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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추방한 용사가 되었다-113화 (114/158)

Chapter 113 - 113.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다 (3)

살기는 아니다. 하지만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누가 그런 시선을 보내고 있는지는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아까 전의 강의실에서부터 지금 여기, 식당에까지 줄곧 같은 시선을 내게로 쏘아 보내고 있는 아이.

기척을 어느 정도 감추고 있었음에도 내가 있는 곳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걸 보면, 다르긴 달랐다. 옆의 두 기재도 내가 앉아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는데 말이다.

“용사님.”

식판에 밥도 받지 않은 채, 나탈리는 천천히 다가오며 나를 불렀다.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보였고, 나탈리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 그녀의 검은 눈을 몇 번 깜박거렸다. 그 천진하고 맑은 눈빛은 마주하기 힘들었다. 나탈리는 누가 봐도 평범한 학생처럼 보였다.

저 아이는 대체 어떤 식으로 악신 숭배자들과 연관된 거지?

“[저렇게까지 강대한 힘을 애써 숨기고 있군. 제대로 감지할 수 없도록 수를 쓴 것 같긴 한데. 그렇기에 더더욱 그 망할 놈들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성검의 말에, 나는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소녀는 대체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이 아이도, 나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사람 중 하나일까.

“하, 함께 식사해도 괜찮을까요?”

그때, 나탈리의 옆에 서 있던 여학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름이, 코라 포이슨이었나. 포이슨 가문의 자제. 그녀의 숙부가 현재 왕도 기사단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고, 그녀의 할아버지는 기사단장까지 역임했던 위인이었다. 나머지 한 명, 유진 그레이슨 또한 유수의 마법사들을 배출해낸 명문가. 두 사람이 나란히 2위, 3위를 차지했었지.

뭐, 지금 당장은 깊게 고민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이른 때에 나탈리와 자연스럽게 접점이 생긴 건 내 임무에 있어서는 호재라고 할 만하다.

“앉으세요. 나탈리 씨는 식사부터 받아오시고요.”

나탈리는 그녀의 이름이 불리자 어깨를 움찔했다. 그리고는 나를 한참이고 응시하던 눈을 휙 돌려 배식받으러 발걸음을 옮겨 걸었다. 내 맞은편에 앉는 유진과 코라는 놀란 표정이었다.

“이름을…, 외우시네요.”

“네. 코라 씨. 배치고사 때 높은 성적을 거두셨더군요. 옆의 유진 씨도 마찬가지고.”

코라는 그녀의 이름이 불리자 기쁘기 그지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유진은 당황한 표정을 내비쳤다. 이런 반응들은 그 나이대의 학생다움이 엿보였다. 애써 어른스러운 척을 하려 반응을 다잡으려 하는 것도 그렇고.

“정말 존경합니다, 용사님…!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기사의 귀감이 되는 존재예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사람은 아니에요.”

기사 될 사람이 나를 보고 따라 한다면 큰일 나지. 기사는 주인 하나만 바라보고 맹목적으로 충성해야 한다. 불길에 뛰어들라 해도 주인의 명령이라면 군말 없이 뛰어드는 것. 그게 기사 된 사람의 덕목이다. 나처럼 천방지축으로 행동하는 망나니와는 어울리지 않지.

“겸양까지…. 정말 꼭 당신을 본받고 싶습니다.”

뭐, 코라와 유진은 이런 내 말을 겸양 따위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지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두 사람의 반응을 바라보았다.

“[그걸 겸손이라고 하는 거다, 일로이. 겸양 떠는 사람 중에서 누가 진심으로 자신을 깎아내리겠어. 예의를 차리고 가치를 높이려 하는 거겠지.]”

성검의 신랄한 반응이 들려왔다. 어째 점점 서로 생각하는 게 비슷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꽤 오래 함께 있어서 그런 걸까. 뭐, 성검에게는 단지 찰나의 순간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너와 함께했던 시간은….]”

