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64화 (164/186)

제164화

도시 더글라스 근처 혁명단 베이스 캠프.

“끈질긴 놈.”

얼음벽 안에서 마족을 죽인 벨리드가 다시 블링크를 통해 블랑쉬 앞에 나타났다.

“고생하셨어요. 하필 마족이 따라올 줄이야.”

블랑쉬는 들고 있던 물통 하나를 건네며 미소를 지었고, 벨리드는 물을 마신 후 곧바로 다시 말을 꺼냈다.

“서둘러서 지원군을 보내야 해요. 마족들이 서쪽 방어선을 향하고 있어요.”

“서쪽 방어선에서 전쟁이 일어난단 말입니까?”

“네. 지금도 늦었을 수도 있어요. 영주님과 길버트 님은 다 성안에 계시죠?”

“아뇨. 길버트 님은 잠시 남쪽 기지로 가셨어요. 아버지는 성안에 계시고요.”

하필 가디언이 자리를 비우다니.

벨리드는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오웬 더글라스 님이 계시는구나.’

오웬 더글라스. 왕국 최고라 칭송받는 마법 명가의 가주.

가디언 길버트도 인정한 마법사이며, 차기 가디언으로 지목되었던 자이다.

길버트에 이어서 최고의 마법사로 불리는 그라면 서쪽 방어선을 막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될 터.

“가시죠. 제가 안내할게요.”

블랑쉬는 곧바로 걸음을 돌려 성벽을 향해 달려갔고, 벨리드도 곧바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아, 그리고 그쪽 오빠 만났어요.”

클로제와 블랑쉬는 남매 사이였으니, 벨리드는 자연스레 클로제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별로 관심 없는데….”

그러나 벨리드는 크게 반가워하지 않았다. 아니, 조금도 관심 없는 눈치였다.

“클로제와 함께 도시 로베른에 갇힌 사람들을 구했어요. 클로제는 여전하더군요.”

“음, 도시 로베른이라면 북쪽 끝에 있는 곳 아닙니까? 마족들이 사람들을 잡아다 노예로 쓴다는?”

“네. 맞아요.”

그러나 도시 로베른에 갇혀있던 사람들을 구해냈다는 소식은 반가웠던 모양.

블랑쉬가 관심이 생겼다는 듯 잠깐 고개를 돌려 벨리드를 바라봤다.

“어쩌다 로베른의 사람들을 구출하실 생각을…. 저항군 사람들도 모두 작전만 세웠지, 딱히 실행하지 못했거든요.”

워낙 위험한 작전이었기에, 그간 누구도 도시 로베른의 주민들을 구출하지 못했었다.

아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벨리드가 그런 일을 해냈다는 것에 블랑쉬는 존경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카단 덕분이에요.”

척.

순간 블랑쉬의 걸음이 멈췄다.

“네?”

“카단이요. 블랑쉬랑 영웅 아카데미 동기로 알고 있는데?”

“카, 카단이요? 그 녀석이랑요?”

블랑쉬가 놀란 눈으로 벨리드에게 물었다.

“네. 오지랖 넓은 건 여전하더라고요. 덕분에 좋은 일을 하긴 했지만.”

벨리드가 피식 웃으며 어서 가자고 손짓했다.

그러나 블랑쉬는 멍한 표정을 지을 뿐,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블랑쉬? 무슨 문제 있어요?”

벨리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그제야 블랑쉬가 정신을 차리며 답했다.

“네? 아, 아니에요. 어서 가시죠.”

얼굴을 붉힌 블랑쉬가 재빨리 땅을 박찼고, 벨리드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둘이 라이벌 아니었나?’

벨리드가 다시 블랑쉬 옆으로 따라오자, 블랑쉬는 조심스레 물었다.

“교관님. 카단 녀석은 어땠어요?”

“다친 곳 없냐고요? 네. 아주 멀쩡해요.”

“아뇨. 그게 아니라, 더 강해졌냐는 질문인데….”

카단은 지난 3년간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었다.

혁명단, 저항군. 그 누구에게서도 카단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3년 만에 이렇게 소식을 듣게 될 줄이야.

“더 강해졌어요.”

벨리드는 잠깐 침묵하더니, 헛웃음을 지으며 답을 이어갔다.

“지금은 잠시 벽에 막혀 있는 것 같은데, 솔직한 말로 진짜 미친놈인 줄 알았다니까요?”

“네? 왜요?”

