨서의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널 믿어보겠다. 그리고 너의 아버지인 샬로트 님을 믿어보겠다.”

샬로트의 후계자라면, 샬로트의 자식이라면 욕망에 사로잡혀 거짓을 내뱉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크리스가 아는 샬로트의 가치관이 그러했다.

“그러니 망자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어라. 다만.”

크리스가 카단에게 다가와 그의 양쪽 어깨를 꽉 붙잡으며 말했다.

“마족들의 뿌리를 뽑는 날. 단장님과 콜린퍼스의 기사들을 놓아줄 수 있겠느냐?”

되살려도 좋다. 다만, 그 기한은 마족들이 박멸될 때까지.

이 왕국의 평화가 되찾아지는 날까지. 그때까지만 언데드로서 그들을 붙잡고 있어 달라.

크리스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고, 강력한 의지가 담긴 그의 말에 그 어떤 기사도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물론입니다.”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잉그마르 가문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이어진 카단의 말에 크리스는 조용히 그의 눈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붙잡고 있던 어깨를 놓아주었다.

카단은 짧게 호흡을 내뱉으며 곧바로 성벽 아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달그락! 달그락!

그러자 그의 반지 속에서부터 뼛가루가 흘러나오더니, 성벽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만들어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카단은 곧바로 만들어진 계단을 통해 성벽 아래로 내려갔으며, 이내 그의 걸음이 지크의 영혼 앞에서 멈춰졌다.

지크의 영혼은 조용히 카단을 바라볼 뿐이다. 표정 따위는 볼 수 없었지만, 어쩐지 그 영혼은 카단에게 감사를 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카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바로 마나를 활성화했다.

화륵!

불꽃처럼 타오르는 녹색의 마나가 그의 몸을 덮었고, 그 마나는 서서히 카단의 양손을 향해 이동했다.

양손에 녹색의 마나가 뭉쳐지자, 카단은 준비가 끝났다는 듯 자세를 낮춰 지크의 시체 위로 손을 올렸다.

“위대한 자여. 죽음을 거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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