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화
“아우로라 녹시우스….”
눈을 뜬 카단이 기억 속 드래곤의 이름을 내뱉었다.
이미 죽음을 맞이해 뼈만 남은 드래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카단. 뭐 좀 알아낸 거라도 있어?”
그때 루나가 옆으로 다가와 카단의 손등을 조심스레 건드리며 물었다.
“응.”
카단은 죽은 드래곤의 기억 속에서 봤던 이야기를 전부 루나에게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에 살던 드래곤이라는 거네?”
“응. 그리고 우릴 기다린 거지. 죽어서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카단은 고개를 돌려 푸른 빛을 내는 드래곤 하트를 바라봤다.
푸른 구체 모형의 드래곤 하트는 여전히 정순한 마나를 분출하고 있었다.
마치 아직 심장만큼은 살아있다는 듯.
“보존 마법과 보호 마법이 걸려 있어.”
루나가 카단을 따라 시선을 옮기더니, 드래곤 하트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드래곤 하트라고 해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다면 저렇게 멀쩡할 리 없거든.”
인간에게 힘을 빌려주기로 결심한 드래곤이 죽기 전 드래곤 하트에 마법을 걸어놓은 모양이다.
루나의 해석은 그러했다.
카단도 그녀의 해석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천천히 드래곤의 뼈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드래곤의 사체를 얻게 될 줄이야.”
모든 네크로맨서의 목표.
궁극의 네크로맨시라 불리는 ‘본 드래곤’의 재료를 이렇게 얻게 될 줄은 몰랐다.
“본 드래곤…. 사용할 수 있어?”
루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물론 못 하지. 일으킬 수도 없어.”
본 드래곤은 9성이 되어야만 일으킬 수 있는 언데드였으며, 지금 카단의 수준으로는 당연하게도 본 드래곤을 일으킬 수 없었다.
3년 전 9성의 벽을 넘지 못했던 아이작이 본 드래곤을 소환할 수 있었던 건 본인의 마나 하트를 파괴했기에 가능한 일.
그는 아카데미를 지키기 위해 평생 모은 힘을 포기해가며 본 드래곤을 소환했었다.
‘지금 당장은 그림의 떡이구나.’
물론 지금 당장 본 드래곤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다.
“일단 아공간 안에 넣어둘 생각이구나?”
“응.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배운 마법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3년간 샬로트의 유적을 따라다니며 몇몇 네크로맨서의 기술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샬로트는 ‘본 드래곤’만을 위한 아공간 마법이 존재했었다.
‘시간이 남아서 닥치는 대로 배운 건데, 이렇게 쓰게 되는구나.’
왕국 최고의 네크로맨서였던 샬로트도 본 드래곤을 일으켰던 적이 없었다.
그는 9성을 넘어섰기에, 충분한 실력은 되었지만 아쉽게도 드래곤의 시체를 구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 자기도 본 드래곤을 다룰 거라며 본 드래곤 전용 아공간 마법을 만들어놨었다.
‘이렇게 보니 아버지는 참 괴짜 같은 분이셨군.’
카단은 피식 웃으며 마나를 활성화했다.
머릿속으론 샬로트에게 배웠던 마법을 떠올렸다.
그러자.
우웅!
검푸른 마나가 카단의 몸에서 흘러나와 드래곤 시체 밑으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법진이 완성되었고 마법진에서부터 나오는 푸른빛이 드래곤의 시체를 감쌌다.
파앗!
빛은 한 번 더 밝게 빛을 내뿜었고, 그 빛이 점차 사라질 때쯤 드래곤의 시체 역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휴.”
본 드래곤 전용 아공간에 드래곤 시체를 넣는 데 성공한 카단은 개운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카단. 나 궁금한 게 있어.”
카단이 마법을 끝내며 마나를 비활성화하자 루나가 다가와 카단의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뭔데?”
“샬로트가 굳이 본 드래곤 전용 아공간을 만든 이유가 뭐야? 다른 아공간이랑 뭐가 다른가?”
루나는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건….”
