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저 혼자서 도시 라다메스를 탈환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카단이 헛웃음을 삼키며 묻자, 길버트가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그곳에 어떤 적이 있는지도 알 수 없으며, 후퇴한 마족들이 그곳에 머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카단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전쟁에 참여하라 명한다면 불평불만 없이 따르겠지만, 지금 길버트의 제안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아무리 8성이 된다고 해도 혼자서 도시 하나를 탈환해 오라니.
그것도 강력한 적이 있을지도 모르는 도시를.
“우선 도시 라다메스를 지키고 있는 마족은 하나뿐이라네.”
카단이 당황하며 되묻자, 길버트는 자상하게 웃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혼자서 도시를 지키고 있을 정도라면 굉장히 강한 녀석이라는 뜻이겠지? 적어도 최상급 마족으로 추정된다네.”
최상급 마족을 혼자서 잡으라는 뜻인가? 카단은 길버트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자네를 의미 없이 희생시킬 생각은 없어. 나를 포함한 내 직속 부하들이 함께 도시를 향할 것이다.”
다 같이 가되 마족과의 전투는 카단 혼자서 치르는 것.
그것이 이번 훈련의 목표지점이었다.
‘도시를 지키고 있는 마족조차 훈련 대상으로 생각하시는 건가? 그것도 최상급 마족을?’
설명을 들을수록 헛웃음이 나왔다.
당장 8성에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길버트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뭐, 길버트 님이 계신다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생각을 이어가던 카단이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내젓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러자 길버트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무리라고 생각한다면 다 같이 전투를 치러도 상관없다네. 강요하는 건 아니야. 다 같이 사냥하는 것을 선택하겠는가?”
“아뇨. 혼자 해보겠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카단이 당당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도움받을 생각부터 했다니. 나도 긴장의 끈이 풀려버린 건가?’
길버트가 뒤에서 봐주고 마음껏 최상급 마족과 전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경험이었다.
생에 두 번 다시 없을 귀중한 기회.
카단은 굳이 그 기회를 걷어찰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8성이 되어 그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도시를 탈환한다. 무조건.’
카단은 그렇게 다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도시를 하루빨리 탈환하려면 어서 8성이 되어야겠네요.”
“조급할 필요는 없네. 지금처럼 훈련을 늘 이어가다 보면 어떤 깨달음이 생길 수도 있을 테니.”
이어진 길버트의 말에 카단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7성이 되고 3년. 8성이 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지만, 여전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막막하다고 할까요?”
“음. 이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카단이 고민을 던지자, 길버트가 자신의 기다란 턱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샬로트는 망자들의 길에서 8성이 되었다고 하더군.”
“망자들의 길에서요?”
“내가 듣기론 그랬어. 그곳에서 훈련하며 어떤 깨달음을 얻고 8성이 되었다고.”
이어진 길버트의 말에 카단이 눈을 반짝였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당장이라도 망자의 길을 열어 그 안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지금 당장 사용할 만한 마나가 남아있지 않은 상태.
‘새로운 훈련을 하나 추가해야겠군.’
아쉽지만 망자의 길에서 하는 훈련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조금은 도움이 되었나?”
“당장 8성이 되는 건 아니지만, 뭔가 가능성을 열어주신 건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 * *
한 달은 빠르게 지나갔다.
한 달 동안 카단은 늘 아침 일찍부터 체력 훈련을 이어갔으며 오후에는 길버트의 무식한 훈련을 받으며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저녁이 되어 다들 잠을 청하러 사라질 때도 카단은 성벽 너머 널려 있는 영혼의 결정 하나를 흡수한 뒤 망자의 길을 열어 새로운 훈련을 이어갔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드디어 8성인가…?”
카단은 그토록 염원하던 8성의 경지에 올라설 수 있었다.
8성에 도달하기 위한 열쇠는 ‘망자의 길’에 있었다.
네크로맨서는 죽음을 다스리는 자.
죽음의 이해도가 낮다면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망자의 길에서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망자를 만나며 대화를 나눴고, 그렇게 죽음이라는 단어와 점차 가까워졌다.
이내 망자들의 죽음, 망자들의 기운 등을 완벽히 이해하게 되었을 때, 카단은 그토록 원하던 8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8성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도 잠시, 카단은 곧장 길버트가 머무는 막사를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들어오게.”
길버트의 허락이 떨어지자, 카단은 곧바로 막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앉게. 긴히 할 말이 있으니.”
“네.”
카단이 테이블에 앉자, 길버트는 자연스레 따스한 차가 담긴 찻잔을 카단의 앞에 내려놓았다.
“8성이 되었으니, 이제 도시 탈환 계획에 대해서 들려줄까 하는데. 준비되었나?”
길버트의 질문에 카단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간 도시 라다메스를 정찰하고 살펴본 결과, 역시 도시를 지키고 있는 마족은 하나뿐일세.”
“그렇군요.”
“또한 우리의 예상처럼 도시를 지키고 있는 마족은 최상급 마족이지. 불사라고 불린다던데.”
어째서 라다메스를 홀로 지키고 있는 마족이 불사라고 불리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불사의 마족이라. 어떤 놈인지 궁금하기는 하군.’
