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4 - 34. 스트로프 가문 (2)
퀘노어 대공은 가족들을 우리 파티의 앞으로 데려왔다. 척 보아도 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가족에게 저리 따뜻한 북부대공이라. 나는 속으로 웃음을 흘리며 퀘노어 대공의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당신들이 재앙을 잡기 위해 오신 용사 파티로군요.”
제일 먼저 우리에게 인사해온 건 대공 부인이었다. 북부가 아닌 중앙 출신인 듯한 그녀는 헤이즐넛 색의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틀어 묶고 있었다. 아마 나이는 대공과 비슷한 40대 후반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우리에게 웃어주는 얼굴은 30대 초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퀘노어 스트로프 대공의 아내, 헬라 스트로프입니다.”
귀부인에 어울리는 우아한 말투와 몸짓이었다. 온실 속 화초의 우아함이라기보다는 정치판의 산전수전을 모두 겪고 나온 이의 여유에서 우러나온 태도라 보였다. 전반적으로 북부의 거친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부인이 풍기는 아우라는 그 북부의 거침을 가볍게 눌러버릴 정도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괜히 재앙을 잡기 위한 이들이 아니더군.”
퀘노어 대공이 내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며 말했다. 이 아저씨, 괜히 또 가족 앞이라고 더 친한 척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대충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
“오랜만에 좋은 전사들을 만난 거 같은 기분이야.”
“당신이 손님을 그리 살갑게 대하는 것도 오랜만에 보네요.”
대공 부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에버노드에 오신 걸 환영해요. 모쪼록 머무르는 동안 편히 계시길 바랄게요.”
부인은 그리 말하고는 제 자식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먼저, 장남이 나서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맞잡으며 어색하게 악수했다.
“에버노드 기사단의 부단장, 루크 스트로프입니다.”
대공의 아들은 자신을 직책으로 소개했다. 차기 에버노드의 영주가 될 사람이라. 생긴 건 일단 퀘노어 대공을 정말 닮았다. 특히 저 무뚝뚝한 인상, 그리고 나를 의심하듯 바라보는 눈초리까지 말이다.
“용사님의 이야기는 북부에까지 들려오더군요. 왕도에 있을 때 용사님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지요.”
루크는 그리 말하며 슬쩍 우리 파티를 둘러보았다. 그 시선은 다프네와 수녀 복장의 마리안느를 보고는 미세하게 찌푸려졌다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
“…정말 성녀님이 없군요.”
“많은 사정이 있었습니다. 왕도에 계시면서 들으셨을 테지만요.”
성녀 역하렘물도 아니고, 왜 이렇게 성녀를 찾는 애들이 많아? 속으로 헛웃음을 내뱉으며 루크의 손을 놓았다. 루크는 딱히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용사님. 부디 이번에 에버노드와 더불어 네 번째 재앙을 훌륭히 무찌를 수 있기를.”
루크는 그리 말하고는 제 여동생을 슬쩍 앞으로 밀었다. 에버노드의 기사들이 ‘철혈공주’리고 부르던 아이. 꼭 누군가의 장난 같은 별명이었다. 아이는 눈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내가 허리를 슬쩍 숙이자 그때야 나와 눈을 마주쳤다. 머리카락은 북부대공의 그것처럼 새카만데, 눈동자는 대공 부인의 녹색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카린 스트로프입니다.”
제 나름대로 가다듬은 목소리로, 북부대공의 딸이 말했다. 아마 이 에버노드 기사들의 과보호를 받고 있을 테지. 그런 것치고는 전혀 응석받이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카린은 제 오빠나 어머니 같은 인사말을 생각해낼 수 없었는지, 이름만을 말하고 어물거리다가, 이내 불쑥 내게 루크처럼 손을 내밀었다. 나는 피식 너털웃음을 짓고는 그 작은 손을 잡아 악수해주었다. 나와 악수하는 카린의 표정이 환해졌다.
“잘 부탁할게요.”
“자, 잘 부탁할? 게요.”
카린이 힘겹게 인사를 마쳤고, 다음으로 우리 파티원들이 퀘노어 대공의 가족들과 한 명씩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의외로, 루크는 10년 전에 파병을 왔던 게오르그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린은 게오르그를 보고는 겁에 질려 표정이 굳어버렸다. 쯧. 애한테 겁이나 주고 말이야.
