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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추방한 용사가 되었다-16화 (17/158)

Chapter 16 - 16. 청문회 (3)

“내 그럴 줄 알았지. 애초에 출신부터 별로 특출날 거 하나 없는 놈이 성검에게 선택받았다는 말에서 눈치를 챘어. 도대체 신물(神物)은 왜 그런 놈을 선택한 거야?”

아직 용사가 입장하기 전의 의회. 한 나이 많은 궁정귀족이 껄렁한 말투로 말했다. 말투는 전혀 귀족답지 않고, 행색도 품위와는 거리가 아주 먼 것이었으나, 직급이나 작위가 꽤 높은 듯, 누구도 그 말에 토를 달려 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고작 검 하나를 뽑아 들었다고, 세상을 발아래에 둔 것 같이 오만해져서는.”

되려, 옆에 딸랑이들이 붙어 아양을 떨어댔다. 가장 큰 문제는, 저들이 그렇게까지 무능한 것이 아닌 점에 있다고 해야 하나. 그들의 분야에서만큼은 제법 능력이 괜찮다는 것이었다. 안드레 자빈 주교는 꼿꼿한 자세로 앉아 한 편의 광대극 같은 대신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파티에서 누구를 쫓아냈다고 하던가요? 그 용병이랬나?”

“이 사람아, 그 용병이 중요한 게 아니잖나. 무려 성녀님을 자기가 제 손으로 쫓아냈다고 하더라고. 무려 성녀님을! 믿기나? 우리조차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성국의 위대한 특사, 성녀님을 말이야.”

처음 잠시간은 저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도 제법 재밌었지만, 그게 5분, 10분을 이어가다 보니 슬슬 질리려 했다. 저 사람들의 표정이 청문회 도중에 시시각각 바뀌는 걸 구경하는 것도 나름 흥미로울 테니, 주교는 지루함을 참고 들어보기로 했다.

“용사는 과연 자기가 성녀보다 중요한 줄 아는 걸까? 그건 청교회에 있어서도 모독이겠지.”

열변을 토해내던 늙은 궁정귀족은 갑자기 안드레 주교에게로 고개를 돌리더니 굽신거리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교님. 이거 참, 우리나라에서 사람 한 명 때문에 온갖 민망한 모습들을 다 보여드리고 있군요.”

“완전무결함이란 신의 전유물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리고 실수하기에 사람입니다. 용사님이라고 실수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요.”

안드레 주교는 에둘러 말했다. 무난하기 그지없는 주교의 대답에, 궁정귀족은 입맛을 다시더니 화젯거리를 찾아 머리를 굴렸다.

“실수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실책이 반복된다면 결국 그게 실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정말 지금의 용사가 성검의 선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혹여 지금 청교회의 신물을 의심하시는 건지.”

안드레 주교의 목소리가 급작스럽게 서늘해졌다. 그 가는 눈 사이로 회색 눈동자가 번득이며 궁정귀족을 주시했다. 궁정귀족은 이유 모를 한기를 느끼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아, 아닙니다. 그저 용사의 자질이 의심되어…. 저기, 보십시오. 더 용사의 자질을 갖춘 기사들도 있지 않습니까. 신물 또한 저들을 보면 그 주인을 바꿀 겁니다.”

궁정귀족이 의회의 뒷자리에 앉아있는 기사들을 향해 턱짓했다. 안드레 주교가 궁정귀족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어올렸다. 용사 파티의 동료, 게오르그가 앉아있는 가운데 그 옆에 다른 기사들이 함께 앉아있었다. 아마 같은 직위의 기사단장들인 듯했다.

“저는 이 나라의 대신 중 하나로서, 잘못된 사람이 용사라는 감투를 쓰고 있는 걸 더 볼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성국과의 마찰을 빚을 뻔한 데 있어서도,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겁니다.”

단단히 미움 털이 박혔군, 용사님. 이번 청문회가 그리 간단하게 끝나지는 않겠어.

안드레 주교는 그리 생각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용사는 결코 편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권력자들이 내미는 손을 잡아 저들의 통제를 따를 수도 있었겠지만, 용사는 그들의 검이 되는 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행동하며 세상을 구하는 길을 선택했다.

과연, 이번에는 용사가 어떻게 대처할지.

안드레 주교는 다시 눈을 슬쩍 뜨며 의회로 들어오는 문을 보았다. 한 하위 귀족이 문을 열어 그 너머에 있는 용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들어오는군.”

누군가의 중얼거림과 함께, 문이 열리더니 새하얀 제복을 갖춰 입은 용사가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다. 의회에 모여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용사에게로 쏟아졌다. 용사는 그 수많은 시선에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는 듯, 되려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며 그 시선들을 돌려주었다.

“…뭔가, 용사의 분위기가 좀 바뀐 것 같지 않나?”

“그러게. 원래 저렇게 차분했었나? 분위기가 무거워진 것 같군.”

