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1 - 141. 별을 베는 검 (3)
점보다도 작은 그 빛은 떨어지는 혜성이 무색하게 빛나고 있었다.
태초의 빛, 혹은 폭발. 세계의 모든 빛을 긁어모아 촛불 위로 피워 올렸다면 저런 모습이리라. 등을 돌리고 있어도 빛은 보였고 빛을 보고 있다면 압도당한다. 폭발적인 발산이 아닌,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듯 고요하고 숭고한 현현. 시간의 흐름마저 멈춰버린 와중, 그곳의 존재들은 모두가 어떤 예감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돌려 빛을 바라보았다.
“…대체 이번에는 무슨 짓을 한 거냐.”
게오르그는 빛을 향해 중얼거렸다. 빛은 무작정 밝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감각을 빼앗고 있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동굴 속에서 피워 올린 촛불처럼. 그리고 빛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촛불이 전해주는 온기처럼. 하지만 그보다도, 빛은 멀었다. 희미하지 않지만, 멀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밝았고, 아무리 가까이 다가와도 더 밝아지지 않았다.
“일로이.”
아이시스는 게오르그와 함께 멍하니 일로이를 바라보았다. 하늘을 가르며 서쪽에서 다가오는 혜성에 대치하듯, 일로이는 빛에 감싸인 채로 동쪽에서 나타났다. 모든 것을 감싸 안으려는 수호의 빛. 아이시스는 빛을 바라보며 신성(神性)을 느꼈다. 그녀의 마력이 일로이의 빛에 동조해 쿵쿵, 심장을 울려댔다.
“너는 저 변화를 이해할 수 있나, 아이시스?”
떨리는 게오르그의 물음에, 아이시스는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아뇨. 단순히 마력이 강해진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아요.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저 녀석은 이상해. 꼭 절체절명의 순간에만 나타난다니까.”
아이시스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두 사람은 움직이기 시작한 그 빛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빛은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산의 끝자락에 올라서서, 걸음을 내디딘다. 그 다음에 벌어진 현상은, 게오르그와 아이시스의 이해를 아득히 벗어난 것이었다.
키이잉.
한 줄기 빛이 산등성이를 새카맣게 덮은 마물 위를 가르고 지나갔다. 한 박자 늦게, 빛의 잔영이 새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베인 살갗에서 피가 배어 나오듯, 떼죽음은 하나의 상처처럼 이루어졌다. 산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피는 양동이에 흘러넘치는 물처럼 쏟아졌다.
“…미친.”
게오르그가 등을 부르르 떨며 전율했다. 오늘 처음으로, 산이 살갗을 드러냈다. 성에 달라붙던 마물들이 하나둘 떨어졌다.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이다. 수만 마리 이상 남아있던 마물이 하나의 줄을 이루며 빛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순간, 일식이 일어나기라도 한 듯 빛이 그림자에 가리었다. 게오르그는 마른침을 삼켰고, 아이시스는 날카롭게 숨을 들이마셨다. 등 뒤의 병사들이 동요하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마치 껍질에 감싸인 것처럼 마물이 쌓였다.
“안돼….”
“용사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은 희망의 불씨를 어떻게 붙잡고자 양손을 꾹 붙들었다. 그리고, 번데기가 갈라지듯 마물의 무더기에 빛의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환희했다. 게오르그와 아이시스는 숨을 죽인 채 개화하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껍데기는 녹아내리고 빛은 다시 나타났다.
“아…!”
하나 된 탄성이 들려왔다. 그건, 처음 나타났을 때보다 환하게 빛났다. 오롯하게, 어둠을 몰아내는 길잡이고 출구였다. 확장된 빛은 파편을 흩뿌렸다. 파편은 눈송이처럼 느릿하게 흩날리다가 바닥으로 천천히 낙하했다. 빛의 파편은, 깃털은 용사의 등 뒤에서 발원했다.
“…날개?”
누군가가 그를 인식하고는 중얼거렸다. 세상을 끌어안으려는 듯 깨어나는 세 쌍의 날개. 겨울이 끝나갈 때 피어나는 목련처럼, 고치를 깨고 나온 나비의 그것처럼, 날개는 천천히 펼쳐지고 있었다. 용사는 천천히 날갯짓하며 떠올랐다. 하나둘, 병사 중 독실한 이들이 무릎을 꿇었다. 아이시스는 입술을 깨물며 함께 손을 모았다.