“고작 3년 만에 제 발밑까지 쫓아왔어요. 조금만 방심해도 금방 저를 추월할 것 같더라고요.”

이어진 벨리드의 말에 블랑쉬가 주먹을 꽉 쥐었다.

‘또 혼자서….’

블랑쉬와 카단의 격차는 이미 3년 전에 벌어져 있었다.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해 죽도록 노력하고 있었지만, 차이가 좁혀지긴커녕 더 멀어지고 말았다.

“카단은 지금 서쪽 방어선에 있어요. 그 성격을 생각하면 무리해서라도 마족과 싸우려고 할 거예요.”

오지랖이 워낙 넓으니까.

벨리드가 그렇게 말하며 슬쩍 블랑쉬를 바라봤다.

“클로제는요?”

벨리드의 시선이 느껴지자, 블랑쉬는 달리는 속도를 높이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클로제는 동쪽 혁명단 기지에서 로베른 감옥에 갇혀있던 저항군들을 보살피고 있어요.”

벨리드는 피식 웃으며 답해줬고, 어느새 두 사람의 걸음은 도시 더글라스의 성문 앞에 도달하게 되었다.

“어? 블랑쉬! 교관님!”

성문 앞에는 도시 라다메스의 생존자들과 그를 데리고 마족으러부터 도망친 알비스가 있었다.

“다들 무사합니까?”

벨리드는 곧바로 생존자들부터 살폈고, 이내 모든 인원이 무사하다는 걸 파악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불멸의 불꽃 님!”

“불멸의 불꽃 만세!”

생존자들이 환호성을 내뱉자, 벨리드는 한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저었다.

“알비스. 이분들 좀 부탁할게요. 저는 급히 블랑쉬와 가볼 곳이 있습니다.”

“아, 네! 걱정하지 마세요! 이분들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알비스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며 어깨를 쫙 펴 보였다.

3년 전에는 볼 수 없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알비스.”

벨리드는 걸음을 옮기려다 잠깐 멈칫하며 알비스를 불렀고, 알비스는 고개를 빼꼼 내밀며 그녀를 바라봤다.

“네?”

“사람들을 모아서 서쪽 방어선 전투 지원하러 갈 겁니다. 그때 같이 가요.”

“서, 서쪽 방어선에요? 전쟁입니까?”

알비스가 놀라며 말하자, 벨리드가 검지로 자기 입을 가리며 조용하라는 제스쳐를 보냈다.

괜히 생존자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아, 넵!”

다행히 생존자 중에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사람은 없는 듯했다.

“아무튼 부르면 나와요.”

그 말을 끝으로 벨리드와 블랑쉬는 영주성을 향해 달려갔고, 알비스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생존자들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오랜만이네. 벨리드.”

“위대한 더글라스 가문의 가주님을 뵙습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그만큼 급한 일이겠지. 말해보게. 무슨 일인가?”

오웬 더글라스. 그가 옷을 고쳐서 입으며 벨리드에게 말했다.

막 잠이 들었다가 급히 나온 행색이었다.

“마족들에 의해 도시 라다메스가 점령당했고, 지금은 서쪽 방어선을 향하는 중입니다.”

“라다메스가? 그곳에 있던 혁명단과 저항군은 어찌 되었나?”

“생존자를 구해 이곳으로 오긴 했지만, 많지는 않습니다. 라다메스를 지키던 저항군과 혁명단 사실상 전멸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벨리드의 말에 오웬의 미간이 좁혀졌다.

“전멸이라니….”

서쪽 방어선 위, 마족들이 점령한 지역과 가장 가까운 도시.

전진기지로서 전략적 요충지였고, 뛰어난 실력을 지닌 저항군과 혁명단이 지키고 있던 곳이다.

설마 하루아침에 도시 라다메스가 점령당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서쪽 방어선마저 뚫리면 그다음은 이곳입니다.”

벨리드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자, 오웬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서쪽 방어선을 지켜야지. 지원군을 얼마나 필요한가?”

“지원군의 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소수여도 좋으니 정예가 필요합니다.”

“정예?”

“네. 적어도 오웬 님께서 함께 가주셔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라다메스를 전멸시킨 놈들입니다.”

오웬은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더글라스의 가주이자, 영주로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이곳이 위험하네. 알지 않은가?”

“네. 그러나 서쪽 방어선이 뚫려도 이곳은 위험해집니다.”