카단이 피식 웃으며 잠시 말을 멈추자, 루나가 답답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9성이 되면 그때 알려줄게. 아니, 직접 보여줄게.”
“엥? 그런 게 어딨어!”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버지는 쓸데없는 마법을 만드시는 분이 아니셔. 괜한 이유가 아니라 다 깊은 뜻이 있다는 말이지.”
카단은 씩 웃으며 말을 끝냈고, 루나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뱉었다.
“그런데 루나. 좀 추워진 것 같지 않아? 주변도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고.”
빛 하나 없어도 어둠이 느껴지지 않던 공간이 점차 어두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포근했던 공기도 싸늘하게 식어가는 기분.
카단이 의아함을 느끼며 말하자, 루나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야 이 드래곤 레어를 지탱하던 드래곤 하트가 너의 아공간 속으로 들어갔으니까?”
드래곤 레어의 동력이 되어주던 드래곤 하트가 사라졌으니, 마법이 풀리는 건 당연하다.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빨리 나가야 하는 거 아냐?”
쿠구구구구궁.
루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장 쪽에서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깔려 죽기 싫으면 빨리 가야지?”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카단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다.
“루나! 너 출구가 어딘지 알고 가는 거야?”
“당장 들어 온 곳으로 가보는 수밖에 없지. 천장이 무너지는데 언제 새로운 출구를 찾아?”
“그럼?”
“물웅덩이! 숨겨진 통로로 빠져나갈 거야.”
“결계가 있어서 못 나간다면서?”
“바보야. 결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드래곤 하트 때문이잖아?”
드래곤 하트가 없어진 지금. 결계를 유지할 마나가 없기에 분명 결계가 사라졌을 것이다.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빠르게 달려갔고, 카단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자연스레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긴 통로를 지나 처음 이곳에 들어섰던 장소 넓은 물웅덩이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루나의 뜀걸음이 멈춰졌다.
척.
루나가 대뜸 손을 내밀었다.
“잡아. 곧바로 올라갈 테니까.”
“나 무거울 텐데?”
“힘은 내가 너보다 셀 텐데?”
이어진 루나의 말에 카단은 곧바로 순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카단이 손을 붙잡자 루나의 등 뒤로 피로 만들어진 거대하 날개가 피어올랐다.
촤륵!
“꽉 잡아. 무너지기 전에 빠져나가야 하니까.”
쿠구구구궁.
말하는 사이에도 땅이 흔들렸고, 천장에서는 돌 부스러기들이 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부웅!
거대한 핏빛 날개가 날갯짓을 시작하자 루나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고 덩달아 그녀의 손을 잡은 카단도 공중에 떠올랐다.
“루나. 돌 부스러기 조심해.”
“별걱정을 다 한다.”
루나는 피식 웃으며 점차 속도를 높이며 위로 올라갔다.
* * *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카단은 장작불 앞에서 한참 동안 동료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각자 임무를 위해 떠났던 정찰대원들이 베이스캠프로 돌아왔고.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군요.”
정찰대장을 맡은 가디언 ‘필립’은 멀쩡한 상태의 대원들을 바라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럼 각자 얘기를 좀 해보도록 하죠. 우선 숨겨진 통로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몬스터와 전투만 지겹도록 하고 왔죠.”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증명하듯, 필립과 에스더는 꽤 지친 모습이었다.
몬스터의 피비린내가 진하게 나는 이유는 두 사람이 조금 전까지 전투를 치르고 왔기 때문이었다.
“저와 벨리드는 몬스터들의 이동 경로를 추적해봤습니다. 반대쪽에도 숲이 있더군요.”
절망의 평원 건너편.
그러니까 정찰대가 출발했던 도시 트라팔가 건너편에 또 다른 숲이 존재한다고 한다.
“몬스터들은 그 숲에서부터 절망의 평원으로 향했습니다. 수는 대략 몇만 정도일 텐데, 자세히 세어 볼 순 없었고요.”
