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을 추방한 용사가 되었다-38화 (39/158)

Chapter 38 - 38. 주인공과 성녀 (2)

몇 달만이지, 이곳에 오는 게.

아이시스는 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비린내를 맡았다. 여름의 바다. 낮에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바람은 텁텁하고 더웠다. 숲의 끝자락에 다다르자 마차는 서서히 속도를 줄여갔다. 바크틴스는 좁다란 해로가 형성하는 깊은 만에 형성된 항구도시였다. 먼 옛날에 빙하가 쓸려 내려가며 지형을 만들었다나.

“이제 바크틴스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시스는 창문에서 고개를 돌려 맞은편에 앉아있는 아르옌을 바라보았다. 용병은 여기까지 오는 내내 썩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이시스는 계속 생각에 잠긴 아르옌을 불러보려다, 이내 관두고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휙. 나무가 한 그루 스쳐 지나갔다. 부서진, 아니, 완전히 으깨진 나무였다. 나무의 옆으로는 커다란 돌덩어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전투 중 날아온 파편이 남긴 흔적은 이제 시작이었을 뿐이었다. 항구까지는 아직 거리가 많이 남았을 텐데, 파편은 이미 눈앞의 모든 걸 초토화해놓은 채였다. 도저히 항구에서 날아올 무게가 아닌 것 같은 바위도 있었는데, 그런 바위는 숲을 아예 소멸시켜버리고 그 자리에 거대한 크레이터를 남겨놓았다.

“…끔찍하네요.”

아이시스가 중얼거렸다. 아이시스의 말은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쓸려 날아갔다. 자신이 있었던 전장이지만, 다시 이곳을 방문하는 건 썩 좋지 않은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어쩌다가 내가 여기까지 다시 오게 되었을까.

아이시스는 창틀에 팔꿈치를 올리고는 턱을 괴었다. 몇 주 전, 안드레 주교와 한 식당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서서히 아이시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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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시스를 어디로 데려가려 하는 거지.”

안드레 주교는 자신을 막아서는 용병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에는 늘 싱글벙글, 웃음을 짓고 다니는 그였지만, 은근히 끈질긴 아르옌의 태도에 조금은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아르옌이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 모를까, 무시하지도 못할 강자가 대놓고 끼어들려 하니 주교에게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왜 그걸 물어보려는지 모르겠군요. 말씀드렸잖습니까, 당신은 이제 완전한 외부인입니다.”

안드레 주교는 단호하게 아르옌을 끊어냈다.

“당신을 방해하려는 것도 아니고, 벌을 주려는 것도 아닌데 그만하시지요. 성국과 카이로스 왕국 간의 일에, 일개 용병인 당신이 끼어들어 뭘 어쩌겠다는 겁니까?”

아르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이시스는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나라고 외부인이 되고 싶어 된 건 아니다. 일방적으로 날 내쫓아놓고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거든.”

“아뇨. 할 말이 없으실 것 같은데요. 말씀드리겠지만, 아르옌씨. 이 이상으로 끼어든다면 카이로스 왕국과 성국에서 공조해 당신을 구속해버릴 수도 있습니다. 입장을 좀 자각하십시오. 당신이 지닌 힘도 자각하시고요.”

안드레 주교의 실눈 사이로, 잿빛 눈동자가 번득였다.

“당신은 내 선에서 적당히 타일러서 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일부러 일을 더 키우고 싶은 건가요?”

“그래? 당신 쪽에서 그렇게 나온다면 내가 순순히 물러날 줄 알았나 보군.”

“그만.”

참다못한 아이시스가 손을 뻗어 두 사람을 떨어트렸다. 아이시스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머릿속에 생각들이 와류(渦流)가 되어 휘몰아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시스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안드레 주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르옌도 데리고 가 주세요.”

“아이시스. 당신의 고집에 우리가 언제까지나 미소를 지으며 알겠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안드레 주교가 대답하자, 아이시스가 언성을 높였다.