그대. 신의 빛으로 세상에 나타난 그대.
“세상을….”
“우리를….”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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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이 울부짖었다. 그들이 느끼는 건 불길함이었다. 개가 허공을 바라보며 짖듯 마물들은 일제히 빛을 바라보며 찢어지는 울음을 내질렀다. 나탈리는 마찬가지로, 반쯤 본능에 휘둘려 고개를 젖혔다. 첫 빛이었다. 나탈리를 둘러싼 마물들이 성벽을 뛰어 내려갔다.
포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나탈리는 어깨에 내려앉는 깃털을 바라보다가, 온기의 근원을 향해 아주 천천히, 눈을 돌렸다.
“…교수님?”
나탈리의 입술이 떨렸다. 일로이는 성벽 위에 홀연히 나타났다. 그 순간만큼은 그곳이 전장이라는 것도, 죽음이 목전에서 손짓하고 있었다는 사실마저 잊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교수는, 혹은 용사는 날개와 함께 그곳에 서 있었다. 양손에 쥔 검은 은백색으로 함께 빛나고 있었다.
“잘 싸워줬구나.”
용사의 목소리는 기묘하게 울렸다. 나탈리는 그의 목소리가 소리로서 귀에 들어오는 게 아닌, 직접 머릿속에 울리고 있었다. 용사의 눈길을 나탈리는 멍하니 받았다. 전장에서 그들만이 뚝 떨어져 나와 교실에 들어간 것만 같은 기분. 나탈리는 용사에게 솔직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거 말고 제가 뭘 할 수 있었나요.”
학생의 질문에, 용사는 교수의 얼굴로 돌아가 엷게 입꼬리를 올렸다. 질문 그 자체로 대견하다는 듯한 눈치였다. 한때 자신이 죽여야 했던 사람. 용사는 지금 그 사실을 흘려버린 걸까? 나탈리는 그녀를 바라보는 용사의 눈빛에서 적개심을 느낄 수 없었다.
“도망치거나, 저 마물과 합류할 수도 있었겠지. 너라면.”
“못 도망가요.”
용사의 대답에 나탈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용사는 달리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단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로 질문을 하나 던질 뿐이었다.
“그래서, 살기를 결정했어?”
용사의 질문은 많은 물음을 함의했다. 용사의 눈은 청록이었다. 나탈리는 그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존재는 무의미하다. 나탈리는 자신의 존재 또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존재는 의미 없이 남아있을 수 없다. 무의미하기에, 의미를 찾아 헤매는 것이었다. 나탈리에게 존재의 의미는 온기였다. 아무것도 지니지 못한 채 태어난 존재가 처음 느껴본, 누군가의 온기.
“네.”
나탈리의 대답에, 일로이의 얼굴 위로 흡족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잘했어.”
일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가오려던 마물은 더러운 눈이 녹아내리듯 형태를 잃어버리고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일로이가 등을 돌리자, 멈추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나탈리의 눈에 펼쳐진 날개가 들어왔다. 그 등은 누구보다 넓어 보였다.
“그렇게 살아가면 돼.”
용사는 그렇게 땅으로 내려갔다. 남아있는 마물들이 일로이를 향해 한꺼번에 덮쳐왔다. 일로이는 오른손의 검을 들고, 종으로 그어 내렸다. 암막이 갈라지고 빛이 드러나듯, 마물의 무리는 양단되었다. 일로이는 그 길을 나아갔다. 미처 썰어버리지 못한 마물들이 일로이의 뒤를 보고 달려들다가, 몸이 흩어지며 죽었다.
누군가에게 삶을 용인받았다. 나탈리는 작게 숨을 내쉬며 걸어가는 일로이를 바라보았다. 무어라 할 말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지금은 저 뒤를 따라, 이 전투를 끝내야만 했다. 나탈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용사가 걸어간 곳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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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갈 기세로 지켜야 한다. 싸움은 진작 힘에 겨웠고, 전열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전선을 지탱하고 있는 건 여왕, 아그네스였다.
“내가 있는 한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니 일어나서 싸워라.”
