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63화 (163/186)

제163화

죽음을 거부하는 힘.

카단에 의해 육체를 떠났던 지크의 영혼이 되돌아왔다.

‘되살아 난 건가?’

감각이 하나하나 되살아나는 느낌은 신선했다.

몸이 재조립되는 이질적인 기분은 불쾌한 기분을 선사했지만, 이후 느껴지는 불사의 힘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지크 그림발트가 눈을 떴다.

‘음?’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아직 누워있나?’

분명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발바닥이 땅을 지탱하고 서 있는 그런 탄탄한 기분.

그러나 마치 옆으로 누워있는 사람처럼 그의 시야로 보이는 모든 것이 90도로 회전되어 있었다.

“뭐, 뭐야!”

순간 지크가 당황한 듯 외쳤다.

‘저, 저건 내 몸?’

목 없는 기사의 몸이 땅을 딛고 반듯하게 서 있었다.

기사가 쥔 검은 분명 지크의 것이었으며, 뭔가 달라지긴 했지만, 갑옷 역시 지크의 것이었다.

그리고 목이 있어야 할 자리엔.

화륵!

청록색의 화염이 구체 모양을 유지한 채 타오르고 있었다.

‘설마….’

지크는 빠르게 기억 속을 뒤져봤고, 이내 하나의 단어를 떠올렸다.

‘듀라한?’

목이 없는 기사.

최상급 언데드 듀라한.

설마 듀라한이 되어 되살아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 우선 머리부터 주워야….’

보이는 시야와 움직이는 몸이 다르다 보니 제대로 제어되지 않았다.

몸은 뒤뚱거리다 중심을 잃고 쓰러졌고, 지크는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어? 됐다.’

차츰 적응되었는지, 다시 몸을 일으킨 지크의 몸이 천천히 머리를 향해 다가왔다.

‘천천히. 천천히.’

익숙한 몸을 제어하는 게 이렇게 낯설 줄이야.

지크는 몸이 점차 가까워지자,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자기 머리를 주우려 했다.

툭-

그러나 이어진 발걸음이 그의 머리를 마치 공처럼 걷어차 버리고 말았다.

데굴데굴 구르는 바람에 시야는 빙빙 돌았고, 지크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질끈 눈을 감았다.

‘이게 뭔!’

당장이라도 불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서쪽 방어선을 지켜야 하는데, 몸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언데드가 되어버리다니.

떨어진 머리 하나 잡지 못하는 몸으로 어떻게 전투해야 한단 말인가?

툭.

그때 누군가의 손길이 굴러가던 지크의 얼굴을 붙잡았다.

서서히 시야가 높아졌고, 이내 지크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네크로맨서….”

그의 머리를 주워준 자는 다름 아닌 카단이었다.

데스나이트가 아닌 듀라한이 되어 되살아났으니 불만이 터 져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크는 아무런 말도 없이 카단을 바라볼 뿐이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사람과 눈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

‘종속되었다는 건가?’

적의를 드러낼 수도 없으며, 오로지 카단을 향한 절대적인 충성심만이 머릿속을 채웠다.

“주군께 인사드리네.”

지크는 눈을 감이며 예를 갖췄다. 이어서 몸만 남은 지크의 몸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철그럭!

“이렇게 되살려서 죄송합니다.”

카단은 조심스레 지크의 머리를 지크의 목 위로 가져다 놓으며 말을 이었다.

“데스나이트로 되살릴 수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분명 데스나이트로 되살렸다면 지크는 데스나이트 중에서도 최상위 등급에 해당하는 언데드가 되었을 것이다.

콜린퍼스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언데드가 되었으니, 그 강력함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는 목이 잘려 죽음을 맞이했고 듀라한의 조건이 충족되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듀라한이 데스나이트보다 약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한 단계 더 높은 등급의 언데드라고 할 수 있었다.

잘려져 있는 머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리스크를 짊어진 만큼, 큰 힘을 얻은 언데드. 순수 괴력만 따지고 보면 데스나이트조차 범접할 수 없는 힘을 지녔다고 알려졌다.

게다가 머리만 부서지지 않는다면, 네크로맨서의 도움이 없어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그래도 걱정하진 마십시오. 당장은 불편하더라도 곧 적응되실 겁니다.”

카단은 신뢰 가득한 표정으로 말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지크는 검을 들지 않은 한쪽 손으로 머리를 꾹 누르며 대답했다.

