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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추방한 용사가 되었다-102화 (103/158)

Chapter 102 - 102. 휴가 (1)

“어, 걸렸다.”

나는 움찔한 낚싯대를 재빨리 잡아챘다. 나뭇가지에 낚싯줄만 대충 걸고 엮어 만들어낸 낚싯대는 의외로 그 역할을 잘 수행해 주었다. 나는 나뭇가지 끝에 걸려 대롱거리는 송어를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크기는 손바닥보다 큰 정도. 아직 치어인 건가, 아니면 다 자랐는데 이 정도 크기인 건가.

“이거, 잡아놔도 괜찮은 건가?”

나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게오르그에게 내가 잡은 송어를 들어 보여주었다. 게오르그는 송어의 등과 배 모양과 색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물을 받아놓은 양동이에 내가 잡은 송어를 넣었다. 게오르그는 슬쩍 내 양동이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이제 두 마리째인가, 일로이? 처음 치고는 제법이군.”

“뭐. 솔직히 낚시는 너 혼자 해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게오르그는 낮게 웃음을 내뱉고는 다시 여유롭게 낚싯대를 드리웠다. 저 녀석의 커다란 양동이에는 송어가 우수수. 그것도 제법 커다란 놈들이 잡혀 있었다.

“우리가 다 먹지는 못할 테니까, 몇 놈은 골라서 놓아줄 거야. 지금부터는 그냥 재미로 하는 거지. 너는 좀 더 잡고 싶겠지만 말이야.”

게오르그는 낚싯대를 거치대 위로 올려놓고는 그리 느긋하게 말했다. 나와 게오르그는 낚시 여행을 왔다.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겨우 이틀 묵고 돌아가는 조잡한 캠핑이긴 하지만. 우리는 제법 들뜬 채로 온갖 물건들을 실으며 준비했다. 마차를 하나 빌리고, 천막과 도구를 사고, 한 놈은 마부석에 앉히고 한 놈은 도구 사이에 끼여 마차에 앉았다.

“이런 장소가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어. 넌 어떻게 여기를 알게 된 거냐?”

내가 묻자, 게오르그는 은근히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잿빛곰 기사단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명소 같은 거지. 북부로 가는 길에 있는 숲길. 마물의 출현도 드무니까, 우리 사이에서는 딱 이렇게 야영하러 오기 좋은 장소로 통하지.”

나는 낚싯바늘에 미끼를 걸며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게오르그는 살짝 흔들리는 낚싯대를 보고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겨울은 고요한 계절이었다. 물 흐르는 소리도,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게오르그를 따라 낚싯대를 던져놓고는 간이 의자 위로 쪼그리고 앉았다.

“낚시는 말이지, 일로이. 물고기를 낚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낚싯대를 멍하니 바라보는 내게 게오르그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물고기를 그렇게 많이 잡아놓고 이 사람은 지금 뭐라는 거야. 나는 눈살을 슬쩍 찌푸리며 게오르그를 돌아보았다. 게오르그는 느긋한 표정으로 강둑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과정,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가 잡힐 때까지의 기다림을 위해 하는 거지. 어떤 종류의 기다림을 즐기는가는 그 사람에게 달렸지만. 나처럼 풍경을 감상하거나, 아니면 이 고요함을 즐기거나. 멍을 때려도 상관은 없겠지.”

어딘가 신선이 할 법한 말이었다. 게오르그는 무릎에 팔을 받쳐놓고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려 고개를 들었다. 늘상 눈만 펑펑 쏟아 내리던 하늘은 오늘은 좀 개었다. 쨍한 하늘에 구름은 보이지 않는다. 해가 빛을 바꿔가며 따뜻한 볕을 드리운다. 물론 날씨는 춥기가 그지없었지만.

“손맛으로 낚시하는 사람들에게 실례다, 그거. 바다에서 그 거대한 물고기랑 씨름하는 사람이라든가. 그건 이제 투쟁의 영역이라고.”

나는 게오르그에게 그리 대꾸하며 슬쩍 자세를 편하게 바꾸었다. 발치의 낙엽이 바스러진다.

“뭐,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급할수록 물고기는 더 걸리지 않는다. 그건 손맛으로 낚시를 하는 사람이라도 다 아는 사실일 거야.”

게오르그는 잔에 담아놓은 술을 홀짝거리며 말했다. 게오르그는 그리고서 내게 잔을 내밀었고, 나는 차마 사양하지 못하고 그 잔을 받아 술을 홀짝거렸다.

