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폭 네크로맨서-181화 (181/186)

제181화

“여기에 왜?”

카단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 옆에 있던 루나는 넋을 잃은 채 문 너머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드래곤.

지상 최강의 생명체로 알려진 전설 속의 존재.

위대함 마저 느껴지는 그 존재가 뼈만 남은 채 문 너머의 공간을 지키고 있었다.

‘설마 이런 걸 보게 될 줄이야.’

조금의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는 뼈만 남은 드래곤.

그러나 왠지 모를 위엄이 느껴졌고, 숨 막힐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고고하게 꽈리를 틀고 앉은 채 죽음을 맞이한 모습.

박물관에 전시해도 좋다고 생각될 정도로 드래곤의 뼈는 살아생전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가디언이나 최상급 마족을 마주했을 때도 느껴보지 못했을 압박감이 카단의 생존 본능에 경고를 울려댔다.

‘만약 이게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기절했겠는데?’

그때 루나가 천천히 입을 열며 무언가 깨달은 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불길한 기운의 정체가 두려움이었어.”

“어?”

카단이 고개를 돌려 루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잔뜩 굳은 얼굴로 드래곤의 뼈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길한 기운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두려운 거였어. 뱀파이어 로드를 마주한다고 해도 느낄 수 없을 두려움.”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커다란 두려움이 뱀파이어인 루나에게는 ‘불길한 기운’으로 느껴졌던 것이었다.

카단도 무언가 공감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뱀파이어처럼 인간을 아득히 넘어설 정도의 감각이 없었기에 멀리 있을 때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 드래곤을 마주하고 나니, 그 역시도 굉장한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두려움의 크기는 가늠할 수조차 없었고, 아득하기까지 한 두려움의 정체를 뚜렷하게 정의할 수가 없었다.

“왜 인간들은 이 기운을 못 느꼈을까?”

“단순한 감각 차이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내가 이 정도로 두려움을 느낀다면 인간들도 분명 느껴야만 했어.”

어떤 마법적 장치라도 되어 있던 것일까?

아니면 카단과 루나보다 먼저 이 드래곤을 발견한 누군가가 어떤 조치를 해놓은 것일까?

“아마도 몬스터들이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몰려가는 건 이 드래곤 때문일 거야.”

이어진 루나의 말에 카단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몬스터들이 어떠한 위험을 느꼈다면 애초에 절망의 평원에 발을 들이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공포와 두려움만 느꼈다면 그랬겠지.”

스륵.

루나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 꽈리를 틀고 죽어간 드래곤의 시체 가리켰다.

그녀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그곳엔 푸른 빛을 내는 무언가가 보였다.

“저게 뭔데?”

“드래곤 하트.”

무한한 마나가 담겼다는 드래곤의 심장.

“저 드래곤 하트를 흡수할 생각은 하지 마. 드래곤 하트를 다룰 수 있는 생명체는 드래곤 외에 없으니까.”

드래곤 하트를 얻어 최강의 마법사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무한한 마나를 내뿜는 드래곤 하트는 감히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도하는 순간 온몸이 찢겨 사라질 거야.”

루나의 경고처럼 드래곤 하트를 다룰 수 있는 건 드래곤뿐이었다.

욕심을 내 드래곤 하트를 흡수했다간, 곧바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드래곤 하트를 가지고 다니다가 마나가 부족할 때마다 흘러 나오는 마나를 흡수할 수는 없을까?

카단이 그렇게 생각하며 루나를 바라보자, 그 생각을 읽었는지 루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애초에 드래곤 하트는 드래곤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힘을 잃어.”

즉, 인간이 욕심내선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저 드래곤 하트가 몬스터들이 몰려드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데?”

“너도 공부를 했으면 알겠지? 생명체들은 마나에게 이끌린다는 것.”

“응. 몬스터들은 인간보다 그 욕구가 강해서 마나가 풍부한 곳에만 찾아간다고 알고 있어.”

“그래. 그렇기에 너희들이 말하는 던전이나 몬스터 서식지는 대체로 마나가 풍부한 곳이야.”

