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을 추방한 용사가 되었다-65화 (66/158)

Chapter 65 - 65.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 (1)

살점. 그리고 촉수처럼 검게 돋아있는 혈관. 하지만 아이의 표정만큼은 고통스러워보이지 않았다. 잘린 부위의 환통(幻痛)으로 일그러져있던 얼굴은, 지금만큼은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 마치 잠자는 사람의 그것처럼 말이다.

“이건… 어떻게 한 건가요?”

안드레 주교는 당황스러움을 내색하지 않으며 물었다.

“치료해주셨지요. ‘선생님’께서. 아이의 팔에 새살을 돋게 하고 고통을 줄여줄 거라고. 그리고 말했어요. 이 아이야말로 종말의 증거이니….”

여인이 아이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아이시스는 여인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아이시스의 눈에 보이는 건 오로지 끔찍하게 변해버린 아이의 모습과, 그저 아이가 더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며 기뻐하는 어미의 얼굴.

“자, 먼저 들어가 있어.”

여인이 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말하자, 아이가 다시 들어갔다. 아이시스는 사라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갔다. 무엇을 본 거지? 저 아이에게 대체 종말 숭배자들이 무슨 짓을 해놓은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 것일까. 저 아이 외의 다른 사람도 저런 짓을 당한 걸까.

아이시스의 머리가 핑 돌았다. 그녀가 휘청거리려는 기색을 보이자, 아르옌이 재빠르게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주었다. 안드레 주교는 아이시스를 흘긋 바라보고는, 여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주교의 눈동자는 무감정했다.

“들어오세요. 차라도 한 잔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아뇨, 괜찮습니다. 빨리 돌아가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해서요.”

주교가 적당히 둘러댔다. 여인은 안 된다는 것의 이유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선생님’께서는 자주 마을에 나타나시나요?”

안드레 주교의 물음에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매번 자정에, 설교 시간이 있을 때만 마을에 나타나셔요. 평소에 어디서 지내시는지 우리는 전혀 모르죠. 우리 아들의 마음과 몸을 동시에 치료해주신 것도, 그 설교 시간 때였어요. 그 전에 한번 낮에 마을에 모습을 드러내신 적이 있었는데….”

주교는 눈살을 찌푸렸다. 낮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밤에만 놈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놈과 접촉하는 법은, 그저 밤에 그 양조장에 숨어들어 가는 방법밖에는 없는 건가. 아예 그 양조장 속의 사람을 전부 처리하는 게 가장 깔끔하겠지만, 카이로스 왕국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어진다.

“‘선생님’을 뵙는 방법은 밤에 그 설교회에 참석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건가요?”

여인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내무관께서도 선생님의 가르침에 관심이 생기신 건가요?”

안드레 주교는 여인의 물음에 피비린내가 나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있다면 한 번쯤은 꼭 참석해보고 싶군요.”

여인이 주교의 대답에 달갑다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머, 그럼…. 자정에 우리 마을 끝에 있는 양조장으로 오세요. 새로 온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했고, 그게 우리 마을 밖에서 온 사람이라면 더 기뻐할 거예요. 우리 남편도 이렇게 나를 따라와 주면 참 좋을 텐데…. 그이는 끝까지 안 가겠다고 하니.”

여인은 그러며 주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주변에 이렇게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언젠가는 남편도 알아주겠죠?”

주교는 여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인.”

쿠당탕-!!

그때, 누군가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골목에 세워져 있던 빗물받이용 양동이가 엎질러지며 새카만 물을 흘렸다. 여인의 남편, 주교가 처음으로 만났던 사내가 얼굴을 분노와 공포로 일그러뜨린 채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당신-!! 내가 집으로 손님 데려오지 말라고 몇 번이나-!!”

사내는 열린 집의 문을 보고는 그대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가며 죽은 갈색이 되었다.

“아들을 보여드렸어. 성녀님은 우리를 도와줬었잖아.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봐야지.”

너무나 천진한 목소리였다. 사내는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그대로 아내의 따귀를 날렸다.

쩍-!

건장한 사내의 힘을 감당하기에는 여인의 몸은 너무 약했다. 여인은 그대로 뒤로 휘청거리더니, 문가에 부딪히며 픽 넘어졌다. 하지만 여인은 사내가 때린 뺨을 움켜쥐지도 않고,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부어오른 얼굴로 사내를 가만히 응시했다. 사내는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는 문가에 쓰러진 아내에게로 다가갔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건 안 된다고.”

“저분들도 이해했어. 선생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다고도 하셨고. 이제 당신만 알겠다고 하면 돼. 왜 우리 아들이 나았는데, 당신은 자꾸 아니라는 거야.”

