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78화 (178/186)

제178화

“제이드. 또 낚시나 하며 허송세월하고 있군.”

“아이작 네 놈이냐? 시체나 찾아다닐 것이지 여긴 무슨 일이야?”

“심심할 것 같아서 말 상대나 해주려고 찾아왔다.”

“낚시는 원래 심심해야 제맛이야. 물고기들 내쫓지 말고 꺼져라.”

제이드가 불편하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낚싯대를 바라봤다.

“역시 한 마리도 못 잡았군.”

“신경 쓰지 말고 가라니까?”

다시 아이작이 말을 걸어오자 제이드가 언성을 높였다.

“그러지 말고 오랜만에 내기나 하나 하지.”

“내기?”

“누가 잡은 물고기가 더 큰지, 내기 한 번 하자고.”

아이작의 제안에 제이드가 무언가 고민이 되는 듯 미간을 움찔거렸다.

그러자 아이작이 고민하는 그를 비웃듯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설마 용병왕이라고 불리는 놈이 겁먹어서 내기에 응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인마! 내가 너처럼 언데드 뒤에 숨어서 싸우는 그런 놈인 줄 알아?”

“그럼 내기를 받아들이는 거지?”

“뭘 걸고 내기할 건데?”

“이기는 사람에게 자기가 지닌 가장 소중한 물건을 주는 것으로 하지.”

“그거 마음에 드는 제안이군.”

제이드가 제안을 받아들이자, 아이작은 곧바로 아공간을 열어 뼈로 만들어진 낚싯대를 꺼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겼다!”

제이드가 내기에서 승리하게 되었고,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아이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놓으시지. 영웅 아카데미의 교수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하군.”

“쯧. 이럴 때만 운이 없군.”

아이작은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공간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이게 뭐야?”

“뭐긴. 나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지.”

아이작이 꺼낸 건 낡고 닳은 검은색 구두였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오랜만에 한 판 붙자고?”

제이드는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났는지 오러를 활성화하며 아이작을 노려봤다.

“죽음의 신에게 맹세코 이 구두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다.”

그러자 아이작은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신발을 내밀었다.

“이게 뭔데? 뭐 특별한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거야?”

신들에게 맹세까지 하니, 제이드의 화가 자연스레 수그러들었다.

“나도 잘 몰라.”

“너도 잘 모르는 이 낡아빠진 신발이 너한테 가장 소중한 물건이라고?”

“그래. 꼭 빼앗으러 올 테니 그때까지 잘 간직해라.”

아이작은 볼일이 끝났다는 듯 손을 흔들며 어딘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제이드가 당황한 듯 아이작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

“인마! 그게 언젠데?”

“내가 죽은 뒤?”

“이 개자식이!”

* * *

잠시 과거를 떠올린 용병왕 제이드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말 죽은 뒤 신발을 찾으러 왔군. 아이작 녀석. 치사하게 직접 오지 않고 제자를 보내다니.’

당당하게 신발을 달라며 손을 내미는 카단을 바라보며 제이드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소원이라면 들어줘야지. 약속은 약속이니까.”

제이드는 곧바로 반지가 끼워진 손을 옆으로 내밀었고 이어서 그의 옆으로 아공간이 열렸다.

“자, 이 구두가 아이작이 내기에서 진 후 내게 건넸던 구두다. 이걸 찾고 있는 거지?”

낡은 구두를 꺼내 보이자, 카단은 멍하니 구두를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녀석이 내기에 져서 나에게 줬던 신발은 이것뿐이다. 네가 찾는 신발이 이거겠지. 그런데.”

신발을 건네려던 제이드가 잠깐 멈칫하며 질문을 던졌다.

“이 신발이 원래 샬로트 님의 신발이었다고?”

“네. 제가 듣기론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이 신발을 아이작 님에게 드렸다고.”

카단이 대답하자 제이드의 미간이 좁혀졌다.

‘빌어먹을 아이작 놈. 샬로트 님에게 받은 물건이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던 거냐?’

제이드는 코를 찡그리더니, 이내 미련 없다는 듯 카단에게 신발을 건네주었다.

“가져가라. 뭐, 나에겐 쓸모도 없는 신발이니.”

