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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167화 (167/186)

제167화

‘가디언….’

전장을 바라보던 카단이 헛웃음을 지었다.

대마법사이자 가디언인 길버트의 전투를 제대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콰아아아아앙!

벨리드를 통해 수준이 높은 마법사의 전투를 몇 번 보기는 했찌만, 길버트는 차원이 달랐다.

‘이 정도였나?’

왕국의 검으로 불렸던 지크 그림발트도 허무하게 패배시켰던 설리반.

그런 설리반이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제기랄!”

누가 마법사가 근접전에 약하다고 했던가?

퍼억!

설리반이 거리를 좁혀 검을 휘두르려 하면 길버트가 지팡이로 먼저 설리반을 가격했다.

콰릉!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다.

지팡이가 닿는 순간 천둥소리가 들려왔고 설리반은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움찔거렸다.

“어, 어째서….”

마족의 힘을 흡수하며 가디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강해졌다고 생각했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해밀턴 역시도 설리반의 강함을 인정했고, 무한한 신뢰를 주었다.

“상황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조급해지신 겁니까?”

그러나 길버트 앞에서는 공격 한 번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했다.

콰아아아아앙! 콰아앙!

게다가 전장 상황 역시 좋지 않았다.

길버트와 함께 나타난 지원군들이 전장에 마법을 난사하기 시작하자 승기가 저항군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을 앞세우고 성벽 위에서 마법을 난사하는 바람에 마족들의 수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전멸이다. 어쩌지?’

설리반의 머릿속엔 자연스레 패배가 그려졌고, 그의 힘만으로는 이 전장의 분위기를 바꾸긴 힘들었다.

“적을 앞에 두고 고민에 빠지다니. 많이 조급한 것 같군요. 설리반 경.”

길버트는 마치 설리반을 가르치듯 여유롭고 우아하게 그를 조롱했다.

“시끄럽다!”

가벼운 도발에 넘어간 설리반은 하는 수 없다며 마족의 힘을 개방했다.

뜨득! 뜨드드드득!

그러자 그의 몸이 점차 부풀더니, 몸 곳곳이 기괴하게 꺾여댔다.

‘본모습을 드러내는 건가?’

카단은 몇 번이고 마족들이 인간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본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본 적 있었다.

힘의 개방, 형태의 변화.

뜨드드득!

설리반 역시 불리한 상황이 오자 마족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로 한 것이었다.

“추악하군요.”

그러나 길버트는 설리반에게 본 모습을 드러낼 시간을 주지 않았다.

찡-

그의 지팡이 끝에서부터 레이저 같은 것이 빠르게 쏘아졌고.

푹!

본 모습으로 형태를 바꾸던 설리반의 어깨를 관통했다.

쩌저적!

단순히 관통하기 위한 마법이 아니었다.

레이저에 맞은 부위에서부터 얼음이 생겨나더니, 그 얼음은 점차 범위를 넓혀갔다.

“이 개 같은!”

챙그랑!

설리반은 반대편 손으로 얼어붙은 어깨를 내리쳤고, 얼음이 깨지는 소리와 동시에 살점이 뜯겨져 나갔다.

조금만 늦었으면 팔 하나를 통째로 잘라냈어야만 했을 것이다.

“흠. 늦었군.”

길버트는 아쉽다는 듯 혀를 차며 마나를 활성화했고, 다음 상황을 대비하듯 마법을 준비했다.

“크아아아아아악!”

설리반이 하늘을 바라보며 괴성을 질렀고, 그와 동시에 그의 관자놀이 쪽에서 뿔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입고 있던 갑옷을 부술 정도로 그의 몸은 빠르게 부풀었다.

근육이 부피를 늘렸고, 피부의 색이 검붉게 물들었다.

이내 본 모습을 드러낸 설리반의 모습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인 ‘미노타우로스’를 떠올리게 했다.

소머리에 인간의 몸을 지닌 괴물.

크르르릉!

검붉게 물든 눈이 길버트를 향했고.

크와오!

설리반은 분노와 함께 울부짖으며 재빨리 땅을 박찼다.

“이건 위험하군요.”

길버트는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는 설리반을 향해 지팡이를 내밀었다.

콰릉!

