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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추방한 용사가 되었다-142화 (143/158)

Chapter 142 - 142. 별을 베는 검 (4)

마탑의 지하에는 거대한 마력 수정이 있다. 누가, 어째서 수정을 지하에 보관해놨는지는 잊힌 지 오래다. 그저 보관하고 수호해왔기에, 그것이 선조와 스승들이 해왔던 일이기에, 카이로스의 마법사들은 마력 수정을 신줏단지처럼 보관했다. 그리고, 마탑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봐온 마력 수정이 보관된 지하는 일종의 성역과 같다.

콰당-!

그리고, 성역은 오늘 외부인의 흙발에 지근지근 짓밟히게 되었다.

“연결해! 일단 이걸 제대로 동력원으로 써먹으려면 마력 수정 내에 잠든 마력을 깨우고 봐야 해. 누구 할 줄 아는 사람 없어?”

넬라가 손발을 휘저으며 지시를 내렸다. 마법사들과 병사들은 제각기 넬라가 지시한 사항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지하를 돌아다녔다. 벽 한 모퉁이에 쌓여있던 상자가 넘어지고, 온갖 귀한 소재들이 쏟아졌지만,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넬라 역시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다시 어디로 가라, 모이라며 지시를 내릴 뿐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넬라 부교수!”

그리고, 혼비백산한 채 지하로 누군가가 뛰어 내려왔다. 머리가 하얗게 센 4서클짜리 정교수였다. 넬라는 그를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듯 도끼눈을 떴다.

“대마법을 구동할 마력이 더 필요해요. 안정적으로 많은 양의 마력을 공급해줄 수 있는 물건. 이 마력 수정 말고 뭐가 더 있겠어요? 이거 없으면 우리 다 죽어요.”

“자네, 지금 그 수정이 어떤 물건인지 알면서도 하는 말인가!”

“어떤 물건인데요?”

넬라의 너무나도 당돌한 질문에, 정교수가 입을 다물었다.

“마탑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보물이지 않나…. 무어라 설명이 더 필요한가?”

“예. 마력 수정이나 끌어안고 혼자 죽으세요. 그게 아니면 목숨을 걸고 내가 마력 수정을 사용하는 걸 막아보던가. 그럴 각오도 없으면, 그냥 비켜요.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위로 올라가서 결계 발동 준비나 좀 도와주세요. 없는 마력이나 더 쥐어 짜내시라고요.”

넬라는 정교수의 말을 손에 들고 있던 서류 더미를 내저으며 일축했다. 교수는 더 반발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단순히 논리나 근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6서클의 마법사가 뿜어내는 위압감에 움츠러든 것이었다.

“…빌어먹을. 알았네, 알았다고. 이게 다 우리가 살아남으려고 그러는 거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알겠네, 알겠어. 그러니까 그리 무서운 눈으로 보진 말아주게.”

이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듯, 교수는 연신 그렇게 말하며 마력 수정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수정을 바라보던 교수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방식으로 한다면 마력 추출의 효율이 자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나오지는 않을 걸세.”

그렇게 나와야지. 넬라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교수는 알아서 마력 수정의 활용안을 줄줄 읊어내기 시작했다. 마력량과 안정성은 이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 넬라는 부리나케 지하를 벗어나 1층에 들어섰다. 구동 준비가 끝나간다. 층 전체가 텅 빈 강당처럼 변해버린 와중, 쌓여가는 주문의 여파로 마력의 불꽃이 이곳저곳으로 튀고 있었다.

“마법진은?”

“압축 상태입니다. 열쇠가 될 마력을 불어넣기만 하면 진이 저절로 전개하면서 마법을 펼칠 겁니다. 압축 공정이 워낙 뛰어나서…, 저희가 별다른 조율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사실 6서클의 다프네씨가 조율을 홀로 감당하고 있었으니까.”

빠릿하게 대답하는 건 더벅머리의 조교였다. 그를 중심으로 다른 마법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넬라는 마법진의 중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프네가 그곳에서 눈을 감고 대마법과 감응하고 있었다. 그녀의 분홍 머리는 마력의 흐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집중하게 내버려둬야겠지.”

그녀가 마탑에 들어서고서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은 충돌했다. 서로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슨 생각을 품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넬라가 복수를, 가치의 증명을 원했다면 다프네가 바라고 있던 건 도움이었다. 용사가 어깨에 진 짐을 조금이나마 함께 더는 것. 그게 그녀가 마법을 만들어내며 품고 있던 유일한 생각이었다.

“저런 녀석이 대체 어떻게 7서클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건지.”

마법사는 이기적이다. 혹은 제정신이 아니거나. 양쪽 다 아니라면 더 높은 곳에 도달할 수 없다. 노력은 집념을 수반하고, 집념은 곧 광기다. 마법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가 마법사의 수준과 성장 한계를 결정한다.