“주군. 듀라한은 강한가?”

되돌릴 수는 없는 일.

지크도 번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빠르게 체념하며 질문을 던졌다.

강하기만 하면 된다.

무엇이 되었든 서쪽 방어벽을 지킬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네. 강합니다.”

카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렇다면 되었다.”

어쩐지 카단의 말에 무한한 신뢰가 느껴졌다.

카단이 그의 주인이 신뢰감이 느껴진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이 역시 상관없었다.

“주군이 강하다 하였으니, 이 몸을 제대로 못 쓴다면 내가 부족한 거겠지.”

듀라한이 된 지크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몸을 돌려 멀리 보이는 마족 군단을 바라봤다.

시야가 익숙한 높이로 돌아오자, 몸을 제어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

‘정말 언데드가 되었구나.’

불사의 힘이 이런 것일까?

두려움이란 감정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선대 단장들이 이 모습을 보면 경악하겠군.’

명예로운 왕국의 기사.

죽음조차 영광스러워야 한다던 왕국의 기사가 언데드가 되어 되살아났다.

‘뭐, 무슨 상관인가?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키는 것이 기사이거늘.’

스릉.

지크는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

‘남들이 손가락질하더라도 상관없다. 이것이 나의 기사도.’

그때.

“주군을 뵙습니다!”

“주군을 뵙습니다!”

“뵙습니다! 주군을!”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분노에 사로잡혀 설리반에게 달려들었다 죽었던 기사들이었다.

그들 역시 새로운 몸이 되어 되살아났다.

“너흰 멀쩡하구나.”

아쉽게도? 부하 중에는 듀라한이 되어 되살아난 이는 없었다.

모두 목과 몸이 붙어 있는 데스나이트로 되살아났다.

씁쓸함이 느껴지긴 했으나, 되돌릴 수 없는 일. 지크는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되살아난 부하들을 바라봤다.

“이 보게 주군.”

부하들을 살피던 지크가 다시 카단에게 말을 걸었다.

“이 녀석들은 내가 이끌어도 되겠는가?”

살아생전 이끌었던 부하들을 죽어서도 이끌게 된다면 분명 이점이 있을 것이다.

“물론이죠.”

카단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앤서니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카단은 곧바로 성벽 위에 있던 앤서니를 불렀고, 앤서니는 그 부름을 듣고 단번에 카단 앞으로 다가왔다.

“앤서니…. 이렇게 보게 되는구나.”

“단장님…. ”

앤서니는 지크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앤서니! 설마 데스나이트가 되어 있었을 줄이야!”

“젠장. 이렇게 되면 앤서니가 선배인가?”

“왜 우리보다 강해 보이지?”

이어서 콜린퍼스 기사단 출신 데스나이트들이 앤서니에게 다가가 반가움을 표현했다.

‘콜린퍼스 언데드 기사단이라고 해야 하나….’

카단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왕국 5대 기사단 ‘콜린퍼스 기사단’의 기사단장과 기사들이 카단의 언데드가 되어 되살아났다.

‘승리를 장담할 순 없지만, 적어도 오래 버틸 수는 있겠군.’

카단은 언데드 기사단을 바라보며 듬직함을 느꼈고, 이내 목을 가다듬으며 기사단을 불렀다.

“콜린퍼스 기사단 여러분.”

카단의 부름에 듀라한과 데스나이트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카단을 바라봤다.

“약속 하나 하겠습니다.”

카단은 듀라한과 데스나이트들을 모두와 눈을 마주친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마족들을 전멸시켜 이 전쟁이 끝나는 날, 여러분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척!

그러자 듀라한. 지크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카단에게 고개를 숙였다.

툭.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리가 떨어졌고, 지크는 재빨리 떨어진 머리를 주워 옆구리에 끼웠다.

“주군께 충성을.”

그러자 그 뒤에 있던 데스나이트들 전부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기사의 예를 취하며 외쳤다.

“주군께 충성을!”

언데드 기사단의 충성을 받은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카단이 일어나도 좋다는 제스쳐를 취하자, 지크와 그의 기사단이 몸을 일으켰다.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당신들 뒤에는 제가 있을 테니까.”

카단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그의 몸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뿜어져 전장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검은 연기는 곧바로 데스나이트의 형체로 바뀌었으며, 순식간에 100기 정도의 데스나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방어전을 시작해 보죠.”

