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6 - 106. 돌아온 탕아 (2)
숨어든 쥐새끼들.
그 말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건 악신 숭배자들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쥐새끼라고 표현할 만한 녀석들은 그 정도 밖에는 없겠지. 내가 어딘가 짐작이 간다는 듯한 눈치를 내비치자, 라우라는 내 예상이 맞을 거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용사님이 짐작하시는 대로, 아마 악신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마탑에 들어온 것 같슴미다.”
“그렇다면 차라리 탑주께서 직접 그들을 솎아내는 편이 빠르지 않겠습니까?”
라우라는 내 질문에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놈들은 저도 모르게 은밀하게 활동하고 있고, 제가 나서봤자 그들의 경계심만 살 뿐임미다. 제가 수족으로 부릴 수 있는 이들도 마법사들로 한정되어있고, 그마저도 악신 숭배자가 아니리라는 확신은 없는 이들. 슬프지만, 제가 마탑 내에서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지금 용사님밖에는 없는 것 같슴미다.”
악신 숭배에 마법사라. 그런 이들이 활동한다면 티가 날 법도 하지만, 마법사의 세계는 괴이하다는 걸 알고 있다. 단순히 연구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눌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사회적 지위를 초월한 이 규칙은, 왕국 최고의 마법사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힘으로 제압하면 반발을 사겠죠. 마법사들의 세계란 복잡하네요.”
“그러니, 차라리 아예 믿음직한 외부인을 데려와서 쓰는 게 낫슴미다. 이를테면, 악신 숭배자 공공의 적이자, 세 개의 재앙을 격파한 살아있는 전설인 용사님처럼요.”
칭찬이 무겁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거봐요. 칭찬에는 무조건 경계부터 하고 본다더니, 폐하의 말대로잖슴미까.”
여왕이 그런 이야기까지 했었나. 그 정도로 두 사람이 친한 건가. 나는 재미있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웃는 라우라의 시선을 피했다. 이 사람은 조금 다른 이유로 껄끄러워질 것 같다.
“[일로이, 저 마법사, 그냥 늙은 여우나 다름없다. 대할 때 조심해라.]”
성검이 윽, 하고 침음성을 내뱉으며 말했다. 나도 알고 있다. 라우라의 오드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느껴지는 깊은 마나의 일렁임이 느껴졌다. 겉보기의 나이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심후함. 문득, 저 사람의 진짜 나이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뭐, 어쨌든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 기꺼이 맡아 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어디서부터 조사를 해야 할지는 전혀 단서가 없지만 말입니다.”
단서가 없다는 말에 라우라는 불만스럽게 볼을 부풀렸다.
“아무리 그래도, 제게 아무런 단서가 없는 건 아님미다. 어떻게, 어디서부터 조사를 시작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오.”
라우라는 내게 책자를 하나 내밀었다. 나는 책자를 펼쳐 보고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 동그라미들이 전부….”
“전부, 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저들을 중심으로 조사하시면 됨미다. 뭐, 세계의 멸망이 닥쳐온다고 하더라도 제 연구 결과는 보여주지 않으려는 작자들이니, 조심하셔요.”
라우라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아직 휴가 중이라는 사실 모르는 건 아니죠?”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말은 아님미다. 학기가 시작하면 그때 함께 시작하면 될 것 같아오. 그때면 당신도 강사로 종종 얼굴을 보여야 할 테니 어색하지도 않겠죠.”
나는 책자를 흘긋 바라보고는 접어 다프네에게 건네었다.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자를 받아 손가락을 튕겼다. 라우라는 타오르는 책자를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책자는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나는 재를 쓸어모으며 라우라를 바라보았다.
“얼굴과 이름은 얼추 외웠고, 나머지는 필요할 때마다 보고받겠습니다. 저런 게 유출된다면 우리가 세워놓았던 모든 계획이 어그러질 테니까요.”
라우라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용사님도 의외로 그렇게까지 순진한 사람은 아니네오. 낭만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씀미다.”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그럼 개강하기 전에는 뭘 하고 있으면 될까요?”
