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2 - 42. 전초전 (4)
순찰대가 나아가는 속도는 평소보다 더뎠다. 대공의 명령도 명령이거니와, 오늘따라 유달리 순찰로에 걸리는 마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게오르그는 모닝스타를 휘둘러 달려드는 마물들을 쉬이 해치웠지만, 점점 쌓여가는 불안감은 지울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정도로 많군.”
게오르그는 모닝스타의 가시에 낀 살점을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게오르그의 발치에는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마물들의 시체가 너저분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이상합니다. 최근 들어서 이렇게 마물이 많이 나온 적도 없고, 한창 순찰로에서 마물을 토벌할 때와도 비교해 그 수가 지나칠 정도로 많습니다.”
게오르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 올랐다.
“느껴지는 한기도 심상치가 않더군. 한계선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남하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어. 당초의 예상은 숲속의 마물들이 한계선 뒤로 집결하고 있을 거라 했으니.”
잠시간의 생각 후, 3번 순찰대를 이끄는 에버노드의 기사, 리조가 말했다.
“아무래도 속력을 높여 ‘북부의 눈’에 빠르게 집결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이대로 우리끼리 고민해보았자 시간만 낭비할 뿐이고, 예감이 썩 좋지가 않거든.”
“동감이다. 일단 예감이 좋지 않아.”
전장깨나 굴렀다는 기사들의 예감은 무시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경험이 통계 자료처럼 무의식속에 쌓이고 또 쌓여, 비슷한 상황에서 일종의 경보장치와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었다. 게오르그는 리조의 옆으로 따라붙으며 감각을 곤두세웠다.
“…게오르그.”
“그래. 나도 방금 감지했다.”
리조가 검을 뽑아 들었다. 게오르그 또한 동시에 등에 매고 있던 방패를 내리고, 모닝스타를 허리춤에서 뽑아 쥐었다. 그들을 따라가던 순찰대 또한 각자의 무장을 올리고는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너무 늦게 감지한 건 아닐 테지.”
“아니야. 저 놈들은 애초에 우리가 감지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무와 돌을 넘어서 늑대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아무리 무리 생활을 하는 흰늑대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대형 군집을 이루지는 않을 텐데. 리조와 게오르그는 늑대들의 기세가 평소와는 눈에 띄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짐승처럼, 최소한의 통제만으로 움직이던 그들은 정말 인간의 군세처럼 체계를 갖춘 채로 움직이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늑대들이 무슨 일이지.”
게오르그가 중얼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무리가 갈라졌다. 흰늑대들이 터준 길 너머에서, 고고한 기세를 지닌, 다른 늑대들보다 반절 이상은 큰 흰늑대 한 마리가 나타났다. 큰 흰늑대는 자신을 경계하는 인간들을 바라보며 가소롭다는 듯, 캥, 짖었다.
“정말 우두머리의 말이 맞았군. 인간들이 숲에 많이 들어올 때가 되려 절호의 기회라고 하더니.”
강하다.
리조는 히죽 아가리를 찢는 놈을 바라보며, 제 뒤편의 병사에게 수신호를 보내었다. 병사는 벌벌 떨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리춤의 가방에서 신호탄을 꺼내 들었다.
게오르그는 가만히 전의를 끌어올렸다. 혼자 상대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강한 마물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홀로 저 마물을 막는 동안, 이 많은 늑대의 공세를 버텨낼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다. 그렇다면, 흰늑대들이 병사들을 죽이기 전, 자신이 저 큰 놈을 죽이면 될 일.
“쏴!”
뒤편에서 리조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오고, 신호탄의 탄이 하늘로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신호로, 게오르그는 방패를 치켜들고 묵직한 함성과 함께 대장 흰늑대를 향해 돌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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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노어 스트로프는 다가오는 그림자들을 마주했다. 동시에 쏘아 올려진 세 발의 신호탄을 따라 미친 듯이 말을 몰아가던 차였다. 잡졸들이 수십, 수백. 그리고 그의 신경을 거스르는 기척이 둘. 퀘노어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고는 명했다.