여왕은 그녀의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냥한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못했다. 상냥한 말은 곧 헛된 믿음이고, 허풍을 떠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계속 싸우라 독려하는 게 저들을 살리는 길이었다.
“나를 보는 게 버겁다면, 북부대공을 바라봐라.”
퀘노어는 돌아보지 않는 벽이었다. 아그네스가 병사들의 버팀목이 되었다면, 퀘노어는 강력한 마물이 더 다가오지 못하도록 막아내고 있었다. 말을 할 수 있는 마물들은 저마다 혜성의 충돌과 무언가의 강림에 대해 떠들어대며 다가왔고, 퀘노어는 최대한 그 말을 흘려 넘기려 애를 썼다. 하지만, 마물의 말은 사람의 말과 다름없이 퀘노어의 귀를 끝없이 엄습했다.
“모든 건 끝을 맞이한다. 두려워하며 저항할 이유가 어디 있나.”
“저기 날아드는 빛을 봐라. 그분들의 사도는 다가오고 있다.”
그럴 때면 더 억세게 검을 쥐고 휘둘렀다. 떠드는 마물들은 퀘노어의 검이 지나가면 조용해졌다. 잠시간의 침묵을 비집고 들어오는 건 다른 마물의 말이었다. 퀘노어는 눈을 돌리지 않고 말이 들려오는 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먼저 입을 찢어놔야겠군.”
퀘노어의 보검은 늑대인간의 아가리에 정확히 틀어박혀 있었다. 아가리를 벙긋거리는 늑대인간의 목 깊숙이, 퀘노어는 검을 찔러 박았다가 머리를 양단하며 뽑아 들었다. 귀기 어린 퀘노어의 눈빛에, 달려드는 마물들이 주춤하며 머뭇거렸다.
“한꺼번에 덮쳐라. 저 인간만 죽으면 지지부진 끌릴 이유가 없다.”
마물의 우두머리 개체가 그리 말했다. 그 명령에 병사들을 공격하던 마물들이 등을 돌리고 죄다 퀘노어를 향해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의미를 지니지 못할 터인 물량 공세는, 반쯤 죽어있는 퀘노어의 체력을 더욱 갉아먹었다. 자잘한 상처는 더욱 늘어났다. 보검은 그 날카로움을 잃지 않았지만, 검을 휘두르는 움직임이 굼뜨다.
으직.
퀘노어의 등을 마물이 하나 들이받았다. 퀘노어는 앞으로 휘청이면서도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아그네스가 퀘노어의 뒤에서 그를 구해내기 위해 처절하게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물은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대공!!”
퀘노어의 위로 마물이 덮이며 쌓여갔다. 퀘노어의 검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던지며, 검로를 방해하고 살더미로 움직임을 막았다. 퀘노어는 싸움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고개를 돌아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오지 마십시오, 폐하.”
“정녕 그리 말하는 것이더냐!”
“병사들을 수습해야 합니다. 저보다는 전열을 가다듬는 데 더 신경을 기울이십시오.”
퀘노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피를 많이 잃어, 상처와 얼룩 사이로 보이는 피부가 창백했다. 하지만 그는 쓰러질 것 같지 않았다. 여왕을 향해 고개를 돌린 지금도, 퀘노어는 마물을 죽이고 있었다.
“폐하. 끝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제 목숨도 초개처럼 여기셔야 할 겁니다.”
쌓였다. 퀘노어는 허공에서 물에 잠겨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퀘노어는 일검을 휘둘러 아그네스를 위해 길을 터주었다. 대공은 정말 제 목숨을 내놓을 생각인 듯했다.
“부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마소서.”
아그네스는 이를 악물었고, 퀘노어는 등을 돌렸다. 다시 그들 사이로 마물의 벽이 놓이기 시작할 때였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마물이 허물어져 내렸다. 사방에 흘러넘치는 피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죽음의, 구원의 현장에서 아그네스는 검을 든 채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홀연히. 빛이 그곳에 나타났다.
“두 분 다, 정말 잘 버텨주셨습니다.”
그리운 목소리였다. 아그네스가 억지로 붙들고 있던 몸의 힘이 탁, 풀려버렸다. 앞으로 넘어지는 아그네스의 몸이 누군가의 팔에 감싸였다. 아그네스는 눈을 깜박이며 자신을 안아 든 용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로이…? 정녕 일로이가 맞느냐?”