“미친년.”

사내는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져 울음과 같은 노성을 토해냈다. 쿵. 쿵. 바닥을 내리찍는 사내의 손이 까지고 찢어지며 피로 물들었다. 여인은 그런 사내가 한 마리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진정하시지요.”

주교가 사내를 잡아 일으켰다.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나는 사내가 피범벅이 된 손으로 주교의 옷깃을 붙들었다. 씻지 못한 사람의 악취가 훅 올라온다. 사내는 그런 주교를 이끌고 골목의 깊은 곳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보았소.”

사내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주교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고, 사내는 팔을 부들거리며 주교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도와주시오. 내무관이라고 하지 않으셨소. 이 마을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단 말이오. 이 모든 게 다 그 ‘선생님’이라는 작자가 들어오고 나서부터요.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 꾐에 넘어가 이상한 가르침을 받고 있소.”

사내가 쉬지 않고 말을 쏟아내고는 거칠게 숨을 골랐다.

“이제 안 되겠소. 나는 이곳에서 도저히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가 없소. 아내는 내 떠나자는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소.”

사내는 그리고서 다시 주변을 살폈다.

“그놈의 귀가 어디서 듣고 있을지 모르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제 그놈의 눈이고, 귀요. 그러니….”

흐흐흐.

사내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주교와, 주교를 따라온 성녀를 바라보았다.

“도와주시오. 제발, 우리를 구해주시오.”

아이시스는 사내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무엇보다도 깊은 절망에 빠져 헤매는 이의 눈이었다. 주위 사람이 하나씩 미쳐갈 때, 혼자만이 이성을 붙들고 있는 기분이란 어떨까.

“성녀님. 제발, 놈들의 말을 부정해주시오. 이 미친 짓을 끝내주시오.”

우리에게, 세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주시오.

사내는 비통한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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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대체 뭐였습니까.”

이단심문관 중 하나가 말을 꺼내었다. 안드레 주교는 교회에 모여 앉은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마을 탐문을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저런 창백하게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주교는 아이의 몸을 뒤덮고 있던 살점의 형태를 떠올려 보았다.

“재앙의 파편.”

주교는 짤막하게 답하며 품에서 궐련을 꺼내 손에 쥐었다. 그리고는 성법기를 사용해 궐련의 끝에 불을 붙이며 빨아들였다.

“아마 세 번째 재앙…. 크라켄의 것이겠지. 이전에도 뱀의 살점을 먹여 악신 숭배자들이 괴물을 창조했었다는 기록이 있으니 말이야.”

후우. 주교의 입에서 연기가 희미하게 빠져나왔다. 늘 무표정을 유지하던 아르옌의 얼굴도 지금은 역겨움에 일그러진 채였다.

“왜 그런 짓을 벌이는 거지.”

“단순한 호기심에 그런 짓을 벌이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진지하게 재앙의 부활을 기원하며 그런 짓을 벌이는 놈들도 있습니다.”

주교가 다시 길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담뱃잎이 검게 타들어 갔다.

“그럼 그 이식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지.”

“뭐라 말하기를 기대하십니까. 지성과 이성을 잃은 괴물로 돌변하거나, 저대로 살점 덩어리로 변해 죽거나. 둘 중 하나겠죠.”

주교는 부락을 향해 내려가는 내리막길을 바라보며 연기를 내뿜었다.

“다시 재앙이 부활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합니다. 아마 악신 숭배자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0에 수렴하는 가능성에 수천 명의 사람을 갈아 넣을 수 있는 게 악신 숭배자들이죠.”

아르옌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재앙의 부활이라도 되는 건가.”

“아닐 겁니다. 그들의 목적은 아무도 몰라요. 아마 그들의 우두머리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안드레 주교는 휴대용 재떨이를 꺼내 담배꽁초를 넣었다.

“자,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하나씩 정해지는 것 같군요. 놈들의 이단 설교회에 숨어들어 종말 숭배에 접근하는 것. 그 ‘선생님’이라는 작자를 잡아내는 것, 종말 숭배자들을 솎아내는 것, 그리고….”

“그 흔적을 이식받은 아이를 죽이는 것이겠지. 혹시 같은 사람이 있다면 또 찾아 죽이고.”

아르옌이 냉정하게 말했다. 주교는 아르옌을 못마땅하다는 듯 돌아보았지만, 그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예. 그 아이가 이상한 존재로 돌변하기 전에 처리해두는 게 가장 좋겠지요. 살점으로 변해 알아서 사라지는 게 우리 입장에는 좋겠지만, 이미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으로 보면, 마물로 돌변해버릴 가능성이 훨씬 클 것 같으니.”

