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4화
“……?”
멋지게 양피지를 찢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텔레포트 스크롤이나 포탈 스크롤이 아니었나?’
잭 카터는 고개를 갸웃하며 카단을 바라봤다.
‘하긴. 전쟁이 시작된 후로 텔레포트 스크롤은 무용지물이 되었잖아? 그럼 무슨 마법이 담긴 스크롤이지?’
잭 카터가 궁금한 듯 카단을 바라보자, 카단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이건 텔레포트 스크롤이 아니고 제가 있는 위치를 특정인에게 알려주는 마법이 담긴 스크롤이에요.”
“네? 그렇다면…?”
잭 카터가 무언가 질문을 이어가려던 찰나.
파앗!
주점 한가운데서 빛이 번쩍하더니 순식간의 한 여성이 나타났다.
“우와. 마법이다.”
“번쩍하더니 짜잔하고 나타났어!”
“우와! 나도 마법사 하고 싶어!”
텔레포트로 등장한 마법사를 보며 아이들은 동경의 대상이라도 발견한 듯 눈을 반짝거렸다.
‘자식들. 언제는 나처럼 되고 싶다더니.’
그 모습에 잭 카터가 입술을 씰룩거렸고, 이내 정신을 차리며 빛과 함께 나타난 마법사를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혁명단 소속 벨리드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벨리드가 인사를 건네자, 잭 카터는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그녀를 맞이했다.
벨리드는 살짝 미소를 지은 뒤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성인은 하나. 나머진 다 아이들인가?’
버려진 도시에서 혼자 아이들을 돌보며 보호자로 지낸 잭 카터에게 왠지 모를 존경심이 느껴졌다.
“대단하시네요. 정말 감탄했어요. 끝까지 이곳에 남아 아이들을 지켜주셨군요.”
“하핫…. 제가 오지랖이 좀 넓어서.”
오지랖이라는 단어에 벨리드가 피식하더니 자연스레 카단을 바라봤다.
“그런 점은 카단이랑 매우 비슷하네요.”
“카단 님의 오지랖은 저보다 심하죠.”
잭 카터가 카단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해맑게 웃으며 벨리드에게 말했다.
“드디어 이 도시를 떠날 수 있게 됐군요.”
“네. 지금 바로 떠나실 수 있어요. 필요한 짐만 챙겨서 나와주시겠어요. 아이들도 다 모아주시고.”
“네. 그러죠.”
벨리드의 제안에 잭 카터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들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잭 카터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이 빠르게 흩어졌고, 주점 안에는 세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그런데 잭 카터 씨.”
카단은 주방으로 향하는 잭 카터를 불러 세웠고, 잭 카터가 뒤를 돌아보자 말을 이었다.
“도둑 길드는 그만두신 겁니까?”
“잠시 일을 쉬고 있을 뿐입니다. 뭐, 지금 당장 복귀해도 웬만한 도둑 길드의 회원들보다 제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잭 카터의 말에 이번엔 벨리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잭 카터 씨는 3년 동안 이 수도에 갇혀 계셨잖아요?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을 텐데?”
정보를 얻을 능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혁명단이나 저항군에게 구조를 요청했을 것이 분명했다.
“제 능력 덕분이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떤 능력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벨리드가 조심스레 묻자, 잭 카터는 잠시 카단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뭐,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영업 비밀이라며 숨길 필요는 없겠군요.”
그 말에 카단도 궁금하단 얼굴로 잭 카터를 바라봤다.
오랜 시간 알고 지냈지만, 도둑 길드의 꽤 높은 길드원. 그리고 샬로트 잉그마르와 친한 사이였다는 것 외에는 잭 카터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당연히 그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도 알 수 없었고.
“마-하-.”
잭 카터가 창문 너머를 향해 얇은 목소리로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카단과 벨리드가 눈을 끔뻑이며 그를 바라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냐앙-
창문 너머로 고양이 울음이 들려왔다.
‘고양이?’
폴짝-
고양이 한 마리가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주점 안으로 들어오더니, 잭 카터에게 다가가 얼굴을 부비기 시작했다.
“이게 제 능력입니다.”
“고양이를 부르는 능력 말씀입니까?”
벨리드가 조심스레 묻자, 잭 카터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뇨. 저는 고양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주로 이 아이들을 통해 정보를 얻죠.”