대신들이 수군거렸다. 공간 전체가 웅성거리는 듯한 소음이 차츰 잦아들며 산발적인 속삭임들로 바뀌다가, 해가 저물어가듯 아주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공간의 분위기가 용사 한 명의 존재로 인해 서서히 장악되어갔다. 대신들은 자신들이 떠들기를 멈출 이유가 전혀 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둘씩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

그 일련의 과정을, 안드레 주교는 흥미롭다는 기색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용사는 지난번에 보았을 때와 또 달라진 모습이었다. 고작 그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또 있었던 걸까? 시선을 돌리던 용사가 안드레 주교와 눈이 마주치자, 눈살을 슬쩍 찌푸렸다. 주교는 슬쩍 웃음을 지어주고는 청문회 위원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부터 청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의외성을 발휘할까. 당신이 청교회가 찾아 헤매던 그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을까. 안드레 주교는 책상 아래로 손을 비비며 용사에게 쏟아질 질문을 예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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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이 몇 보였다.

우선, 멀리 뒷자리에 기사단장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앉아있는 게오르그. 손을 흔들어 반겨줄 여유가 없어, 고개를 주억거려주는 거로 대신했다. 고개를 거기서 더 돌려보니, 수염만이 풍성한 월레스 백작이 보였다. 백작은 나와 시선을 마주치더니 눈을 슬쩍 돌렸다. 적이 되어주겠다더니, 얼마나 무서울지 한번 보자고.

윽.

그리고, 다시 알아볼 만한 사람이 있는지 고개를 돌리다가 마주친 안드레 주교. 이번 청문회에 성국측 청문인 입장으로 참여한 듯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고, 내 표정을 본 주교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 청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위원장의 엄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청문회는 용사 일로이의 ‘일곱 재앙’을 공략하기 위해 구성된 원정대에서 독선적인 행동과 동료를 억압하는 언행, 독단적인 원정대 인원 인선 등으로 그 전후 사정과 연유를 따져 묻기 위해 개최되었습니다. 용사 일로이, 먼저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할 말이 뭐가 있을까. 나는 어젯밤에 작성한 진술 용지를 들고 단상에 섰다. 예의상 하는 인사말은 대충 읽어 넘기고, 힘주어 말할 부분만 힘주어 말한다.

“…저는 성검에게 선택받은 용사로서, 그리고 이번 원정의 원정대장으로서 파티의 인선 권한을 위임받았습니다. 그 권한의 행사는 모두 공적인 이유와 배경에서 행해졌으며, 결코 공적인 권한이 없는 이의 독선은 아님을 밝히는 바입니다.”

고기는 던져졌다. 이제 저놈들이 몰려와 이 고기를 물어뜯겠지. 상한 고기인지, 멀쩡한 고기인지는 먹어보면 알겠지만.

“지금 그 말씀은, 지난 ‘세 번째 재앙’의 공략에서 보인 행동과 이후 원정대원들을 해고한 것이 모두 공적인 배경에서 나온 행동이라는 뜻입니까?”

제일 먼저 달려든 건 월레스 백작이었다. 나는 눈을 굴려 그를 바라보고는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 근거를 먼저 제시해주셔야지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덜렁 행동을 저질러놓고, 공적인 이유로 그러했다고 하는 게 직권남용이지 뭡니까?”

얼씨구.

“말씀하셨다시피, 저는 용사이기도 하지만 이번 ‘일곱 재앙’ 공략 원정대의 원정대장이기도 합니다. 원정대원들이 원정대장의 말과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명령 불복종으로 처벌해야 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그걸 원정대원들과 함께 잘 조율하는 게 용사의 역할 아닙니까. 말을 듣지 않는다고 무작정 자르고 보는 게 아니라요.”

나는 코웃음을 치며 비웃고 싶은 마음이었다. 통제가 안 된다는 이유로, 제 목소리를 키울 수 있다는 이유로 날 의회까지 불러내서 집단으로 린치하려는 게 누구더라.

“제 말에 따르지 않는다고 무작정 파티에서 추방했을 거면, 진작 ‘세 번째 재앙’을 공략할 때 그랬을 겁니다. 이미 충분히 기회를 주고 지켜봤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그 권한 자체를 독선적으로 이용하는….”

“이제 제가 지닌 권한을 독선으로 비하한다는 건, ‘제게 이 권한을 부여하신 분’을 비하하는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지요? 그리 쓰라고 받은 권한이니, 그리 쓰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생긋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몰아가기는 네놈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란다. 확연한 실언. 그것을 깨달았는지 월레스 백작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일단 한 놈 닥치게 했군. 그때, 월레스 백작을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다른 틀니가 입을 열었다.

“좋소. 그 용병을 자른 건 그렇다고 칩시다. 그럼 성녀님은? 성녀님도 당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파티에서 내보낸 게요? 성녀님은 우리 왕국의 사람이 아닐뿐더러, 성국에서 용사를 돕기 위해 파견한 특사요. 그녀까지 당신의 권한에 포함해 계산하는 건가.”

그나마 똑똑한 질문. 물론 대답이 준비되어있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아이시스를 추방한 건 결코 제 말에 따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녀를 추방한 이유는?”

여기서 연기가 중요하다. 나는 사뭇 진지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낯을 바꾸고는 말을 시작했다.

