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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추방한 용사가 되었다-151화 (152/158)

Chapter 151 - 151. 현상 수배 (1)

“그게 무슨 개소리냐.”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대감 어린 시선. 옛날 생각이 났다. 하지만 그 옛날의 적대감과는 느낌이 달랐다. 나는 그 사실에 만족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게오르그는 내 미소를 보고는 짜증이 난다는 듯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말해봐라, 일로이.”

꽉 쥔 주먹이 부들거리고 있다. 나는 그 바윗덩이 같은 주먹에서 고개를 올려 바윗덩이 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처음 빙의했을 때와 같은 장소, 비슷한 시간. 대화 내용도 어찌 보면 엇비슷했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너, 이번에는 빠져. 재앙과도 아무런 관련 없는 일이고, 폐하께서 내게 개인적으로 부탁한 일이기도 하니 말이야. 용사 파티 전체가 출진하면 사람들의 불안감만 가중하겠지.”

“그러니까, 그게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다 함께 가도 조용히 출발할 방법은 많은데, 왜 굳이 혼자 가겠다고 고집하는 거냐.”

게오르그는 책상 위로 손을 쿵, 올려놓으며 따졌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빙의한 시점에서 게오르그가 내게 저걸 날렸다면 도로 있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혼자 행동하는 편이 훨씬 해결하기 쉬우니까. 그 녀석을 잡으러 가는 건 재앙을 공략하러 가는 것과는 다른 문제야.”

“그걸 모르고 하는 소리겠냐, 일로이. 네가 말리는 이유를 모르리라 생각하는 거냐?”

쿵. 왼손까지 책상 위에 올려졌다. 나는 태연한 눈으로 게오르그를 올려다보았고, 게오르그의 눈에서는 귀화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위험하니까. 그 녀석과 단독으로 마주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를 보내고 싶어 하지 않은 거 아니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말이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우리를 바보 병신으로 보는 거냐. 그렇지 않으면 그저 지켜야만 할 짐덩이로 보는 거냐. 우리를 믿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하려 하는 거냐.”

“선 넘지 마, 게오르그.”

이럴 때면 그냥 강하게 나가야 했다. 나는 일부러 기세를 조금씩 끌어올린 채로 게오르그의 말을 막았다. 나를 압박하며 들어오던 게오르그가 밀려났다.

“언제부터 너는 투정만 부리는 어린애가 되었냐? 상황을 보고 생각해.”

쾅-!! 게오르그는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부드득, 게오르그가 이빨을 가는 소리가 들렸다. 억지로 내 기운을 몰아내려 하고 있었지만, 게오르그의 역량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 누가 왔어도 역부족이었겠지만 말이다.

“좋아. 그런 식으로 나오겠다 이거지. 네 말대로 이번에는 동행하지 않을 거다.”

게오르그는 발걸음을 돌렸다. 머리를 불태우던 불길이 가라앉아 재로 변해버린 듯했다. 나는 그의 무거운 걸음을 지켜보았다. 나를 탓하려는 게 아니라, 자책하고 있는 것이겠지.

“네놈이 그러다 죽으면 장례식에서 내 얼굴 볼 생각은 하지 마라.”

문이 닫혔다. 나는 긴장을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게오르그가 나간 방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게오르그가 내리친 책상의 끄트머리가 부서져 너덜너덜했다. 저 녀석이 이렇게까지 감정적인 모습은 본 적이 없는데, 어지간히도 마음이 무거웠나 보다.

“…뭐라 할 말이 없어요.”

다프네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다툼 내내 가만히 나를 응시하고 있던 다프네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 같은 것이 그녀의 얼굴에 묻어나왔다.

“게오르그가 그러는 것도 이해가 가고, 일로이가 그리 말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

“너희들이 나를 환멸하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어. 이건 어찌 보면 폐하의 밀명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우리 모두가 출정한다고 광고하는 것보다는, 나 혼자 다녀오는 게 낫지.”

