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80화 (180/186)

제180화

절망의 평원이 순식간에 켄타우로스들의 피로 물들었다.

켄타우로스가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라지만 가디언이 이끄는 정찰대를 이기긴 힘들었다.

가디언 필립을 제외한 정찰대원은 고작 4명.

그러나 그 4명 각각의 전투력은 어느 전쟁터라도 분위기를 바꿀 수 있을 정도였다.

용병왕 제이드와 불멸의 불꽃 벨리드야 이미 워낙 유명한 영웅들이었고.

“귀한 재료가 잔뜩 쌓였네.”

“딱 절반씩 가져가도록 하죠.”

아이작의 마지막 제자인 에스더와 카단까지.

그들의 전투는 처음 호흡을 맞춰보는 것이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러웠다.

전투는 순식간에 종료되었고, 각종 무기를 들고 달려오던 수천의 켄타우로스는 생기를 잃고 평원 바닥에 시체가 되어 눕게 되었다.

“켄타우로스로 해골 병사를 만들면 기동력도 챙길 수 있고, 언데드 주제에 활도 잘 쏘고 창도 잘 다뤄.”

“아쉽게도 데스나이트로 만들만한 녀석은 보이지 않네요.”

에스더와 카단이 기쁘다는 듯 시체를 바라보며 말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용병왕 제이드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잔뜩 쌓인 시체를 보며 좋아하는 인간들이라니. 역시 난 네크로맨서랑 안 맞아.”

그러자 벨리드가 피식 웃으며 용병왕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던전을 공략하고 금은보화가 잔뜩 쌓인 것을 발견했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지 않을까요?”

“흠. 너희 둘. 저 말 인간들 시체 챙기려면 빨리 챙겨라.”

제이드는 괜히 코를 찡그리며 퉁명스럽게 말했고, 카단과 에스더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아공간을 열었다.

잠시 후.

“회의라고 해서 거창할 건 없습니다.”

카단과 에스더 덕분에 절망의 평원 위에 놓인 켄타우로스의 시체들이 사라지고, 필립은 회의를 시작하자며 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조를 어떤 식으로 나누는 게 좋을지, 의견 있는 분 있습니까?”

필립의 물음에 제이드가 먼저 손을 들며 말했다.

“네크로맨서 둘을 저희가 데리고 다니고 벨리드 양이 베이스캠프를 지키는 게 어떻습니까?”

가장 강한 두 사람이 가장 어린 두 사람을 데리고 다니는 것.

사실상 가장 깔끔한 선택지였다.

“저도 의견이 있습니다.”

필립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순간, 카단이 손을 들어 말했다.

“말해보게.”

“제 생각이지만, 굳이 베이스 캠프를 지킬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필립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베이스캠프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유는?”

“저희 인원이 수십, 수백도 아니며 베이스캠프에 중요한 물건을 두고 다닐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필립은 그 말에 동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베이스캠프라고 해도 천막으로 지어진 5개의 막사만 있을 뿐, 굳이 이곳을 지킬 필요는 없었다.

만약 몬스터가 찾아와 베이스캠프를 망가트린다고 해도 챙겨왔던 여분의 막사를 이용해 다시 설치하면 그만.

“흩어졌다가 다시 모일 장소가 필요한 거라면 표식만 해놔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카단의 말이 끝나자 필립을 제외한 다른 대원들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던 대로 하던 습관이 있어서 당연히 베이스캠프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버렸군.”

고개를 끄덕이던 제이드가 다시 필립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3인 1조, 2인 1조 이렇게 나누시겠습니까?”

“그것도 의견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카단이 손을 들며 말했다.

대원들이 전부 카단을 바라봤고, 카단은 들었던 손을 내리며 말을 이었다.

“네 분이 팀을 나눠주시고, 저는 이 녀석과 함께 다니겠습니다. 총 3팀이 되니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평범한 곳이라면 모를까 여긴 절망의 평원일세. 자네 혼자 보낼 수는 없어.”

그러자 필립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 대답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는지 모르기에 아직 어린 카단을 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카단이라면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자 벨리드가 조심스레 손을 들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기엔 어려 보여도 8성 네크로맨서입니다. 위험한 상황도 잘 대처할 겁니다.”

