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9 - 59. 무엇을 위한 검인가 (2)
나는 머쓱하게 뒷목을 긁적이며 대장장이를 바라보았다. 대장장이는 아직도 놀란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놀랄 만도 하겠다. 하필 비유를 들어도 용사를 들었대.
“이야기라도 좀 나눠볼 수 있을까요.”
대장장이의 표정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용사의 지위를 밝히지 않고, 웬만해서는 그냥 조용히 만들고 조용히 가져가려 했는데, 이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이라도 사용해야겠다. 그만큼 이 대장장이가 좋은 검을 만들어줄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대장장이는 팔짱을 끼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 마음 속에서 모종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음은 척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대장장이는 나를 스쳐 걸어가며 대장간의 문을 닫고 가림막을 내렸다. 괜히 시끄러워질 걸 미연에 방지하려는 모습이었다.
“…정말 용사님이라면, 이야기 정도야 나눌 수 있겠지.”
대장장이가 공방 가장자리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로 가서 앉았고, 대장장이는 앞치마를 풀며 땀을 닦았다. 그리고는 세면대에 가 간단하게 세안을 하고 손을 씻은 후, 물기를 털며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좀 더울 건데, 괜찮겠어?”
“네. 상관없습니다.”
대장장이는 천천히 걸어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검댕과 다른 얼룩이 묻어 지저분했던 얼굴을 씻으니, 다섯 살은 어려 보였다. 아마 일로이와 나이대는 비슷하지 않을까. 대장장이는 그렇게 앉은 채로 내 얼굴을 한참이고 응시했다.
“정말 용사님이네. 내 공방에 저런 유명 인사가…, 그것도 용사님이 찾아올 줄은 몰랐어.”
그녀는 혼잣말하듯 말하고는 의자를 앞으로 당겨 앉았다. 목소리와 말투는 생기가 넘쳤지만, 그녀의 눈은 생기와 피로 어딘가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검이 필요해서 대장장이 길드가 있는 골목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다른 장인들이 만드는 물건들은 성에 차지가 않더군요. 조르주씨의 공방을 처음에는 찾아가려 해봤지만, 그분은 오늘 휴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그 영감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왜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 까다로운 사람이긴 하지만, 실력은 확실하고. 용사님의 검을 만드는 부탁이라면 절대 거절하지는 않을 건데.”
따져 묻는 말투는 아니었고,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묻는 목소리였다.
“혹시나, 해서요. 다른 명장이 있을 수도 있는데 굳이 한 분만 고집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선택지를 넓힌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죠.”
나는 연마대가 있는 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연마대 근처 탁자에 쇠로 만든 잡동사니들이 있었다. 쇠사슬, 식칼, 공예품이나 쇠창살까지.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마 이 사람이 전부 직접 만드는 것들이겠지.
“그러다가, 우연히 장인께서 칼을 제작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조르주씨에게 방문한다는 선택지는 그 순간 제 머릿속에서 지워졌어요.”
설명은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얼마나 훌륭한 칼을 만드는지는, 대장장이 자신도 아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대장장이는 미세하게 미간을 좁히며 내 왼쪽 허리춤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런데, 용사님. 당신은 성검을 쓰잖아. 말고도 검이 하나 더 필요한 거야?”
나는 성검의 검자루를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쩌다 보니 쌍검을 다루게 되어서, 성검과 함께 사용할 검이 한 자루 필요합니다.”
“…아니, 그런 중요한 일을 여기서 맡기겠다고?”
“여기니까, 맡기는 겁니다.”
내게 확신을 주고, 성검이 강력하게 추진할 만한 솜씨를 가진 대장장이.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러니, 부디 검의 제작을 맡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장장이는 압술을 꾹 깨물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용사님의 추측대로, 나도 원래는 검을 만드는 사람이었어. 지금은 검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말이야.”
대장장이가 탁자 위에 올려둔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이유를 물어도 괜찮을까요. 대답하기 싫으시다면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니. 대단할 것도 없어. 너무나 개인적이고 웃기지도 않는 이유라, 용사님한테 말하기가 조금은 망설여질 뿐이지. 다른 대장장이들도 들으면 비웃을 거야.”
대장장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표정으로 보니 말을 해주지 않을 수가 없네.”
대장장이의 초록색 눈이 기억을 회상하며 잠겼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야장 일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했고, 제법 잘한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 공방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나는 행복했어. 쇠를 치는 게 좋아. 형태를 가다듬는 것도 좋고, 내 일련의 작업이 완성되어 세상에 나오는 것도 무엇보다 좋아해.”
가지런히 모인 대장장이의 손이 꾹 주먹을 쥔 형태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렇게 세상에 낸 내 작품이, 누군가의 피를 묻힌다는 사실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겠더라고. 처음에는 괜찮았어. 누가 무슨 검을 사용했는지까지의 소식은 웬만해서는 들려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대장장이가 눈썹을 구부렸다.