낡은 구두는 카단의 손 위로 놓였고, 카단은 피식 웃으며 신발을 바라봤다.

‘잘 관리하셨네.’

아공간에 넣어뒀다지만, 먼지 하나 없어 보였다.

아마도 이 신발은 용병왕인 제이드가 오랜 친구인 아이작을 추억할 수 있는 어떤 매개체 역할을 해왔던 듯했다.

‘확실히 망자의 기운이 느껴진다.’

낡은 구두에서는 어쩐지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카단. 오랜만에 뵙는군요.”

카단과 용병왕이 볼일이 끝났다는 걸 눈치챈 아론 트라팔가가 자상하게 웃으며 카단에게 다가왔다.

“건강하셔서 다행입니다.”

카단은 재빨리 아공간 속으로 낡은 구두를 넣은 뒤 도시 트라팔가의 주인인 아론 트라팔가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저항군과 혁명단, 그리고 용병들 덕분에 이 도시가 조금은 평화로워졌습니다.”

“회의를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는데….”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이 찾아왔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회의를 기다려달라고 할 순 없죠.”

아론은 전보다 성격이 더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건지, 어쩐지 그의 얼굴에 생겨났던 주름이 조금은 펴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익숙한 구도로군요. 3년 전 이곳에서 사건이 있었을 때도 용병왕 님과 저 그리고 카단 님이 계셨는데.”

아론은 무언가 추억하는 듯한 얼굴로 회의실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때는 아이작님도 계셨고 덱스터 경도 있었죠.”

그러고 보니 콜린퍼스 기사단이 지키는 서쪽 방어선에서 부기사단장이었던 덱스터를 본 적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두 분은 영원히 이곳에 올 수 없게 되셨군요.”

이어진 아론의 말에 카단은 짐작할 수 있었다.

3년 전 콜린퍼스 기사단의 기사 ‘앤서니’ 사망 사건으로 도시 트라팔가를 찾았던 부기사단장 덱스터.

그는 마족과의 전쟁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는 걸.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전쟁이 길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죠.”

아론이 씁쓸하게 말을 끝내자, 용병왕 제이드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 감상에 젖을 시간 있으면 회의나 이어서 하는 게 어떻습니까?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소?”

“이런. 나이가 드니 이상하게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아론은 재빨리 눈물을 훔치며 카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살아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단.”

“저 역시 감사드립니다.”

아론이 정중히 고개를 숙여 말하자, 카단도 재빨리 고개를 숙여 말했다.

“트라팔가는 최남단. 정확히 말하면 남동쪽에 위치한 곳이라 다른 도시에 비해 안전했습니다.”

마족과 전쟁이 시작됐음에도 최남단에 위치한 트라팔가와 에어록손은 전쟁의 피해가 거의 없었다.

남동쪽과 남서쪽에 위치한 두 도시는 저항군의 기지에 제격이었고, 아론의 말처럼 안전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 저 때문에 회의가 멈춰졌으니, 얼른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죄송하고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순간 카단은 회의를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며 공손히 말을 전하며 회의실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자 아론이 재빨리 카단을 불러세웠다.

“이왕 온 김에 회의에 참석해보시겠습니까? 벨리드 님도 편히 앉으시지요.”

아론의 제안에 벨리드가 조용히 고개만 돌려 카단을 바라봤다.

‘이 도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긴 한데.’

과연 어떻게 몬스터 침공에 대비하며, 마족들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했다.

‘뭐, 여신상에 걸린 목걸이가 어디로 가는 건 아닐 테니.’

이내 카단은 고민이 끝났는지 벨리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단과 벨리드는 아론의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았고, 곧이어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를 어디까지 했었죠?”

아론이 용병왕 제이드와 가디언 필립을 바라보며 묻자, 제이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필립 님께서 동쪽에 있는 절망의 평원까지 밀어붙이자 하셨습니다.”

“아, 그렇죠. 그래서 용병왕 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가능할까요?”

“글쎄. 모르겠군요. 아시다시피 절망의 평원은 워낙 악명이 높은 지역이라….”

제이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아론이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절망의 평원이라면….’

카단 역시 알고 있는 곳이었다.

가디언조차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통제구역이자 왕국의 대표적인 위험지역.