벨리드의 말에도 필립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대원들이 사고에 휘말리는 걸 원치 않는 것은 당연했기에 선택은 신중해야 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필립이 입을 다물고 있자, 벨리드가 품에서 2개의 목걸이를 꺼냈다.

“그건 뭐지?”

“영웅 아카데미에서 쓰던 목걸이입니다. 착용자가 위험한 상황에 부닥치면 제가 낀 반지에서 진동이 느껴지게 되어 있어요.”

게다가 목걸이의 위치까지 감지할 수 있었기에 위기 상황에 벨리드의 텔레포트 마법으로 도우러 갈 수 있을 것이다.

“흠. 쓸만한 목걸이로군.”

“제 전용이라 어디에다 팔 수 없는 게 아쉽긴 하지만요.”

“좋네. 그럼 그렇게 하지.”

카단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조를 나누는 작업은 빠르게 이뤄졌다.

필립과 에스더, 제이드와 벨리드.

그리고 카단과 루나까지.

“제이드, 자네가 벨리드 양과 함께 몬스터들이 어디서 나타나는지를 알아봐주게.”

“알겠습니다. 그럼 필립 님과 카단이 숨겨진 출입구를 찾는 거죠?”

제이드의 질문에 필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출발하지. 해가 지기 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도록.”

총 3팀으로 나눠진 정찰대는 곧바로 베이스캠프를 중점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 * *

“루나. 어때? 뭐가 좀 느껴져?”

한참 루나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카단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응. 사방에 불길한 기운이 가득해.”

루나는 걸음을 멈추곤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녀가 느끼는 ‘불길한 기운’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듯했다.

“뭔지 몰라도 빨리 찾고 가고 싶어! 이 기운 너무 싫어!”

쿵! 쿵!

루나는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발을 굴러댔다.

작은 발로 바닥을 굴렀지만, 마치 거인이 걸어오는 듯 땅이 울려댔다.

쩌적.

“응?”

그때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루나는 눈을 끔뻑이며 카단을 바라봤다.

“카단. 미안.”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해쭉 웃었고.

쩌저저적!

빠르게 땅이 갈라지더니, 이내 바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카단과 루나는 재빨리 땅을 박차며 옆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어라?”

그러나 마치 무언가 발목을 붙잡고 있는 듯 몸이 공중에 뜨지 않았고.

“으아아악!”

카단과 루나는 그대로 구멍이 뚫린 바닥으로 빠르게 낙하하고 말았다.

풍덩! 풍덩!

다행히 그들이 추락한 곳은 맨바닥이 아닌 물웅덩이였다.

“푸하!”

카단이 먼저 물 밖으로 빠져나왔고, 이어서 루나도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미안…. 바닥을 구른다고 땅이 꺼질지는 몰랐어.”

루나는 죄책감 가득한 표정으로 사과를 전했고, 카단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안 다쳤으면 됐지. 떨어질 때 마법으로 보호해주지 않았으면 물에 떨어졌어도 크게 다쳤을 거야.”

“휴. 그나저나 우리 꽤 깊은 곳에 떨어졌네?”

고개를 들어보니, 천장은 어둡기만 했다.

루나가 실수로 만들어낸 거대한 구멍, 카단과 루나가 빠진 구멍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게. 꽤 큰 구멍이 생겼으면 적어도 빛이 새어 들어와야 할 텐데.”

불행 중 다행이라면 깊은 곳까지 추락했음에도 전혀 어둡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둠이 시야를 방해하지 않았고, 어딘가에서 은은하게 빛을 비추기라도 하듯 밝게 느껴졌다.

“그런데 카단.”

카단이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루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카단을 불렀다.

“응?”

“아무래도 찾은 것 같은데?”

“뭘?”

“숨겨진 통로.”

루나는 물속에서 손을 꺼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을 보니 동굴 입구 같은 것이 보였다.

“저기에서 그 기운이 느껴져?”

“응. 아까보다 더 진하게 느껴져.”

“일단 저기까지 가볼까?”

카단과 루나는 곧바로 헤엄쳐 물을 빠져나왔고, 동굴 입구 앞에 멈춰 섰다.

“어떻게 할래? 내가 날아서 사람들 데려올까?”