“신변 보호를 위해 제가 개인적으로 고용한 용병입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

주교는 가만히 아이시스를 바라보다가, 이내 날카로웠던 기세를 거두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르옌은 자신이 더 날뛰었다가는 아이시스의 입장이 많이 곤란해지리라는 사실을 드디어 깨달았는지, 입을 다물었다.

“뭐, 좋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정도야 할 수 있으니까.”

안드레 주교는 아르옌의 동행을 허락하고는 돌아섰다.

“두 분 다 따라오십시오.”

주교를 따라 도착한 장소는 평범해 보이는 식당이었다. 아르옌은 끊이지 않게 경계를 하고 있었고, 그런 아르옌을 안드레 주교가 곁눈질로 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주교는 태연하게 콩 샐러드를 하나 주문하고는 아이시스의 눈을 마주 보았다.

“…제가 맡을 일이라는 게 무엇인가요?”

“바크틴스로 돌아가세요.”

바크틴스? 아이시스가 놀라 눈을 크게 뜨고는,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바크틴스는 갑자기 왜….”

아이시스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에, 안드레 주교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모르겠습니까, 아이시스.”

아이시스의 머릿속에서는 반발심이 우선 들었다. 도대체 안드레 주교가 왜 저런 탄식을 내뱉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주교의 저 한숨이 비웃음이나 답답함에서 오는 탄식이 아닌, 주교 자신을 지탄하고 아이시스를 안타깝다고 여기는 데에서 오는 무거운 한숨임을 알아차렸다. 아이시스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들었다.

“전후의 피해를 수습하는 일입니다. 세 번째 재앙이 깊게 남긴 상흔.”

그때, 아이시스의 표정이 한 번 무너져내렸다.

“이는 카이로스 왕국의 일이지만, 우리도 저 재난을 좌시할 수는 없어요. 청교회의 신자라면 마땅히 상처 입은 이들을 보듬는 게 옳습니다.”

아르옌의 얼굴은 여전히 표독스러웠지만, 입은 열지 않고 있었다.

“당신이 제멋대로 저 용병을 따라 파티를 탈퇴할 때, 용사님은 당신을 구태여 찾아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전후의 복구를 지원하고 상처 입은 자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기를 바랐지요.”

용사가? 일로이가? 아이시스는 파티를 탈퇴하겠다며 선언했을 때, 일로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자신을 붙잡으려 뭐라 말을 하다가,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던 모습. 그리고 그냥 자신이 그 건물을 나서도록 내버려 두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니에요.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 리가 없는데.”

자신은 그 파티에서 치료사였다. 전투에서 입은 상처를 금방 회복시켜주고, 그들이 다시 싸울 수 있도록 만들어주던 힐러. 그 용사라는 이름의 독재자 아래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든, 생각하지 않았든 용사님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아이시스.”

주교는 적포도주를 집어 들었다.

“그쪽의 용병분은… 뭐, 따라가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설마 전후 복구 현장에서까지 멋대로 행동하지는 않겠지요.”

“미안하지만 멋대로 행동한 건 내가 아니라, 용사 쪽이거든.”

“마음대로 하세요. 이제 당신을 용사 파티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감싸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전부 고용주인 아이시스가 지게 될 테지요.”

안드레 주교는 더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 코웃음을 치고는 포도주를 마셨다. 아이시스는 여전히 혼란에 빠진 눈으로 식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크틴스로 가는 마차를 준비해놓도록 하겠습니다, 아이시스. 성국의 사제 몇을 덧붙여 보낼 테니, 가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보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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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크틴스의 교외에 다다라, 마부가 말을 멈춰 세웠다. 드르륵. 마차와 마부석을 연결하는 미닫이문이 열리더니 주름이 자글자글한 마부의 얼굴이 그 사이로 나타났다.

“여기서부터는 더 못 갑니다, 성녀님.”

“무슨 일인가요?”

“길이 완전히 망가져서 도저히 마차가 갈 수가 없는 지경입니다. 내리셔야 할 거 같습니다.”

