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 11. 개방 (1)
성검(聖劍).
청교회의 보구(寶具)이자 신물(神物). 구원의 빛이자 신화를 증명하는 유일한 유물. 그 검신은 신비로운 백색으로 빛나며, 고대어로 추정되는 문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검신을 구성하는 금속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불명이며, 어째서 수백, 수천 년이나 된 검이 부식되거나 풍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지도 불명이다. 연금술사와 마법사들이 온 세상의 내로라하는 희귀 금속을 모조리 동원해 대조해봤지만, 성검과 같은 건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 괴물 같은 검과 비슷한 무기가 하나 더 있으면 큰일 나는 거지.’
성검은 자아를 지닌 에고 소드이기도 하다. 말을 하지는 않지만, 그 주인을 직접 선택한다. 성검에게 선택받지 못한 자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 수도 없다. 이런 신물이 어째서 일로이를 주인으로 선택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러고 보니, 생각보다 이 검에 대해 아는 사실이 많지는 않네.’
제아무리 빙의자인 나라도, 성검의 기원을 온전히 알지는 못한다. 작가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지, 원작에서는 그 힘을 개방하게 되었을 때의 위력과 세간에 알려진 성검의 이야기만을 서술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성검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는 말해줘서 다행이야.’
정말인지, 용사가 죽고 남긴 성검을 아르옌이 쓰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다면 정말 곤란한 상황에 빠질 뻔했다. 주인공이 필요 없다며 성국에 돌려줬다면 나는 성검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모른 채 뻘짓만 하다가 원작의 일로이처럼 죽어버렸겠지.
‘…네가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겠지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검자루를 두드렸다. 원작에 따르자면, 성검은 세 단계로 나뉘어 개방된다. 본래 일로이는 성검의 본모습을 개방하는 데에 실패했을 거다. 내가 성검을 잡았을 때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니까.
“하긴, 겨우 몇 주 동안의 고생 가지고 성에 차기는 하겠냐.”
사실 성검의 개방 조건도 명확하지는 않다. 아마 사용자의 강함과는 별개로, 사용자가 겪는 시련에 따라 개방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 추측할 뿐.
애초에 자아를 지닌 검인지라, 게임 퀘스트 클리어하듯 딱딱 기준에 맞춰 조건을 충족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원작에서는 아르옌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질 때 타이밍 좋게 개방되었지만. 다프네를 도울 때도 그랬듯, 불확실한 일에 목숨을 걸 만큼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되도록 성검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 죽지 않는 선에서 강적을 찾아다니며, 시련을 만들어 겪으며, 성검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기를,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힘을 드러내기를 바라는 것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어두운데.”
나는 횃불을 들어 올렸다. 내가 또 한 번의 고행을 겪기 위해 방문한 장소는 이른바 ‘개미굴’이라고 불리는 깊고 방대한 동굴이었다. 마물이 우글거리고, 탐사 중에 이따금 희귀한 소재를 채취할 수도 있다고 하니, 실력 있는 모험가들에게는 썩 괜찮은 사냥터가 된다.
‘혼자 올 만큼 별난 모험가는 없겠지만.’
그만 뭉그적거리고 이제 출발해볼까.
왼손에는 횃불, 오른손에는 성검을 들고 동굴로 돌입하려던 찰나, 나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검을 뻗으며 재빠르게 뒤로 몸을 돌렸다.
“우악!! 씨! 깜짝이야!”
소스라치게 놀라는 누군가의 소리. 내 눈에 들어온 건 세 명으로 구성된 모험가 파티였다. 그들은 내가 검을 내려놓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래도 귀찮은 상황이 될 거 같은데.
“저기…, 혹시 용사님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내가 맞다 했잖아.”
수군거리는 모험가 남녀의 머리 위로 누군가의 주먹이 떨어졌다. 악! 하고 짧게 비명을 지른 두 모험가는 머리를 싸매 쥐며 주먹을 떨어트린 모험가의 뒤로 물러섰다.
“…실례. 우리 파티원들이 조금 흥분했네요. 무례를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용사님.”
정중하게 말을 걸어오는 파티 리더는 키가 큰 여성이었다. 검은 머리를 땋아 내리고, 과감하고 활동하기 편한 복장을 갖춘 모습이 꼭 바바리안 여전사 같은 느낌이었다. 그 이미지에 걸맞게 리더는 손도끼를 들고 원형 방패를 차고 있었다.
“아뇨. 저라도 두 분처럼 행동했을 겁니다. 사과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내 대답이 이상했던 걸까? 리더는 눈을 깜박거리더니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용사님은 여기 어쩐 일로?”
“…수련하러 왔죠.”
나는 시커먼 동굴의 입구를 향해 고갯짓하며 말했다. 횃불을 괜히 일찍 피웠나.
“그럼, 잠깐이라도 좋으니 혹시 함께 가지 않으실래요?”
그때, 머리를 문지르던 남자 모험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옆의 여자 모험가 또한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동의하듯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크게 방해되진 않을 거예요. 저희는 그냥 트레저 헌팅을 위해 왔을 뿐이고, 마침 함께 잠깐이라도 가줄 강한 모험가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첫 완충지역까지만 함께하지 않을래요? 아, 물론 우리 리더도 강하지만 그래도 용사님에 비할 바는 아니잖아요?”