라우라는 내가 화제를 대충대충 넘기는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다시 눈썹을 구부렸다.
“지금 여섯 번째 재앙을 관측하는 학회가 있슴미다. 아마 알고 계시겠지만. 혜성을 포착하고, 감시하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으니, 남은 한 달 동안 소행성의 동향을 관찰하면서 휴가는 휴가대로 즐겨주세오.”
라우라의 시선은 내게서 다프네에게로 옮겨갔다. 다프네는 평정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라우라는 다프네가 방에 들어설 때부터, 나보다는 그녀에게 신경이 더 쏠려있는 것 같았다.
“6서클의 천재 마법사님. 한때 우리 마탑에도 속해있지 않았나오?”
“그 시절은 잊었습니다.”
다프네는 단호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라우라는 턱을 괴며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다시 마탑으로 적을 옮길 생각은 없슴미까? 아니면 정식으로 제 뒤를 이을 생각은?”
욕심이 흐르기 시작한 오드아이를 바라보며, 다프네는 소름이 돋았는지 팔을 쓸고 있었다.
“용사 파티에 속해있는 게 문제라면, 모든 재앙이 토벌되고 세계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 후에 정식으로 후계 절차를 밟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함미다.”
라우라는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다프네는 도와달라는 듯 간절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이라면 저를 뛰어넘어 다음 경지를 바라볼 수 있을 검미다. 그 나이에 여섯 번째 고리를 만들어내고 일곱 번째 고리를 향해 전진하는 사람은 여태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니까.”
나는 점점 앞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탑주의 이마에 검지를 얹고 뒤로 밀어냈다. 탑주가 버둥거리고 있는 게 손끝에서 느껴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프네는 용사 파티 소속입니다. 그리고 옛날에 마탑에 있을 때 그녀의 자질을 알아보지 못하고 붙잡지 않은 것도 마탑이었고요. 듣자 하니, 재학 중에는 여느 마탑의 마법사와 다름없이 담당 교수 아래서 부려 먹히다가 졸업했다는데.”
내 가시 돋친 말에, 라우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제가 한 번이라도 다프네씨를 보았더라면, 그녀는 지금 제 바로 아래에서 사상 최고의 마법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검미다.”
뭐, 진지한 부탁이라기보다는 기회를 놓친 사람의 절규 정도로 들렸지만. 나는 다프네에게 닿으려 계속 팔을 허우적대는 라우라의 이마를 계속 밀어냈다. 징징거리는 라우라의 목소리가 귓바퀴를 따라 맴돌고 있었다.
“단호하시네오.”
라우라는 시무룩해진 채 책상 위로 축 처졌다.
“여섯 번째 재앙이나 격파하고 나서 생각하시죠. 마탑이 이번에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다프네가 갖는 인상 또한 바뀔 테니까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는 소리와 함께 라우라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눈빛이 다프네를 따라가자, 이번에는 다프네가 입을 열었다.
“다 끝나도 저는 마탑에 돌아갈 생각이 없어요.”
라우라는 그 단호한 선언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제가 있을 곳은 지금도, 앞으로도 용사 파티니까요.”
다프네는 그리 선언하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라우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어기적거리며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오는 발걸음으로 문가에 다가가 문을 열었다.
“알겠씀미다. 그럼 일단은 여러분이 상황을 보고받을 학회부터 안내해드리겠씀미다. 따라오세오.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나는 터덜터덜 걸어가는 라우라를 따라가려다, 다프네에게 소매를 붙들렸다. 다프네는 내 소매를 붙잡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었다.
“저, 어디 안 갈 거예요.”
“네가 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보내줄 생각 같은 건 없어.”
“…그건, 제가 마법사로서 뛰어난 재능을 가졌기 때문인가요?”
다프네는 한껏 망설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돌아보자, 다프네는 도망치듯 고개를 더욱 숙였다.
“용사에게 인정받는 마법사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어버린 걸까요.”