마부가 앞을 향해 턱짓하며 말했다. 아이시스는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려 앞으로 펼쳐진 길을 확인했다. 마부 역시 잠깐 말을 세우고서는 마부석에서 내려 허리춤에 손을 올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엉망이네요.”

“엉망이지요. 이쪽에서 성녀님을 모시러 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떡하시려는지요?”

아이시스는 뒤편을 돌아보았다. 그녀를 따라 전후 복구를 지원하러 온 사제들이 탄 마차 역시 멈춰 섰다.

“성녀님,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할 겁니다.”

사제들의 말에 아이시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타고 있던 마차에서 아르옌이 천천히 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표정한 용병의 눈은 그 어떤 감상도 품지 않았다.

“괜찮아요. 어차피 위험한 길은 전부 지나왔으니까.”

아이시스는 아르옌을 바라보았다. 아르옌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아이시스에게로 다가왔다. 바람에 그의 검은 머리가 흩날리고 있었다.

“길이 험하긴 하지만, 걸어 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네가 가기 힘들어 보이는 길은 내가 얼추 치워낼 수 있을 듯하니, 그렇게 가도록 하지.”

아르옌이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바크틴스의 중심부로 향하는 길은 말 그대로 사라졌다. 토사와 무너져버린 건물의 잔해. 그것이 아이시스의 눈앞에 보이는 전부였다. 아이시스는 눈을 깜박이며 그 참상을 바라보다가, 이내 표정을 굳히고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가자.”

아르옌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이시스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세 번째 재앙과 싸우던 때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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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옌과 일로이는 기본적으로 그다지 잘 맞지 않았으나, 세 번째 재앙과 싸우기 전까지는 아슬아슬하게나마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 그들이 정말로 갈라서게 된 계기는 세 번째 재앙과의 전투. 아르옌과 일로이는 그날을 기점으로 서로를 진심으로 증오하게 된 듯했다.

"해안가로 저 괴물을 다가오게 해서는 안 된다. 넓은 바다는 물론 안 되겠지. 좁은 해협에서 놈을 맞아 상대해야 해. 해협 사이에 놓인 섬들을 활용하면 가능하다."

"무의미하게 병사들을 소모시킬 생각이냐, 일로이. 해협에서 놈과 싸운다고 해도 놈을 바다에서 상대해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어. 크라켄을 정말 죽이기 위해서는 놈이 해안가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육지와 바다 두 곳에서 동시에 놈을 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법이 없어."

그리고 두 사람은 정말 불같이 싸웠다. 보통 말싸움으로 그치던 두 사람의 대화는 점점 험악해져 갔고, 그러려니 하고 넘기려던 게오르그도, 보통 용사의 편에서 아르옌과 아이시스를 공격하던 넬라도 그때만큼은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 아르옌. 내 말에 따라라."

"저 재앙을 쓰러트리고 싶지 않은 거냐?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용사. 객기를 부린다고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란 말이다. 네가 홀로 저 재앙을 쓰러트릴 정도로 강하지도 못한데, 무슨 싸움을 하겠다는 거냐?"

"그럼 너 혼자 육지에서 저 괴물이 오기를 기다려라. 나는 파티원들과 함께 바다로 나가겠다고 총사령관에게 말하고 오겠다."

그렇게 아르옌을 무시하고 일어나려던 일로이의 어깨를 아르옌이 잡아챘다.

"지랄하지 마라, 일로이. 자살하고 싶으면 너 혼자 해라, 개새끼야."

"바크틴스의 모든 사람을 죽이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바크틴스에 대피령이 내려진 게 사흘 전이다, 일로이. 이 땅에는 지금 아무도 없어."

일로이가 이를 부드득 갈며 말하기 시작했다.