성검은 서운하다는 듯 말하다가, 그 부분에서 말을 멈추었다. 그러다가, 이내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다른 주제를 꺼내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보다, 저기 그 아이가 오는구나. 대체 그 악신 숭배자들이 무슨 짓을 해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심하거라, 일로이. 설령 저 아이가 악신 숭배자가 아니라고 해도 평범하게 재능이 넘치는 아이는 아니다.]”

나탈리는 성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바로 맞은편에 식판을 내려놓으며 앉았다. 작디 작은 그녀의 체구에 비해 식판에는 음식이 꽤 수북이 쌓여있었다. 그 양을 보고 코라와 유진은 다시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나탈리는 태연하게, 천천히 하나씩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강의, 훌륭했어요.”

나탈리는 그리 말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올 첫 마디로 생각해본 적도 없는 말이었기에, 나는 눈살을 슬쩍 찌푸리며 나탈리를 바라보았다. 나탈리는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 보았고, 우리는 잠시 침묵 속에서 서로 미묘한 시선을 교환했다.

“나탈리 씨야말로, 배치고사에서 저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활약을 보여주셨더라고요.”

선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두 손을 휘감았던 불꽃. 마물을 닿자마자 녹여버리는 무시무시한 위력.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전투에 능숙한 움직임. 아니…, 능숙하다기보다는.

“용사님을 놀라게 했다니. 영광이라고 생각할게요.”

나탈리는 전혀 영광이 아니라는 것 같은 목소리로 그리 대답했다. 너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정말 악신 숭배자들이 보낸 게 맞냐고 당장 물어보고 싶은 마음을 참아야 했다.

“마법과 전투기술을 다 어디서 배웠는지 궁금할 정도로요.”

“그럼 저도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은걸요. 용사님의 그 고강함, 어디서 배운 걸까, 하고요.”

나탈리는 미꾸라지처럼 질문을 피해 갔다. 다시 침묵. 나는 나탈리의 눈을 보았고, 나탈리는 어째서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울을 들여다보듯 검고 맑은 눈이었다. 먼저 시선을 돌릴 생각은 없는 듯했다.

“흠. 강의 계획표를 보니, 실전이 꽤 많던데,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너무 오래 눈싸움을 한 건가. 옆에서 코라가 슬쩍 헛기침하며 참견했다. 코라가 나를, 정확히는 나와 나탈리를 보는 눈빛은 수상쩍다는 듯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배치고사 때처럼 진행될 겁니다. 결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볼 생각이에요. 여러분을 실제 전장으로 데려가는 것보다는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겠죠.”

다만, 정신을 흐트러뜨려 환각을 일으키는 종류가 아닌, 실제로 공간을 왜곡하는 규모로, 다프네가 구상하는 마법의 연습을 겸해서 말이지. 내 말에, 코라와 유진의 표정이 미묘해지자 나는 씨익 웃어 보이며 덧붙였다.

“참고로, 제 수업은 배치고사보다야 친절하겠지만, 그렇다고 그보다 쉬우리라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일 겁니다. 제가 강의실에서 했던 말은 진심이니까요.”

유진은 내 말을 듣고는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우리가 마물과 싸울 일이 있을 거라는 말은 뭔가요?”

“항상 모든 상황을 주시하세요. 언제나 귀를 열어두되, 현혹되지는 말고요.”

알고 있는 걸 다 알려주고 싶어도, 지금으로서는 이게 한계였다. 선문답 같은 말을 들려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지. 나에게 수수께끼처럼 말하던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유진은 내게 더 설명을 요구하지 않고 조용히 수저를 떴다.

“자, 그럼 다음 수업 때 뵙도록 할게요.”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탈리에게 섣불리 먼저 접근할 때는 아니었다. 머리부터 들이받기에는 들이받음으로써 발생하는 위험이 너무 컸다.

“[신중하구나. 이번에는 특히 말이야.]”

