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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추방한 용사가 되었다-123화 (124/158)

Chapter 123 - 123. 습격 (5)

“…긍지니 어쩌니 떠들더니, 친구를 부를 줄은 몰랐네, 넬라.”

“아, 네. 생사고락을 함께한 아주 좋은 친구지.”

에드윈은 좁은 눈으로 다프네를 노려보았다. 넬라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전투에 이입한 6서클의 마법사가 내뿜는 존재감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발언권이 다르다. 이 순간, 에드윈 쪽으로 서서히 기울고 있던 균형의 추는 다프네가 난입한 순간 완전히 허물어졌다. 그 사실을 깨달은 에드윈이 조금씩, 다프네에게서 물러섰다.

“여긴 어쩌다 온 거야. 내가 자료를 확실히 지키고 있으라고 부탁까지 했잖아.”

“그러다가 당신이 죽기라도 하면 싫을 거 같아서요.”

다프네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 대답했다.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던 넬라의 얼굴이 이번에는 다른 방향으로 붉게 물들었다. 반면, 다프네는 수상쩍다는 듯 넬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거야.”

“그래서, 왜 일로이를 찾은 겁니까. 이 순간에 나타날 사람을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니겠죠? 대답해주실래요?”

“몰라, 멍청아! 그런 거 묻지 마! 당연히 그런 상황에서 짠, 하고 나타날 만한 녀석이 용사 말고 어디 있다고 그래! 너는 애초에 방이나 지키고 있으라고 했잖아.”

넬라는 빛을 잃은 다프네의 눈을 바라보며 식겁했다. 아니, 그래. 그러고 보니 지키고 있으라는 자료는 어떡하고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그냥 설마 불타게 내팽개치고 온 건 아니겠지?

아무리 내가 걱정되었다고는 해도, 그건 좀 무리수 아냐?

넬라는 할 말을 잃고는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다프네는 원래 좀 소심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저건 일로이라도 보고 배운 거냐고. 제 목숨을 구해줬으니 그 이상으로 따질 수도 없고, 넬라는 그저 벙찐 표정으로 다프네를 볼 수밖에 없었다.

“방은 지금도 지키고 있는데요.”

다프네는 당당하게 말했다. 뭐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방호 마법에 필요한 마나를 다 공급할 수 있는 거야? 6서클과 5서클이 그렇게까지 차이가 났었나. 넬라는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인지, 진심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자.”

그리고, 공간이 열렸다. 넬라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사라지는 다프네의 손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다시 나타난 다프네의 손에 들려있는 건, 그녀의 연구실 책상 위에 있던 참고용 책 한 권이었다. 다프네는 다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책을 집어넣었다.

“…아니, 그걸 완성한 거야? 그 사이에? 미친 거 아냐? 뇌 구조가 어떻게 되어 먹었으면 그걸 완성할 생각을 하고, 실제로 만들어온 거야? 네 마력으로 온전히 유지하고 있고? 이 모든 게 어디 하루 이틀 만에….”

“설명은 나중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다프네는 에드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항복하시면 받아줄 의향은 있습니다. 물론 사지를 구속하고 가장 깊숙한 감옥에 갇혀야겠지만 말이에요. 상대가 안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텐데요.”

괴물 에드윈이 너털웃음을 내뱉었다. 꼭 놋쇠로 만든 냄비에 못을 긁어대는 것 같은 소음이었다. 그리고는 마력을 한껏 끌어올려 다프네와 대치했다.

“웃기는 소릴. 네놈들이 아직 유리하다고 착각하는군.”

그때, 에드윈의 발치에 서리가 끼었다. 달걀이 수백 개는 한꺼번에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다리를 대신해 돋아난 촉수가 순식간에 얼어붙고 말았다.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에드윈에게, 다프네의 다음 마법이 속절없이 닥쳐왔다.

“얼어붙는다고…? 아니, 그리고 이건…!”

돋아난다. 장미 덩굴에 가시가 돋아나듯 에드윈의 촉수를 속박한 서리에서 고드름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고드름은 촉수를 관통해 그대로 에드윈의 몸통을 찌르며 빠져나왔다.