"크라켄이 상륙하면 크라켄만이 상륙하는 줄 아는 거냐? 놈의 수하들 또한 크라켄을 따라서 바크틴스에 물 밀 듯이 들어오겠지. 그들은 말보다도 빠르다. 하물며 걸어서 이 땅을 빠져나가는 수만 명의 사람보다도 훨씬 빠르겠지. 그들은 이틀 내로 피난하는 모든 사람을 따라잡을 거다. 그리고 그들은 지켜줄 이 하나 없이 마물들에게 도륙이 난다."

일로이가 한 걸음, 발을 앞으로 딛는다.

"그리고, 그를 막기 위해 나서는 병사들은 더 많이 죽을 거다. 네가 말한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병사들은 그때 다 죽어버릴 거다."

일로이는 팔을 뻗어 아르옌의 옷깃을 잡았다.

"그렇게 크라켄을 상륙시켜, 육지에 놈의 몸을 묶어 재앙을 쓰러트린다고 하자. 그럼 남은 이들은 어떻게 할 거냐? 그 상륙에 희생당할 이들은 누가 책임지지?"

"그렇게 우리가 나서서 그 괴물을 죽이지 못한다면, 어차피 결과는 같잖아, 멍청한 새끼야."

아르옌이 일로이의 팔을 떨쳐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는 검을 뽑아 들어 일로이에게 겨누었다. 일로이 역시 검을 뽑아 대치했다. 두 사람은 그대로 싸웠다. 하지만 일로이가 아르옌에게 순수하게 검술로 이길 리는 없어, 아르옌은 그대로 일로이를 쓰러트린 후, 자신의 작전을 밀고 나가 용병을 용사보다 신뢰하던 총사령관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크라켄은 바크틴스에 상륙했다.

운이 좋았다. 정말 좋았다.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목숨을 버려가며 크라켄의 움직임을 묶었다. 발이 묶이던 크라켄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크라켄의 난동에, 상륙하려던 크라켄의 수하들이 대거 죽었다. 남은 이들이 크라켄의 본체를 공략했다. 아르옌이 앞장섰고, 일로이가 성검으로 힘겹게 크라켄의 숨통을 끊었다.

그게, 옳은 방법이었다고.

크라켄을 상륙하게 놔두었기에 놈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고, 재앙을 쓰러트린 이들은 그리 말했다. 그저 크라켄을 쓰러트리는 일만을 생각하고 있던 아이시스 또한, 그게 옳았다고 생각했다. 용사 파티는 전투가 끝나자마자 호송되었다. 재앙을 쓰러트렸다는 기쁨이, 마치 안대처럼 아이시스의 눈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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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시스는 바다에 잠겨버린 바크틴스의 해안가를 바라보며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지형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도시였던 건 폐허가 되었다. 바다와 가까운 지역은 완전히 수몰되어 땅이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땅 전체가 거대한 만이 되어 움푹 파여 들어갔다.

여기가, 원래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나? 멍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던 아이시스에게 바크틴스의 지방관이 다가왔다.

“성녀님, 어서 오십시오. 피해 복구를 지원하기 위해 바크틴스를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아이시스의 멍한 표정을 보던 지방관이 씁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크라켄이 상륙하면서 사실상 바크틴스는 없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조금만 더 파괴활동을 지속했더라면 이 지방 전체가 쑥대밭이 되거나, 물에 잠겨버렸을 겁니다.”

지방관은 감사하다는 듯한 말을 들려주었지만, 아이시스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주민들은….”

“대피하지 않겠다고, 원정대를 지원하겠다고 말했던 주민들도 많이 죽었어요. 바크틴스에 있던 병력은 말할 것도 없지요.”

지방관은 발에 채는 돌무더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피하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돌아왔지만… 대피하면서 당한 사람들도 꽤 많았습니다. 어떻게 현장을 빠져나간 마물에 습격당한 이들도 있었고, 날아오는 파편에 맞아 죽은 이들도 많았고요. 왕궁에서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이시스는 깨질 듯한 두통을 애써 무시하며 지방관을 따라갔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임시로 형성된 부락이 있었다.

“부디 상처 입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성녀님.”

부락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아이시스의 귓가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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