냐앙.
고양이는 잭 카터가 좋은지 그가 내민 팔에 몸을 비비며 눈을 감았다.
마치 행복하게 웃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혹시 테이머인가? 아니야. 아무리 테이머라도 정보를 얻을 정도로 동물과 소통하는 건 불가능해.’
몬스터나 동물을 다루는 직업인 테이머.
테이머들은 주로 동물의 미세한 감정 변화 따위를 파악하며 소통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테이머라도 동물과 ‘대화’를 나누며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불가능.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죠?”
벨리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벨리드 님이 텔레포트 마법의 재능을 타고난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요?”
선천적 재능.
잭 카터도 타고난 재능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3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도 다 이 녀석들 덕분이죠.”
고양이들이 사냥감이나 식량, 마실 수 있는 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기도 했으며, 외부인이 나타났을 때도 곧바로 달려와 정보를 전해주곤 했다.
고양이들이 정보를 물어다 준 덕분에 풍족하진 않아도 아이들을 보살피며 배고프지 않게 3년이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럼 저희에게 필요한, 혹은 쓸만한 정보가 있을까요?”
벨리드는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고, 잭 카터는 어렵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지난 3년간 마족들의 숨겨진 기지를 몇 개 발견했습니다. 고양이들만으로는 전력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 말에 벨리드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마족들의 숨겨진 기지요? 마족들이 점령한 도시가 아니라 숨겨진 곳이 있다는 겁니까?”
“네. 상당히 많은 마족이 있다고 하더군요. 고양이들의 말에 의하면.”
잭 카터는 고양이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 준 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몰라서 따로 지도에 표시해두었는데, 이렇게 도움을 드릴 수 있겠군요.”
잭 카터는 미소를 지으며 바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더니 이내 바 테이블 아래쪽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가 꺼낸 것은 나무 상자였으며, 그 안에는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지도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이건 마족들의 숨겨진 기지. 그리고 이건 새로 생긴 던전, 이건 생존자들의 위치와 동선을 표시해놓은 지도입니다.”
잭 카터가 설명한 것 외에도 다양한 지도가 있었으며, 벨리드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3년간 그냥 생존하기만 한 게 아니었어.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단순한 도둑 길드의 길드원이라고 하기엔 정보 수집 능력부터 정리하는 능력까지 뛰어났다.
게다가 그가 정리해놓은 자료들은 전부 저항군과 혁명단에게 큰 도움이 될만한 무기들이었다.
“저와 아이들을 구해주신 사례라고 생각하며 이 자료들을 넘기겠습니다.”
잭 카터가 지도를 정리해 상자 안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구해주신 은혜를 갚기에 부족하겠지만, 부디 받아주십시오.”
잭 카터가 정중히 말을 건네자, 벨리드는 양손을 저어가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는 제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설마 고양이와 소통하며 정보를 수집하는 인간이 있을 줄이야.
아무리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지만, 동물과 직접 소통 가능한 사람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혹시 저희는 어디로 가게 됩니까?”
잭 카터가 정리한 상자를 벨리드에게 건네며 물었다.
“남쪽 기지가 안전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곳은 지금 야만족과 전쟁 중이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이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더글라스겠군요.”
“네. 새로 지어진 마탑도 있고, 더글라스의 가주님과 길버트 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그만큼 안전한 곳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벨리드는 그렇게 말하며 잭 카터가 건네는 나무 상자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이 자료는 왕국을 되찾는 데 쓰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큰일을 하셨어요. 이 자료도. 아이들을 지켜주신 것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잭 카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래서 아버지가 이 사람을 신뢰했구나.’
돈 욕심이 다소 있어 보이긴 하나 심성이 따듯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생존할 줄 알며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고 있다.
게다가 고양이들과 소통한다는 특별한 능력까지 지닌 자. 정보원으로도 손색없었으며, 동료로서도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카단 님.”
잭 카터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생각에 잠긴 카단을 불렀다.
“아, 네.”
“이건 카단 님이 필요할 것 같아 준비한 자료입니다.”
잭 카터가 다시 바 테이블로 돌아가더니, 이내 무언가 챙겨 카단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왕국이 숨겨놓았던 고대 네크로맨서의 무덤. 그 위치를 표시해놓은 지도입니다.”