카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무리 마족이라도 무조건 불사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래. 뭔가가 있겠지. 뭔가가. 아직 거기까진 밝혀내지 못했네. 자네도 무언가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괜히 불사라고 불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길버트는 그렇게 말하며 돌돌 말린 양피지 한 장을 카단에게 건넸다.
“만약 전투 중 혼자서 불가능하다 싶으면 곧바로 이 양피지를 찢어버리게.”
“이건?”
“찢는 순간 하늘로 라이트 마법이 쏘아질 것이네. 도시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다 신호에 맞춰 들어가도록 하겠네.”
8성이 된 카단은 소중한 전력이었다. 훈련을 위해 홀로 도시 라다메스로 보낸다고 하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보낼 수는 없었다.
단지 훈련 때문에 8성이 된 카단은 잃을 순 없었기에 최소한의 대비는 해야 했다.
‘훈련을 만족스럽게 끝내기 위해선 이 양피지를 쓰는 일은 없어야겠네.’
양피지를 건네받은 카단은 고개를 꾸벅인 뒤, 곧바로 안주머니 속으로 양피지를 집어넣었다.
“그럼 언제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자네만 준비되었을 때 출발하면 되네.”
카단은 잠깐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준비되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카단은 그렇게 길버트의 막사를 떠났고, 홀로 남은 길버트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조금 전까지 카단이 앉았던 자리를 바라봤다.
‘설마 했지만 한 달 만에 8성에 도달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무서운 성장 속도로군.’
카단이 3년째 7성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샬로트의 자식이자 유일한 제자, 그리고 가장 빛나는 재능을 보여주었기에 길버트는 시간을 들여 그를 도와주기로 했다.
‘이제 정말 귀중한 전력이 되겠군.’
설마 했지만, 길버트의 선택은 옳았다.
카단을 매일 한계까지 몰아붙였고, 샬로트와의 추억을 꺼내 그에게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카단은 8성에 도달했다.
8성이 되었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왕국에 생존한 네크로맨서 중 8성에 도달한 이가 또 존재할까?
게다가 네크로맨서는 일인 군단이라 불리며 적에게는 재앙으로 여겨지는 존재.
홀로 전장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대단한 존재였다.
‘8성.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그러나 길버트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한 달 동안 훈련을 통해 부족한 전투 경험과 다양한 위기 상황을 경험하게 해주었다지만, 훈련과 실전은 다른 법.
‘이번 전투가 부디 그에게 더 많은 깨달음을 주기를 바라야겠어.’
8성이 된 카단에게 이번 도시 라다메스 탈환을 위한 전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샬로트. 꽤 자랑스럽겠어?”
길버트는 피식 웃으며 혼잣말을 내뱉었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 밖으로 향했다.
* * *
“정말 8성이 될 줄은 몰랐는데, 이건 좀 질투 나는데요?”
성벽에 기대 서 있는 벨리드가 눈썹을 들썩이며 카단에게 말을 걸었다.
“교관님 덕분입니다.”
“제가 뭘 했다고 제 덕분이에요? 다 카단이 열심히 해서 얻어낸 결과죠.”
카단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자, 벨리드는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번에 도시 라다메스 탈환한다고 했는데 맞죠?”
“네. 길버트 님께서 혼자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도시 라다메스를 지키는 적이 하나뿐이라고….”
“카단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8성이 되었다고 무조건 돌격하지 마시고.”
“물론이죠. 모든 상황을 대비할 수는 없어도 방심하진 않을 겁니다.”
“좋네요.”
“그러고 보니 애들이 안 보이네요? 다들 어디 갔습니까?”
“블랑쉬랑 알비스요?”
“네.”
“두 사람이라면 지금쯤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훈련에 몰두하고 있을 거예요.”
벨리드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카단이 8성이 되어서 그런가, 두 사람 모두 눈에 불꽃이 튀더라고요?”
두 사람 역시 도시 더글라스에 머물며 가디언 길버트와 더글라스의 가주 오웬 더글라스에게 훈련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제 막 7성이 되었을 뿐, 8성이 되기엔 한참이나 부족했다.
“카단의 성장이 그들에겐 자극이 되었겠죠. 좋은 현상이에요. 저도 이제 훈련하러 갈 생각이거든요.”
“네?”
“영웅 아카데미 교관 출신으로서 제자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데, 저만 머물러 있을 순 없잖아요?”
벨리드 역시 틈틈이 훈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불멸의 불꽃, 사람들에게 영웅이라 불린다는 부담감 역시 그녀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그럼 교관님은 이곳에 남아 계시는 겁니까?”
“네. 그래도 라다메스 탈환 작전엔 길버트 님이 함께 가시니까 크게 위험하진 않을 거예요. 잘하고 와요. 카단.”
벨리드는 카단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조심스레 토닥여주었다.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 너무 부담갖지 마시고.”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카단은 꾸벅 인사를 전하다 문득 할 말이 떠올랐는 지, 다시 벨리드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교관님. 혹시 사람을 좀 찾으려고 하는데… 어디에 부탁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영웅 아카데미 출신 생도들은 왕국 곳곳에 퍼져 있으니까, 건너 건너 소식을 전하거나 들을 수는 있을 겁니다.”
“아, 영웅 아카데미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누구? 말해봐요.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요.”
벨리드가 고개를 갸웃하자, 카단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잭 카터라고 하는데, 수도에서 주점을 운영하던 분이십니다. 저에겐 음… 삼촌 같은 분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