그러자 하늘에서부터 벼락이 내리치며 빠르게 달려들던 설리반의 몸에 명중했다.

벼락은 한 번이 아니었다.

콰릉! 콰르르르릉!

설리반이 쓰러질 때까지 몇 번이고 내리치겠다는 듯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쏟아졌다.

“아무리 마족의 힘을 얻어 강해졌다 하지만, 저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분명 마족의 본 모습을 드러낸 설리반을 보며 위험하다고 말했던 길버트지만, 그의 얼굴에선 여유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오히려 공격하기가 쉬워지는군요. 죄책감이 전혀 없어요.”

콰르르릉!

수십, 수백 번 내리친 벼락 때문일까?

달려들던 설리반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으며, 위협적인 외형과 다르게 한 번도 길버트에게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길버트에게 전혀 상대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설리반이 주먹으로 땅을 내리치며 분노를 표현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어!”

설리반은 다시 몸을 일으키며 검을 고쳐 쥐었다.

어떻게든 공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으나, 길버트는 마치 어린 생도를 바라보듯 여유롭게 그를 내려다봤다.

“소원이 죽는 거라면 제가 이루어드리죠.”

길버트가 다시 지팡이를 휘두르며 마나를 활성화하려는 순간.

“거기까지.”

먼 곳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밀턴?”

길버트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단번에 알아보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슝!

마족 진형 끝에서부터 검붉은 오러가 쏘아졌다.

“제가 막을게요!”

그러자 뒤에서 대기하던 벨리드가 뛰어나와 매섭게 날아오던 검붉은 오러를 어디론가 텔레포트 시켜버렸다.

콰아아아앙!

폭발이 들려온 곳은 마족들이 잔뜩 뭉쳐있는 전장 쪽이었다.

“이 전쟁은 우리의 패배다.”

이어서 들려온 목소리는 전보다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서쪽 방어선을 지키던 이들은 소름 돋는 불길한 목소리에 마른 침을 삼켰고, 이내 마족 진형 쪽에서 해밀턴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오랜만이야.”

해밀턴은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편안한 복장으로 나타났으며, 그의 손엔 누군가가 쓰던 검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패배를 인정하지. 그러니 그만 보내주는 게 어때?”

해밀턴이 히쭉 웃으며 제안하자, 길버트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인간이었다면 항복한 적군을 보내줄 수도 있었겠지만, 넌 마족이다. 해밀턴.”

해밀턴의 의견 따위는 당연하다는 듯이 거절당했다.

“그럴 줄 알았어.”

해밀턴은 방긋 웃더니, 이내 빠르게 쓰러진 설리반을 향해 달려갔다.

길버트는 그에 반응하며 마법을 쏘아댔지만.

챙! 채앵!

해밀턴이 휘두른 검에 그의 마법은 가볍게 막히고 말았다.

“뭐, 다른 마족들도 아깝지만, 이 녀석은 아직 쓸만하거든.”

“죄, 죄송합니다. 해밀턴 님.”

“죄송하긴. 이만 돌아가도록 하자고 우린.”

해밀턴은 거대하게 변한 설리반을 둘러업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길버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길버트가 소리를 지르며 다시 마법을 준비하는 순간.

크와아아아!

전장 곳곳에서 짐승의 괴성과 비슷한 소리들이 들려왔다.

전장에 있던 마족들 전부가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참고로 아직 마족화가 덜 된 상태로 마족의 모습을 드러내면 이성보다 본능에 충실한 괴물이 될 거야.”

해밀턴은 그 말을 끝으로 설리반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고.

“제기랄.”

길버트는 마족들을 막아내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하며 해밀턴의 뒤를 쫓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내가 선두에 서겠다! 비열한 마족 놈들을 전부 처단하라!”

길버트의 외침과 함께 다시 한번 인간과 마족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서쪽 방어선을 지켜냈다!”

“우리가 이겼다!”

가디언 길버트를 중심으로 시작된 전투는 빠르게 끝이 났다.

언데드 군단을 앞세워 수준급 마법사들의 마법이 난사되니, 수장을 잃은 마족들은 반항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죽음을 맞이했다.

해밀턴이 나타나 설리반과 그의 기사단을 데려가니 마족들은 몬스터만도 못한 존재였다.

