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 3. 다프네 에피폰 (1)
첫 번째 지원자와의 면접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종이를 팔락거리며 기계적인 목소리로 면접 질문을 읊었다.
“그 외의 특기는 없습니까?”
“연금술. 치유 포션을 제조할 수도 있어요.”
메리 아스트러스는 내 질문에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표정부터가 ‘내가 이런 질문에까지 대답해야 해?’라고 묻는 듯했다. 마탑을 졸업한 후 세상을 돌아다니는 중이라고 했던가. 붉은 머리를 하고 있으며, 얼굴은 물론 아름다웠다. 독을 품은 장미 같은 모습이라 해야 할까, 만화에 나올 법한 분위기를 지닌, 도도한 인상의 여인이었다.
아, 그리고 <다신 돌아가지 않겠다>에서 일로이가 아르옌과 아이시스를 내쫓고 들여보낸 새로운 파티원이기도 했다. 게오르그는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실력에 마음이 동한 듯했다. 면접이 끝난 후, 그 굵직한 눈썹을 까닥이며, 게오르그는 내게 귀엣말했다.
“일로이, 이 마법사, 실력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우선 대기자 명단에 넣어놓고….”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미련 없이 바로 잘랐다. 옆에 서 있던 게오르그의 표정이 썩어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나직하게 내뱉는 욕설도 들려왔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작, <다신 돌아가지 않겠다>에서 용사 파티가 나락으로 빠지기 시작한 게 인성이 개차반인 파티원들을 영입하고서부터였으니까. 돌아가 보라는 내 말에 중얼거리며 방을 나서는 저 마법사도, 원작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게오르그를 부려 먹고 용사에게는 아양을 떨며 편하게 다니던 악한이었다.
‘내가 너 한 번 구한 거야, 새끼야.’
나는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오르그를 보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원작에서 저 녀석이 고생하게 된 건 어느 정도 자업자득인 부분도 있었군.
“…처음부터 내 말은 듣지도 않는군.”
“겨우 첫 번째지. 조급하게 굴 필요 없잖아. 보는 사람마다 대기자 명단에 넣을 거면 면접은 도대체 왜 보는 거냐? 한 50명쯤 되는 파티라도 만들게?”
나는 참가자 명단이 적힌 종이를 내려다보며 다음 지원자를 불렀다.
“다음 지원자 들어와 주세요.”
하지만 다음 지원자도, 다다음 지원자도 보류 명단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나는 재미없는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 지원자들을 휘리릭 쳐냈다. 게오르그가 대기자 명단에 넣자고 하는 사람도 쳐내고, 넣지 말자고 하는 사람도 쳐냈다. 그중에는 원작에서 용사 파티의 대체 멤버로 들어가게 된 모험가도 있었고, 주인공 일행을 가로막는 악역도 있었다.
“다음 기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반쯤 지친 목소리로 이번 참가자를 돌려보냈다. 게오르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한 모양이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을 원하길래, 여태까지의 모든 참가자를 내친 거냐?”
나는 펜을 내려놓으며 기지개를 켰다.
“일단 지금까지는 한 명도 없었어. 실력이 좋으면 걸리는 점이 있고, 걸리는 점이 없으면 실력이 눈에 차지가 않네.”
“아르옌과 아이시스를 대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면서, 눈만 너무 높아진 것 같군. 이제 슬슬 중간에 나가는 참가자들도 생기는데, 아무도 뽑지 않을 작정인 거냐?”
게오르그는 그리 말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게오르그의 말대로, 호명했는데도 들어오지 않는 참가자들도 생기고 있었다. 애초에 그 정도로 포기할 사람들이라면 내가 뽑으려고 하지도 않았을 테니, 별 상관은 없지만.
‘슬슬 올 때가 됐는데.’
하지만, 심약한 ‘그 녀석’이라면 이 군중 심리에 동요해 돌아갈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이 건물 앞에 줄을 서서 들어오려는 것까지는 확인했는데. 나는 지원자 목록을 훑어보았다. 순서상, 바로 다음 참가자였다.
“다음 지원자, 들어와 주세요.”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나는 다음 지원자를 불렀다. 올 거다. 와야만 해. 표정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등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심장은 두방망이질하며 내 왼쪽 갈비뼈를 퉁퉁 두드리고 있었다.
제발, 와주세요.
이제 존댓말로 변한 내 바람. 1초가 한 시간처럼 느껴질 정도로 숨 막히는 긴장감. 그 와중에, 문 앞에서 서성이는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고 나는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나는 열린 문 너머로 다소곳이 손을 모은 채 서 있는 연분홍빛 머리카락의 여성을 마주했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보랏빛 눈을 내게 돌렸다. 원작의 일로이, 이 용사 새끼라면 저 벌벌 떠는 모습에 짜증부터 냈겠지만, 내게는 저 겁쟁이 같은 모습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다프네 에피폰, 맞죠?”