“카린 스트로프입니다.”
그리고, 다프네는 자칫하다간 카린을 껴안아 버리든가 혼자 뒤로 쓰러지든가 할 것 같았다. 자신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거리는 다프네에게, 카린은 조금 더 겁을 집어먹은 듯했다. 그리고 카린은 감탄하는 눈으로 무표정의 마리안느를 바라보았다.
“딸이 자네를 참 좋아한다네. 용사를 좋아하지 않는 어린아이가 어디 있겠냐 싶지만.”
퀘노어 대공이 귀띔했다. 슬쩍 시선을 돌리니, 카린이 나를 계속 흘끔흘끔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건지, 대놓고 나를 보지는 못하는 모습이었다.
“나중에 따로 시간이라도 내서 딸이랑 잠깐 이야기라도 나눠줬으면 하지만….”
퀘노어 대공은 조금 난감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도 결국은 아버지라는 말이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시간이야, 얼마든지 낼 수 있습니다.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 고맙군, 일로이.”
그리고 스트로프가(家)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옆으로 리스가 다가왔다.
“보시다시피, 카린 아가씨께서는 대공의 늦둥이입니다. 올해로 아홉 살이니…. 루크 공자님과는 열다섯 살 터울이지요. 우리 에버노드의 기사들과 병사들에게는 조카나 다름없는 존재고요. 조카손녀로 여기는 노기사들도 있겠군요. 영지 전체의 사랑을 받는 아이라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리스는 나와 같이 퀘노어 대공의 가족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용사님이 유달리 에버노드의 경계를 받은 이유가, 아가씨께서 용사님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러다가, 리스는 내게로 고개를 돌리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아가씨의 마음을 빼앗은 게 어떤 놈인지 민낯을 파헤쳐주겠다, 이런 생각을 가진 기사들도 분명히 있었겠죠.”
“나이는 먹을 대로 먹은 아저씨들이 유치하게 뭐하는 겁니까, 그게.”
뭐, 괜히 내 목에 목줄을 걸겠답시고 나대던 궁정 귀족들보다는 훨씬 낫나? 내가 헛웃음을 내뱉자, 리스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나저나, 왜 ‘철혈공주’입니까?”
저 아홉 살짜리 꼬마는 내가 아는 ‘철혈’과 정확히 상반되는 모습인데. 내 질문에, 리스가 웃었다.
“3년 전이었습니다. 아가씨가 여섯 살 되던 무렵. 스트로프 저택의 서고에서 세상의 많은 것을 알아가기 시작하던 때였죠.”
스스로 독서하는 여섯 살이라니. 역시 대공의 딸은 비범하다.
“그때, 아가씨께서는 어디선가 옛 해군의 ‘철혈제독’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듯합니다. 그 이후로 그 ‘철혈’이라는 단어에 어지간히도 꽂힌 건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날 철혈공주라 부르거라!’라고 기사들에게 말하고 다녔답니다.”
그 이후로 기사, 병사들과 가신들은 얼씨구나 하면서 카린을 ‘철혈공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사람들,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다.
“…나중에 저 아가씨가 커서 이 일을 떠올리면 얼마나 부끄러워할까요.”
“사실 우리 모두 그걸 고대하고 있습니다. 6년 정도만 기다리면 ‘철혈’이라는 말이 에버노드 전체에서 금지어가 되어버리겠죠.”
리스와 그리 낄낄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내 앞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용사님.”
퀘노어 대공의 장남, 루크 스트로프였다. 특별히 적의는 엿보이지 않았는데, 조금 혼란스러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왕도에 머무르다 올라온 것이라면, 일로이의 옛 평판도 북부의 기사들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겠지.
“출정식은 잘 봤습니다. 에버노드의 대표로서 인사를 드리고 함께 에버노드에 왔어야 했는데, 다른 업무들이 많아 함께하지 못했군요.”
“괘념치 마세요. 그렇지 않아도 에버노드의 기사분들이 우리 파티를 따뜻하게 환영해줘서-”
나는 이 대목에서 리스를 돌아보았고, 리스는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래, 당신들은 찔리는 게 좀 있어야지.