잭 카터의 말에 카단과 벨리드가 동시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고대 네크로맨서의 무덤이요?”
“왕국이 그런 걸 숨겼다고?”
카단도 벨리드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저도 샬로트 님에게 듣기만 했었지, 정확한 위치를 몰랐거든요. 그런데 1년 전에 고양이들을 통해 찾아냈죠.”
“그런데 잭 카터 씨. 이 지도는… 왕성 내부 지도 아닙니까?”
지도는 수도 중앙에 있는 왕성의 내부 지도였다.
“네. 고대 네크로맨서의 무덤은 왕성을 통해서만 갈 수 있거든요. 아마도 전쟁 때문에 결계 마법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고대 네크로맨서의 무덤.
어쩌면 그곳에서 카단에게 필요한 무언가 있지 않을까?
꼭 특별한 장비가 없다고 해서 실망할 것도 없었다. 왕국이 작정하고 숨겨놨던 곳이라면 분명 무언가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직접 안으로 들어가 보진 못했습니다. 아이들을 두고 제가 죽을 순 없어서요.”
잭 카터가 미안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마 고대 네크로맨서의 무덤 안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위치만 파악하고 돌아온 듯했다.
“괜찮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잭 카터는 쭉 카단을 위해 무언가 해주려 노력했다.
“마음에 드신다면 다행이군요.”
“그런데 전 해드린 게 없는데….”
“왜 해주신 게 없습니까? 아직 샬로트 님의 의뢰비도 많이 남았고, 이번에 목숨까지 살려주시지 않았습니까?”
잭 카터가 말하는 사이 여기저기 흩어졌던 아이들이 짐을 잔뜩 싸서 주점으로 돌아왔다.
“저희 왔어요!”
“집에서 자는 애들도 모두 데리고 왔어요!”
“짐도 모두 챙겼어요!”
아이들은 마치 대장에게 보고하듯 손을 번쩍번쩍 들며 얘기했고, 잭 카터는 웃으며 고생했다는 듯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벨리드 님. 저도 짐 좀 챙겨 오겠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편하게 다녀오세요. 시간은 많으니.”
잭 카터가 급히 어디론가 뛰어갔고, 벨리드는 눈썹을 들썩이며 카단에게 시선을 옮겼다.
“카단. 어떻게 할 거예요? 같이 돌아갈 건가요?”
“아뇨. 저는 잭 카터 씨가 남겨준 선물을 확인해보러 가보려고요.”
카단의 대답에 벨리드는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인 뒤 품 안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 세 장을 건넸다.
“카단의 위치를 저에게 알려주는 마법이 담긴 스크롤이에요. 위험한 상황에 제가 필요하다면 고민하지 말고 사용하세요. 곧바로 도우러 올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잭 카터가 짐을 바리바리 챙겨 되돌아왔고, 벨리드는 곧바로 포탈을 만들어냈다.
“한 명씩 차분하게 들어가세요.”
포탈을 통해 아이들이 한 명씩 들어가기 시작했고, 카단은 잠깐 아이들을 바라보다 이내 잭 카터에게 말을 걸었다.
“잭 카터 씨는 이제 어떻게 지내실 생각이세요?”
“당연한 말이지만, 전 도둑 길드 소속입니다. 혁명단과 저항군에 도움은 드리겠지만 소속을 옮길 생각은 없어요. 무엇보다.”
잭 카터는 포탈을 향해 조심스레 들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녀석들이 자리 잡을 때까지는 보호자 역할도 좀 해야 해서요.”
그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끝내자 카단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놀러 갈게요. 지난 3년간 오렌지 주스가 꽤 그리웠거든요.”
“아까 한 잔 드셨잖아요?”
“부족합니다.”
두 사람은 미소를 지었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손을 내밀어 두 손을 맞잡았다.
“부디 무사하십시오. 카단 님.”
“잭 카터 씨도 안전하게 지내세요.”
그 인사를 끝으로 잭 카터는 남은 아이들을 챙겨 포탈 너머로 사라졌고.
“위험한 행동은 금물입니다.”
벨리드 역시 그 말을 남기며 포탈 너머로 사라졌다.
이내 혼자가 된 카단은 잭 카터가 건넨 지도를 바라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고, 이내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지으며 주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대 네크로맨서의 무덤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