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을 추방한 용사가 되었다-1화 (2/158)

Chapter 1 - 1. [급구] 용사 파티, 1명 내지는 2명 (1)

<다신 돌아오지 않겠다>

제목부터 주인공의 분노가 절절히 느껴지는 소설이다. 용사 파티에서 유능한 주인공을 질투한 멍청한 용사가 추방하는 소설. 주인공을 짝사랑하던 성녀는 주인공을 따라 덩달아 파티에서 탈퇴하고, 성녀와 에이스를 잃어버린 용사 파티는 생고생을 한다는 이야기.

‘용사 진짜 불쌍하다.’

장난이었다. 나는 그렇게 짧게 댓글을 적고 등록했다. 그런데, 누가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고 했던가. 누군가에게 내 댓글은 장난이 아니었나 보다. 그 댓글을 달고 난 다음 날, 나는 이렇게 용사의 책상에 앉아 머리를 박고 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구석의 거한이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들어도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한숨인 듯했다.

“그렇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다고 해야 할지.”

거한의 이름은 게오르그. 중갑(重鉀)의 전사. 이름의 어감부터 근육이 들어찬 것 같았다. 물론, 외향과는 다르게 이 파티 내에서 가장 책임감이 강하고, 사려가 깊은 사람이었다. 성녀와 검사가 차례대로 이탈하는 와중에 끝까지 이 답이 없는 파티에 남아 용사를 도와줬으니까.

“네가 선택한 일이니 네가 책임져야겠지. 그래도 네가 맡고 있는 직책이 있으니,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이번 일을 저질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난 선택한 적 없는데. 이게 그 쾌락 없는 책임인가 그건가. 게오르그의 뭐라도 말 좀 해보라는 눈치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저러다가 게오르그마저 이 파티에서 나가게 되면 내게 희망 따위는 남지 않는다.

“…아이시스가 나가게 된 건 예상 밖의 일이었어.”

“반발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나? 그 둘의 사이가 각별하다는 건 알고 있었을 텐데.”

알지, 당연히 알지. 결국 파티에서 추방한 아르옌을 찾아내서 둘이 이어질 텐데. 이 용사 놈은 그 아이시스를 짝사랑하고 있었지. 뒤는 생각하지 않고 일단 질러버린 덕분에 파티 전체가 고생하고 용사가 혼자 객기를 부리다가, 결국에는 전멸하게 된다.

“이번 판단은 냉정히 말해서 바보 같았다고 할 수밖에 없겠군. 차라리 내게 말이라도 먼저 하지 그랬나. 네가 여태 내 말을 들은 적은 없었겠지만 말이다.”

한심하다는 듯 말하는 게오르그의 말이 쓰라렸다. 나는 의자에 등을 푹 기대며 목을 젖혔다. 눈 감았다 뜨면 집이다, 눈 감았다 뜨면 집이다. 눈을 감으며 자기최면을 걸었다.

“앞으로 힘들어질 거다. 세 번째 재앙을 물리칠 때는 정말 운이 좋았다는 걸 기억해라.”

망할. 집이 아니군. 눈을 뜨니 보이던 게오르그는 그리 말하며 단단히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나는 괜히 그 내려다보는 시선을 피하려 눈알을 반대편으로 굴렸다. 게오르그는 그렇게 한동안 나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지 마. 진짜로 울 거 같으니까.

“그렇게 멍하니 있지만은 않았으면 좋겠군, 일로이. 일단 나도 오늘은 퇴근하도록 하지. 모처럼의 휴가지만, 지금부터는 방종하게 지내지 마라.”

게오르그는 동굴 같은 목소리로 그리 말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또각거리던 아이시스의 발소리와는 달리, 게오르그는 쿵쿵거리며 사라졌다. 건물 전체가 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게오르그가 나간 뒤로도 한참을 멍한 표정으로 문을 응시했다. 찻잎이 잔의 바닥으로 가라앉듯이 생각이 가라앉았다. 폭풍이 나를 쓸어버리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일로이.

게오르그의 마지막 말에 나는 그때야 이 몸의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래, 일로이. 용사는 항상 용사라고 불렸기에,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독자 중에서도 거의 없었다. 하물며 나름 열혈 독자였던 나조차도 방금 떠올릴 수 있었는데, 일반 독자층들은 오죽할까.

“용사다운 이름은 아니잖아.”

용사의 이름치고는 지나치게 평범한 게 아닐까. 나는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부아가 치밀어올라 책상을 쿵쿵 두드렸다.

“시발, 전능하신 작가님. 그냥 한 삼 일쯤 전에 빙의시켜줬으면 어디 덧납니까.”