“그녀가 용사 파티에 속한 건, 용사 파티에도 방해이고, 세상에도 손해라서 그렇습니다.”

내 발언에, 의회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 대부분은 나를 보았다가, 성국 대표로 나와 있는 안드레 주교의 눈치를 보며 저들끼리 쑥덕거렸다. 물론 안드레 주교는 그 실눈의 웃음 그대로 꼿꼿하게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그게 지금 무슨 소리요 용사!”

“방해라니, 어찌 성국의 인사 앞에서 그런 헛소리를 늘어놓는단 말입니까!”

“지금 청문회가 우습게 보이는가!”

웅성거림은 짧은 회의였다. 저들끼리 의견 교환을 마친 대신들이 내게 마구잡이로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위원장이 망치를 내리치며 대신들을 조용히 시켰다.

“조용! 용사 일로이의 설명을 먼저 들어본 후에 질문하도록 하시오.”

벌써 이렇게 난장판이라니, 위원장의 이마 위로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한숨을 꾹 참는 듯한 표정의 위원장이 내게 발언하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그나마 이 사람이 정상인으로 보이는데.

“성녀, 아이시스는 확실히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치료하는 것이 불가능으로 보이는 상처를 회복해주고, 고통도 덜어가주지요.”

하지만, 그런 그녀가 있기에 생기는 문제점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녀는 온갖 괴력난신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그녀의 몸을 제대로 지킬 무력이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전장에서 성녀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다. 등을 맡기는 전투원이 아니라.

“하지만 그 상처 중에는 아이시스를 보호하기 위해 입은 상처도 많습니다. 그 전장에서 성녀는 제대로 된 호위 없이는 제 몸을 건사할 수 없으니까요.”

원작에서 그 대표적인 피해자가 게오르그였지. 물론 그만큼 아이시스가 회복해주기는 했지만, 애초에 입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상처도 많았을 거다. 내 말에, 내게 질문을 던지던 대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눈은 내가 아닌 안드레 주교를 힐끔 보고 있었지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럼 단순히 그거 하나 때문에 성국의 성의를, 아니, 성녀가 용사 파티에 제공하는 그 모든 이득을 포기하겠다는 소리인가!”

“용사 파티의 안위 때문이 아닙니다.”

“뭐?”

나는 여기서 확실히 강조하듯, 표정을 굳혔다.

“저번 원정 때에는 운이 좋았지만, 앞으로 성녀가 이 험한 원정 속에서 계속 살아남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재앙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고, 우리 파티가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 테니까요.”

그리고, 자리에 앉은 대신들을 찬찬히 둘러본다.

“성녀는 순교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겁니다. 전장에 서는 것이 아닌, 세계를 돌아다니며, 재앙으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이 그녀가 맡아야 할 역할입니다.”

침묵이 잠시 내려앉았다. 내 말로 순식간에 저 대신들은 성녀를 목숨이 오가는 전장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궤… 궤변이다! 성국의 의견도 아닌, 단순히 용사, 그대의 판단으로 행동한 건 오만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궤변이라고 소리치면 멀쩡한 말이 궤변이 되나. 나는 가늘게 뜬 눈으로 소리 지르는 대신을 바라보았다.

“안드레 주교님!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저 무지한 자에게 뭐라 말씀해주시지요.”

안드레 주교가 빙긋 웃으며 대신을 돌아보았다.

“뭐, 용사님의 말에 특별히 틀린 구석은 없습니다. 성국에서 내리지 못한 결단을 오히려 대신 내려준 것에 감사하다는 말까지 하고 싶군요. 다만, 걱정되는 건 하나 있지요. 과연 성녀가 없는 용사 파티가 잘 싸울 수 있을까, 라는 겁니다.”

좋은 도움이었습니다, 주교. 너무 잘 변호해줘서 조금 찜찜하긴 하지만.

대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마치 변명거리를 찾으려는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강한 어조로 나왔다. 이판사판으로 덤벼들기를 결정한 듯했다.

“아니, 그대처럼 독선적이고, 오만하며 제멋대로인 사람이 용사의 자격으로 그 성검을 쥐고 있을 리가 없다. 응당 용사라면 모든 것을 포용하고 함께 나아가는 것이 맞지 않은가.”

뒷배가 없다는 건 참 귀찮은 일이었다. 저 녀석들은 여기서 내게 져도 잃을 것이 많지 않지만, 나는 여기서 지면 모든 것을 잃게 되니.

“나는 용사의 자격을 여기서 다시 증명해 보이기를 요청하는 바요. 그대보다도 훨씬 용사에 걸맞는 이들을 왕국 곳곳에서 불러왔소. 단순히 성검을 쓰는 것이 용사의 자격이라면, 이들 또한 그럴 수 있겠지.”

대신은 그리 말하며 뒤에 정렬한 기사들을 가리켰다. 게오르그가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려고 저 사람들을 데려온 거였나. 그나저나…

들었어, 성검?

“[무지는 참으로 무서운 것이구나. 끝까지 인정하지 못하며 일말의 희망을 품고 발작하다니.]”

성검의 고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한 번 원하는 대로 해보라 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성검의 검자루를 매만졌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