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 2. [급구] 용사 파티, 1명 내지는 2명 (2)
2급 이상의 단독 의뢰 수행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괜히 붙였나.
나는 어제 밤새 고심하며 만들어낸 구인 광고지를 들여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피곤하지는 않았다. 썩어도 용사라는 건지, 일로이의 몸은 겨우 하룻밤 샌 정도로 피로해지지는 않았다. 지원자들이 얼마나 달려들지는 모르겠지만, 흥미가 동한 사람 한두 명 정도는 나와주지 않을까. 그중에서 ‘괜찮은’ 사람을 건져올 수만 있다면, 일단 한시름은 덜 수 있겠지.
“원작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구했었지.”
뭐, 나도 생각 없이 이런 행동을 한 건 아니었다. 대놓고 모험가 길드에 벽보를 붙이는 건 <다신 돌아가지 않겠다>에서 일로이가 새로 파티원을 구할 때 사용했던 방식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일로이가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를 난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실수를 만회할 방법 또한 잘 알고 있었고. 나는 구인 광고지를 접어 탁자 위로 올려놓았다. 게오르그가 이 광고지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문득 궁금해지는 찰나였다.
쿠당! 쿵 쿵 쿵 쿵.
어떻게 저렇게 내 마음을 찰떡같이 알까. 나는 헛웃음을 내뱉고는 가까워지는 게오르그의 기척을 느꼈다. 기척을 느낀다는 말을 소설의 대목으로만 알고 있던 내게, 정말 사람의 ‘기척’을 느낄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신기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일로이!”
문밖에서부터 날 애타게 찾는군. 그리 보고 싶었나. 게오르그가 문앞에 당도했다는 사실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아지트의 문이 굉음을 내며 열어젖혀졌다. 문가에 서 있는 거인을 보니, 상상 이상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나는 태연한 척 다리를 꼬았다.
“문 부서지겠다. 뭐가 그리 급해?”
“너는 네가 저지른 일을 보고도 그런 여유로운 말이 튀어나오나?”
벌벌 떨릴 줄 알았는데, 대응하는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이건 본래의 용사, 일로이의 몸에 배어있던 성질이었을까. 쫄보처럼 보이지 않는 건 다행이었다.
“저지른 일이라면?”
“지금 네가 탁자 위에 접어서 올려둔 저 공고문 말이다! 모험가 길드에 지금 떡하니 붙어있는 그 벽보! 내가 네게 방종하게 행동하지 말라 경고한 지 하루도 안 돼서 저런 짓을 저질러?”
게오르그가 작정하고 기세를 풍겼다. 저 부라리는 눈이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몰래 마른침을 삼켰다. 굳이 게오르그의 실력을 언급하지 않아도, 누구라도 저런 거한이 성을 내며 노려본다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래도 뻔뻔하게 나가야 한다. 어차피 내가 생각한 대로 일들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나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까. 지금 저 근육의 손에 맞아 죽으나, ‘일곱 재앙’을 공략하다가 죽으나, 공략도 하지 못해 왕국과 성국의 암살자들에게 목숨을 잃거나. 저놈의 손에 맞아 죽는 게 제일 아플 것 같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다 죽는 게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을 뿐이야. 우리에게 휴가로 주어진 시간은 고작 삼 개월이잖아. 하루라도 빨리 움직여서 빈 인원을 채워야지. 너도 내 행동에 책임을 지라고 말했잖아.”
내 말에 게오르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행동에 책임을 지라는 것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라는 소리는 아니었을 텐데. 적어도 나와 하루 의논할 시간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았나.”
게오르그가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나는 지지 않겠다며 맞섰다.
“과연 그 의논이 하루로 끝났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그리고, 어차피 사람을 구해야 하는 건 맞잖아. 그렇다면 내 방법을 틀렸다고 할 수도 없을 텐데.”
“방법도 방법이지만, 용사 파티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광고라도 할 생각이냐? 모험가들이 금세 소문을 퍼뜨리겠지. 불화가 생겼거나,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말이다. 괜한 잡음이 일어나는 걸 원하는 것이었나?”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어차피 그들이 아니었어도 알려질 일이었어. 그리고, 헛소문이 사건의 진상보다 먼저 퍼지게 되면, 사람들은 진상에는 관심을 끄고 헛소문에만 몰려들지. 괜히 꽁꽁 싸매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 터지는 것보다는 지금 알려지는 게 훨씬 낫겠지. 우리가 다시 토벌에 나설 때쯤이면 그 웅성거림도 잠잠해져 있을 테니.”