‘분명 루나도 가까이 가기 꺼렸던 곳인데.’

카단도 궁금하긴 했다.

도대체 절망의 평원에 무엇이 있기에 통제구역이 되었고 루나조차도 가까이 가기 싫어했는지.

“마족에게 신경 쓸 시간도 모자랍니다. 그러니 몬스터들이 몰려오는 절망의 평원을 공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잠깐 정적이 흐르자, 필립이 천천히 입을 열어 자기 의견을 말했다.

“그렇지만 저항군과 혁명단을 이끌고 절망의 평원까지 들어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용병들 역시 그런 위험한 곳에 들여보낼 수는 없습니다.”

마족과 전쟁 중인 지금은 병사 한 명마저도 소중한 시기.

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용병왕과 트라팔가 영주의 의견이었다.

“필립 님 역시 절망의 평원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시지 않습니까?”

아론 트라팔가가 조심스레 묻자, 필립이 무언가 고민하는 듯 미간을 좁혔다.

“저 역시 잘 알지는 못하나, 그곳엔 끔찍한 것이 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트라팔가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저 역시 그 소문은 들었습니다.”

아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 할아버님 되시는 분께서 어떤 불길한 존재를 피해 몬스터들이 피난 오듯 이 도시로 침공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필립은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디언들조차 손쉽게 상대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그 존재가 마족입니까?”

이번엔 용병왕 제이드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아뇨. 마족은 아닙니다.”

필립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정말 소문일 뿐이지만, 그곳에 드래곤 레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말에 회의실에 마치 겨울이 찾아오기라도 한 듯 한기가 맴돌았다.

그 누구도 말을 내뱉지 못하고 헛웃음만 짓고 있었다.

‘드래곤?’

카단 입을 쩍 벌린 채 충격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세계에선 드래곤은 환상 속 존재가 아니었다.

3년 전 아카데미를 지키기 위해 아이작이 ‘본 드래곤’을 소환한 걸 본 적 있었기에 카단 역시 드래곤이라는 말에 현실적인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피, 필립 님. 그 말이 사실입니까?”

얼마나 놀랐으면 절망의 평원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트라팔가’에서 평생을 살아온 아론이 말을 더듬으며 되물었다.

“사실이 아니라 소문입니다. 드래곤이 아니더라도 위험한 존재가 있다는 건 확실하지만요.”

“내 평생의 소원이 드래곤 헌터라는 업적을 세우는 거긴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겁부터 나는군.”

용병왕 제이드가 내뱉는 혼잣말에도 미묘한 떨림이 느껴졌다.

어쩌면 드래곤은 마족보다도 위험한 존재이지 않을까?

카단은 세 사람의 반응을 살피며 생각했다.

“저기.”

고요한 분위기가 이어지던 중 카단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벨리드를 포함해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카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말 드래곤이 있는지 확인은 해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카단의 질문에 용병왕 제이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확인해서 드래곤이 존재하면 어쩌려고?”

“뭐, 마족들을 유인하는 거죠. 드래곤은 자기 영역에 침범하는 걸 싫어하잖아요?”

“드래곤이랑 마족이랑 싸움을 붙이자는 말이냐?”

용병왕의 질문에 카단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만약 드래곤이 없으면 저희야 좋은 거 아닙니까? 그러니 확인해보는 게 어떨까요?”

카단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필립이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소수정예로 정찰대를 꾸리는 것도 좋겠군요. 정찰대는 제가 이끌도록 하죠. 정말 드래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필립 님이라지만 위험합니다. 절망의 평원으로 가는 길에 몬스터도 잔뜩 있으니까요.”

그러자 아론이 급히 고개를 저으며 그를 말리려 했다.

“몬스터들쯤이야 여기 용병왕 님도 계시고. 또 이곳엔 제법 뛰어난 네크로맨서가 둘이나 있지 않습니까?”

필립의 말에 카단이 순간 의문이 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둘?’

트라팔가에 또 다른 네크로맨서가 있다는 말인가?

‘아, 맞다.’

이내 카단의 머릿속으로 반가운 얼굴이 떠올랐고, 카단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가디언님과 용병왕 님. 그리고 네크로맨서가 둘이면 굳이 많은 인원은 필요 없겠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