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66화 (166/186)

제166화

‘뭐지?’

설리반은 당황스러웠다.

분명 카단의 체력이 떨어진 걸 확인했다.

최상급 언데드들은 물론 해골 따위의 하급 언데드마저도 되살아나는 속도가 느려졌다.

가끔 날아오던 뼈 마법과 피 마법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곧 쓰러질 것 같던 녀석이 어째서?’

두 눈으로 직접 봤을 때도 카단은 분명 툭 하면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이냐?”

그런데 카단이 느닷없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카단의 안색이 점차 밝아졌다.

마치 푹 쉬다가 지금 막 전장에 도착한 사람처럼 생생한 모습으로 뒤바뀌었다.

적어도 설리반이 알고 있는 마법 중엔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사제가 아닌 이상 단번에 모든 체력을 회복하는 마법을 쓸 수도 없을 터.

“마법이 아니라면 일부러 힘이 빠진 척 연기라도 했단 말인가? 너를 노리는 자를 불러내기 위해?”

“둘 다 틀린 말은 아닌데.”

설리반의 질문에 카단이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카단은 연기 따위에는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붙여야 했다.

체력과 마나를 단번에 회복할 수 있는 영혼의 구체들이 전장에 수없이 퍼져 있었으나, 단 하나도 흡수하지 않았다.

버틸 수 있을 만큼 체력과 마나를 조절하며 시간을 끌었고, 자연스레 힘이 빠졌다는 모습을 마족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상황은 그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물론 이 녀석이 올 줄은 몰랐는데.’

여유로운 척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좋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루나와 힘을 합친다고 해도 설리반을 쓰러트리는 건 불가능했다.

3년 전까지 가디언의 자리에 가장 가까웠던 인물 중 하나.

그리고 마족의 힘을 흡수하며 이제 가디언과 맞먹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닌 자.

‘나에겐 아직 무리다.’

아직 7성인 카단이 그를 이기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를 농락한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할 텐데. 괜찮겠나?”

설리반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짓더니, 이내 정색하며 카단에게 물었다.

“딱히 그쪽을 유인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아쉽게도 이 전투를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스릉.

설리반은 여기까지 온 김에 카단을 데려갈 생각인 듯싶었다.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는 서늘한 소리가 들리자 괜히 등골이 오싹했다.

‘뭐,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든 해봐야지.’

카단은 곧바로 루나를 바라봤고, 루나도 그 시선을 느꼈는 지 카단을 바라봤다.

“아휴. 진짜….”

카단을 바라보던 루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이내 설리반을 바라보며 마나를 활성화했다.

그녀의 몸에서 핏빛 기운이 일렁거렸고, 그 모습에 설리반이 신기하다는 듯 눈을 번쩍 떴다.

“붉은빛의 마나… 그 꼬마가 뱀파이어인가 보군.”

이미 루나의 존재도 마족들 사이에 소문이 퍼진 걸까?

아마도 도시 로베른의 갇힌 사람들을 구하며 루나의 정보가 마족들 사이에 퍼져나간 모양이다.

“알아서 뭐 하게?”

루나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곧바로 허공에 핏빛 단검들을 만들어냈다.

“샬로트의 하나뿐인 제자가 어떤 놈인지 한 번 경험하는 것도 좋겠지.”

그러자 설리반이 곧장 달려와 오러를 두른 검을 휘둘렀다.

“피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와 검을 휘두르자, 루나가 옆으로 몸을 던지며 외쳤다.

카단은 루나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던지며 가까스로 설리반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네크로맨서 주제에 제법 재빠르구나.”

설리반은 여유롭게 검을 회수하며 다시 카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앙!

그때 루나가 재빨리 달려와 카단에게 검을 휘두르려던 설리반의 얼굴을 걷어찼다.

“조그만 녀석이 제법이로군.”

분명 발끝에 담겼던 핏빛 마나가 폭발하며 충격을 주었을 텐데, 설리반은 멀쩡했다.

루나의 공격은 피할 필요조차 없다는 듯 가볍게 그녀를 외면했다.

“하던 건 마저 해야지. 넌 잠시 기다려라. 뱀파이어 꼬마.”

설리반이 다시 오러를 활성화했고, 그의 검 위로 검붉은 오러가 불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스치기만 해도 죽을 것 같은데?’

검을 휘감은 검붉은 오러에 카단은 헛웃음을 짓더니, 곧바로 피의 사신을 만들어내 그 힘을 흡수했다.

촤륵!

피의 사신이 카단의 등 뒤로 나타났고, 그의 손엔 사신의 낫이 들렸다.

‘아직 불안정하긴 하지만 역시 익숙한 게 최고지.’

순간, 카단의 손에 들린 피의 낫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내 피의 낫은 단검 형태로 변했으며, 힘이 응축되기라도 했는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불안정해 보였다.

“그딴 잔기술로 내 검을 막아볼 생각이었나?”

설리반은 코웃음을 치며 오러가 담긴 검을 휘둘렀고, 카단은 재빨리 눈을 굴리며 그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힘을 줄이고 속도를 올렸다. 피해 봤자, 이어서 다음 공격이 들어올 거야.’

피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블링크 반지를 이용해 거리를 벌린다고 하더라도 설리반을 따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즉, 지금 카단의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스릉!

카단은 설리반의 검이 휘둘러지는 것을 응시하더니, 이내 검 끝을 향해 피의 단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앙!

검과 검이 충돌하는 순간, 카단의 몸이 그대로 뒤쪽으로 날아갔다.

쿠웅!

그대로 성벽까지 날아가 부딪힌 카단은 인상을 찌푸리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반 검으로 막았다면 분명 부러졌을 거야.’