백은의 용사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폐하. 제가 맞습니다.”
“어찌… 예까지 온 거냐.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그네스가 생각해도 그녀가 할 법한 말은 아니었다. 일로이는 너털웃음과 함꼐 고개를 저었다. 아그네스를 안은 그의 팔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헛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구나.”
아그네스는, 팔을 뻗어 일로이의 얼굴을 직접 만지고서야 마침내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일로이는 가볍게 여왕을 땅에 내려놓았다. 아그네스는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다시 바라본 용사는 퀘노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죽음을 각오했던 대공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일로이를 마주 보았다.
“이거, 참. 부끄럽군. 내가 두 번이나 같은 사람에게 목숨을 빚질 줄은.”
“아뇨. 제가 빚진 겁니다. 대공께서 저 뒤에 서 있는 병사들을 살린 셈입니다.”
일로이는 퀘노어에게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퀘노어는 휘광에 둘러싸인 일로이의 손끝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몸을 제대로 가눌 힘조차 없는데, 저 손을 잡으면 어째서인지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 싸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어떻게 네가!!”
반인반수의 마물이 비명을 토해내듯 외쳤다. 일로이는 감흥 없는 눈으로 마물들을 바라보더니, 양손의 검을 교차해 들었다. 벽을 쌓을 정도의 마물이 남아있지 않았다. 일로이는 두 영웅을 뒤로하고서 앞으로 나섰다.
“오래도 기다렸다.”
일로이의 목소리는 한없이 차가웠다. 내질러지는 검격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태고의 마물은 하얗게 물들어가는 시야에 저항하며 팔다리를 마구 휘둘렀다. 주인 잃은 팔다리는 저가 잘린 지도 모른 채 허공에서 휘적거리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로이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지막 마물의 대군이 눈앞에 있었다. 마물의 대군 너머로, 점차 가까워지는 혜성이 있었다.
“가야…하겠지.”
일로이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로 돌아보았다. 아그네스의 눈은 흔들리고 있었다. 일로이는 쓰게 웃으며 여왕의 말에 긍정했다.
“다녀오겠습니다, 폐하. 오래 걸리지는 않게 하겠습니다.”
아그네스는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홍옥처럼 빛나는 눈에 약간의 심술이 깃들었다.
“뒤는 맡아두겠다. 그리고 하나 말하자면, 나는 뱉어놓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녀석을 제일 싫어한다. 그건 알아두거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답과 동시에 용사는 신형을 감추었다. 아그네스가 다시 그의 존재를 느낀 건, 마물의 대군이 불타는 낙엽처럼 무너져내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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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마리 마물이 성검에게 꿰뚫리고는 시체의 산에 고도를 더했다. 시체가 산을 쌓고, 거기서 피가 흘러내려 냇물을 이룬다는 게 정말 볼 수 있는 광경이었는지, 나는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무리인가. 그도 아니면, 이것 또한 모종의 과정인가.
심장이 느껴지지 않았다. 성검이 세 번째 개방을 시작했을 때부터 찢어지기 시작했을 거다. 개방을 완료하고 심장이 넝마가 되어버린 지금은, 마나의 응집체가 껍데기 속에서 간신히 뜀박질을 계속하고 있다. 심장이 얼마나 더 버텨줄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이 간이 심장마저 사라져 내가 완전히 움직이기를 멈추기 전에, 나는 여섯 번째 재앙을 없애야 했다.
“[…내가 뭐라 했느냐.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나아가면 파멸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성검의 목소리는 안타까움과 후회의 기색으로 가득했다. 파멸이라. 산 채로 심장이 천천히 찢어지는 고통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의 고통은 아니었다. 기절했다 깨어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입안은 내가 짓씹어서 다 헐었고, 목청은 터져서 피가 흘러나왔다.
“재앙을 막아낼 수 있다면, 그건 파멸이 아니라 구원이겠지.”
그래도, 난 후회하지 않았다.
“[죽지 마라, 일로이. 네게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들었다. 나선의 꼬리를 그리는 빌어먹을 혜성이 내 시선을 따라 눈물처럼 하늘에서 흘러내린다.
“그래.”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뱉었다. 아직, 심장은 기능하고 있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