“제집처럼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루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무언가 결심한 눈을 하더니 앞으로 한 발짝 나섰다.
“용사님, 저와 검을 한 번 겨뤄보시지 않겠습니까?”
마침 루크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화제에, 자리에 있던 에버노드의 기사와 병사들의 귀가 사냥감을 포착한 사냥개의 그것처럼 쫑긋 세워졌다.
“싸움?”
“누구랑 누가 경합한다고? 용사님이랑 공자님?”
“빅 매치다! 시발!”
“일단 너희 둘이 가서 연병장 치워놔라!”
그래. 싸움과 결투가 곧 이 전투광들에게는 최고의 오락거리겠지. 나는 내가 결투를 수락하지도 않았는데 빛의 속도로 사라지는 병사들과 갑자기 판을 벌이기 시작하는 기사들을 벙찐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나와 실실거리며 대화를 나누던 리스도 사라지고, 게오르그는 이제 내 눈치도 보지 않고 북부의 기사들을 따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에버노드의 기사들은 웬만해서는 외지인을 이리 반기지 않습니다.”
루크는 미약한 적대심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저 시선이 너무 익숙해져서, 무덤덤해지려 했다.
“제가 무엇을 잘못 알고 있었는지, 용사님과 검을 겨뤄보며 알고 싶습니다.”
“…뭐, 저는 좋습니다. 싸움 한 번 하는 거 가지고 뭘 달라며 쪼잔하게 굴 생각도 없고요.”
대화와 타협이라는 건 에버노드 사람들의 머릿속에 없는 걸까. 나는 그리 생각하며 루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루라도 빨리 성장해야 한다. 에버노드의 기사단 부단장 정도씩이나 되는 강자와의 싸움을 내가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연병장을 막내 병사 둘이서 아주 광을 내놓았다. 나는 오래간 말을 타고 있어 뻐근해진 근육과 뼈를 이리저리 풀어주었다.
“[이번에는 조언하지 않으마. 네가 원하는 대로 한 번 싸워보거라.]”
내가 처참하게 깨지게 된다고 해도 말이야?
“[방심하지 않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너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거라.]”
성검의 진지한 조언에, 나는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그때, 심판 역할을 맡은 여기사가 내게 다가오더니 평범한 철검 한 자루를 척 내밀었다.
“이건?”
“…아무래도 결투에 성검을 사용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 말하며 심판은 내 등 뒤로 시선을 올렸다. 내가 무슨 소리냐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자니, 뒤에서 야유와 같은 소리가 날아들었다.
“맞습니다, 용사님! 결투를 10초 만에 끝낼 생각이 아니시라면 성검은 내려놓고 싸우지요!”
“오랜만의 결투인데, 좀 즐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기사들을 쳐다보았지만, 저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성검을 빼고 싸우라 아우성이었다. 아니, 설마 저것들이 내가 대공 아들 한 번 상대하겠답시고 성검을 개방하기라도 할 줄 아나.
“[…그래, 저들이 원하는대로 한 번 해주거라.]”
성검이 내 머릿속에 말을 걸어왔다. 기분 탓인지, 조금 토라진 듯한 목소리다. 삐졌나, 설마?
“[누가 삐졌다는 게냐! 어차피 내가 관여하지 않을 싸움, 네가 다른 검을 쓰는 게 네게는 훨씬 도움이 되겠지.]”
응. 역시 좀 삐진 거 같다. 나중에 검신이라도 정성스럽게 닦아주든가 해야겠다.
“[일로이…!]”
나는 성검이 더 화내기 전에, 재빠르게 심판에게 검을 넘겼다. 혹시라도 성검이 화를 내 괜히 여기사에게 화풀이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심판에게서 평범한 철검을 넘겨받았다.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 손에 낯선 검집이 쥐어졌다.
생각해보니, 성검이 아닌 검을 잡아보는 건 빙의하고서 처음이었다. 나는 확연히 다른 무게감과 감촉을 지닌 검을 바라보았다. 검자루를 감싼 가죽 띠는 부드럽고 촉촉했고, 검신은 성검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짧고 가벼웠다. 이런 말을 하면 화내려나?