다프네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그리 말하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런 다프네의 머리 위로 손을 툭 얹었다. 다프네는 눈을 깜박거리며 머리를 쓰다듬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한참동안, 등 뒤에서 라우라의 따가운 시선을 맞으며 다프네를 쓰다듬었다. 다프네는 평정을 되찾은 건지, 갑자기 빨갛게 변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
“…넵.”
다프네는 라우라가 그녀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당황하며 내게서 떨어졌다.
“조금, 침착하지 못했어요. 죄송합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라우라의 눈빛이 무기질적이었다. 안 오고 뭐 하냐는 듯, 눈으로 채근하는 라우라에게 나는 웃음을 지어주며 다프네의 손목을 붙잡고 다가갔다. 우리가 따라오자, 라우라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는 승강기의 문을 열었다.
“…우리가 갈 곳은 11층임미다. 천문학회의 보금자리에오.”
탑승한 승강기는 이미 11층으로 향하는 버튼이 눌려 있었다.
“점성학에서 천문학으로 이름이 바뀌고 오래되진 않았씀미다. 단순히 별의 운행을 관찰하는 게 아닌, 그 구조를 더듬으며 세계를 탐색하는 학문이 되었으니 말임미다.”
덜컹.
라우라는 11층에 내리고서 익숙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어딘가를 향해 복도를 가로질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복도를 걸어 다니는 마법사들이 신기하다는 듯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개중에 내게 고개를 돌리지 않는 이들은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을 드리운 좀비들이었다.
“그… 라우라. 저 사람들은.”
“가끔 출몰함미다. 연구 실적에 영혼을 판 이들에게 영혼에 건강까지 판 노예들이에오.”
라우라는 신경 쓸 것 없다는 듯한 가벼운 말투로 말하고 지나쳤다. 그들을 지나 보내는 다프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옛날이 생각나요.”
“…고생했구나.”
우리는 복도를 한참을 걸어, 유리 지붕이 씌인 거대한 테라스에 다다랐다. 그 끝에, 망원경에 눈을 붙이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 한참이고 무언가를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밤도 아닌데 뭘 하는 건지. 가만히 있는 우리에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에는 태양에 가려 별이 보이지 않아요. 전 지금 달을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남자는 숙였던 허리를 펴며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이는 60대 초반 정도. 학자같이 수염을 길게 길렀다. 나는 곧바로 그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에드윈 블류브라고 합니다. ‘혜성’ 관측 학회의 학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인자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에드윈 블류브. 나는 책자에서 붉은 동그라미에 갇힌 그 얼굴과 이름을 떠올렸다. 그래. 악신 숭배자이자 재앙 숭배자.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재앙의 동향을 관측할 수 있는 사람을 의심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말 악신 숭배자일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용사님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될 줄이야. 항상 존경하고 있습니다.”
선뜻 손을 내미는 나 역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에드윈 블류브의 손을 맞잡았다.
“재앙 관측에 힘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같은 분이 있기에 재앙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겠죠.”
교수의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마른 60대 남자 치고는 꽤 정정한 손아귀였다.
“아닙니다. 알아낸다 하더라도, 그걸 막을 힘이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전부 용사님의 헌신 덕분에 우리가 아직까지 무사히 여섯 번째 재앙에 대비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에드윈 블류브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망원경을 툭툭 두드렸다. 저 사람도 나를 경계하고 있는 걸까? 나는 에드윈 교수의 눈을 슬쩍 바라보며 웃었다. 교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날 보며 흐뭇하게 마주 웃어주었다.
“뒤의 다프네씨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이 늙은이의 경지를 한참 뛰어넘었다고요.”
에드윈 블류브는 4서클의 마법사였다. 전투 마법사라기보다는 학자에 가까운 사람인 듯했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하늘 너머에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을 혜성을 격파할 때까지요.”
저벅저벅.
그리고 관측 테라스로 다가오는 발걸음.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저 성급한 발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학회장님, 회원들 보고서 취합본을 우선 드리려….”
넬라는 그리고 내 얼굴을 보고서 벌레 씹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무심코 그녀의 얼굴 위에도 쳐져 있던 붉은 동그라미를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