그러면 적어도 주인공을 탈퇴시키지는 않고, 어찌어찌 그놈 등 뒤에서 열심히 재앙을 토벌하는 척이라도 했을 텐데!

나는 그렇게 혼자 발작하다가, 어느 순간 힘이 쭉 빠진 채 책상 위로 해파리처럼 늘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원하게 욕이라도 박고 올걸.”

나는 그리 말하고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퍽퍽 두드렸다.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도 어색하고, 몸가짐 한 번 한 번이 다 이상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서성였다. 누가 보고 있었다면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보였겠지. 아니면 그냥 미친놈으로 보거나.

그렇게 방황하던 내 시선에 들어온 건 방구석에 있던 전신거울이었다. 그 커다란 게오르그가 방의 구석을 죄다 가리고 있어서 그곳에 거울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나는 발을 질질 끌며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곧 죽어도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는 확인해보고 죽자.

“…재수없는 새끼.”

거울 앞에 서자마자,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용사, 일로이의 얼굴은 말 그대로 재수가 없었다. 일단, 머리가 쥐색이었다. 멋있는 은발도 아니고 은은한 잿빛도 아니라, 말 그대로의 쥐색. 뿌리 부분이 검고, 끝으로 갈수록 하얗게 변하는 이상한 색이었다.

눈. 음영 진 얼굴에 윤곽이 뚜렷한 이목구비가 자리 잡은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눈동자는 초록색이었다. 빛난다기보다는 죽어있다고 해야 하나. 상큼한 녹음의 푸름이라기보다는 축축한 정글의 암녹색이었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독특했다. 콧대는 날카로웠지만 미묘하게 비열해 보이는 입매가 전체적인 인상을 망쳐놓았다. 잘생긴 삼류 악당. 한 줄 평을 내리자면, 용사는 그렇게 생겼다.

“역시 마음에 안 들게 생겼군.”

나는 혀를 쯧쯧 내차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기억하기로는 용사 파티가 아지트로 사용하는 이 공간은 왕국에서 특별히 마련해준 건물이라고 알고 있다. 남향에다가 왕도 전부 내려다보이는 광경의 입지도 완벽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 혼자 발작하는 건 이쯤 하고 정리를 좀 해보자. 빙의를 했으면 빙의자답게 행동을 해야 할 거 아닌가. 그게 설령 밉상 캐릭터라 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다신 돌아오지 않겠다>(이하 다돌않)의 빌런, 용사 일로이가 되었다. 이놈은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인 성격에다가, 멍청해서 용사 파티의 실질적인 에이스를 쓸모없다는 말과 함께 잘라버렸다. 단순히 질투심이 동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어 없으면 파티가 굴러가지 않는 힐러도 파티를 박차고 나갔다. 이제 용사 파티에 남은 건 탱커 하나, 주인공을 내내 괴롭히던 마법사 하나, 가진 거라곤 성검(聖劍)뿐인 쭉정이 용사 하나. 짠내가 풀풀 풍기는 조합이었다. 원작의 후반부에 가서 이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짤막하게, 새로운 파티원과 함께 전멸했다는 소식만이 들려올 뿐이다.

정리해보니 그냥 의욕이 사라지려 한다.

“나 그냥 때려치우면 안 되려나.”

마음 편하게 그냥. 성검 반납하고,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짓고. 원작이니 세계를 구하느니 그런, 머리 복잡해지는 싸움을 할 필요도 없이 말이야.

“절대 안 되겠지.”

물론, 그렇게 했다가는 왕국과 성국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할 거다. 성검 때문이다. 성검은 한 번 주인으로 인정한 자가 죽을 때까지 다른 이를 주인으로 섬기지 않으니까. 원작에서는 삽질만 하던 용사가 죽고 소유권이 주인공에게로 넘어갔다.

“죽기는 싫은데.”

주인공이 혼자 천하무쌍으로 ‘일곱 재앙’을 모조리 없애주기를 기다리고 싶지만, 너무 시간을 끌면 또 왕국과 성국에서 압박을 넣을 거다. 용사야, 일 안 하고 뭐 하냐. 성검의 소유권을 팍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랴? 이런 식으로 말이다.

기각, 기각. 이것도 저것도 다 기각. 이 세상에서 용사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부하지만 딱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었다.

“내가 강해져야 하는 건가….”

헛웃음이 막 새어 나왔다. 나는 책상 위로 올려놓은 검을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칼자루를 들어 협박하듯 바라보아도 성검은 칼집을 입처럼 꾹 다문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게 뭐하는 짓이람.

나는 책상 위로 검을 도로 올려놓았다.

강해지는 건 차치하고, 일단 용사 파티에 난 커다란 구멍을 어떻게든 메우는 것. 성녀나 주인공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 녀석들의 반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할 수만 있다면, 달려가서 큰절이라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발로 뛰어야겠군.”