성벽과 부딪친 충격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카단은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에 반해 설리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막아?”

카단의 언데드 군단을 보며 그의 네크로맨서 능력은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꽤 높은 성취를 했으며, 그 성취에 어울리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며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고작 네크로맨서가 근거리에서 휘둘러진 설리반의 검을 막아낼 줄이야.

‘끝까지 보고 대응할 줄이야. 몇 번을 생각해도 대단하군.’

보통 네크로맨서라면 불가능한 판단력과 움직임이었다.

‘피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오히려 거리를 좁혀서 저 이상한 단검을 휘둘렀다.’

웬만한 깡 없이는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

“제법이로구나. 과연 샬로트의 마지막 제자답게 날 놀라게 해주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설리반은 카단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해밀턴 님께서 저 녀석을 가지고 싶다고 하셨었지? 이제 그 이유를 알겠군.’

단순한 네크로맨서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젊은 나이에 7성에 도달한 것도 모자라 근접 전투에서도 뛰어난 방어력을 보이는 네크로맨서.

만약 그가 마족의 힘까지 얻게 된다면 얼마나 강해질까?

상상만 해도 벌써 뿌듯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 녀석을 데려가기만 하면 해밀턴 님에게 더 큰 인정을 받을 수 있겠어.’

설리반이 탐욕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다시 검을 고쳐 쥐었다.

“그래. 제법이긴 하다만 그뿐이다. 넌 날 이길 수 없어.”

카단은 속으로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영웅 아카데미 입학 후부터 꾸준히 근거리 방어 훈련을 한 덕분에 이번 공격은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음은 확신이 없었다.

이번에 방어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카단의 반응 속도와 판단력뿐만이 아니었다.

카단이 네크로맨서였기에 설리반이 방심하고 있었기에 가능했고, 생포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덜 들어가기도 했다.

‘쯧. 벨리드 교관님이 서둘러주셨으면 좋겠는데.’

설리반과 일대일을 하면서 시간을 끄는 것은 힘들다고 판단한 카단이 간절한 시선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그 순간.

쩌저저저저적!

카단과 설리반 사이로 거대한 얼음벽이 생겨났다.

콰릉!

이어서 굉음이 먼저 들려왔고.

번쩍!

빛과 함께 하늘에서부터 설리반을 향해 벼락이 내려쳤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다음으로 들려온 목소리는 익숙하면서 반가운 이의 목소리였다.

“교관님?”

카단의 바로 옆으로 벨리드 교관이 나타나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이제 다 됐다. 정말 고생했어.”

“지원군을 데리고 오신 겁니까?”

“물론. 저 위에 안 보여?”

벨리드는 성벽 위를 가리켰고, 카단은 자연스레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알비스? 블랑쉬?”

그리고 그곳에 그립고 반가운 이들이 보였다.

‘아, 저 두 사람은 더글라스에 머문다고 했었지?’

반가움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카, 카단!”

알비스는 카단과 눈이 마주치자 반갑게 손을 흔들며 카단을 불러댔다.

그 옆에 있는 블랑쉬는 괜히 시선을 돌리며 코웃음만 치고 있었다.

‘두 사람도 많이 성장했구나.’

그 두 사람만 보이는 건 아니었다. 반가운 두 사람의 옆으로 조금 전까지 성벽 위에서 볼 수 없었던 이들이 보였다.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지원군을 확인한 카단이 다시 벨리드를 바라보며 물었다.

“설명하자면 길어요. 뭐, 요약하자면 일이 좀 있었다? 정도.”

“뭐, 이 얘기는 나중에 듣죠. 우선 저 녀석부터 어떻게 해야 합니다.”

카단이 얼음벽을 가리키자, 벨리드는 괜찮다며 얼음벽을 가리키는 카단의 손을 조심스레 내려주었다.

“카단은 할 일을 다 했습니다. 이제부터 지원군에게 맡기세요.”

벨리드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고생했다. 샬로트의 아들이여.”

허공에서 익숙하면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을 바라본 순간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재빨리 정중한 자세로 인사를 건넸다.

“가디언을 뵙습니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가디언 ‘길버트’였다.

길버트는 카단의 인사를 가볍게 받아준 뒤 곧바로 설리반을 바라봤다.

“설리반. 결국엔 정말 마족의 개가 되어 있다니.”

“오늘 그 말 너무 많이 들어서 그만 듣고 싶습니다. 가디언 님.”

설리반은 비아냥거리듯 대답했다.

“꽤 자신만만해진 것 같군요. 설리반 경. 그건 자네의 힘이 아니오.”

“제가 얻었고 제가 쓰니 이게 제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이어진 설리반의 대답에 길버트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봄 조용히 혀를 찼다.

“전우였던 이들을 배신한 당신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가디언이라고 하시더라도 절 상대하시긴 힘들 겁니다. 예전에 제가 아닙니다.”

스릉….

설리반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검을 고쳐 쥐었다.

카단을 상대할 때와는 다른 짙은 살기가 내뿜어졌고,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한 힘이 그에게서 느껴졌다.

그러나 길버트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을 뿐, 조금의 두려움이나 당황스러움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럼 어디 그 잘난 가디언 길버트의 마법을 보여주시죠? 얼마나 대단하신지 제가 평가해 드리리다.”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해 쌓은 힘이 아니오.”

길버트 역시 이제 전투가 시작될 걸 알았는지, 곧바로 마나를 활성화했다.

“내가 힘을 쌓은 이유는 당신 같은 배신자들 때문입니다”

순간 길버트의 눈에 분노가 어렸고, 설리반은 잠깐 주춤하고 말았다.

그 모습에 길버트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도망치기엔 늦었습니다. 설리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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