제이드의 말에 필립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쯧. 몬스터들은 국경 너머에서부터 오는 것이었군요. 정찰하기가 쉽지 않겠습니다. 두 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이제는 카단의 차례라는 듯 필립을 시작으로 정찰대원 모두가 고개를 돌려 카단을 바라봤다.
“숨겨진 통로를 찾았고, 그곳에 다녀왔습니다.”
카단의 대답에 사람들이 순간 놀라며 먹고 있던 꼬치구이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뭣?”
“혼자서 그곳에 다녀왔다고?”
“거, 거기가 어딘 줄 알고!”
사람들의 무수한 질문에 카단은 진정하라는 듯 손짓하며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들어가려고 들어간 게 아니라. 사고였어요. 갑자기 땅이 무너지는 바람에.”
굳이 자기가 보고 들은 걸 숨길 필요는 없었기에, 드래곤 레어에 다녀왔던 이야기를 전부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몬스터들이 이 절망의 평원에 모이는 이유가 드래곤 하트 때문이었다고?”
“이 땅이 이렇게 황폐해진 이유도 드래곤 하트 때문이었고….”
“오래전에도 마족이 이 세계를 침략했었던 건가?”
정찰대는 충격받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카단을 바라봤고, 카단은 잠시 무언가 고민하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드래곤의 뼈와 드래곤 하트는 제가 챙겼습니다. 괜찮겠죠?”
드래곤 하트가 있다는 것까지 다 말해주었는데, 챙겼다는 사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전력 보안을 위해서라도 이 사실은 비밀로 해주셨으면 하는데….”
그러자 필립과 제이드, 벨리드와 에스더는 당연한 걸 왜 말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카단을 바라봤다.
“찾은 사람이 챙겨야지.”
“그런 건 욕심도 없어. 크흠. 뭐, 드래곤의 뼈로 만든 창이 그렇게 좋다던데.”
“드래곤 하트에서 나온 마나는 얼마나 맑은가요? 궁금하긴 하네요.”
“보, 본 드래곤을 일으키게 되면 나도 꼭 보여줘!”
오히려 순수한 호기심으로 질문을 던질 뿐, 혼자 그걸 챙겼냐며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함께 나눠 가지자며 욕심을 부리는 이도 없었다.
“드래곤 레어에 들어간 경험도 부럽네. 아, 혹시 보물들은 찾아봤어?”
그때 제이드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뼛속까지 용병 출신인 그는 드래곤의 뼈와 심장보다는 드래곤이 숨겨놓은 보물들이 더 궁금했던 모양이다.
“아쉽게도 드래곤의 뼈를 챙기는 순간 드래곤 레어가 무너지려고 해서 급히 탈출했습니다.”
카단도 드래곤이 죽기 전까지 평생을 모아놓은 보물들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그거 내가 챙겼는데?”
그때 바위에 앉아 꼬치구이를 먹고 있던 루나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 말에 정찰대 모두의 시선이 루나를 향했고, 카단은 헛숨을 삼키며 질문을 던졌다.
“어, 언제?”
“네가 드래곤의 뼈를 매만지고 있을 때, 심심해서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숨겨진 방을 발견했거든.”
“그, 그래서?”
“하나씩 감정해서 챙기기 귀찮아서 일단 그 방 안에 있던 거 전부 다 아공간에 담아뒀는데?”
루나가 순진한 얼굴로 눈을 끔뻑이며 말하자, 카단은 헛웃음을 지었고.
“어쩌면 이 왕국에서 제일 부자는 카단 자네가 될 수도 있겠군,”
“드래곤 레어의 보물까지 챙기다니. 혹시 괜찮은 창 있으면 나에게 파는 건 어때?”
필립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댔고, 제이드는 마른침을 삼키며 카단에게 제안했다.
“저기, 루나. 그 물건들 한 번만 구경할 수 있을까요?”
벨리드는 드래곤 레어에 있던 것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루나에게 부탁했고.
“…….”
에스더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카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단. 어떻게 꺼내 볼까?”
그때 루나가 피식 웃으며 아공간을 열었고, 카단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 번 꺼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