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8 - 68.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 (4)
파지직.
정전기에서 나는 소리를 수십 배 확대해놓은 듯한 소리가 아이의 우반신과 아이시스의 손 사이에서 일어났다. 아이시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움츠렸다. 치유의 빛이 아이의 몸에 스며들지 않고 산란하며 주변으로 빛을 퍼뜨렸다. 사내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갔고, 나는 가만히 아이시스를 바라보았다.
“쉬우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아이시스는 중얼거리며 손이 저릿하다는 듯 쥐었다 폈다.
“저 변형된 신체가 마력의 침투를 거부하네요. 확실히 제 신성력과 상반되는 성질.”
아이시스가 숨을 작게 내쉬었다. 아이의 신체 위에서 아이시스의 신성력이 남긴 잔재가 번개처럼 꿈틀거리며 맴돌고 있었다. 아이시스의 푸른 눈은 그 흔적을 맹렬하게 쫓고 있었다.
“저걸 덜어낼 수 있을 거 같아?”
“제 마력이 저 가죽을 뚫고 들어갈 수만 있다면.”
아이시스는 그리 말하며 다시 소매를 걷고 아이의 오른쪽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아이의 몸에서 생명의 기색은 보이지 않는데, 이따금 살점 위로 돋아난 촉수와 혈관이 숨을 쉬듯 꿈틀거리는 모습이 꺼림칙했다.
“침투시키는 데 성공하기만 한다면, 마력과 저 살점의 성질이 상극이기 때문에 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되도록 할 거예요.”
아이시스는 성공시키겠다며 눈을 부릅떴다. 다시 아이시스의 심장부에서부터 마나가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그 흐름이 팔을 타고 흘러 아이시스의 손으로 내려왔다. 아이시스는 이번에는 더 굳건하게 뭉친 마력이 발현되었다.
콰지지직!
검은 살갗과 아이시스의 신성력이 다시 맞붙었다. 아이시스는 마력을 거두지 않고 유지했다. 이지러지는 마력과 이물(異物)의 소리는 물 묻은 유리창을 손톱으로 긁는 것처럼 괴로웠다. 아이시스의 이마를 따라 땀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할 수 있어.”
아이시스는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 되뇌었다. 사내가 피운 촛불에서 촛농이 녹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바깥의 불온한 침묵을 느끼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공기가 술렁거리는구나.]”
나도 느끼고 있었다. 창문에 가리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금 주교와 마리안느, 아르옌이 있는 곳에서 무언가가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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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으스러졌다. 여인은 눈을 까뒤집으며 의식을 반쯤 잃고서 뒤로 쓰러졌다. 여인의 다리는 망치질 한 번에 형체를 잃어버렸다. 억, 억. 하면서 입에서 완전한 고통조차 내뱉지 못하는 여인의 등을 ‘선생님’이 받쳤다. 여인의 얼굴을 타고 눈물이 줄줄 떨어졌다.
“잘하셨습니다. 실로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의 손을 여인의 다리 위로 올려놓았다. 여인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새카맣고 불길한 마력이 ‘선생님’의 손에서 일었다. 심연의 물길처럼 그건 여인의 다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헐떡이던 여인의 숨이 가라앉았다.
“여기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지요.”
‘선생님’은 여인에게서 손을 떼며 일어섰다.
“고통은 잠시뿐입니다.”
목소리는 달콤한 유혹으로 뒤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선생님’은 여인을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여인은 그 손을 잡으며 황홀하다는 듯 흐리게 눈을 떴다. 고통의 눈물은 여인의 표정과 함께 일그러진 환희의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선생님’은 여인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 보상은 영원합니다.”
‘선생님’이 여인을 일으키고서는 그 뒤로 줄을 선 사람들에게로 걸어갔다.
“자, 형제님은 무슨 일로 치료를 받으셨습니까.”
“저는…팔이 부러졌었습니다.”
청년이 저도 모르게 오른팔을 거머쥐며 대답했다. ‘선생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번에도 제가 도와드려야 하나요.”