카단은 스스로는 날 수 없었지만, 루나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었다.

숨겨진 통로를 찾았다면 정찰대를 부르는 것이 가장 안정한 방법.

“그럼 부탁할게.”

카단이 고개를 끄덕이자, 루나는 곧바로 마나를 활성화했고 그녀의 몸이 둥실하고 공중에 떠올랐다.

“혼자 들어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 말을 끝으로 루나는 천장을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꺅!”

루나의 비명이 들려왔고.

풍덩!

루나는 다시 빠르게 추락해 물웅덩이로 빠지고 말았다.

“루나! 왜 그래? 괜찮아?”

카단인 깜짝 놀라며 물속에 뛰어들려 했지만, 다행히 루나가 곧바로 물 밖으로 빠져나와 카단을 향해 날아왔다.

“망했어.”

“왜?”

“결계야. 분명 들어올 땐 아무것도 없었는데, 천장에 결계가 처져 있어.”

들어온 곳이 막혔다는 말에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동굴 입구를 바라봤다.

‘마치 이곳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것 같네. 그것도 아니라면 초대되지 않은 손님이라 가만두지 않겠다. 뭐 그런 건가?’

천장을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면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자. 다른 출구를 찾아보는 수밖에.”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오히려 좋지. 교관님이 주신 목걸이로 우리 위치를 찾아낼 테니까.”

카단이 해맑게 웃으며 답하자, 루나는 입술을 삐쭉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텔레포트 마법으로 결계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아무튼 들어가 보자.”

카단과 루나는 동시에 한숨을 내뱉으며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굴 안 역시 어둡지 않았기에 횃불을 들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

덕분에 카단과 루나는 빠르게 걸음을 옮길 수 있었고, 한참을 걷던 끝에 공터처럼 넓은 공간을 마주하게 됐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높고, 넓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공간이었다.

“루나. 그 불길하다는 기운이 어느 쪽에서 느껴져?”

“사방에서 느껴지긴 해. 그런데 이쪽이 가장 강하게 느껴져.”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최대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과 멀어져야 할까?

“루나. 여기까지 왔는데 그 기운의 정체까지만 확인하고 갈까?”

“드래곤이면 어쩌려고?”

“설마 드래곤이겠어? 게다가 이 동굴의 주인이 드래곤이라면 이미 우린 죽은 목숨일 텐데?”

드래곤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알려졌다.

만약 이곳이 드래곤 레어였다면 카단과 루나가 물웅덩이에 빠진 순간 각종 마법과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게 됐을 것이다.

“그런데 루나. 드래곤을 보거나 만난 적 있어?”

“아니. 말로만 들어봤지, 보거나 만난 적은 없어.”

“그럼 네가 느끼는 그 불길한 기운. 드래곤이 풍기는 피어 같은 게 아닐까?”

카단이 조심스레 묻자, 루나가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말로는 드래곤은 마나가 풍부해서 기분 좋은 기운을 풍긴대.”

“그럼 여긴 드래곤 레어가 아니란 거네?”

“흠. 그렇게 되나?”

불길한 기운의 정체가 드래곤이 아니라면 확인까지만 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카단은 그렇게 생각하며 루나를 바라봤고, 루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겠다. 우선 가보자. 여기까지 오니까 나도 궁금하네. 이 기운의 정체가 뭔지.”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고, 카단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얼마나 걸었을까?

“여기다.”

루나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걸음을 멈췄다.

그녀가 가리킨 것은 넓은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작은 문이었다.

카단에게는 너무 익숙한 크기의 문. 인간들이나 드나들 법한 작은 문이었다.

“여기?”

“응. 이 안에서 그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

불길한 기운의 정체가 무엇일까? 어떤 미친 마법사? 아니면 타락한 어떤 존재?

‘여기까지 와서 도망칠 순 없지. 어차피 도망갈 곳도 없고.’

카단은 짧게 심호흡을 한 뒤 곧바로 문을 열었다.

철컥.

오래된 문처럼 보였으나, 그 어떤 거리낌도 없이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허….”

활짝 열린 문 너머의 공간을 확인하는 순간, 카단과 루나는 헛숨을 들이키며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드,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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