루나의 말대로 던전이나 몬스터 서식지에서는 마나석을 흔하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마 이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지는 마나에 이끌려 자연스레 절망의 평원이라는 곳을 찾아왔겠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온 거네?”

“응. 그런데 막상 와보니 어떤 두려운 존재를 느꼈고 정착하겠다는 마음을 접어버리는 거지.”

그 말에 카단은 이해가 된다는 듯 손가락을 튕기며 답했다.

“갈 곳이 없어진 몬스터들은 근처에서 가장 마나가 강렬하게 느껴지는 곳을 찾았겠네?”

“맞아. 그곳은 당연하게도 인간들이 사는 도시.”

여기까진 이해가 되었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루나. 그런데 왜 절망의 평원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거지? 이렇게 정순한 마나가 흐르는데?”

생기 없는 땅들의 대부분 특징은 ‘마나 고갈’.

마나가 없는 땅에는 그 어떤 식물도 자라날 수 없었다.

그러나 드래곤의 하트에서부터 이처럼 정순한 마나가 흘러나오는데, 어째서 절망의 평원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땅이 되었을까?

“그거야 저 드래곤이 이 땅에 모든 마나를 흡수하고 있으니까.”

“죽었잖아?”

“심장은 멀쩡하잖아. 저 심장이 땅의 마나를 모두 흡수하고 있어.”

“어째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상해보자면 드래곤 하트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

루나 역시 어느 정도 지식만 있을 뿐, 명확한 이유를 밝혀낼 순 없었다.

“저기서 새어 나오는 마나는 이 레어의 결계를 유지해주고 있을 거야.”

“결계를 유지하기 위해 땅의 마나를 전부 흡수한다는 거야?”

“응. 그 정신 나간 결계를 유지하기 위해 꽤 많은 마나가 필요할 테니까.”

드래곤이 살아 있었다면 땅이 황폐해지진 않았을 거야.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문턱을 넘어섰다.

“루나?”

이렇게 쉽게 드래곤의 마지막 침실로 들어서도 될까? 하는 생각에 카단이 급히 루나를 불러세웠다.

“괜찮아. 죽은 지 꽤 오래된 모양이야. 레어를 지키는 그 어떤 존재도 보이지 않잖아?”

루나는 다시 당당히 걸음을 이어갔고, 카단은 그녀의 뒤를 따라 드래곤의 마지막 침실로 들어섰다.

그녀의 말대로 위협이 될 만한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마법적 장치라든지 함정, 드래곤을 지키는 병사조차 보이지 않았다.

드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위압감의 주인은 드래곤의 시체 하나뿐이었다.

“카단. 우린 오늘 위대한 경험을 하게 됐어.”

드래곤 앞에 멈춰 선 루나가 눈을 반짝였다.

얼굴은 여전히 겁에 질린 듯 굳어있지만, 그녀의 눈은 마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아이처럼 반짝거렸다.

“저거 보여?”

루나는 드래곤 하트를 가리켰고, 카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유심히 바라봤다.

드래곤 하트는 뿜어지는 빛 때문인지 푸른 구체 모양을 하고 있었고, 큐빅처럼 생긴 반투명한 막이 그것을 감싸고 있었다.

“아마 드래곤이 죽기 전에 뭘 하긴 한 모양이야. 그렇지 않고서는 뼈만 남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는데, 드래곤 하트가 이렇게 멀쩡할 리 없어.”

그러자 카단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드래곤의 뼈 위로 조심스레 손을 올려놨다.

“뭐해?”

“죽은 드래곤의 기억을 읽어본 네크로맨서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뭐?”

우웅.

루나가 고개를 갸웃하자, 카단은 천천히 마나를 활성화하며 마법을 사용했다.

“네크로맨서는 망자의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거든. 죽기 직전 잠깐의 기억을 훔쳐보는 거긴 하지만.”

“별로 추천하지 않는데.”

루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지만, 카단은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괜찮아.”

파앗!

* * *

크르릉.

힘겹게 숨을 내뱉던 드래곤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우웅!

드래곤은 마법을 이용해 바로 앞에 물의 벽을 만들어냈고, 물의 벽은 마치 거울처럼 드래곤의 모습을 비추었다.