“아닙니다.”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 팔을 양조장의 바닥 위로 내리치고는 망치를 받아 다시 오른팔을 내리찍었다. 한 번, 두 번. 정작 팔은 부러지지 않고 고통을 호소할 뿐이자, ‘선생님’이 남자에게서 망치를 빼앗아 휘둘렀다.
쾅.
그리고 ‘선생님’이 허리를 숙이며 남자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마리안느가 안드레 주교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명령을 내려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안드레 주교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을 뿐이었다. 다음. 다음 사람. 사람들은 치유되었던 상처를 되돌리며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갈수록 자신의 몸을 해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지고 있었다.
면도칼로 팔을 긋고, 발목을 으스러뜨리고, 몸에 구멍을 내었다. 눈을 치료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송곳으로 제 눈을 찔렀다. 피와 눈알의 유리체가 섞인 걸쭉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좋습니다. 아주 바람직해요.”
‘선생님’이 눈에 구멍을 낸 사람의 얼굴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그 눈이 다음 사람을 포착했다. 묘령의 여자였다. 그녀는 앞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혀가던 중이었다. ‘선생님’은 그 반응을 바라보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당신은 여기 온지 얼마 되지 않았군요?”
여자는 몸을 떨며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매님은 무슨 일로 치료를 받으신 건가요?”
“…잔해에… 옆구리가 관통당해… 있었습니다.”
그런가요. 라고 ‘선생님’이 무감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조장의 구석을 향해 걸어갔다. 술통과 파이프가 너절하게 흩어져있는 바닥에서 ‘선생님’은 쇠파이프를 하나 집어 올렸다. 끝이 죽창처럼 날카롭게 잘린 파이프였다. ‘선생님’이 파이프를 내밀자, 여자는 한참을 머뭇거리며 그 파이프를 바라보았다.
“싫으시다면 거부하세요. 하지만 그런 당신에게 제가, 우리 형제들이 자비를 베풀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선생님’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가라앉았다. 여자는 팔을 바들바들 떨며 마지못해 파이프를 받아 쥐었다. 파이프를 들고 있는 여자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저기에 옆구리를 다시 관통당한다면 고통의 경감이고 뭐고, 죽어버릴 거다. 마리안느는 동요하고 있었다.
“자, 자매님. 선택하세요.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필요하다고 말씀하세요.”
여자의 눈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주교의 시선은 그녀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게 하지 못하도록 여자를 속박하고 있었다. 여자가 파이프를 꽂아버릴 것처럼 높게 들어 올렸다. 마리안느의 기척이 흔들리며 드러나려 할 때, 마리안느와 주교, 아르옌의 앞으로 누군가가 다가와 섰다. ‘선생님’과 비슷한 기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우리 교단은 당신, 이단심문관들의 움직임 정도는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생각보다 우리는 세상에 더 깊숙이 들어와 있거든요.”
‘선생님’이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드레 주교는 그들의 눈앞에 들이밀어진 악신 숭배자들의 구불거리는 칼날을 바라보았다.
“자, 형제자매님들. 이 꼴을 좀 보십시오. 청교회라는 작자들이 품에 비수를 품고 우리들을 해하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왔습니다. 이자들은 우리를 잡아가 교회 지하의 의자에 묶을 겁니다.”
‘선생님’은 다시 입을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비로운 신의 수하를 자청하며 자비가 없습니다. 달군 인두로 여러분의 가슴을 지지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불타는 목마 위로 당신들을 올려놓고 악귀가 씌었는지, 악마와 결탁했는지를 물으며 고문할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고문을 이기다 못해 사실대로 털어놓는다면, 이들은 여러분의 목을 매달아 죽이거나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일 겁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까 전까지 ‘선생님’이 그들의 신체를 가혹하게 학대하고 부러뜨리고 찢은 건 생각하지도 않고 셋을 향한 적대의 시선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아직 이 마을에 숨어있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잡아라.”
“잡아서 데려오겠습니다.”
웅성거림이 커지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눈에 광기가 깃들었다. 그들은 분노를 부르짖으며 양조장의 문을 부수다시피한 채로 뛰쳐나갔다. ‘선생님’이 팔을 활짝 벌리고는 파이프를 쥔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제 보여주도록 합시다! 결코 호락호락하게 굴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단결된 모습을! 우리의 고통을 무시하는 거짓과 기만에 굴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여자의 눈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숭배자들의 시선이 그녀를 어서 죽음으로 다가가라 떠밀었다. ‘선생님’은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무엇을 해야 할지 아시겠나요, 자매님?”