* * *

도시 로베른의 영주성.

“오랜만이야. 여우.”

뿔 달린 사슴 가면을 쓴 페코스가 거만하게 앉은 자세로 해밀턴을 바라봤다.

“샬로트의 유산을 가진 네크로맨서가 찾아왔었다고?”

해밀턴은 페코스를 비웃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찾아온 게 아니라 내 노예들까지 죄다 데리고 사라졌다.”

“3년 전 영웅 아카데미를 무너트린 이후 코빼기도 안 보이던 놈이 갑자기 활동을 시작했군.”

“활동을 시작했다?”

“녀석에게 당한 건 여기뿐만이 아니야. 녀석 때문에 도시 라도미르의 인간들도 죄다 도망쳤다.”

“라도미르라면…. 북쪽 성벽 근처에 만들어놨던 작업장?”

북쪽 성벽 근처, 인간들에게 희망이 되었던 도시 라도미르.

그 도시의 정체는 ‘안전’을 미끼로 만든 마족들을 양산하는 작업장이었다.

“맞아. 네크로맨서 녀석이 용병왕을 불렀고, 용병왕이 용병들을 잔뜩 이끌고 와서 인간들을 데려갔다고 하더군.”

“용병왕과도 인연이 있는 녀석이라. 재밌군.”

페코스는 기분 나쁘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그의 주변으로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듣자 하니, 아끼던 몽마도 죽었다지?”

“말조심하는 게 좋아. 여우.”

“워~ 워~ 나한테 화낼 게 아니지. 난 화풀이 할 기회를 주기 위해 온 건데 말이야.”

“그게 무슨 뜻이지?”

페코스가 분노 짙은 목소리로 질문하자, 해밀턴은 히쭉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내가 재미난 짓을 벌이고 있거든. 물론 위에서 시켜서 하는 일이야.”

“재미난 짓?”

“서쪽 방어선을 공격 중이다.”

“거긴 콜린퍼스 기사단이 지키고 있을 텐데?”

“촌스러운 기사단 하나가 지켜봤자지.”

해밀턴은 여유롭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신만만한 걸 보니, 크레이튼 기사단이라도 보낸 모양이지?”

“그래. 그 정도는 보내줘야 서쪽 방어선을 무너트릴 수 있을 테니까.”

“그분의 명령이라면, 다시 전쟁을 시작하라는 뜻인가?”

“서쪽 방어선이 무너지는 순간부터 시작이다.”

해밀턴이 고개를 끄덕이자, 페코스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서쪽 방어선을 공격하는 것과 화풀이할 기회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지?”

“네크로맨서가 불멸의 불꽃과 함께 사라졌다지? 그렇다면 네크로맨서는 분명 서쪽 방어선에 나타날 것이다.”

“어째서?”

불멸의 불꽃. 벨리드를 유인하려고 일부러 서쪽 혁명단의 기지가 있다는 도시 라다메스를 공격했다.

해밀턴은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불멸의 불꽃은 텔레포트에 능한 녀석이니 아마 곧바로 라다메스로 향했겠군.”

“그래. 동쪽 상황도 좋지 않으니 많은 인원을 데려가긴 힘들었을 거야.”

“그러니 혼자서도 큰 전력이 될 네크로맨서를 데려갔을 것이다?”

“그렇지. 이어서 서쪽 방어선을 공격한다면 자연스레 두 사람은 서쪽 방어선으로 향하겠지.”

“나보고 서쪽 방어선으로 마족들을 보내란 뜻인가?”

페코스가 분노를 삭이며 말하자, 해밀턴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는 더글라스를 공격해라.”

이어진 해밀턴의 말에 페코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았다.

스릉.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말만 지껄이는군. 가디언과 더글라스 영주 놈이 지키는 그곳을 치라고? 나보고 목숨을 걸고 미끼 짓을 하라는 건가?”

“워~ 워~ 진정하고 말은 끝까지 들어.”

페코스가 다가오려 하자, 해밀턴은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콜린퍼스 기사단만으로는 마족이 된 크레이튼 기사단을 이기지 못해. 즉, 불멸의 불꽃은 지원군을 요청하러 더글라스로 향할 것이다.”

“그래서?”

“시간만 끌어라. 서쪽 방어선이 무너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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