길버트만이라도 있었다면, 오웬이 나서서 서쪽 방어선을 향했을 것이다.

그러나 길버트가 자리를 비운 지금, 도시를 쉽사리 떠날 수가 없었다.

오웬은 잠깐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고, 이내 생각을 끝내며 벨리드 옆에 서 있는 블랑쉬를 바라봤다.

“하는 수 없군. 블랑쉬.”

“네. 아버지.”

“내가 없는 동안 책임지고 도시를 지키도록 해라.”

“네?”

“네 오빠도 자리를 비웠고, 나 역시 전장으로 향하는데 더글라스 가문이 이 도시를 비울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느냐?”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그렇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블랑쉬가 대신 전장에 간다고 해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자기가 가겠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블랑쉬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알겠습니다.”

“자, 빨리 인원을 모으도록 하지. 서둘러야 하지 않겠나?”

오웬이 근처에 보이는 부하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가서 저항군 지휘관들을 불러라. 회의실로 모이라고 전해.”

“네! 알겠습니다!”

부하로 보이는 마법사가 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고, 이어서 오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준비 좀 하고 오겠네. 오랜만에 전장인데 이런 차림으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오웬이 몸을 돌리는 순간.

“다들 조심해!”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오웬이 벨리드와 블랑쉬를 향해 외쳤다.

그 외침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앙!

멀리서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동시에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렸다.

“서, 설마 방어선이 벌써 무너진 건가?”

갑작스러운 폭격.

도시 더글라스를 공격해올 적은 ‘마족’밖에 없었다.

그 불안함에 블랑쉬가 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며 말했고.

“아니. 방어선을 지키고 있는 건 콜린퍼스 기사단이에요. 이렇게 빨리 패배하진 않았을 겁니다.”

벨리드는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마나를 활성화했고, 오웬 역시 인상을 찌푸리며 마나를 활성화했다.

“블랑쉬. 너는 병사들과 저항군들을 깨워서 성벽으로 데려와.”

“네. 아버지.”

“그리고 벨리드. 자네는 주민들을 대피시켜주게. 새로 지은 마탑은 비상시 대피소로 쓰이는 곳이니 그곳으로 안내해줄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그럼 오웬 님은?”

“내 도시를 건든 놈 낯짝을 보러 가야지.”

오웬은 곧바로 아공간을 열더니, 그곳에서 푸른 수정이 박힌 지팡이를 꺼냈다.

“금방 도우러 가겠습니다. 몸조심하십시오.”

“난 걱정하지 말게. 주민들의 보호가 우선일세.”

“네.”

그럼 출발하지.

오웬의 말과 동시에 세 사람은 곧바로 출입문을 나섰고, 블랑쉬를 제외한 두 마법사는 텔레포트 마법을 통해 사라졌다.

파밧!

부서진 성벽 위로 텔레포트한 오웬은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살폈다.

‘공격은 한 번이다.’

성벽에서 들려온 폭발음.

그 소리는 한 번이었고, 만약 여러 번의 공격이 있었다면 성벽을 지키는 병사들이 공격을 몰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즉 성벽을 무너트린 건 단 한 번의 공격뿐.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성벽이 무너질 줄이야.’

도시 더글라스의 성벽은 마법으로 인해 보호되고 있었다.

공성 병기로 몇 번을 두드려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의 내구성을 자랑한다.

그런 성벽이 단숨에 무너졌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

오웬이 인상을 쓰며 성벽 너머를 바라봤고.

그때.

번쩍!

멀리서 검은 섬광이 번쩍이더니 무언가 오웬을 향해 쏘아졌다.

“이런!”

오웬은 급히 지팡이를 내밀며 마법을 사용했고.

콰아아아아아앙!

날카롭게 쏘아진 검은 섬광이 허공에 생겨난 장막과 부딪히며 큰 폭발을 일으켰다.

“오호…. 이 정도의 실력자라면 더글러스의 가주인가?”

이어서 멀리서 소름 돋을 정도로 불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오웬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이는 건 어둠뿐이었기에, 오웬이 급하게 마나를 활성화하며 마법을 사용해 시력을 강화했다.

그러자 어둠 너머, 목소리의 주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뿔 달린 사슴 가면…. 가면을 쓴 마족이라면 최상급 이상이라는 건가?’

얕볼 수 없는 상대라 판단한 오웬은 이를 악물며 지팡이를 꽉 쥐었다.

‘이건 좀 위험하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