“빠르게 돌파한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끌렸다가는 3, 4, 5번 순찰대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리스가 다가와 대공의 곁에 섰다. 용사는, 괜찮겠지. 2번 순찰 구역의 인근까지 다가왔지만, 용사의 기척은 아직 느껴지지 않았다. 북부의 눈에 당도했을 가능성이 가장 클 거다. 아니면 자신처럼 이렇게 가로막혔거나.
“옵니다.”
리스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끼가 낀 나무 사이로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대공은 차분하게 기세를 가다듬었다.
“검은 머리 인간을 조심하라더니.”
말하는 마물. 커다란 흰늑대 한 마리가 나무 사이에서 나타났다. 이 녀석 정도는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두머리의 말이 맞았군.”
그 뒤에서 등장하는 반인반수는 퀘노어 대공으로서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우두머리’라고 불린 늑대인간이 손톱을 세우며 퀘노어 대공을 노려보았다. 이놈한테는, 발이 꽤 묶일지도 모르겠다. 퀘노어는 이를 부드득 갈며 늑대인간을 마주 보았다.
“나는 거인의 군단장, ‘구트’다.”
늑대인간은 지나치게 낮아서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이 숲을 살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마라.”
늑대인간의 뒤로 나타나는 흰늑대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리스가 퀘노어 대공의 뒤에서 침음성을 내뱉으며 검날을 세웠다.
“내가 인간들의 우두머리인 네놈의 머리를 베어, 그분께 진상하리라.”
“시간이 없다.”
퀘노어의 목소리가 낮았다. 서서히 그 기세가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수백 마리의 늑대와 거인의 군단장이 내뿜는 기세가, 퀘노어 스트로프의 오롯한 기세에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구트는 아가리를 일그러뜨리며 경계하는 소리를 내었다.
“한꺼번에 덤벼라.”
그와 동시에, 퀘노어 대공의 검에서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단순히 그 발동만으로, 땅이 울리고 공간 그 자체가 일렁였다.
“내 뒤로 정렬해라. 섬멸한다.”
““예, 알겠습니다!!””
늑대들이 노도처럼 밀어닥쳤고, 대공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오러의 반경에 있던 늑대들이 그대로 낙엽처럼 쓸려나갔다.
“그렇게는 안 되지.”
대공의 눈앞으로 늑대인간이 손톱을 세우며 떨어져 내렸다. 대공은 자신의 검이 나아가다 가로막힌 것을 보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역시, 빠르게 해치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약 그리고 용사가 대면한 놈이 이렇게 강한 녀석이라면, 아직 용사는 놈을 해치울 정도의 실력을 지니지는 못했다.
“가장 강한 놈은 내 차지다!!”
늑대인간은 아가리를 쩍 벌리며, 그리 으르렁댔다. 퀘노어 대공이 이를 부드득 갈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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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마리안느가 달라붙는 늑대를 떨쳐내려 창을 강하게 뒤틀었다. 흰늑대 대장은 더 달라붙지 못하고 창대에 밀려나며 바닥에 착지했다. 성창의 창간이 떨려오는 것을 느끼며 마리안느는 자세를 다잡았다. 말을 할 줄 아는 점에서 느꼈지만, 자신과 맞붙은 흰늑대의 대장은 강했다. 전력을 다해도 지금으로서는 승기를 점칠 수 없었다.
“마리안느님…. 하늘에.”
이미 활짝 열린 청각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4번 순찰대와 거의 동시에, 3번과 5번 순찰대에서도 지원 요청 신호탄을 쏘았다는 사실을. 지원은 그렇다면 당분간 오지 않을 수도 있다. 1번 순찰대와 2번 순찰대가 전투를 치르고 있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버텨주세요.”