“바보 같긴.”

넬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용사를 위하는 마음. 저것도 집념이라면 집념이겠지. 용사 파티를 탈퇴하던 날, 그리고 넬라가 용사를 모욕했던 날, 다프네가 보이던 살기. 일로이를 향한 집착보다는 신념에 가까운 그것. 넬라는 한동안 다프네가 조응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압축된 마력에 공간이 일그러진다. 다프네의 모습은 깨진 거울로 바라보는 듯했다.

“…됐다.”

넬라는 다프네의 입술을 읽었다. 그녀의 보랏빛 눈이 뜨이고, 마력은 완전히 안정되었다. 허공에 둥둥 떠 있던 다프네가 착지했다.

“사람들을 위치로 보내고 꼭대기로 이동하죠. 위치 조정을 부탁할게요.”

“…너 진짜 말도 안 되는 괴물이구나. 안 지쳐?”

다프네는 짧게 고개를 내젓고는 승강기의 버튼을 눌렀다. 지금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이라고 하는데도, 마탑의 승강기가 열리는 속도는 속 터지게 느렸다. 넬라는 저 창살을 뜯어내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며 승강기에 올랐다. 1층의 마법사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희망, 기대와 두려움,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멍 때리지 말고 각자 지정받은 위치로 이동해서 보조를 준비해!! 우리 둘만 혜성을 막으러 가는 게 아니라는 거 몰라?”

넬라의 일갈에 마법사들의 발이 풀렸다. 넬라는 개미 떼처럼 움직이는 마법사들과 개미굴 같은 1층의 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쯧, 찼다.

“저 녀석들이 제대로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 시벌, 불안해 죽겠다구.”

“해주기를 바라야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더 없잖아요?”

승강기는 올라가는 내내 불안하게 덜컹거렸다. 넬라는 초조하게 손톱이라도 물어뜯어 버리고 싶었다. 온갖 불길한 망상이 그녀의 머리를 드나들고 있었다. 괜히 서류철을 뒤적거리고, 유성의 위치를 계산한 종이를 들여다보고, 또 검산했다.

“오후 8시까지는 모든 준비가 끝나야 해. 20분이 충돌 예상 시간이니까….”

팔락, 팔락. 종이가 넘어가는 사이 승강기가 감속했다. 넬라는 허둥지둥 서류철을 덮고는 승강기의 문에 마법을 날려 부숴버렸다. 다프네의 어이가 없다는 듯한 시선에, 넬라는 인상을 확 찡그리며 짜증을 부렸다.

“뭘 봐. 저게 열릴 때까지 계속 기다릴 참이었어?”

넬라는 창살을 걷어차며 밖으로 나섰다. 싸늘한 바람이 훅 불어왔다. 넬라는 거침없이 마법이 발현되는, 마탑 옥상의 중심점으로 걸어갔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감각. 넬라는 발밑에서부터 솟아올라 몸을 자극하는 마력의 태동을 느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쏘아보았다.

“…조금만 더 천천히 오지.”

광망의 끝은 서쪽 지평선에 있다. 꼬리는 남북의 경계선을 정하듯, 혹은 유달리 선명하게 보이는 구름처럼 보였다. 혜성은 본래의 속도보다 훨씬 느리게 날아드는 것처럼 보였다. 혜성의 본체는 사냥을 시작하는 맹금처럼 저 허공에서 강하를 위해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다프네, 슬슬 결계 전개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아. 충돌이….”

넬라는 다시 다프네를 향해 시선을 돌리다가 멈칫했다. 다프네는 휘청거리다가 벽을 짚고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야, 너 괜찮은 거 맞아?”

화들짝 놀라 다가가려는 넬라를, 다프네가 손을 들며 막았다.

“괜찮…습니다. 전투 때 생각보다 체력이 더 많이 소모된 것 같아요. 마력은 아무런 이상도 없습니다. 여유분만큼은 남아있으니 전개는 그대로 하면 돼요.”

넬라는 그 자리에 서서 찡그린 표정으로 다프네를 바라보았다. 숨을 고르는 건지, 버거움에 내뱉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평소와 같은 상태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안 괜찮은 거 다 알아. 10분 정도는 시간이 있을 테니, 조금이라도 쉬면서 회복해.”

“그럴 수는 없어요. 여유 부릴 시간 따위는 없다는 거, 저도 알고 있어요.”

다프네는 억지스럽게 말하며 벽을 짚고 있던 손을 떼었다. 그녀는 한 번 더 크게 휘청이더니, 이내 균형을 잡고는 똑바로 버티고 섰다.

“네가 그러지 않아서 마법이 제대로 발동하지 못하면 어떡할 건데? 좀 쉬어. 고집 좀 부리지 말고. 일로이를 도와준다며. 그러면 우선 네가 온전한 상태여야지.”