“진상은 무슨. 네가 일방적으로 그들을 내보낸 것이 진상이잖나.”
“내 말이 그 말이다. 루머는 진실보다 강해.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는 없으니, 닦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이 파티의 이름에 스스로 먹칠할 수는 없지.”
“너는….”
고개를 젓는 게오르그의 얼굴에 주름이 잡혔다. 이제 명분을 가지고 딴죽을 걸지는 못하겠지.
“…모험가 길드에 저렇게 벽보를 붙이는 것보다는 나은 방법이 있었을 텐데 말이야. 적어도 왕국 측에 협력을 구할 생각은 안 해본 거냐?”
내 입에서 길게 한숨이 뻗어져 나왔다. 역시 말싸움은 피곤하다.
“왕국에 협력을 구해서 얼마나 대단한 인재가 올까? 보나 마나 내부에서 얼씨구나 하고 피 터지는 암투를 벌여 휴가 끝나기 일주일 전에나 사람을 보내주겠지. 대충 내부의 인선 과정을 거쳐 생판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을 말이야.”
나는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게오르그는 무식해 보여도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논리-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일목요연, 정연하게 말을 해준다면 크게 반발하지는 못할 거다.
“저 사실들을 싸그리 다 무시한다 가정해. 그리고 왕국 측에서 5서클, 6서클 정도 되는 마법사를 보내준다고 쳐. 그럼 그가 일주일 사이에 우리 파티와 합을 제대로 맞출 수 있을까? 앞으로 이어질 여정에 적응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니겠지.”
게오르그의 찌푸림이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놓치지 않았다.
“아르옌이나 아이시스의 빈자리를 메우겠다는 건 터무니없는 소리야. 그들의 역할을 최대한 대체할 수 있는 인원을 찾고, 파티의 합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지.”
나는 그리 말하며 구인 공고문을 툭툭 두드렸다. 뭐, 구태여 지금 구인 광고를 낸 건 따로 목적이 있기 때문이지만, 그 이유를 게오르그에게 모두 밝힐 수는 없으니까.
게오르그는 내 말을 듣고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우선 그의 분노를 가라앉혔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나는 내심 안도하며 의자에 등을 푹 파묻었다. 고심하는 시간이 끝나고, 게오르그는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내 말에 굴복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화난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 이번에는 네 말에 따라보도록 하지. 하지만 하다못해 저 면접 때는 나를 동행해라. 어떤 사람이 올지 정도는 파티원이 함께 보고 고를 권리 정도는 있지 않나.”
게오르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지쳐있었다. 아침부터 심력을 쓰는 건 아무리 왕국 최고의 방어력을 지닌 중갑 기사라도 힘든 것 같았다.
“물론이지. 그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않아.”
게오르그는 내 대답을 듣고도 한참을 뻘쭘하게 서 있었다. 그만 돌아가라고 축객령을 내리고 싶었지만, 그 정도의 용기까지 나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를 흘겨보고서야, 게오르그는 방을 나섰다. 나는 사무실 뒤편의 창문을 열며 바깥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사무실이 아직도 게오르그가 뿜어내던 위압에 짓눌리는 것처럼 답답했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나는 창가에 늘어지게 몸을 걸치고서 눈치를 보듯 게오르그가 나선 사무실의 문을 흘긋 돌아보았다. 엄연히 말해 거짓말을 한 건 아니지만, 결국 그를 속여버린 것 같은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보내는 눈빛은 미안함에서 오는 눈빛이라기보다는, 들키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의 눈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기대었던 몸을 일으키고는 다시 탁자로 돌아가 앉았다.
“뭐, 나중에 결과로 보여주면 되겠지.”
미안하다, 게오르그. 면접에는 동행하게 해주겠지만 네게 파티원을 고를 권리 따위는 없어.
나는 탁자에서 집어든 공고문을 펼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한참 전에 점을 찍어둔 내정자가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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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용사 파티원을 구한다는 공고문은 모험가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그 공고문이 누군가의 사기 행각이 아니라, 정말 용사 파티의 구성원을 구한다는 게 맞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왕도 내외의 모든 모험가에게 소식이 쫙 퍼지게 되었다.