마리안느는 짤막하게 말하고는 계속하여 대장 흰늑대를 마주했다.
“지금쯤이면 네 동료도 우리 무리를 만났겠군. 우리의 선물은 마음에 들었나?”
마리안느는 대답하지 않고 신형을 날렸다. 성창의 창두가 뱀의 머리처럼 날카롭게 휘어져 들어갔다. 대장 흰늑대는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성창의 창두를 피해 가며 움직였다. 마리안느는 창두로 흰늑대를 따라가지 않았다. 늑대의 벌어지는 아가리 사이로, 창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창준으로 늑대의 목을 찌르려 했다.
캉-!!
늑대는 그대로 아가리를 다물어 창준을 깨물었다. 마리안느는 성창을 휙 잡아당기는 힘에 억지로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창간을 꾹 붙든 채로 허공을 날았다. 완전히 탈력한 상태였기에, 나무 둥치에 부딪혀도 피해는 없었다.
마리안느는 흰늑대들을 상대하는 순찰대원들을 곁눈질로 보았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쓰러트릴 흰늑대 무리였지만, 지금은 그 수가 너무 많았다.
“바라나니.”
마리안느의 성법기가 성창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금빛 바람이 휘몰아치며 마리안느를 감싸 안았다. 대장 흰늑대가 불편하다는 듯 연신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털이 곤두서고 이빨이 드러나고, 발톱에 세워졌다.
“그 힘….”
창을 감싸는 오러. 마리안느는 다시 순찰대원들을 확인했다. 피해가 더 커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빠르게 이놈을 쓰러트려야 했다. 마리안느가 기세를 정비하던 차, 늑대가 눈을 빛내더니 먼저 달려들었다. 마리안느는 창간을 비틀며 늑대의 머리를 향해 손을 쏘아 보냈다. 늑대는 다시 마리안느의 공격을 피해 굴렀지만, 성법기가 미치는 여파에 몸이 쓸려야만 했다.
“감히-!!”
늑대는 노성을 터뜨리고는 다시 아가리를 벌리며 달려들었다. 덫처럼 닫히는 아가리의 송곳니가 나무둥치와 바위를 분쇄하며 나아갔다. 마리안느가 날아드는 나뭇가지와 돌무더기에 맞아 뒤로 튕겨 날아갔다.
“씹어먹어주마-!!”
달려드는 늑대의 송곳니에 성창의 창간이 부딪혔다. 생물의 이빨에서 날 수가 없는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마리안느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연거푸 공격을 날렸지만, 늑대는 제 아가리가 검이라도 되는 듯 고개를 휘저으며 마리안느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빨랐다. 그리고 무겁고 강했다. 사람의 창칼과는 그 공격 방식이 너무도 달랐다. 마리안느는 이를 꾹 깨물며 창두를 회수했다가, 폭발적인 속도로 달려드는 흰늑대 대장의 대가리에 들이받혔다.
“-!”
충격이 역류하며 마리안느를 관통했다. 다시 바닥에 착지한 마리안느의 다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늑대는 이빨을 빛내며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내 아가리에 네놈들의 살점을 꿰어주마. 그리고 세상에 겨울이 도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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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설계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완성된 마법의 위력 또한 좋았다. 하지만, 다프네는 처음으로 마나가 부족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방금 기사 하나에게 걸어둔 방호마법이 또 흐트러졌다. 다시 다프네의 마력이 한 뭉텅이 빠져나가며 방호 마법을 보충한다.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버텨요.”
다프네의 첫 마법에 늑대가 몇 마리나 죽어 나가자, 대장 흰늑대는 전법을 바꾸어 자신이 직접 나서 기사들과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프네를 위시해 늑대들을 정리해가던 병사들은 방어전으로 전환해야 했고, 다프네는 공격마법을 쏟아붓다가 병사와 기사들이 다치기 전에 방호마법을 걸어주어야 했다.