내 물음에, 다프네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나는 당장에 합격이니,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말을 날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의자로 손짓했다.
“앉으시죠.”
다프네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로 걸어가 앉았다. 걷는 모습이 조금씩 휘청거리는 게 어지간히도 긴장한 모양이다. 나는 만면에 피어오르려는 웃음을 작은 미소 정도로 고정했다. 나는 다프네가 충분히 숨을 고를 시간을 주었다.
<다신 돌아가지 않겠다>의 용사, 일로이는 주인공과 아이시스를 내쫓고 나서도 두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첫 번째 실수는, 잘못된 사람을 파티원으로 섭외했다는 것. 첫 번째 면접자였던 메리 아스트러스가 그 좋은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파티에 지원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아, 그… 그건….”
그리고, 용사 일로이가 저지른 두 번째 실수는,
“세상을 구해야, 아니,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지만,”
이 사람을 뽑지 않았다는 것.
“이번 기회에 저 자신을 바꿔보고 싶기도 해서….”
다프네 에피폰. 4서클. 마탑에 틀어박혀 마법만을 연구하다가, 그 재능을 시기한 스승에게 파문당한 비운의 마법사.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않겠다> 유일의 8서클 마법사가 될 재능의 소유자이자, 주인공, 아르옌의 또 다른 히로인이 될 등장인물. 아르옌이 일곱 재앙을 무찌르는 데 누구보다 큰 힘이 된 조력자.
“요, 용기를 내서 지원해보았습니다.”
다프네의 목소리가 쥐구멍으로 기어들어 가듯 작아지며 끝났다. 그녀가 주인공, 아르옌의 파티에 합류하게 된 건 원작의 용사가 시행했던 파티원 공개 모집에서 탈락한 후였다. 당시 그녀는 탈락당한 것도 모자라 면접 자리에서 용사에게 인신공격에 가까운 매도와 모욕을 들어야 했다고 한다.
“지원자분의 어떤 면모를 바꾸고 싶으셨던 거죠?”
그리고, 나는 그딴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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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네 에피폰은 겁쟁이다.
심지가 굳지 않다고 해야 할까, 마음이 약하다고 할까. 대마법사의 재능은 시골 마을의 평범한 가정에서 무탈하게 자라온 소녀에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법과 마나란 그녀에게 호흡하듯 자연스럽게 행해지고,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또 숨겼다. 이 사실을 들킨다면, 결코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으리란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난 그저 내 가족을 지키려고 했을 뿐인데.
어느 날, 마을이 마물에게 습격당한 날, 다프네는 마법을 사용하여 마물을 소멸시켜버렸다. 다프네가 살던 마을은 그녀를 내쫓듯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보냈다.
넌 연구만 계속하거라.
처음에는 신나서 마법을 가르치던 담당 교수는 언제부터인가 다프네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다프네는 구태여 묻지 않았지만, 그 이유는 알고 있었다. 다프네를 연구직으로 보내려던 교수의 눈은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던 눈빛과 정확히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를 무엇보다 약하게 만든 건, 멸시가 아닌 거부였다. 다프네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다. 그녀는 계속 위축되기만 했다. 자신의 재능을 족쇄라고 생각하며, 가두고 또 가두었다. 성장을 거듭하던 마법은 정체되었고, 실전에서는 항상 그녀의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마탑을 졸업한 후에도 다프네는 끊임없이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프네, 그렇게 뒤에 짜져만 있을 거면 그냥 꺼져.”
“뭐가 그리 겁이 나서 마법도 쓰지 못하고 떨고만 있는 거냐?”
남자들은 다프네의 외모에 혹해 별말 하지 않다가, 계속되는 그녀의 유약한 모습에 돌변해 하나둘씩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실력이나 태도와는 무관하게, 계속해서 꼬셔대는 와중에 넘어오지 않는 다프네의 모습에 짜증이 난 것일 수도 있겠다.
“그 얼굴이랑 몸만 믿고 우리 리더를 꼬신 거지? 그렇지?”
“너, 할 일이 그렇게 없으면, 모험가를 하지 말고 창관에나 가. 거기서는 잘 받아주겠네.”
그리고 여자들은 질투심에 다프네를 몰아붙였다. 소문은 비단 파티 내부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험가들에게도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말은 칼보다 날카롭게 다프네를 찔렀다. 그것이 다프네를 향한 것이든, 자기들끼리 술안주 삼아 나누는 잡담이든.