“5년 전에, 소식이 들려오더라. 카이로스 왕국과 인접한 베니샤 왕국과의 국경 분쟁에서 내 검을 사간 기사 몇몇이 크게 활약했고, 내 검이 아주 좋다고 칭찬했다더라. 갑옷째로 쉽게 적을 베어버릴 수 있었다고. 내 공방은 그 이후로 꽤 유명해졌었는데, 나는 그 이후로 들어오는 무구 제작 의뢰를 죄다 거절해버렸어.”
사람 죽이기를 쉽게 만들어주는 검이라니. 대장장이는 자조하듯 말하며 눈을 감았다.
“그것이 검의 원래 목적일 텐데, 어째서인지 그 말을 듣고 나서는 난 더 검을 만들 수 없게 되어버렸어. 만들지 않겠다, 스스로 그런 웃기지도 않은 다짐을 한 거지. 이해하지 않아도 돼. 남이 이해하기 힘든 이유인 건 나도 알고 있거든.”
그러니, 검은 만들 수 없어.
대장장이는 그렇게 말했다.
“당신이 용사님이란 건 알지만, 그리고 나를 찾아와줘서 정말 고맙지만, 검을 만드는 건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 같아. 내 마음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미안해, 용사님.”
대장장이는 진심으로 내게 사과하고 있었다. 성검이 내 머릿속에서 혀를 내찼다.
“[어떡할 거냐, 일로이. 이 대장장이가 만드는 게 최선이겠지만, 차선책이 없는 건 아니잖느냐. 차선이어도 아주 못 쓸 정도가 아니라면 괜찮다.]”
어떡하기는, 구질구질하게 엉겨봐야지. 어차피 오늘 이 사람을 설득하든가, 내일 조르주라는 대장장이를 찾아가든가. 둘 중 하나다.
“저는 검으로 사람을 베어 죽이지 않을 겁니다. 제 검은 지키기 위한 검이지, 죽이기 위한 검이 아니니까요.”
나는 그리 말하며 성검을 들어 검집에서 뽑은 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어제도 손질한 성검의 검날과 검자루는 새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특별한 장식도, 조각도 없지만 특유의 숭고함은 그 겉모습을 뛰어넘은 마력으로 나타나 분위기를 바꾸었다.
“성검은 사람을 베는 검이 아닙니다. 성검이 사람을 베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대장장이를 보았다. 그녀의 눈이 성검을 바라보며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당신이 제게 검을 만들어준다면 그 검 또한 성검과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겁니다.”
“…난 용사님의 말을 믿어. 세 번째 재앙과 네 번째 재앙을 물리친 사람인걸.”
나는 성검을 살펴봐도 좋다며 테이블 너머로 검을 밀어주었고, 대장장이는 얼떨결에 성검의 검신에 손을 올리고는 쓸어보았다.
“제작을 맡아주세요. 당신의 검에 죽은 사람보다 당신의 검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더 많을 거고, 제가 당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해드리겠습니다.”
“검은 사람을 베기 위한 거야.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일 거야.”
나는 성검이 귀띔해준 말을 들려주었다.
“나뭇가지로도 사람을 베고자 하면 벨 수 있습니다. 방패로도, 갑옷으로도, 사람을 죽이라면 죽일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성검을 다시 가져와 검집으로 집어넣었다. 대장장이는 물끄러미 성검을 따라 눈길을 옮겼다.
“그럼, 검으로도 사람을 지키고 구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겠죠.”
대장장이가 표정을 흐릿하게 바꾸었다. 마치 자신 말 속의 모순점을 깨달은 것처럼.
“용사님이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지만, 나는 도망가고 있는 게 맞아. 신념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도피야. 사실을 마주하기 두려워하고 있는 것도 맞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도망가는 것도 나는 제법 고집스러운 사람이라서.”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 자신이 깨닫고 있다면, 내 역할은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들려줄 수 있는 대답을 들려줄 뿐이다.
“그리고 제가 도망가려는 당신을 억지로 붙잡아 돌려놓으려는 것도 맞습니다. 절 비난하고 싶으시다면 얼마든지 비난해도 좋아요. 하지만 제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당신의 검이 필요합니다. 비난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요.”
대장장이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 한숨이, 내게 백기를 드는 한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속으로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신, 용사님이라는 신분으로 부탁하면 내가 정말 끝까지 거절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밀어붙이는 거지? 어떻게 막을 수 없단 말이야. 당신의 신념 앞에 내 다짐이 보잘것없어지는 걸 깨닫게 해주려는 거야, 뭐야.”
“뭐, 그런 것도 있죠. 물론 후자는 아닙니다. 난 내가 특별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진짜 악질이네.”
“돈이 부족한 것이었다면 금액을 얼마든지 더 추가해드릴 수 있습니다만.”
내가 수표책을 한 장 더 찢자, 대장장이가 사색이 되며 손을 마구 내저었다.