두 모험가가 부담스럽게 가까이 다가오길래, 나는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한편, 뒤에서 리더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내 시선이 파티 리더를 향하는 것을 확인한 남자 모험가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게, 우리 리더가 사실 용사님의 팬이거든요. 용사님께서 이번 일에 한 번만 동행해주면 리더가 정말 좋아할 거 같아서….”
“야, 입 다물어. 그만해.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칵.”
리더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로 남녀 모험가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리더는 두 사람을 다시 제 뒤로 보낸 다음 무섭게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내게 고개를 돌리며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이었다.
“죄송해요. 무리한 부탁을 하려는 건 아니었으니, 그냥 수련하러 가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나는 가만히 모험가들을 바라보았다. 리더는 아닌 척하면서도 은근히 나를 흘긋흘긋 보고 있었고, 나머지 두 모험가는 대놓고 기대한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련하려면 혼자 들어가는 게 맞겠지만, 저들과 너무 길게 어울려줄 시간은 없겠지만, 나는 왠지 저들의 제안을 대놓고 거절할 수 없었다.
“아뇨, 잠시 동행하시죠.”
“정말인가요? 진짜로?”
내가 그리 말하자, 남녀 모험가들은 동시에 화색을 띠었고, 파티 리더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뒤의 두 모험가는 성공했다는 듯 하이파이브를 하며 작게 승리의 비명을 내질렀다. 뭐, 그리 오래 걸릴 것도 아닐 테니, 잠시 동행해도 좋겠지. 나도 동굴은 처음이니 뭐가 필요한지 잘 모를 테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함께 가는 사람 두엇 정도는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대신, 나타나는 마물은 제가 도맡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야 완전 고맙죠! 짐꾼이 필요하시면, 짐도 전부 들어드릴게요.”
“아…아니, 짐은 괜찮고….”
지금 보니, 여자 모험가는 짐꾼이고, 남자 모험가는 가벼운 몸놀림의 탐색꾼인 듯했다. 나는 내 배낭을 빼앗아 들려던 여자 모험가를 밀어내며 동굴로 먼저 향했다. 세 모험가는 어미 오리를 따르는 새끼 오리 마냥 내 뒤를 따라왔다.
‘…누가 날 함정에 빠트리려는 건 아니겠지.’
이 상황에서 용사를 죽이려 들 만한 사람은 없을 거다, 아마도. 나는 어제 안드레 주교와 나누었던 대화를 잠시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그때 여자 모험가가 다가와서 목을 가다듬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은데, 압축된 근육이라도 있는지 짐 드는 게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소개부터 해야겠네요. 제 이름은 로빈이고, 저 뒤에 있는 도둑놈은 하비라고 해요. 그리고 이쪽은….”
모험가가 슬쩍 시선을 리더에게로 향하자, 리더는 마른침을 삼키며 내게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나와 악수하는 리더의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아마 미소를 짓는 걸 참으려 하는 게 아닐까.
“레아라고 합니다.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용사님.”
“잠깐뿐이겠지만 잘 부탁합니다.”
내 말에 레아는 고개를 굳게 끄덕였다. 꼭 기합이 가득 들어간 신병을 보는 기분이었다. 나는 횃불을 개미굴 안으로 비추며 앞서나갔다.
서늘하고 축축하다.
개미굴의 초입에 들어섰을 때, 느낄 수 있었던 건 고작 그 정도였다. 물비린내와 물에 젖은 돌의 냄새, 돌에 낀 이끼와 곰팡이의 냄새가 뒤섞인 것이 공기를 떠돌고 있었다. 고인 물에 횃불 빛이 반사되어 동굴이 빨갛다.
개미굴의 입구를 들어서면, 마을회관 정도 되는 넓이의 통로가 완만한 내리막길을 이루며 길게 이어진다. 초입부라 그런지 아직 마물의 기척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주의를 경계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등 뒤로 바깥세상의 빛과 소리가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용사님은 그렇게 강하신데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군요.”
어느새 내 옆으로 따라온 레아가 말했다. 흘긋 뒤로 돌아보니, 로빈과 하비는 저들끼리 시시덕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시 레아를 보니 선망의 빛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일로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쩐지, 저 눈에 담긴 존경이 조금은 거북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강해도 부족한 게 용사입니다.”
나는 회피하듯 그렇게 대답했다.
“뭐가 오든 간에 쓰러트려야 하니까. 결코 져서는 안 되니까.”
나는 그리 말하며 성검을 흘긋 내려다보았다. 모조리 꺾어버릴 힘 따위. 이 녀석이 1단계라도 개방되지 않으면, 재앙을 쓰러트리기는커녕 근처에 다가가기도 전에 산화해버릴 거다. 나는 한숨 섞인 웃음을 내뱉고는 고개를 들었다. 레아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진지하게 대답했나요?”
“…아뇨. 정말 좋은 대답을 들려줘서 감사합니다.”