왕국에 지원요청을 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기억하기로는, 왕국은 일로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점은 일로이의 멍청함이었다. 미덥지 못한데다가 더럽게 세금을 많이 처먹는 용사. 정치 패 놀음에 써먹기 딱 좋거든.

“제 발로 내 무덤에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왕도의 길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저 아래로는 중세라고 생각할 수 없는 고층 건물들이 난무했다. 그냥 유럽 어느 국가의 도심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고 할까, 살면서 해외여행이라고는 옆 나라 몇 번 다녀온 게 전부였는데, 새삼스러웠다. 나는 그것이 살면서 마지막으로 보는 풍경이라도 되는 양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좋아.”

나는 펜을 집어 들었다. 아무 데나 나뒹구는 종이도 한 장 집어 들었다. 나는 생각이 떠오르는대로 종이 위로 글을 휘갈겨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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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긴터는 집을 나서며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용사, 일로이가 자기 멋대로 아르옌을 해고한 건 5일 전의 일이었다. 그 사실을 휴가 중의 게오르그가 알게 된 건 이틀 전의 일이었고, 아이시스가 알게 된 건 어제가 되어서였다. 마음 같아서는 어째서 그런 짓을 했냐고 용사놈의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었다. 아니면 사라져버린 아르옌과 아이시스를 찾아가, 용사가 실언했고, 제발 우리가 잘못했으니 돌아와 달라고 빌거나.

“뇌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그 둘은 사실상 전력의 팔 할이나 다름없었다. 용사의 체면이 중요하기에, 언제나 마지막 일격은 용사에게 양보했지만, 적을 대부분 죽여놓았던 건 언제나 아르옌이었다. 그런 아르옌과 전열에서 고기 방패 역할을 하던 게오르그를 순식간에 치료해주었던 건 성녀, 아이시스였고.

“빌어먹을 용사.”

공직에 있던 사람으로서, 함부로 용사 파티를 내팽개치고 떠날 수도 없어 더욱 화가 났다. 이 와중에 마법사는 어디로 멀리 휴가를 떠나버렸는지, 찾아도 보이지도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시스가 찾아와 파티를 떠나겠다고 했을 때는 제정신이 들었는지, 얼굴이 새파래진 채로 입만 벙긋거리던 모습이었다. 평소의 일로이라면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아도 신기하지 않았을 건데. 차라리 평소처럼 뻔뻔하게 화라도 내면서 때려 부수지. 일로이의 당황한 모습은 더욱 게오르그를 열받게 할 뿐이었다.

“…쯧.”

게오르그는 습관처럼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간단한 임무라도 하나 받아서, 뭐라도 좀 때려눕혀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벌컥.

모험가 길드의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 웅성웅성 시끄럽던 모험가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게오르그는 그들의 시선이 전부 자신에게 쏠려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살을 팍 찌푸렸다.

이것들이 왜 이러지? 나 들어왔다고 이렇게 신경을 쓰는 놈들이 아닌데.

“게오르그님! 저게 사실입니까?”

“아니, 지금 이 시간에 여기를 찾아온 건 딱 봐도 저거 확인하러 온 거잖아, 멍청아!”

“세 번째 재앙을 물리친 것과 역시 관련이 있는 겁니까?”

그리고, 우르르 자신에게로 몰려오는 모험가들을 바라보며 게오르그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모험가들은 게오르그의 반응을 확인하고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봐봐, 모르는 표정이잖아. 역시 사기라니까.”

“아니, 그래도 저런 사칭을 한다면 무조건 잡혀가는 거 아냐? 그것도 모험가 길드에 대놓고?”

“내가 어제 용사님이 직접 와서 벽보를 붙이는 걸 지켜봤대도!”

게오르그는 달라붙는 모험가들을 밀어내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저기, 게시판을 확인해보십쇼. 누가 용사 파티의 이름으로 구인 광고를 내놓았지 뭡니까.”

구인 광고?

게오르그는 자신을 모험가들의 손길에 이끌려 중앙 게시판으로 향했다. 의뢰 요청이나 구인 광고가 더덕더덕 붙어있는 중앙 게시판. 게오르그의 눈에 구인 벽보 하나가 들어왔다.

[급구] 용사 파티, 1명 내지는 2명.

자격 조건 : 4서클 이상의 마법사. 혹은 2급 이상의 단독 의뢰 수행 경력이 있는 사람.

그리고, 아래에 그어진 용사, 일로이의 친필 서명. 게오르그는 그것이 대번에 진짜 용사가 만들어 붙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면접일은, 일주일 후.

“이… 미친 새끼가.”

게오르그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과 같은 욕설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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