“너도 기다림을 즐기는 법을 깨달아봐라.”

나는 잔을 바닥에 내려놓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을 빙빙 돌며 날고 있었다. 나는 독수리의 항적을 눈으로 따라갔다. 독수리는 날갯짓을 잘 하지 않았다. 나는 게오르그와 술을 번갈아 홀짝거리며 날아다니는 새를 보다가, 비어버린 술잔을 툭툭 두드렸다.

“…술 더 있냐?”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건가?”

게오르그는 낄낄 웃으며 술이 가득 든 가죽 통을 들어 올려 보였다. 그리고는 술잔을 가져가 술을 한가득 따르고서는 다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꺼내 온 다른 술잔에도 술을 따라 내 옆에 내려놓았다. 찰랑거리는 술잔을 바라보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옆에서 게오르그는 여전히 큭큭거리며 웃고 있었다.

달그락.

그때, 마침 드리워놓았던 낚싯대가 흔들렸다. 나는 잔을 내려놓고는 낚싯대를 잡아채며 들어 올렸다. 그런데 내가 너무 급하게 낚싯대를 들어버렸던 탓일까. 낚싯대가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허탈한 표정으로 낚싯대를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내뱉었다. 게오르그는 부러진 낚싯대를 보면서 다시 낄낄거렸다.

“…그래도 봐봐. 잡았네.”

나는 머쓱하게 얼음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얼음 구덩이 옆에는 내가 낚싯대와 함께 끌어 올린 커다란 송어 한 마리가 있었다. 게오르그는 함께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아직 마음이 급하다는 소리 아니겠냐.”

“잡았다면 된 거지.”

우리는 얼음 위에 누워있는 송어를 바라보며 헛소리를 중얼거렸다.

“저거 한 마리로 저녁거리는 해결된 거 같은데.”

“그러게나 말이다.”

게오르그는 커다란 송어를 들어 내 양동이에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나뭇가지를 하나 더 들어 내 낚싯줄을 풀더니 새로운 낚싯대를 만들어주었다.

“자, 아직 낚시를 그만두기에는 시간이 너무 이른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조잡한 낚싯대를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나는 다시 얼음구멍에 낚싯대를 던져놓고 등을 툭 기대었다. 뭔가, 가만히 기다린다는 게 어떤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해가 완전히 졌다. 송어는 생각보다 맛있었고, 겨울밤은 생각보다 그리 춥지 않았다. 불가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타는 소리가 났다. 하늘이 맑아, 별이 아주 잘 보이는 날이었다.

“북부에 갔을 때가 생각나는군.”

“그러게, 에버노드에도 한 번 얼굴 비추러 가야 하는데 말이야.”

나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며 말했다.

“머릿속을 비울 때도 있어야 한다, 일로이. 여섯 번째 재앙은 아직 멀리 있을 테니까, 지금은 가만히 쉬어도 되지 않겠나. 네가 그 이상으로 너를 더 몰아붙이기 전에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구하려면 말이지.”

불똥이 별처럼 튀었다. 그렇게까지 무리할 생각은 없었는데. 여섯 번째 재앙은 어차피 감시하는 곳이 따로 정해져 있고, 그전까지 발생할 법한 일들은… 아직 일어날 때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할 일은 그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는 것이었다. 강함이라는 것도 조급하다 해서 얻어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무슨 생각 하는지 얼굴에 다 보인다, 일로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네 쪽이잖냐.”

나는 핀잔하듯 말하고는 다리를 쭉 펼쳤다. 오늘은 마력을 사용하지도 않고, 마나를 끌어올리지도 않았다. 아주 자연스러운 졸음이 나를 덮쳐오기를 나는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종종 가자. 낚시.”

나는 낚싯대를 던지는 시늉을 해 보였다. 게오르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래. 다 끝나고 나면 전 대륙을 돌면서 낚시 투어라도 시켜주마.”

휴가가 시작되고 3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뒤로 불안감을 미룰 수 있다면 얼마나 미룰 수 있을까. 나는 뭉그적대며 자신의 천막으로 몸뚱아리를 집어넣는 게오르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게오르그가 들어가고 나서도 가만히 불가에 남아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게오르그가 코를 고는 소리가 조용한 밤을 울렸다.

“넌 아직 다시 말할 생각이 없는 거냐?”