마법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건 마물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건 그녀 자신이었고,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스펙은 좋길래 받아줬더니, 마탑은 어떻게 졸업한 거야?”
“다시는 우리 파티에 찾아오지 말고, 혼자 다녀라.”
어딘가에 속하게 되는 게 두려웠다. 그러면서 누구와도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다프네는 두려움과 괴로움 사이에 짓눌려 숨쉬기도 버거워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의뢰만을 받아 혼자 해결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다프네 에피폰은, 겁쟁이다.
홀로 술을 마신 어느 날이었다. 다프네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도록 후드를 푹 눌러 쓰고 모험가 길드를 방문했다. 길드는 여느 때처럼 소란스러웠다만 그건 평소의 무질서한 웅성거림과는 달랐다. 모험가들의 시선은 하나같이 게시판의 벽보에 쏠려있었다. 다프네는 그들과 섞이지 않도록 멀찍이 떨어져 어떤 벽보가 붙어있는지 흘겨보았다.
[급구] 용사 파티, 1명 내지는 2명.
자격 조건 : 4서클 이상의 마법사. 혹은 2급 이상의 단독 의뢰 수행 경력이 있는 사람.
다프네의 눈에 들어온 건, 용사 파티의 모집 공고였다.
“야, 그나저나 이렇게 길드가 떠들썩한 것도 오랜만이로군.”
“뭐, 저거 쳐다보고 있는 놈 중에서 자격을 갖춘 놈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건을 확인한 모험가들이 저마다 궁싯거리며 떠나갈 때, 다프네는 여전히 서서 공고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부연 설명도 없이, 자격 조건과 면접 일시와 장소만을 붙여놓은 하얀 종이. 용사 파티의 공고문은 다프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취기와 함께, 다프네의 마음이 흔들렸다. 다시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면접일은 내일이었다. 다프네는 매달리듯 한참을 공고문을 바라보다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길드를 떠났다.
그리고 이튿날.
‘내가 미쳤나봐.’
다프네의 용기는 이날 아침까지의 시간 한정 행사였다. 수십 명의 실력자가 장사진을 이룬 왕도의 중앙 거리. 다프네는 압도된 표정으로 저들끼리 떠드는 모험가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 하나하나가 다프네보다 못하지 않았다. 아침에 단단하게 다져놓았다 생각한 마음이 천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번에 기회가 생긴 게 다행이지.”
“이참에 나도 그 용사님 얼굴이나 봐야겠군. 성녀님도 있으면 더 좋고.”
저 줄에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신은 저들과 비슷하거나 떨어지는 실력인데, 겁까지 많고 제 실력을 다 발휘할 수조차 없다. 그 어디에도 용사가 자신을 뽑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다프네의 발끝은 대기열과 집으로 향하는 길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제 뒤로 줄을 서기 시작한 다른 사람들로 인해 대기열 사이에 고정되어버렸다.
‘미쳤지, 미쳤어, 다프네.’
머릿속이 새하얗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프네는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는 시야 속에서 다른 지원자들에게 떠밀려 건물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다프네를 의아한 듯 바라보기도 했고, 그녀에 관한 소문을 아는 이들은 눈살을 찌푸리거나, 슬쩍 비웃음을 날리기도 했다.
‘돌아가야 해, 돌아가야 해.’
이미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불안감이 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다프네의 귀는 그 와중에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모조리 알려주고 있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탈락하셨습니다, 돌아가 주세요.”
“수고하셨습니다. 다음번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거절, 거절, 그리고 또 거절.
다프네의 얼굴이 서서히 새하얗게 질려갔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차례는 속절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 될 거야, 있어봤자. 속에서는 누군가가 그리 속삭였지만, 다프네의 몸은 완전히 굳어버려 움직이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면접을 포기하고 면접장을 떠나가는 와중에도, 다프네는 꿈쩍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왜, 왜 일어나지 않는 거야, 다프네.’
다프네는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자신이 기대하는 게 남아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지금 이 순간에도 겁에 질려, 면접장 밖으로 나갈 용기마저 사라진 건지.
“다음 지원자, 들어와 주세요.”
누군가가 다프네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다프네는 그때야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깨닫고 헐레벌떡 일어나 문가로 다가갔다. 노크도 하지 못할뻔한 제 손을 간신히 문 위로 올려놓고, 다프네가 문을 두드리고는 열었다.
“다프네 에피폰, 맞죠?”
열린 문 너머로, 용사가 청록색 시선으로 다프네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건, 다프네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종류의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