다프네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로이, 정말 저를 대동하지 않을 생각인가요? 도움이 안 되진 않으리라 생각하는데요. 이제는 누가 제게 위해를 가하기도 힘들 거예요.”

“응. 하지만 이번 일은 도움이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니까.”

다프네는 내 완고한 거절에 슬프다기보다는 의아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제 자신의 실력에 확실한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이겠지. 7서클 마법사가 자신감이 없는 게 이상한 거지만.

“게오르그가 어째서 초조해하는지는….”

“알고 있어. 그래도 혼자 가야 해.”

다프네는 다시 한숨을 폭 내쉬었다. 얼굴에 일말의 불안감이 일렁이고 있었다.

“안개 때와 같은 상황은 아냐.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해결이 불가능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도 아니야.”

“그렇겠죠. 몰래 출발하지도 않고 이렇게 고하러 온 거면 말이에요.”

다프네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혜성 공략전에서 일로이가 우리를 믿었던 만큼, 저도 일로이를 믿어요.”

믿는다는 말은 단순하고 어려웠다. 나는 다프네를 향해 쓰게 웃어주었다. 다프네는 힘겹게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신뢰와 믿음. 신뢰는 굳지만 깊지 않다. 믿음은 깊다. 그리고 깊기에 위태로웠다. 위태롭기에 깊어지고, 깊어지기에 위태롭다.

“마리안느가 많이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 만일 성국에 들르게 된다면 마리안느에게 뭐라도 말을 전해주세요,”

“한창 바쁘겠네. 성국은 완전히 비상이 걸린 상태일 거니까.”

차라리 바쁜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마리안느가 안드레 주교를 찾기 위해 함께 가겠다고 한다면 말릴 명분도 없었을 테니까.

“오늘 내로 출발할 거야. 자세한 설명은 이실라가 해주겠지. 그 아이 상태는 좀 어때?”

“안정됐어요. 저렇게까지 침착한 모습을 보니까 조금 안쓰럽기도 하고.”

흘긋, 다프네는 문밖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다프네의 분홍빛 머리가 복도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벚꽃, 혹은 연꽃과 닮은 옅은 분홍. 나는 꽃잎처럼 끝으로 갈수록 짙어지는 그 머리칼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저기, 일로이.”

문득, 다프네가 나를 불렀다. 나는 멍한 상태에서 깨어나 눈을 깜박거렸다. 다프네는 어느새 내 의자 옆에 다가와 서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다프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나를 안았다.

“너무 멀리 가지 말아요.”

나는 다프네의 팔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프네는 한동안 그리 나를 안고 있다가,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 나는 괜히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고, 다프네는 마주 웃어주며 사무실의 문을 닫고 나섰다.

문이 닫히고,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푹 묻었다. 아마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성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저들을 동반하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거냐, 일로이?]”

성검의 물음은 나를 책하려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말 순수한 질문에 가까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들려오는 보고에 의하면, 지금 아르옌이 어느 정도로 위험한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어쩌면 재앙. 그 이상으로 위험한 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빙의자로서의 지식이 남아있는 노트를 뒤적거렸다. 그 시절 적어두었던 기록은 지금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의 아르옌은 굉장히 위험한 상대일 거야. 그 녀석이 어째서 그렇게 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녀석을 1대 1로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전 대륙에서 나 하나밖에 없을 거야.”

아마 퀘노어 대공이나 아그네스 정도라면 엇비슷하거나,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대공이라면 아마 5할 이상의 확률로 이기겠지만…. 당장 아르옌이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니.

“[정말 그런 이유가 맞더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히, 단순히 아르옌이 위험하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그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과는 별개의 감각이, 다른 이들을 이번 추격에 데려가지 말라며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빙의자로서의 나를 감추려는 생각에서 온 판단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떡할 생각이더냐. 너는 그 녀석을 어찌하고 싶은 거냐.]”