“그만, 그만해! 그러면 내가 꼭 돈에 굴복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거 같잖아.”
“아니었나요? 그럼 말고요.”
대장장이가 내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 후련하다는 듯한 쓴웃음을 바라보며 마주 미소를 지었다. 검의 제작은, 다행히도 이루어질 것 같다.
“[너답지 않구나. 그렇게 저 대장장이를 몰아붙여서까지 이 제작을 성사하려고 하는 데에는 또 이유가 있겠지.]”
성검이 나를 향해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뭐, 성검의 말대로 억지로 제작해달라고 하다시피 한 이유는, 비단 그녀가 검을 잘 만들기뿐만은 아니다.
“[저 대장장이가 후회할 걸 우려한 게 아니더냐.]”
역시 성검이라 해야 하나. 정확하게 맞췄다.
내가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더라면, 결국 제작은 성사되지 않았을 거다. 그럼 내 검을 만들지 않았던 것에 대해 계속 곱씹어보겠지. 그녀가 그런 식으로 검을 만드는 일로부터 도피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겠지.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 그녀에게 남은 건 두 가지 중 하나겠지. 내게 검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또 다른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든가, 아니면 신념을 지켰다고 합리화하며 자기 안에 더 갇히든가.]”
맞아. 이렇게 내가 반강제로 검을 만들게 시켰다고 해두는 편이, 그녀도 마음이 훨씬 편하겠지. 나중에 그녀가 만든 검이 어떤 일을 해내는지 확인하면 완전히 그녀를 옭아매고 있던 사슬에서부터도 해방될 수 있을 거고.
“[…정말 쓸데없이 깊이 신경 쓰는구나. 그녀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해도 괜찮느냐?]”
상관없어. 내가 미움을 받을 것도 아니고. 이렇게 네가 알아주잖아.
나는 보상하듯 성검의 검자루를 부드렵게 쥐었다. 성검이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급하게 덧붙였다.
“[누, 누가 그런 걸 원한다고 하더냐. 네 마음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요새 들어서는 네 심지가 점점 굳어지고 있어서 그런지, 완전히 네 마음을 읽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고….]”
그래, 그래. 고마워. 나는 검자루를 문지르다가 고개를 들었다. 대장장이가 결심을 굳힌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작해줄게.”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였고, 대장장이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고는 종이와 펜을 내어왔다.
“원하는 형태, 소재를 가르쳐주면 좋겠어. 참고할 만한 검이 있으면 더 좋고.”
“소재는 불변에 가장 가까운 금속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무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형태는… 검끝이 과하게 좁아지지 않고, 폭이 조금 넓었으면 합니다.”
내 말을 받아적던 대장장이가 흠, 하고 숨을 내쉬었다.
“미스릴 합금이 좋을 거 같고….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형태인데.”
“퀘노어 스트로프 대공의 검과 비슷한 형태였으면 좋겠습니다. 제 손과 잘 맞는 것 같았어서요,”
그 말에, 대장장이의 눈이 번쩍 뜨였다.
“미친. 그 검을 직접 써봤다는 말이야?”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장이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그 정도의 걸작을 원한다 이 말인가…. 검을 쓸 손을 줘봐.”
나는 왼손을 내밀었고, 대장장이는 내 손을 잡아보고, 팔목까지 더듬어보았다.
“좋아. 이왕 맡기로 했으니, 그리고 용사님의 검이니, 정말 최선을 다해 제작할게. 소재를 구하고 제작이 끝날 때까지 아마 몇 주 정도 걸릴 수도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대장장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난 로빈 벨이라고 해. 잘 부탁할게, 용사님.”
“일로이입니다. 잘 부탁할게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로빈은 내 비어있는 오른쪽 허리춤을 바라보았다.
“내가 만들어줄 검으로 세상을 구하는 모습을 언젠가 보고 싶네.”
“다음 개선식 때, 확실하게 보여드리도록 할게요. 당신의 검으로 세상을 구했다고.”
나는 로빈과 인사를 나누고는 대장간을 떠났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일이 잘 해결되어 다행이다.
“[…방금 대장장이와 네 대화를 들으며 생각난 게 있다, 일로이.]”
무슨 일이야?
“[종말 숭배와의 싸움은 재앙이나 마물과의 싸움이 아니다, 일로이.]”
성검은 우려하는 목소리로 그리 말헀다.
“[네가 그곳에 가는 걸 내가 만류하지는 않겠다. 언젠가는 부딪치고, 겪어야만 할 일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대답을 들려주지도 않고 가만히 걸어갔다.
“[이번에 네가 다시 힘겨운 시험을 받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춰 서고 길거리를 바라보았다. 시끄러운 대장간 거리를 사람들이 거닐고 있었다. 저들 사이에, 종말을 숭배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
“[마음을 단단히 먹거라.]”
…그래야지.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의 끝을 알리는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