“예언의 드래곤이 그러더군. 예언에 따르면 언젠가 내 기억을 읽는 인간이 찾아온다고.”

드래곤은 물에 비친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마치 누군가가 있다는 듯 말을 전했다.

그 말은 드래곤의 언어가 아닌, 카단의 귀에 익숙한 인간의 언어였다.

“죽고 뼈만 남은 나에게 찾아온 인간이 내 기억을 읽을 때쯤에 다시 마족이 나타난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드래곤은 그렇게 말하며 히쭉 웃음을 지었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종족이라지만, 먼 미래의 인간과 대답을 주고받을 순 없지.”

당연하게도 드래곤은 카단에게 말을 전하기만 할 뿐, 카단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빠르게 말하지. 마왕이 나타났다.”

그 말에 기억을 읽던 카단이 흠칫 놀라고 말았다.

하마터면 마법이 끊길 뻔했다.

“마왕이 이 세계에 나타났고, 풀 따위로 몸을 감싼 인간들은 마족을 막아낼 힘이 없었지.”

드래곤이 살아있던 시절에도 마족이 쳐들어왔던 것일까?

이것은 그 어떤 역사에도 적혀 있지 않은 사건이었다.

“세상은 파멸로 이어졌고, 결국엔 드래곤들이 나설 수밖에 없던 상황이 다가왔지.”

자연사가 아니었던 걸까?

자세히 보니 드래곤의 몸 곳곳에 깊은 상처들이 가득했다.

“생각보다 강하더군. 마왕이란 놈은. 덕분에 많은 드래곤이 죽어버렸다.”

마족과 전쟁을 벌였던 드래곤들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봤다니.

“물론 이겼지. 우린 위대한 드래곤이다. 놈들을 내쫓았으니 네가 여기까지 찾아올 수 있던 게 아니겠느냐? 크하하하하!”

드래곤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큰 소리로 웃어댔고, 드넓은 공간이 쩌렁쩌렁 울려댔다.

“예언의 드래곤. 그 장로 녀석의 말로는 먼 미래. 그러니까 네가 사는 세상엔 우리 종족들이 많이 없을 거라고 하더군.”

그 말은 사실이었다.

드래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기록은 있었지만, 살아있는 드래곤을 마주한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먼 역사 속 기록에도 드래곤을 마주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 네가 날 찾아올 시점이면 다시 마족들이 이 세계에 찾아와 전쟁을 일으켰겠지.”

한 편으로는 소름이 돋아났다.

예측할 수 없는 아득히 먼 과거 속 드래곤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으니까.

“난 죽는 순간부터 너를 기다릴 것이다. 내 심장은 이 땅의 마나를 흡수하며 레어를 지키는 결계를 유지할 것이다.”

루나의 말이 맞았다.

땅이 황폐해질 정도로 마나를 흡수한 드래곤 하트의 마나는 오로지 결계를 유지하는 데 쓰일 뿐이었다.

“인간들의 수준으론 아무리 뛰어나도 넘을 수 없는 결계지만, 아마도 너는 숨겨진 통로를 통해 들어왔겠지. 크르르륵.”

드래곤은 결과도 모르면서 뿌듯하다는 듯 낮게 웃음을 흘렸다.

“다른 드래곤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나를 비웃겠지만, 난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무슨 말을 이어 하려는 걸까?

드래곤은 맑은 눈으로 물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날 찾아온 인간이여. 위대한 존재인 나, 아우로라 녹시우스가 허락한다.”

우웅.

드래곤의 눈이 푸른 빛을 내뿜었다.

“무엇을 해도 좋다. 내 힘을 너에게 빌려주도록 하마.”

드래곤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고고한 생명체인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하냐고?”

질문을 한 적은 없지만, 드래곤은 마치 인간의 질문을 들은 것처럼 반응하며 말을 이었다.

“더러운 마족들이 다스리는 땅에 내 시체가 묻혀 있는 게 싫거든. 그럴 바에야….”

드래곤이 내뿜던 안광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너에게 내 시체를 맡기겠다.”

그 말을 끝으로 드래곤의 눈은 빛을 잃었으며, 그와 동시에 드래곤은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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