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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네크로맨서-176화 (176/186)

제176화

“그러니까 아버지 말씀은 마족들이 이 땅에 마계의 문을 연다는 말씀입니까?”

샬로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마족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카단에게 들려주었다.

그의 입이 멈췄을 때, 카단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리베라 왕국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리베라 왕국은 시작에 불과해.

그들의 목적은 마계의 문을 열어 이 세계를 마족들의 세상으로 바꾸려는 것.

“그, 그게 가능한 겁니까?”

카단이 믿을 수 없다며 되묻자, 샬로트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 가디언 급. 그러니까 8성 이상의 인간 5명과 수만의 인간. 그리고 그 반지 속에 있는 열쇠가 있다면.

열쇠라는 말에 카단이 고개를 갸웃하며 반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도대체 그 열쇠라는 게 어떤 겁니까? 아공간에는 열쇠 모양 같은 건 없었어요.”

-아공간 속에서 ‘1성 네크로맨서의 기초’라는 책을 꺼내 보겠느냐?

“1성이요…?”

-그래. 나에게 기초만 미친 듯이 배웠던 네가 1성 기초 책은 쳐다도 보지 않겠다 싶어서 그곳에 숨겨놨지.

샬로트의 말에 카단이 반신반의하며 아공간 속에서 책 하나를 꺼냈다.

[1성 네크로맨서의 기초]

-책의 중간 부분을 펼쳐봐라.

사락, 사락.

카단이 재빨리 책장을 펼쳤고, 이내 헛웃음을 지으며 샬로트를 바라봤다.

책을 펼치자, 열쇠 모양으로 종이가 파여 있었고 그 안에는 검은색의 열쇠가 놓여 있었다.

“이겁니까?”

-그래. 그게 마족들이 그토록 찾는 열쇠지.

“도대체 이 열쇠가 무엇이기에….”

카단이 검은 열쇠를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특별히 마력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으며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카단. 내가 죽기 전 네크로폴리스에 관해 말한 적이 있었느냐?

“네.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곳을 찾는 것이 자신의 야망이셨다고.”

카단은 샬로트와 마지막 식사를 하며 나눴던 대화를 잠시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 네크로맨서들이 만들었다는 죽은 자들의 도시.

전설 속에 존재하는 그 도시의 이름이 왜 지금 나오는 것일까?

-실은 난 야망을 이뤘단다. 아들아. 그곳은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어.

이어진 샬로트의 말에 카단이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네? 그게 무슨?”

-네크로폴리스는 존재한다. 그 열쇠가 바로 네크로폴리스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다.

믿기지 않았지만, 설마 샬로트가 지금 상황에 거짓말할 리가 없었다.

-이 열쇠가 마족들의 손에 있었고, 그들의 계획엔 네크로폴리스가 꼭 필요했단다.

“네크로폴리스는 죽은 자들의 도시일 뿐인데, 마계의 문을 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씀입니까?”

카단이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샬로트는 카단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크로폴리스. 그곳에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요?”

-그곳이라면 그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마계의 문을 열 수 있지.

샬로트의 말이 사실이라면 네크로폴리스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굉장히 위험한 물건이었다.

“그, 그런데 이 열쇠를 왜 저에게….”

그토록 위험한 물건을 왜 아들의 손에 쥐여 준 것일까?

열쇠를 파괴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며 어딘가 숨겨놓는 방법도 있었을 터.

-뭐, 내가 죽을 때 그 열쇠를 아공간 속에 넣어뒀다면 마족들은 영원히 그 열쇠를 찾지 못했겠지.

샬로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허술한 놈들이 아니다. 분명 어떻게서든 내 아공간을 뒤져볼 생각이었을 거야.

죽음을 각오한 샬로트가 지니고 있기엔 빼앗길 위험이 있었다.

-어딘가 숨겨놓는 것도 위험했고, 그 열쇠를 부서트리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어진 샬로트의 말에 카단이 열쇠를 잠시 바라봤다.

그러자 샬로트가 방긋 웃으며 말을 전했다.

-무엇보다 그 열쇠를 통해 카단 네가 네크로폴리스에 가길 원했다.

“제가요?”

-너도 네크로맨서라면 가보고 싶지 않겠느냐?

네크로폴리스는 고대 네크로맨서의 지식과 고귀한 재료가 가득한 곳.

네크로맨서들에게는 꿈의 땅이라 여겨지는 곳.

카단 역시 그 전설을 알았을 땐, 언젠가 한 번은 찾아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는 아버지를 대신해 그곳을 찾아내겠다는 작은 야망도 품고 있었다.

-네크로폴리스. 그곳이 너에게 힘이 되어줄 것이다.

어쩌면 네크로폴리스의 문을 열 수 있는 이 열쇠는 마족들에게 위험이 될 수도 있던 걸까?

-물론 그 열쇠만으로 네크로폴리스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열쇠만으로도 네크로폴리스로 들어갈 수 없다니? 카단은 눈을 끔뻑이며 이어질 샬로트의 말을 기다렸다.

-당장 문을 열 수 있겠지만, 그 몸으로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겠지. 아마 그 안에 오래 머문다면 너의 존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어째서죠?”

-그곳에선 죽은 자들만이 자유로울 수 있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시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거부한다.

신이 없는 세계. 하지만 뚜렷한 성질이 존재하는 도시.

그렇다면 어떻게 그곳에 들어가 힘을 얻으란 말인가?

“마족들은 그곳에 마계의 문을 열 생각이라면서요?”

-마족들의 목적은 네크로폴리스를 탐방하는 게 아니야. 문 너머에서 바로 마계로 통하는 문을 열 것이다.