“커…억!”

쏟아지는 검은 피마저 얼어붙는다. 에드윈은 황급히 전력으로 마력을 전개해 다프네의 마법에서 벗어나 바닥을 뒹굴었다. 그를 바라보는 다프네의 얼굴에서는, 놀라움의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프네의 입이 열리고, 냉정한 평가가 흘러나왔다.

“제법이네요.”

제법

에드윈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런 와중에, 다음 마법이 발동되어 에드윈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그처럼 순식간에 힘을 얻은 게 아닌, 본인의 재능만으로 쟁취한 6서클의 힘은, 정교함과 활용도에서 상대도 안 되는 차이를 보였다.

“네놈이-!”

에드윈의 촉수가 쏟아지는 벼락을 맞아 뻣뻣하게 마비되었다. 그의 움직임이 다시 제한된 시간 동안, 다프네는 쉴새 없이 다른 공격 마법을 퍼부었다. 마력은 온갖 형태로 바뀌며 에드윈을 유린했다. 불, 얼음, 번개, 혹은 순수한 마나의 빛무리까지. 다프네는 마력에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마법을 쏟아내었다.

“…왜 저렇게 강해진 거야, 쟤는.”

못지않게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넬라, 그녀를 대신해 용사 파티의 한 축을 차지한 저 마법사는, 그 모든 걸 우스운 발악 정도로 보이게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용사의 떨거지 따위가!”

진노한 에드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다프네에게 실질적으로 대항하고 있던 건 그의 목소리뿐이었다. 그 몸뚱아리는 얼어붙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다가 무수한 창날에 찔린 듯 너덜거리고 있었다. 사람의 장기로 보이는 것들이 찢어진 살갗 사이로 흘러내렸다.

“항복의 기회를 당신이 걷어찬 이상 두 번은 없습니다. 달게 받으세요.”

다프네는 마지막으로 거대한 불꽃을 피워올리고 있었다. 그것이 최후의 일격이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에드윈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혹은 발작을 멈추듯 평온한 눈길로 바뀌었다.

“…그래. 이성을 잃는다는 걸 두려워했었지. 어째서 난 그걸 두려워한 것일까. 이 세상에 내 이성 따위는 있으나 없으나 같은데 말이지.”

중얼거리는 에드윈의 말에서 조금의 단서라도 더 얻어가려던 다프네의 팔이 굳었다.

“내 이성이 있으나, 없으나, 결국 도달하는 곳은 같으리라.”

다프네의 마법이 쏘아졌다. 그와 동시에, 에드윈의 몸이 더욱 기괴하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걸레짝이 된 몸통을 꿰뚫어버릴 마법은 바뀌기 시작한 에드윈의 피부에 가로막혔다. 마법은 그을림만을 남길 뿐, 거대화한 에드윈의 몸을 뚫어내지 못했다.

“절대자를…. 불멸과 초월을 경배하라…. 도래할 멸망을 맞이하라….”

그것이, 에드윈이 인간으로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먼저 희생된 조교들과 마찬가지로, 에드윈은 이성을 잃어버린 괴물이 되어버렸다. 다프네는 순식간에 위협적인 수준이 되어버린 괴물을 바라보며 혀를 내찼다. 정보를 얻겠다고 저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게 아니었다.

콰광-!!

지면이 폭발했다. 에드윈이 날린 촉수는 다프네의 눈으로 보기 힘들 정도로 가속한 채였다. 귀청이 찢어질 것만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에드윈은, 아니, 이제는 에드윈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괴물은 오로지 솟아나는 육체의 힘으로만 마법사를 상대했다.

“이래서야 그냥 마물이네요.”

다프네는 혀를 내차며 마력을 갈무리했다. 한 번에 쓰러트리기는 힘들 거다. 마법을 계속 쏟아내면서 약화한 후에 쓰러트려야 했다.

“쉽진 않겠는데.”

물론 해야 하는 건 같다. 움직임을 봉하고, 방어를 무용지물로 만든 후에 마지막 일격을 가한다. 물론, 저건 웬만한 마법으로 구속하기 힘들 것 같았다.