원작의 일로이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아니,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나는 횃불을 앞으로 내밀며 잡생각을 떨쳐내려 했다. 개미굴은 어디를 둘러봐도 똑같았다. 다만, 점점 통로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 거대한 생물의 식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 똑.
종유석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일행의 발걸음 소리는 그 소리와 박자를 맞추는 듯, 맞추지 않는 듯 울렸다.
“이렇게 길이 좁아지다가, 어느 순간에 갈림길이 나올 겁니다.”
하비가 침묵을 견딜 수 없었는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돌아보자, 하비는 머쓱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몇 번 와봤거든요, 저는. 모든 길을 아는 건 아니지만, 아는 길은 알고 있습니다.”
하비의 말대로, 통로가 점점 좁아지며 남자 세 명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너비로 줄어들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두 갈림길에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진입해도 나오는 마물은 비슷하다고 들었기에, 나는 왼쪽 갈림길로 들어갔다. 통로는 점차 넓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초입부보다도 훨씬 넓은 동공이 드러났다.
“여기서부터는 마물이 나오기 시작할 테니, 더욱 경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비는 그리 말하며 들고 있던 랜턴의 밝기를 올렸다. 찰박, 찰박. 젖은 바위를 얇은 천으로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오리발을 신고 수영장을 걸어 다니면서 낼 법한 소리였다. 그다지 동굴에서 듣고 싶은 소리는 아닌데.
“저쪽인가.”
하비가 랜턴을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뻗었다. 찰박거리는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나는 내게로 다가오는 확연한 존재감을 느끼며 성검을 강하게 붙들었다.
“…징그러워.”
로빈이 혐오감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내뱉었다. 랜턴 불빛의 끄트머리에서 뒤뚱거리며 걸어오는 건, 눈 없는 거대한 도롱뇽이었다. 태양을 볼 일이 없어 색소가 사라져버린 건지, 몸 전체가 하얀색이었다. 찰박. 도롱뇽이 우리를 향해 다시 한발 다가왔다.
“용사님, 저게 뭐냐면,”
저게 어떤 마물인지 설명하려는 하비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바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도롱뇽은 눈이 없는 것 치고는 꽤 기민하게 반응했지만, 잿빛곰보다야 훨씬 느리고 약했다. 미끄러운 돌바닥을 그대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성검으로 바로 도롱뇽의 다리를 잘라냈다.
“빠르다….”
로빈의 멍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나는 고꾸라지는 도롱뇽의 몸에 깔리지 않으려 옆으로 박차고 뛰어나오며 그대로 도롱뇽의 목과 몸통을 베어 갈랐다. 도롱뇽은 그대로 네 조각으로 분해된 고기 조각이 되어 철퍽철퍽 동굴 이곳저곳에 처박혔다. 잘린 놈의 파편은 산낙지처럼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가자.”
다들 저 징그러운 모습을 보고 있기는 싫었는지, 고개를 재빠르게 끄덕였다.
우리는 계속 안으로 나아갔다. 이따금 나타나는 마물은 내가 베어버렸고, 이따금 레아가 거들었다. 하비는 이따금 동굴 구석에 숨어있던 자수정 같은 것을 채취했고, 로빈은 하비가 주는 짐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깊어질수록 마물이 많아지고 강해질 거예요.”
하지만 하비의 말과는 달리, 당장 내 기감에 포착되는 마물은 없었다. 적어도 50걸음 안팎으로는 살아 움직이는 건, 우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무기질적인 고요함에 뒷덜미가 미묘하게 거슬렸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뒤로 돌아보았다.
“…뭔가 이상합니다.”
하비와 로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박였지만, 레아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경직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이 없군요. 이전까지와는 달리 흔적조차 보이지 않아요.”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구태여 지금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다. 다음에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성검을 슬쩍 내려다보며 몸을 돌렸다.
“일단 돌아가죠. 미리 퇴로를 확보해놓는다고 나쁠 건 없으니.”
보통 이러면 꼭 안 좋은 일이 일어나던데.
세 모험가의 얼굴에 불길한 기색이 드리우는 것을 보며,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마물을 쓰러트렸던 길을 지나치고, 다시 길이 넓어지는 동공에 도착하고는 얼어붙었다. 동공은 시체 하나 없이 깨끗했다. 하비가 입꼬리를 바르르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데, 시체라는 거 이렇게 빨리 썩어 사라지는 거였나요.”
“썩어 사라진 게 아니야.”
나는 횃불을 로빈에게 맡기고는 양손으로 성검을 거머쥐었다.
누가 빙의자 아니랄까봐, 꼭 이런 사건이 일어나냐.
딸깍, 딸깍, 딸깍. 사각. 사각. 사각.
하비가 이번에는 랜턴을 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너무나 익숙한 소리인지라,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핏기가 싹 사라진 세 사람과 함께, 나는 동공의 벽에 붙은 ‘그놈’을 바라보았다.
“…가지가지 한다.”
집채 만한 거미가 동공의 출구가 있는 벽면에 거미집을 지어놓고는, 집게발을 딸각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