성검이 침묵을 깨트렸다. 나는 정신을 차리며 노트를 덮었다.

“생포할 거야. 잡을 수 있는 상태라면 말이지.”

잡을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이’ 그 녀석을 죽여야만 하는 상태라면? 나는 머릿속에 절로 떠오르는 질문을 밀어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잡을 수 없다면….”

그다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사무실을 나서서 이실라가 기다리고 있을 방을 향해 걸어갔다. 내 인기척에,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피 묻은 사제복 차림의 이실라가 문가에 서서 나를 맞이했다. 부상을 달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용사님.”

“안내해주세요.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이실라는 지체하지 않았다. 나는 곧장 문이 아닌 창틀에 발을 디디는 그 행동을 보며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이실라는 뭐가 이상하냐는 듯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내저었다. 당장 저 아이를 납득시키는 데에 쓸 시간은 없었다.

“가겠습니다.”

이실라는 멀뚱히 나를 바라보다가, 창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낮은 쪽의 지붕으로 능숙하게 착지하는 모습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다.

“[이단심문관들은 다 저런 식이냐, 일로이?]”

“마리안느도 가끔 저런 이상한 짓 할 때가 있으니까, 그렇지 않을까.”

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창틀에 발을 디뎠다. 그저 창틀에 발을 얹었을 뿐이지만, 배덕감이 송곳이 되어 내 양심을 찔러댔다.

“[도둑질하고 도망가는 도둑놈 같은 자세구나.]”

말 안 해줘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거든. 나는 저렇게 능숙하게 창문으로 탈출 못해.

나는 성검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신형을 날렸다. 이제는 마나로 신체를 굳이 강화하지 않아도 웬만한 오러 사용자 이상의 신체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솔라는 깔끔하게 착지한 나를 바라보며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나를….”

“가자. 어디서 그렇게 된 거야? 네가 그렇게 다급하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걸 보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것 같기도 하고.”

이솔라는 헛기침하며 표정을 다잡았다.

“예. 아마 놈들은 거처를 정해두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던 것일 테지요. 그들에게는 성지도, 성유물도 없으니까요.”

“사이비들에게 최적의 환경이군. 적(籍)을 두지 않고 가는 곳이 곧 교회가 되다니.”

“그렇기에 놈들을 추격하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마탑의 소요 사태가 아니었다면 놈들을 잡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거예요.”

우리는 지붕을 가볍게 건너뛰며 왕도의 서문에 이르렀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 놈들의 수장을 눈앞에 두었을 때.”

이솔라가 제자리에 멈춰 서며 말했다. 그리 말하는 이솔라의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용병이, 주교님을 대신해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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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전국에 현상수배령이 내려진 아르옌 엘미온이라는 놈이냐?”

모험가이자, 현상금 사냥꾼. 헌터 스펜은 길을 가로막고 서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왕도의 영향권을 벗어나는 길. 그리고 가장 빨리 국경을 나갈 수 있는 길. 도망자들이 올 만한 곳은 이 마을밖에 없었고, 이 길목밖에 없었다. 수십 명의 중범죄자와 첩자들을 제 손으로 잡아 온 그는, 이번 건수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때 용병왕이라고 불리던 사람 아니냐? 용사 파티에서 쫓겨나더니,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싸돌아다니길래, 왕궁에서 직접 현상수배령을 내렸대?”

아르옌이라는 작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후드를 푹 눌러쓴 채로, 헌터 스펜과 마주한 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후드의 그림자에 가려진 눈은 어디를 응시하는지, 입가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참고로 나 혼자 온 건 아니다?”

현상 금액, 800만 골드. 열 명이 나누어 가져도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대륙에서 알아주는 용병, 모험가들이 속속들이 골목골목에서 기어 나왔다.

“네가 아무리 용병왕이라 불리는 인물이라도, 이건 감당하지 못할 거다.”

아르옌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헌터 스펜이 마지막으로 본 건, 이를 드러내는 아르옌의 섬뜩한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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