덕분에 현재의 형세는, 기사들의 벽을 뚫어 다프네를 공격하려는 대장 흰늑대와 남은 늑대들을 지워나가는 다프네의 줄다리기로 바뀌었다.
“끈질긴 인간들이구나.”
상황 자체는 팽팽했다. 하지만 다프네는 얼마나 더 이 형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저 늑대는 탐색전을 벌이듯 입질하고 있을 뿐이었고, 언제라도 더 강한 기세로 달려들어 방어선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교대합시다, 대장. 오러는 아껴 써야 합니다. 대장이 무너지면 다음이 없어요.”
“아니. 괜찮다. 너희들의 체력부터 온존해라. 지원군이 오고 있을 거다.”
하지만, 대장 흰늑대는 무리하지 않았다. 그저 돌을 던져보듯 제 부하들을 시켜 기사들에게 달려들라 할 뿐이었다. 그는 언제든 달려들 듯한 기세로 기다리고 있었지만, 정말 그가 공격을 개시하는 일은 없었다. 장기전으로 가면 인간이 무조건 불리해진다는 사실을, 저놈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늑대들은 장기전에 강하다. 늑대보다 덩치가 큰 순록에게 정면으로 달려들면 – 사냥에 실패할 확률이 올라간다. 그러기 위해서 늑대 떼는 순록 한 마리를 잡으려면, 몇 분, 몇 시간, 몇 날이고 순록을 쫓으며 조금씩 상처를 입히고, 체력을 떨어트린다. 그렇게 순록이 마침내 달리다 지쳐 쓰러지면 그때야 놈들은 이빨을 드러내며 순록의 숨통을 끊으려 다가온다.
이 경우에, 순록은 순찰대였다.
다프네는 다시 마법을 만들어내었다. 이미지는 불. 불의 벽이 늑대들을 향해 솟아오르고, 채 피하지 못한 늑대들이 다시 타들어 갔다. 하지만 그 위력 자체는 처음 전투를 개시할 때보다 눈에 띄게 줄어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듯한 대장 흰늑대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이제 네놈들이 슬슬 지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프네는 이를 부득, 갈고는 마력을 더욱 쏟아부었다. 불의 벽이 그 크기를 더욱 키워가며 주변을 불태우고, 방심한 채 다가오던 늑대들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불에 일렁이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일그러지는 빛 너머로 대장 흰늑대가 으르렁거렸다.
“…아직 발악할 힘은 남아있었군. 뭐, 좋다. 어차피 충분히 기다려줄 수 있으니까. 네놈들이 바라는 구원 따위는 찾아오지 않을 거다.”
다프네는 흰늑대의 말을 무시했다. 심장에 형성된 마나의 고리가 세차게 돌아가며 얼마 남지 않은 마나를 퍼 올렸다.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 너머로 늑대의 비웃음이 들려온다.
“마음껏 발버둥질 쳐라. 다가올 운명을 늦출 뿐이니까.”
불길이 약해진다.
늑대들은 그 끝을 모르고 어디선가 계속 다가왔다.
늑대들의 그림자가 하나둘씩 병사들을 덮친다.
다프네는 자신의 방호마법이 점차 흐려지는 것을 느끼고는, 불의 벽을 포기하고는 방어마법에 마나를 다시 쏟아부었다. 하지만 이미 다프네의 마나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끝이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아직 끝날 수는 없었다. 제발, 어떻게라도 좋으니 제발-!!
“…뭐지.”
그때, 다프네의 눈앞에 있던 늑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르렁거렸다. 병사들을 덮치던 늑대들도, 피투성이가 되어가던 병사들도, 모두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며 멈추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하고, 따뜻한 기운.
다프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성검이 발하는 것임이 분명한 새하얀 빛과,
언젠가 한 번 본 적 있는 은색 서기가 창공으로 광망을 그리며 솟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