악신 숭배자들은 언제든 꽁무니를 뺄 수 있는 놈들이다. 절대 한꺼번에 고개를 들지 않는다. 한쪽이 정체를 드러내며 움직일 때, 한쪽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지난 바크틴스 사건 때 모두 드러나지 않았던 것처럼.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야. 놈들도 언제까지 재앙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걸 지켜볼 수만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조급함을 느끼고 있는 건 악신 숭배자도 마찬가지일 거다. 행동에 먼저 나서는 쪽이 불리한 그림이 만들어지겠지. 나는 식당을 돌아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도 다가오는 혜성. 그리고 암약하는 악신 숭배자들. 이 세상을 멸망시켜 그들은 뭘 얻고자 하는 걸까.

“…머리 아파.”

저 병아리들을 재앙의 여파에 휩쓸리지 않도록 가르쳐야 하고, 숨어있는 악신 숭배자의 끄나풀을 잡아내야 하고, 실시간으로 이 행성을 쪼개버릴 기세로 날아오는 혜성을 막아내야 한다. 이쯤 되니 그냥 평화로웠던 휴가가 그리워진다.

“그냥, 이 모든 게 한꺼번에 벌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왠지, 저 말을 입 밖으로 내서는 안 됐을 거 같은데. 문득 내뱉어버린 말에 스스로 오한을 느끼며, 나는 다프네가 기다리고 있을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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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학생 기숙사.

“접촉했습니다.”

나탈리의 목소리는 평이했다. 밤보다 검은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나탈리의 옆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꼿꼿이 앉아있는 나탈리의 모습을, 어둠에 모습을 감춘 이가 바라보고 있었다. 보고받던 인물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처음으로 마주한 용사는 어떻더냐.”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 그게 나탈리의 평가였다. 그녀의 눈에 용사는 이상했다. 얼마나 강한지도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당장 죽이라 하면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반대로 순식간에 그녀의 목이 날아갈 것 같기도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입력된 목표가 용사로 설정된 이후로, 나탈리는 줄곧 용사만을 바라보았다. 그의 행적을 따라 세상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잘 모르겠다는 건 무슨 의미냐. 우리는 너를 그렇게 ‘만든’ 기억이 없다.”

나탈리는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는 건 말 그대로 잘 모르는 것이었으니까.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그 전력을 가늠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잘 모르겠다면 더 알아봐야지. 그래도 우리가 파악한 정보도 있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

조용한 목소리가 나탈리의 귓전에 울렸다.

“하나 좋은 사실을 가르쳐주지. 네가 정말 용사의 학생 행세를 하며 다가간다면, 용사는 결코 너를 죽일 수 없을 거다. 아니, 죽이는 건 둘째치고 해하는 것조차 망설일 테지. 설령 네가 우리가 보낸 첩자라는 사실을 눈치챈다고 해도 말이야. 너조차도 구하려 하겠지.”

목소리는 용사를 비웃지 않고, 그저 담담한 사실을 말할 뿐이었다.

“아마 반쯤은 이미 너를 의심하고 있을 거다. 용사는 제 적을 죽이지 않을 정도로 바보 같지만, 적을 모를 정도의 멍청이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림자 속의 사람은 용사의 의심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저를, 죽이려 들지 않을 거라고요.”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너는 용사가 설령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대등하게 싸울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래야만 하고. 우리가 너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후회하게 하지 말라고.”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이었지만, 나탈리는 표정에 미동조차 없었다. 그녀에게는 저 말에 따라야 한다는 게 너무나 당연했으니까. 저 목소리가 죽으라 명하면 죽고, 살라 명하면 사는 게 나탈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행동 원리였다. 그렇기에 분함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때는 네가 정하거라. 물론 머지않아 가장 적절할 때가 찾아올 거다. 그때까지는 용사에게 네 존재를 각인하는 걸 우선으로 해라. 그의 동정심을 파고들어라. 네가 그 속에, 구해줘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시켜라.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 우리는 용사의 알량한 동정심에 네가 넘어갈 정도로 허술하게 만들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림자는 고개를 숙여 나탈리와 눈을 맞추었다.

“그렇게 용사를 죽여라.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우리의 가장 원대한 목표를 향할 이정표가 되어라.”

그림자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참여해 함께 만들어낸, 악신 숭배자들 사상 최고의 ‘걸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림자의 말에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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