물론 상급 마족은 충분히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들이었지만, 길버트 앞에선 고블린 정도의 사냥감일 뿐이었다.

“잘 해줬어요. 카단.”

카단이 성벽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자, 벨리드가 다가와 그에게 물을 건네며 말했다.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설마 저런 적이 나타날 줄이야.”

“어떤 일이 있었어요?”

벨리드는 자연스레 카단을 바라보며 물었고, 카단은 서쪽 방어선에 도착했을 때부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흠. 그러니까 지크 단장님과 몇몇 기사들을 언데드로 만들었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카단이 씁쓸하게 대답하자, 벨리드가 다가와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맘고생도 많이 했겠네요. 그러나 아시죠? 카단 잘못이 아니라는 거. 선택은 지크 단장님께서 하신 거니까.”

그 말에 카단은 씁쓸하지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보다 늦은 이유를 좀 듣고 싶은데요.”

카단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벨리드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어댔다.

“말도 마세요.”

벨리드는 다시 한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더글라스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지원군을 모으려는 순간, 뿔 달린 사슴 가면을 쓴 마족 하나가 나타나 도시를 공격했어요.”

더글라스의 영주가 홀로 전투에 나섰으며, 저항군들은 일반인들을 피신시키고 곧바로 전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때 그 로베른에서 봤던 마족이요?”

“네. 덕분에 오웬 님께서 크게 다치셨어요. 다행히 잘 막아낵니 했지만.”

“그럼 지금 더글라스도 위험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건 아니에요. 그러니 이렇게 지원군을 데리고 올 수 있었죠.”

오웬 더글라스가 마족에게 밀리기 시작한 순간, 벨리드는 곧바로 텔레포트 마법을 통해 길버트가 있는 남쪽 기지로 향했다고 한다.

“길버트 님을 모시고 와 겨우 마족을 내쫓을 수 있었어요.”

“죽이진 못했군요.”

“네. 그 녀석 목적이 누군가를 죽이거나 도시를 공격하기 위함은 아닌 것 같았거든요.”

뿔 달린 사슴 가면을 쓴 마족 ‘페코스’의 목적은 시간 끌기 같았다.

벨리드가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뭐, 어쨌든 오웬 님도 치료 중이시고. 이후 곧바로 길버트 님과 함께 이곳에 오게 된거죠. 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에요.”

벨리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사슴 가면의 목적은 시간 끌기. 아마 지원군들의 발길을 막는 거겠죠.”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두 사람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던 순간.

“카단!”

옆에서 익숙하면서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엔 3년 전보다 성숙해진 알비스가 보였고.

“알비스?”

카단은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그를 향해 달려갔다.

“이, 이게 얼마 만이야! 카단! 다친 곳은 없어? 잘 지냈어?”

“잘 지냈지. 알비스 너는?”

두 사람은 반갑다는 듯 와락 껴안았고, 이어서 카단의 눈에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오랜만이다.”

블랑쉬는 퉁명스러운 얼굴로 카단을 바라보며 말했고, 카단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3년 전이랑 많이 달라졌네.”

블랑쉬는 못 이기는 척 손을 내밀어 카단의 악수를 받아줬다.

“전보다 강해졌다더니, 사실인가 보네.”

“블랑쉬. 오랜만에 대련이나 할래?”

“됐거든. 아직 아니야.”

블랑쉬는 코웃음 치며 악수하던 손을 놓았고, 이내 몸을 휙 돌려버렸다.

그때 카단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어? 그 팔찌 내가 선물했던 거 아니야?”

카단이 블랑쉬 팔에 걸린 팔찌를 발견하며 말하자, 블랑쉬는 재빨리 손으로 팔찌를 가리며 카단을 노려봤다.

“뭐! 도움이 되니까 차고 있던 거지. 너 때문에 차고 있는 건 아니거든?”

블랑쉬에 말에 카단이 피식 웃으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반갑다. 둘 다. 급한 상황은 끝난 것 같으니, 오랜만에 얘기 좀 할까? 교관님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카단이 벨리드를 향해 묻자, 벨리드는 기꺼이 허락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만났을 텐데, 회포는 실컷 풀어도 좋아요. 뒷정리는 저에게 맡기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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