“잘 알잖아요. 10분 쉰다고 마력이나 체력이 극적으로 회복되지는 않아요. 10분 내로 혜성이 들이닥칠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넬라의 찌푸려진 얼굴이 서서히 무표정하게 굳었다. 다프네는 여전히 가쁜 숨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혜성은 다가온다. 세 존재의 시간은 모두 다르게 흘렀다. 넬라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째깍거리며 돌아가는 시계태엽을 잠시 멈추었다.

“네가 혜성을 막아내고 죽는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어. 네 동료는 당연히 슬퍼하겠지만, 널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의문을 가질 사람도 없을 거고.”

목소리는 표정만큼 딱딱했다. 갑작스러운 넬라의 말에, 다프네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넬라는 어딘가 답답하다는 듯한 눈길을 보내오고 있었다.

“나도 신경을 쓰지 않겠지만, 정말 그런 식이어도 괜찮겠어?”

“일로이는 아마 알아주겠죠. 알아주지는 못하더라도, 묘비에 찾아와서 울어주지는 않을까요.”

다프네는 그리 말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며 웃는 사람의 미소에서 처연한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넬라의 시계태엽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프네를 쉬도록 두지 못할 거면, 마법 발동을 더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다프네가 진의 중앙으로 걸어왔다. 넬라는 서류철을 팔락이며 계산식을 뒤져보았다. 바람이 기묘하게 잦아들었다. 전투의 소음이 멀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면 하늘과 마물에 뒤덮인 산만이 보이는 세상. 그런 세상의 끝자락에 두 사람이 있었다.

“시작하자.”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뻗었다. 열쇠가 되는 마력이 다프네의 손끝으로 흘러나왔다. 저 꾹 쥔 주먹이 펼쳐지면 유례없는 대마법이 완성된다. 넬라 또한 손을 뻗어 마력을 흘려보냈다. 가동과 전개는 다프네가, 다른 조정은 넬라가 맡는 구조였다.

““결계 가동.””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고, 마탑의 1층에서부터 거센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솟아올랐다. 귀를 찢는 듯한 마력의 마찰음이 들려오고, 왕도의 절반은 족히 감쌀 법한 규모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넬라는 그 무게에 전율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무사히 가동에 성공했어요! 조준을!”

“알고 있거든…!”

넬라는 혜성의 머리로 손가락을 겨누었다. 그리고 혜성은 적을 인식하기라도 했는지, 갑작스럽게 가속했다. 그 궤도의 종착점을 찍어, 넬라는 하늘 끝으로 손을 쭉 뻗어 올렸다.

“고정 완료. 결계를 지금 전개해야 해!!”

쿠구구궁.

지면이 흔들리고 있다. 나무는 뿌리가 들리고 있었고 바위는 중심을 잃고 굴러간다. 혜성의 정체를 마주한 넬라는 완전히 굳어버렸다. 마법도 뭣도 아니다. 그건, 어떤 부가 설명도 필요치 않은 거대한 질량체였다. 단순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압도될 수밖에 없는 존재. 애초에 저걸 파괴하겠다는 말조차 오만이었던가.

“전개할게요!!”

그리고, 마법진이 기울어지며 혜성을 향했다. 넬라는 입술을 짓씹으며 정신을 차렸다. 다프네가 때에 맞춰 주먹을 콱 쥐었고, 마법진은 공간을 잡아먹으며 공허로 가는 구멍을 뚫었다.. 밤하늘보다 새카만 무(無)의 공간이 결계 너머로 펼쳐졌다.

“최대한으로 마력을 불어 넣어!”

넬라는 그리 말하며 심장을 쥐어 짜내 마력을 주입했다. 자칫하면, 저 물리량에 마법마저 무의미하게 분쇄되어버릴 거다. 수백 명의 마법사가 목숨을 걸고 마력을 쏟아붓고 있다.

좌표는 맞았다. 마법도 설계한 대로 펼쳐졌다. 남은 건, 혜성이 저 허공에 빨려들어 가기만을 기다리면-!

후웅.

나무 수십 그루, 성벽 조금. 풍압으로 인한 부상자들 다수.

혜성의 도착이 남긴 피해였다.

혜성은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공허 안으로 들어갔다.

“됐…다!”

넬라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지만, 다프네는 그게 아니라며 고개를 강하게 내저었다. 아래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마법사들의 거대한 함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아뇨… 아직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어요. 마력 공급이 잠시라도 중단되면 다시 저 하늘을 찢고 나타날 거예요.”

“그러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너 지금 마력 공급 유지할 수 있어?”

다프네는 한동안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다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대답하라고 던진 질문이 아니긴 했지만. 다프네는 지금 간신히 의식만이 붙어있는 듯했다.