“급여는 많이 주려나?”
“당연히 많이 받겠지. 한 번 지원해볼까?”
“아서라, 턱도 없다.”
“…그런데, 이거 자격이 되는 사람이 있긴 하려나.”
“명색이 용사 파티인데, 오히려 너무 자격 요건이 낮은 거 아니냐? 네가 안 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까지 다 안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이 새끼가?”
…이런 다툼이 모험가 길드 내에서 흔하게 벌어질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증원하게 된 거지? ‘세 번째 재앙’을 쓰러트리고 한창 분위기 좋을 때 아니야? 무슨 일이라도 있나.”
“몰라. 그런데, 용사 성격 딱 봐도 더러워 보이던데, 그거랑 관련 있지 않겠어?”
“야, 씨. 그래도 ‘재앙’을 물리친 용사인데,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말자.”
“아니, 좀 건방져 보이기는 하잖아.”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뭐.”
일로이가 예상한 대로, 용사 파티의 사정에 관한 뜬소문은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소문은 각기 다른 말을 품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입은 모이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눈과 발이 모여 왕도의 모험가 길드로 몰려들고 있었다.
일로이가 왕도에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킨 공고문을 내건 지 일주일이 지났다. 면접 장소가 될 아지트의 꼭대기, 일로이의 사무실에서 게오르그와 일로이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성황이로군.”
게오르그는 그리 말하며 용사의 본거지 앞으로 모여든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서른 명, 마흔 명 정도는 될까. 일로이가 내세운 자격 조건을 충족한다며 찾아온 사람은 예상보다 많았다. 몇 명은 게오르그의 성에 차지 않았지만, 몇몇은 그조차도 눈썹을 올리며 바라보게 되는 실력을 지녔다.
“저기, 저 푸른 옷을 입고 있는 마법사는 꽤 강해 보이는군. 마탑 출신인 듯해. 등에 커다란 검을 매고 있는 사람도 괜찮아 보이는군. 무엇보다, 경험이 풍부해 보여.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실력자들이 많이 참전했어.”
게오르그는 침음성과 함께 말했다.
“당연히 아르옌과 아이시스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모험가로서 한 사람 몫은 해낼 사람이 몇 있군.”
며칠 사이, 일로이는 제법 잠잠했다. 딱히 눈에 튀는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게오르그가 일컫던 방종한 짓거리들도 줄어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게오르그가 일로이를 신뢰하게 되었다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용사에 대한 게오르그의 평가는 그대로였다. 기량이나 재능이 아주 좋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타인을 이끄는 리더십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류를 읽는 정치에 능하지도 않은 그런, 어째서 용사라 불리는지 모를 작자. 게오르그는 그 자신과 오늘 뽑게 될 모험가의 잠재력을 믿을 뿐이었다.
‘…그냥 아이시스가 파티를 박차고 나갔다는 사실에 아직 충격을 받은 것이겠지.’
깊게 잠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일로이를 보며 게오르그는 혀를 찼다. 저러면서 머릿속으로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겠지.
그때,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창밖을 뚫어지라 응시하던 일로이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찾았다.”
작은 탄성처럼 나오는 목소리. 일로이를 바라보던 게오르그는 그 시선을 쫓아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무언가가 보이지는 않았다.
“뭘 찾았다는 거냐?”
게오르그의 의아한 목소리에 일로이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일단 면접이나 한번 시작해볼까.”
게오르그의 눈이 기지개를 켜며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로이를 뒤따라갔다. 영 미덥지 않다는 듯한 눈으로 일로이를 노려본 게오르그는 전신거울이 놓인 구석 자리로 돌아가 팔짱을 끼었다. 적어도 게오르그, 그의 말대로 사람을 뽑는다면, 실패할 일은 없을 거다. 그리고 용사도 사람을 뽑는 데에 있어서는 게오르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거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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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이. 이 마법사, 실력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우선 대기자 명단에 넣어놓고….”
첫 면접자의 면접이 끝나고, 게오르그가 일로이에게 슬쩍 귀띔했다. 일로이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미친 새끼.”
게오르그의 입에서 나직하게 욕설이 새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