그 쇠창을, 당신의 옆구리에 꽂아 넣도록 하세요.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신형이 사라졌다.
서걱.
“어?”
휘두르는 소리는 한 번이었다. 허나 허공을 가른 검격은 십수 번을 넘어섰다. 피. 어둠 속에서 피는 검은 물이었다. 하늘로 피가 솟구치고 땅으로 낙하하며, 피바다를 만들었다. 자리에 우뚝 서있던 악신 숭배자들의 양팔이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투두두둑.
‘선생님’은 잘려버린 왼팔을 내려다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가 불러일으킨 소란은 재갈을 물린 것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사라져버렸다.
“…어?”
서늘한, 자신의 어둠조차 압도하는 살기를 풍기며, 한 남자가 어둠과 군중 속에서 저벅저벅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검을 빼 들고 있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악신 숭배자들의 팔을 모조리 베어버린 검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생각보다 훨씬 짜증 나는 광경이로군.”
용병, 아르옌이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파이프를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더니, 그 손에서 파이프를 빼앗아 양조장의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빈 파이프가 떵그렁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넌 저기 구석에 가서 앉아있어라.”
아르옌이 여자를 떠밀었고, 그녀는 얼떨떨한 눈빛으로 아르엔을 바라보더니 뒷걸음질을 치며 물러났다. 마리안느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나저나 방해꾼을 알아서 다 내보내 주다니.”
아르옌의 목소리는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을 압도했다.
“악신 숭배자라는 새끼들은 생각보다 멍청하네.”
‘선생님’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뒤로 펄쩍 뛰었다. 그의 잘린 왼팔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가 촉수가 되어 아르옌을 향해 발사되었다. 아르옌이 눈살을 찌푸리며 검을 들어 올리기도 전, 빛무리에 감싸인 비수들이 날아들어 촉수를 관통했다.
“당신, 실력은 확실히 쓸만하군요. 당신이 빠르게 움직여주지 않았더라면 조금 곤란해질 뻔했습니다.”
안드레 주교가 관절을 뚜두둑 풀며 용병의 옆으로 다가왔다.
“마리안느, 너는 저 여성분을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가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고 나면, 다른 쪽을 지원하러 가고. 이곳은 우리가 정리하도록 하지.”
마리안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성을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활짝 열렸던 양조장의 문이 덜컹거리며 닫히고, 안드레 주교의 성법기가 발하는 빛이 어둠을 비추었다. 주교는 후드가 벗겨진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는 기분이 나쁘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네놈들은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로군.”
‘선생님’의 윗 얼굴은 재앙의 파편을 이식받은 소년처럼 촉수와 살점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르옌이 잘라낸 왼팔에는 문어의 그것과 같은 촉수가 꿈틀거렸다.
“이미 인간이라고 하기도 글러버린 모습이군.”
“크흐흐흐….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밤에 우리들과 싸우기를 결정하다니.”
‘선생님’이 신호를 보내듯 손을 들어 올리자, 악신 숭배자들의 몸이 뒤틀리더니, 변형되며 괴상한 괴물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메뚜기와 사람이 섞인 모습도 있었고, 뱀처럼 몸에 비늘이 돋아나는 것도 있었다.
“어떻습니까?”
“알아서 하지.”
아르옌이 검에서 오러를 뽑아내며 중얼거렸다. 그는 그러며 흘긋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시스가 아이를 치료하고 있을 곳. 아마 얼마 가지 않아 주민들에게 발각되겠지.
결국 세상은 이렇다. 우연과 요행으로 바뀌지 않는다. 정직하게 발버둥쳐도 웃어주지 않는다. 용사 파티가 몰려오는 주민들에게 어떻게 대응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시스에게 위해가 가해진다면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래. 너도 이번에 느끼겠지.”
희미하게, 용사에 대한 분노를 느끼며 아르옌은 악신 숭배자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