안드레 주교와 아르옌의 눈이 마주쳤다. 아르옌은 쓴웃음과 함께 검자루를 거머쥐었다.

“실행을 지체할 필요가 있을까.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게 좋지 않나.”

“그 ‘선생님’을 잡을 때 함께 시행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여기 숨어있는 놈들은 그래도 꽤 규모가 있는 편인 듯하니, 만전의 준비를 기하는 게 좋겠죠.”

주교는 품속에서 비수를 한 자루 꺼내 쥐었다. 아이시스는 주교의 비수가 의자 위로 내리꽂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마치 의자가 아이의 머리라도 되는 것처럼. 비수의 칼날은 부드럽게 의자를 파고들었다.

도와주시오. 제발 우리를 구해주시오.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이시스는 아이의 처우에 관해 이야기하는 주교와 아르옌을 바라보았다. 처우란 곧 어떻게 아이를 죽일지를 의논함을 말했다.

‘무의미하게 병사들을 소모시킬 생각이냐, 일로이. 해협에서 놈과 싸운다고 해도 놈을 바다에서 상대해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어. 크라켄을 정말 죽이기 위해서는 놈이 해안가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육지와 바다 두 곳에서 동시에 놈을 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방법이 없어.’

그 말에 동의함으로써 이미 나는 그들을 구할 수도 있던 기회를 한 번 저버렸다. 나는 두려웠으니까. 아직 다른 사람을 구한다는 것이 어떤 무게를 지니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아이시스는 그 누구보다 이 선택의 결과를 가까이서 목격했다. 살려달라는 아비규환을, 치료해줄 시간도 없이 죽어가던 사람들을 기억했다. 사라진 도시, 부서진 마을. 자신의 아이가 죽으면 그 사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우리에게, 세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주시오.

아이시스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안 됩니다.”

아르옌과 안드레 주교가 동시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이시스는 다시 한번 똑똑히,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담아 말했다.

“아이를 죽여서는 안 됩니다.”

안드레 주교가 아이시스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이시스.”

“말 그대로예요. 그를 죽이지 말자고 말하는 거예요.”

주교는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시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이를 되돌릴 방법은 이제 없습니다. 저렇게까지 침식된 이상, 아이에게 남은 미래는 둘뿐이라고.”

살점이 되거나, 괴물이 되거나.

“우리에게 죽는 게 차라리 훨씬 덜 괴로울 거다.”

아르옌은 그리 덧붙였다. 아이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저 선택지 모두, 아이시스는 택할 수 없었다. 이건 속죄가 아니라 그녀에게 주어진 벌이었다.

“내가 치료할게요.”

안드레 주교와 아르옌의 표정이 굳었다.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시간 낭비에요, 아이시스. 당신의 마력을 이런 곳에서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시스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기회는 줄 수 있잖아요. 한 번만이라도. 그게 실패한다면, 주교의 뜻대로 하면 되잖아요.”

“…언제, 어떻게 치료하겠다는 소리입니까, 아이시스.”

“그들이 양조장에 모인다는 시간에 가서 치료하면 돼요.”

이번에는 아르옌이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위험하다. 밤에는 분명 활동을 자제하라 말했을 텐데. 아이시스. 그들을 동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동정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게 있다.”

“설령 당신의 마법이 기적을 일으켜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난, 누가 뭐라 해도 그곳으로 갈 거예요.”

아이시스의 말에 아르옌이 눈살을 찌푸렸다.

“보이지 않는 가능성에 너무 많은 위험을 부담해야 해, 아이시스. 우리의 목적은 이곳의 이단들을 잡아내는 거라는 걸 기억해야….”

“이단들을 잡아내,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겠죠.”

“어린애의 고집이다.”

아이시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녀의 의견에 동조하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안드레 주교는 아르옌과 함께 반대하고 있었고, 다른 이단심문관들 역시 난감하다는 듯 아이시스와 눈을 마주치려 들지 않았다.

이대로, 이대로 두면 아이는 자신이 다시 치료해보려 하기도 전에 죽을 거다.

그렇다면, 그들은 영원히 구원받지 못한 채로, 구정물처럼 고여 살아가야 할 거다.

“제발….”

아이시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한 번만, 기회를 받을 수만 있다면.

“저는 아이시스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때, 정적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르옌은 그 목소리에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들었다.

“…너.”

용사.

일로이가 손을 들고 있었다.

“한없이 0에 가깝더라도 구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걸 왜 무시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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