나는 허리춤에 걸린 성검을 바라보며 물었다. 성검은 아직도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많이 허전했다. 재앙을 물리치고서 수고했다는 말, 이번에는 이렇게 해야 했다는 말. 더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

“…네가 없어도 잘할 수 있다는 말이야?”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내게는 아직 네 말이 필요하다고. 그것보다, 네가 내게 들려주었던 말은 무엇이었냐고. 나는 성검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천막에서 꺼내 온 기름과 헝겊을 꺼냈다. 검집에서 나온 성검의 검날이 모닥불의 불꽃을 받아 은은히 빛났다.

“그게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아.”

너는 무엇인지, 원작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아주 먼 옛날부터 존재했던 신성한 검이라고 할 뿐이다. 나는 헝겊에 기름을 먹인 후 천천히 성검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수없이 많은 마물을 베고 재앙을 베어낸 검날은, 처음 마주했던 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상하지도 않았고, 빛이 바래지도 않았다.

“…불평해서 미안.”

나는 사과하고는 검날을 닦기 시작했다. 헝겊으로 검날을 쓸어내린다. 이상하게도, 검날을 쓰는 헝겊은 베이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가만히 검날을 닦았다. 다시 말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아니다. 성검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라고 나는 자신을 위로하며 다시 검집에 성검을 넣었다.

“언젠가는 말해줘.”

나는 그리 말하고는 내 천막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졸음이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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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다 왔어요?”

본부로 돌아온 나를 맞이한 건, 어째서인지 본부에 자리한 다프네였다. 다프네의 뒤로는 앞치마를 한 마리안느가 보였다. 내가 없는 사이에 이 본부는 두 사람의 차지가 되어버린 건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품에는 자그마한 강아지가 안겨 있었다.

“여기는 웬일이야?”

나는 내 손가락을 핥으러 달려드는 강아지의 머리를 긁어주며 물었다.

“그냥, 놀러 왔어요. 마리안느도 혼자 있어야 할 테니, 심심할 거니까요.”

“장비들은 본부 창고에 넣어두겠다, 일로이.”

그 와중에, 게오르그는 야영 때에 사용했던 장비들을 부지런히 옮기고 있었다. 다프네는 창고로 날라지는 장비들을 보며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 이틀 정도 가면서 저렇게 장비를 많이 가져갔어요?”

“…사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 어쩔 수 없어.”

나는 궁색하게 변명하고서 본부에 들어섰다. 다프네의 차림은 꼭 집에서 입을 법한 편한 옷차림이었다. 그러고 보니, 강아지까지 떡하니 집에 있고. 그냥 놀러온 건 아닌 거 같은데.

“휴가 동안 여기서 지내기로 했어요.”

다프네는 그리 말했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떻게 된 일이냐며 마리안느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다프네가 대신 설명하겠다는 듯 고개를 다시 돌리라고 손짓했다.

“제가 무작정 찾아와서 방 하나 달라고 한 거예요.”

“저도 홀로 지내는 것보다는 함께 있는 게 좋을 거 같아 부탁드렸습니다.”

가만히 있던 마리안느까지 변명에 함께 끼어들었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이리저리 내저었다. 그런 내 표정을 보고 있던 다프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안…되나요?”

윽. 나는 그 보랏빛 눈을 마주하며 어깨를 흠칫 떨었다. 거기에 마리안느까지 합세해 어째서인지 눈을 빛내고 있었다. 나는 더 우물쭈물하지 않으려고 강하게 숨을 내쉬었다.

“아니…. 원하는 만큼 지내.”

다프네의 표정이 확 밝아졌고, 제 주인의 기분에 따라 강아지가 함께 활짝 웃으며 헥헥, 혀를 내밀며 할딱거렸다. 나는 걔속 열려있던 로비의 문을 닫았고, 다프네는 강아지를 바닥에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이건 뭐 당황한 티를 더 낼 수도 없네.

“아, 그리고 아침에 왕궁에서 서신이 왔었어요, 확인해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다프네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내게 왕궁의 봉인이 걸린 편지지를 내밀었다.

“…고마워.”

다프네는 여우같이 웃으며 뒤로 돌아섰다. 보이지 않는 꼬리가 살랑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한 방 먹은 기분으로 왕궁에서 날아온 서신을 펼쳐 보았다.

용사 일로이에게

그렇게 말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래로 이어지는 문장을 보고는 눈썹을 올렸다.

널 강해지게 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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