“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할 수 있는 건데.”

넬라는 으르렁거리며 따지듯 말했지만, 다프네는 침착했다. 마법사가 분수를 넘는 마력을 얻는 방법은 뻔하다. 제 미래의 시간을 희생해 현재를 얻는 거다.

“꽤 오랫동안은 붙들어놓을 수 있을 거예요. 어쩌면 공간 속에서 혜성이 힘을 상실할 때까지 가둘 수도 있을 거고….”

“네가 죽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란 말이다, 이 병신 머저리야!”

넬라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갑작스러운 넬라의 말에 다프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넬라는 다프네를 노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못해. 내가 자살해서 온 세상을 구할 수도 없고, 네가 자살해서 온 세상을 구하는 꼴도 못 볼 거 같아. 그리고 꼭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전자를 고르겠어.”

넬라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며 다프네에게 손을 내밀었다.

“넘겨. 통제권.”

“…그렇게는 못하겠는데요.”

다프네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듯, 푸른 기운이 다프네를 감싸고 맴돌고 있었다. 넬라는 다프네의 손을 콱, 쥐었다.

“넘겨.”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 전혀 당신답지 않아요. 이기적이라면서요, 당신은.”

“그래. 이기적이니까 이런 선택을 하는 거야. 나는 내가 절대 다다를 수 없는 마법적 업적이 이대로 이뤄지는 모습을 두 눈 뜨고 차마 못 보겠거든. 하지만 내가 그 업적을 이루고 뒤지면 진짜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 거 같거든. 용사 놈한테 복수도 할 겸 말이지.”

다프네는 저항했고, 넬라는 빼앗으려 했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마법진의 중심에서 보이지 않는 전투를 벌였다.

“너는 여기서 죽어도 행복하지 않잖아.”

“행복한 죽음 따위는 없어요.”

지지직.

두 사람의 손아귀에서 전류가 튀었다. 마력이 오고 가고, 충돌하고 섞이고 폭발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결계가 깨져요, 넬라.”

“그럼 결계를 넘기면 되겠네.”

넬라는 억지로 제 마력을 흘려보냈다. 서서히 균열이 생기고 있던 마법이 넬라의 마력에 메워지고 고쳐졌다. 결계는 안정되었지만, 두 마법사의 신경전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다프네가 쓰지 않고 있던 왼손을 들어올렸다. 넬라의 두 눈에 지진이 일었다.

“야,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파지직!

넬라가 몸을 파르르 떨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다프네는 하늘로 솟아올랐다.

“야…, 이 개새끼야…!!”

“고마웠어요, 넬라. 제 묘비는 당신이 세워주면 정말 기쁠 거 같아요.”

“씨…발. 내가 그런다고…!”

“그럼 안 세워줘도 돼요.”

다프네는 웃으며 입을 쩍 벌린 공허로 날아갔다. 이미 이번 마법을 발동하던 도중, 일곱 번째 고리를 만들어냈을 거다. 넬라에게 적중한 전기 마법은 넬라가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고 있었다. 넬라는 바닥을 손끝으로 긁으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다프네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혜성의 뒤를 따라 결계 속으로 발을 들였다.

“일로이한테도…, 다른 제 모든 동료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대신 전해줘요.”

“네가… 직접 말하라고!! 빌어먹을 년아….”

마지막으로 보인 건, 그녀의 생긋 웃는 미소였다. 넬라는 빛이 사라져버린 눈으로 주먹을 꾹 쥐었다. 바닥을 긁어댄 손톱이 부러져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발….”

가버렸다. 겨우 동료라고 인정할 수 있었던 누군가가 저리도 쉽게 사라졌다. 넬라의 볼을 타고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리를 계속 질러댄 목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끊어지며 새어나왔다. 넬라는 손을 파들파들 떨면서 서서히 닫히기 시작한 공허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누가….”

넬라는 처음으로, 막연한 도움을 찾아 울었다.

“도와줘.”

그리고, 용사는 그곳에 있었다.

헛것을 보는 건가. 용사는 꿈처럼 흐릿하고 밝은 빛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헛것이라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헛것이든, 진짜든, 그녀에게는 뭐라도 기댈 수 있는 게 필요했다.

“일로이…. 저기, 닫히는 곳에 혜성이… 다프네가…!”

용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 훌쩍 날아올랐다. 넬라는 그의 등 뒤에서 펼쳐지는 날개를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손에 들린 두 자루의 검은 은백색의 서기(瑞氣)에 감싸여 낮고 높게 울고 있었다.

“구해올게.”

한마디.

넬라는 어째서인지 그 한마디의 말에 몸의 힘을 풀어버렸다. 용사는 한 번의 날갯짓으로 하늘을 가르고 날아가더니,

이내 닫히기 직전의 공허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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