“준비하시죠.”
맞은편에서 루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크는 내가 성검을 빼고 자신과 싸운다는 사실에 상당히 자존심이 상한 듯한 표정이었다. 뭐, 성검을 빼고 싸우는 건 둘째치고, 정말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건 내게 날아든 야유였겠지만.
뒤를 돌아보니, 우리 파티가 나를 응원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실질적으로 나를 응원하는 건 다프네뿐이었고, 게오르그 저놈은 은근슬쩍 루크를 응원하고 있었다. 마리안느는 무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게 그녀 나름의 응원이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어느새 관람객 사이에 끼어든 퀘노어 대공은 중립을 지키고 있었고, 그 옆에 선 ‘철혈공주’, 카린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와 루크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잘 부탁합니다.”
내 인사를 무시하며, 루크는 기수식을 취했다. 나 또한 머쓱하게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야유와 환성이 들려온다. 나를 응원하는 소리, 루크를 응원하는 소리. 나를 깎아내리는 소리, 루크를 깎아내리는 소리.
머릿속에 성검의 조언이 들려오지 않으니 온갖 잡소리들이 더 잘 들려왔다. 그러니, 조금 더 집중한다. 상대의 발걸음, 호흡을 관찰하고 근육의 작은 움직임과 성향을 파악한다. 확신이 드는 사실만을 머리에 입력하고, 확실하지 않은 판단은 버린다.
“양 기사 준비.”
뿌드득.
루크의 발이 지면을 으깨는 소리. 시작하라는 소리는 제대로 들려오지도 않았다. 루크의 발이 땅을 박차는 소리를 신호 삼아, 나는 검을 들어 쇄도해오는 검격을 우선 흘려냈다. 다가오는 검끝을 아주 정확히 포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쾅-!!
나는 그대로 검을 내질렀다. 루크가 검을 빗겨 올려내며 내 검격을 막아낸다. 이번에는 루크의 공세가 나를 포착한다. 발을 뒤로 뻗으며, 나는 마리안느의 움직임을 되새겼다. 나뭇잎의 잎맥을 짚어내듯, 검끝을 내 검끝으로 흘리며-.
캉-!!
쯧. 검면에 검끝이 맞으며 실패했다. 하긴, 저 녀석이 완성에 이르지도 못한 기예에 당해줄 정도로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지. 루크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나를 몰아붙였다. 한 번 움직임이 꼬여버리니, 수세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층 더 일그러진 루크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사과했다. 미안, 무시한 건 아니었는데.
“큭-!”
막는다. 흘려냈다. 그러는 와중에 나는 천천히 내 호흡을 되찾아 빈틈을 노리기 시작했다. 서로의 공세와 수세가 교차하며 전투가 백중세에 이르자, 루크가 마나를 끌어올리며 나를 튕겨냈다. 루크가 들어 올린 검의 검신이 마력의 푸른 빛에 감싸이고 있었다. 오러였다.
“진짜 전력으로 상대하려고 하는 건가.”
“이거, 진짜 오랜만에 볼만한 싸움이 되겠군.”
오러, 오러라.
나는 루크의 검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성검에는 오러를 덧씌울 수 없었지.
나는 그리고서 내가 쥔 철검을 내려다보았다. 얼마나 부딪쳤다고, 그 사이에 검신이 많이 상했다.
…할 수 있을까?
루크가 달려들었다. 정면으로 몇 번 맞받아쳤다가는 검이 부서져 버릴 걸 알았기 때문에, 나는 간발의 차로 루크의 오러를 흘려가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두근.
새로운 기분이었다. 검과 내가 연결되어있다는 기분. 내가 검을 완전히 나의 일부로서, 지배하고 있다는 기분. 내가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검이라는 땅에 뿌리를 내린다는 기분.
휙.
오러 블레이드를 다시 피한다. 넘실거리는 마력의 잔재를 느끼며,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한 줌 마나가 내 심장에서 빠져나가며 검자루로 흘러 들어갔다.
쾅-!!!
낙뢰가 떨어진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손에 들린 검의 무게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맞은편의 루크가 내 검을 바라보며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게 되네.”
나는 기수식을 취하며 검을 내려다보았다. 검신에 은은한 은빛 오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