그 잠시의 시간이라면 버틸 것이다. 샬로트는 그렇게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아버지도 다녀오셨다면 분명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이지. 몇 가지 준비물이 필요하다. 우선 잭 카터를 통해 너에게 전달한 하얀색 코트.

샬로트의 말에 카단은 재빨리 아공간을 열어 하얀 코트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래. 그리고 북쪽에 있는 네크로맨서의 성유물.

“아버지의 흔적이 가리키는 곳….”

-그건 아직 찾아내지 못한 모양이구나.

“왕국의 북쪽이 마족들에게 점령된 상태라 쉽게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작에게 줬지만, 용병왕에게 빼앗겨버린 구두.

“용병왕이요…?”

-아이작이 내기에서 져서 빼앗겼다고 하는구나. 멍청한 아이작.

샬로트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마지막으로 왕국 남쪽. 야만인들이 지키고 있는 재단, 여신상에 걸려 있는 목걸이.

샬로트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여신상에 걸린 목걸이나, 야만족에 관한 정보는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카단은 얼굴에 물음표를 그렸고, 샬로트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목걸이에 관한 정보는 북쪽 성유물이 있는 곳에 적어 뒀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아, 그렇군요.”

-아무튼 이 네 가지를 몸에 지니고 있다면 네크로폴리스 안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무기를 들고 목걸이를 차고 있다고 해서 도시의 법칙을 무시할 수 있다니.

-조금 전 말한 물건들은 전부 네크로폴리스에 있던 물건들. 그것들을 지닌 것만으로도 네크로폴리스는 너라는 존재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샬로트의 말 덕분에 방향성이 뚜렷해졌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하며 어떤 것을 실행해야 하는 지.

-흠. 아무래도 슬슬 마나가 부족한 모양이구나.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그 말대로 반투명한 샬로트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순간 또 다시 이별을 맞이해야 하는 카단의 얼굴엔 불안감이 생겼다.

-아쉬워하지 마라. 아들아. 죽음은 당연한 것. 그리고 이건 내 의지의 한 부분일 뿐이니까.

샬로트는 자상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 그리고 네크로폴리스의 문을 열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어. 그중 한 곳이 여기다.

샬로트는 손바닥으로 주변 공간을 가리켰다.

왕성 지하에 숨겨진 고대 네크로맨서의 무덤. 이곳이 열쇠를 사용할 수 있는 곳 중 하나였다.

-재앙이 될지 영웅이 될지 알 수 없었는데, 너는 영웅이 되었구나. 잘 자라주어 기쁘다.

“아버지….”

-아들아. 나를 뛰어넘었으니, 이제는 너만의 역사를 만들어 새로운 전설을 세워 보거라.

샬로트는 피식 웃으며 카단에게 다가왔다.

비록 서로 만질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샬로트는 마치 카단의 머리를 쓰다듬듯 손을 움직여댔다.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아이가 이렇게 자랐구나.

점차 샬로트의 모습이 옅어졌고, 샬로트는 가볍게 웃으며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카단. 어디 가서 고개 숙이고 다니지 말고, 당당히 어깨를 펴고 살아. 너는 자랑스러운 잉그마르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다.

그 말을 끝으로 샬로트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고, 푸른 빛을 내던 돌로 만들어진 관도 더는 빛을 뿜어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손에 흰 코트를 든 채 조금 전까지 샬로트가 있던 곳을 바라보던 카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네크로폴리스. 아버지라면 그곳에도 무언가 남기셨겠지.’

아쉬워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다.

샬로트의 말대로 조금 전 샬로트의 모습은 마나에 남겨진 의지일뿐, 그의 영혼이나 실체가 아니었다.

이미 그의 죽음에 슬퍼했고, 분노했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짙어지긴 했지만, 절망할 필요까진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나마 샬로트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카단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북쪽 네크로맨서의 성유물과 남쪽 야만인들이 지키는 여신상에서 목걸이를 챙겨오는 것.

그리고.

“용병왕님의 소원을 이렇게 써야 하다니.”

용병왕에게서 구두를 되찾아오는 것이었다.

이 중에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용병왕을 찾아가는 것.

‘지금쯤 어디에 계시려나.’

우선 도시 더글라스로 돌아가야겠군.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후련한 표정으로 고대 네크로맨서의 무덤을 빠져나왔다.

* * *

카단은 벨리드를 불러 자기를 데려가라고 하기엔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그닥! 다그닥!

그렇기에 수도에서부터 도시 더글라스까지 카단은 해골마를 타고 직접 달려왔다.

“역시 생각보다 멀군.”

도시 더글라스를 찾아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과거 블랑쉬의 생일을 빌미로 가주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길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성문을 넘어서는 것 역시 어렵지 않았다.

문 앞을 막아선 경비대에게 신상정보를 전해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문을 열어주었다.

카단은 곧바로 벨리드를 찾아나섰고, 다행히 혁명단이 머무는 여관에서 그녀를 찾아낼 수 있었다.

“카단. 잘 다녀왔어요?”

“네. 좋은 경험을 하고왔습니다.”

“그 경험이 어떤 경험인지 궁금한데.”

“아버지를 만났어요.”

그 말에 벨리드가 깜짝 놀라더니, 이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샬로트 님이 마나에 의지를 담아 그곳에 넣어두셨던 모양이군요.”

“네. 정확합니다.”

“오랜만에 뵈어서 좋았겠네요.”

벨리드가 피식 웃으며 따듯한 김이 올라오는 차 한 잔을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아, 벨리드 님. 이렇게 찾아오자마자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부탁할 게 있군요?”

“네. 혹시 용병왕님을 만나 뵈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용병왕님이요?”

벨리드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되묻자, 카단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소원이 생겼거든요.”

“용병왕? 소원? 도대체 무슨 말이지….”

“뭐, 그런 게 있습니다. 용병왕님과 저. 둘만 알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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