“…빨리 끝내고 일로이를 도우러 가야 한단 말이에요.”

볼멘소리를 내뱉으며, 다프네가 다시 마력을 한 뭉텅이 쥐어 짜냈다. 한기가 11층 전체를 덮쳐오는 규모로 불어났다. 다프네가 쏘아내는 마법을 아무렇지 않게 막아내던 괴물의 움직임이 서서히 더뎌지기 시작했다. 공간마저 한꺼번에 얼려버릴 듯한 한기. 움직임은 느리고 또 느려진다.

“그러니, 거기 가만히 있어요.”

완전히 멈출 수는 없었다. 저항이 거세다. 더 마력이 잡아먹히기 전에, 마법을 구성해야 한다. 다프네는 한기로 빚어낸 서리 창을 허공에 띄웠다. 마력을 절약해야 했다. 이곳에서 저 괴물을 쓰러트리는 데 모든 마력을 쏟아내면, 후처리가 곤란해진다.

“이걸로 쓰러트려야 할 텐데.”

그 사이에서 간신히 찾아낸 타협점. 다프네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고서, 창을 쏘아냈다.

…안 되겠네.

다프네가 그 결론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창이 괴물의 머리를 관통하지 못하고 반쯤 박혀 멈춰버린 후였다. 추가적인 마력을 쏟아부으려 할 차에, 괴물의 머리가 앞으로 처박히며 서리 창이 놈의 머리를 꿰뚫었다.

“…된 거지?”

마력을 한계까지 쥐어짠 듯한 표정의 넬라가 손을 파들거리며 들고 있었다. 다프네는 탐탁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마력을 아끼려 했었지? 현명한 선택이야. 나는 바닥나버렸거든.”

다프네는 비틀거리는 넬라를 부축하고서는 아래층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미 아래에서는 싸움이 끝나버린 듯, 큰 소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게 조금은 불안감을 자극해서, 다프네는 넬라를 들다시피 하며 10층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일로이!”

다급하게 찾은 10층은, 흔적조차 남지 않고 모조리 파괴되어버렸다. 교수의 연구실이 즐비했던 복도는 뻥 뚫린 광장이 되어있었고, 복도를 구성하던 방과 벽은 존재했는지조차 불확실한 파편만이 남아 떠돌았다.

“…그냥 개판을 만들어놨군. 다른 교수들이 보면 무릎을 꿇고 오열하겠는데.”

넬라가 지극히 연구자다운 말을 내뱉었다. 넬라 본인이 개인적으로 연구하던 자료들도, 그냥 한 줌 잿더미가 되어버렸겠지. 그 와중에 자신을 대롱대롱 달고 있는 분홍 머리 마법사는 용사를 찾기 위해 눈이 벌개진 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일로이?”

그리고, 멈칫하며 다프네의 시선이 멈추었다. 넬라는 갑자기 자신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리자, 바닥으로 반쯤 팽개쳐지며 떨어졌다.

“야! 갑자기 그렇게 날 떨궈놓으면 어떡해!”

넬라는 눈살을 확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넬라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

검 한 자루를 품에 안은 채 피웅덩이 속에 쓰러진 용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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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래 처음으로, 마탑 일대가 폐쇄되고 아카데미는 기약 없는 휴강에 들어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마탑 밖으로 피해가 새어 나가지는 않았다. 진행되고 있던 연구는 중단되고 부상자와 사망자를 추산했다. 사망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실종자가 많았다. 대학 교수진 삼분지 일이 홀연히 종적을 감추었고, 조교는 반절이 사라졌다.

불안과 위기감이 왕도와 왕국 전체를 잠식하는 가운데, 주민들을 절망으로 몰아가는 소문이, 물에 빠진 한 방울 잉크처럼 검게 번져가기 시작했다.

“용사가, 죽었다는 소문이 있어.”

“에이… 재앙이랑 싸운 것도 아닌데, 그렇게 허무하게 갈 리가 있겠나.”

“마탑의 전투에서 방심하다가 당했다는데? 모습을 안 드러낸지 꽤 오래 됐다고 하더군.”

다름 아닌, 용사가 죽어버렸다는 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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